# 262
Restaurant 261. Last Stage
“어머나. 강 대표! 이게 무슨 일이야, 그래?”
횡성의 김치 공장.
강지한이 춘천에서 직접 싸가지고 올라간 김치를 먹어본 조미옥이 호들갑을 떨었다.
그녀는 김치 한 조각을 더 집어 먹었다.
“어머어머.”
조미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때요?”
“몰라 물어요? 기가 막히지. 지금 눈 돌아가려는 거 겨우 붙잡고 있다고. 내가 태어나서 이런 김치는 정말 처음 먹어봐요. 도대체 무슨 마술을 부린 거래요? 응?”
조미옥의 입에 모터가 달렸다.
그녀의 손은 말을 하는 와중에도 바쁘게 김치를 죽죽 찢고 있었다.
세상에 맛있는 김치를 많이 먹어본 그녀였지만 지한 김치를 접한 이후 그 이상의 김치맛을 보지 못한 터였다.
그런데 이번에 강지한은 그것보다 더 맛있는 김치를 만들어 가져왔다.
“마약이라도 탄 거야, 뭐야?”
조미옥이 찢은 김치를 계속해서 입에 넣었다.
한번 맛보기 시작하니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강지한은 조금씩 포장해 온 김치찌개, 된장찌개와 반찬들을 내놓았다.
이를 본 조미옥이 당장 밥 한 그릇을 퍼왔다.
“나 조금 전에 저녁 먹었는데.”
투덜대면서도 그녀의 입꼬리는 말려 올라가 있었다.
“강 대표님은 밥 자셨어요?”
“네, 조 전무님만 드세요.”
“그럼 마다않고. 호호.”
조미옥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서 본격적인 식사를 시작했다.
강지한이 가져온 김치는 겉절이와 익은 김치 두 종류였다.
우선 흰 쌀밥에 익은 김치부터 죽 찢어서 척 올리고 크게 한입 넣어 먹었다.
우적우적.
김치는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역시 밥이랑 먹어야 최고였다.
김치와 밥이 환상적인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을 때, 조미옥의 손에 들린 젓가락이 콩자반과 오징어채볶음을 입안으로 전달했다.
“어머어머.”
오늘 여러 번 놀라는 조미옥이었다.
반찬 또한 이전보다 수준이 더 올라가 있었다.
이번엔 겉절이 한 조각에 밥 한 술을 떠 넣은 그녀가 두부조림과 마늘장아찌도 맛봤다.
“꿀꺽! 나 진짜 미치겠어, 강 대표.”
두부조림은 겉면을 바싹 구워 식감이 좋으면서도 매콤달콤짭짤한 양념이 속까지 잘 스며들어 있어 기가 막혔다.
마늘장아찌 역시 양념의 비율을 완벽하게 잡은 데다 숙성을 잘 시켜 마늘 풋내가 전혀 없고 맛은 더욱 살아났다.
다른 반찬들도 흠 잡을 곳이 전혀 없을 만큼 반찬계의 교과서 그 자체였다.
조미옥은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도 맛보았다.
강지한의 찌개 끓이는 실력은 익히 알고 있는 그녀였다.
그런데 그녀의 기억 속에 있는 것보다 한층 더 맛이 깊어져 있었다.
찌개를 먹었을 뿐인데 몸보신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김치며, 반찬이며, 찌개며 하나같이 사람을 놀라게 만들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그녀가 먹은 음식들의 레벨은 전부 8이었으니.
강지한은 식재료 본연의 맛을 파악하려다 깨달음을 얻어 한정신의 지식이 4로 레벨 업 했다.
그 덕에 새로운 지식들을 얻게 되었고 그것을 바로 음식들에 적용해 본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
게 눈 감추는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운 조미옥에게 강지한이 수첩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게 뭐야?”
“지한 김치 새 레시피예요. 배추김치뿐만 아니라 다른 김치들 양념 배합 방법과 바뀐 재료들, 수정된 비율, 숙성 기간까지 전부 적혀 있어요.”
“아이고 보물창고네, 이거.”
“보관 잘하셔야 해요.”
“걱정 말아요. 나 믿지?”
“그럼요.”
미소 짓는 강지한의 눈에 조미옥의 상태창이 보였다.
그녀의 정직도와 신뢰도는 전부 100이었다.
* * *
지한 식당의 음식 값이 전체적으로 천 원씩 더 인상되었다.
하지만 손님들은 누구도 불평을 토로하지 않았다.
맛은 그 몇 배 이상 업그레이드되었기 때문.
한 테이블의 남녀 손님이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눴다.
“보통 식당이라는 게 장사가 잘될수록 초심을 잃잖아, 오빠.”
“그렇지.”
“근데 여기는 어째 갈수록 맛이 더 좋아진다니까.”
“나도 그게 미스터리지만. 미스터리는 미스터리로 남길란다.”
“왜?”
“풀어서 뭐해. 맛이 좋아지면 우리한테도 좋은 건데. 그냥 먹어.”
“그래.”
지한 식당의 레시피는 강지한이 전부 업그레이드시켜 놓은 이후였다.
육수와 양념장, 소스, 천연조미료 역시 일괄적으로 바뀌었다.
다행스럽게도 한지민과 서정혜는 바뀐 레시피에 금방 적응해 주었다.
강지한의 레시피대로만 만들면 무조건 8레벨의 음식이 나올 수 있었다.
물론 육수, 양념장, 소스가 없다면 잘 만들어 봤자 레벨 4, 혹은 5 이상은 힘들겠지만.
이제 지한 식당에서 나오는 모든 음식의 레벨은 전부 8이었다.
춘천에서 제일가는 한식당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수준이었다.
지한식당은 춘천에 여행을 오면 꼭 들러야 하는 맛집이 되었다.
인터넷에 등록된 지한 식당의 리뷰수는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중이었다.
SNS에서는 쉴 틈 없이 인증샷과 해시태그가 걸렸다.
외국인들도 적잖이 다녀가며 지한식당의 인기를 입증했다.
5월 말경, 몰래 다녀간 잠행단들 또한 지한 식당에 95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그전까지의 부진을 씻은 듯 지워 버리는 쾌거였다.
지한 식당의 이름은 춘천을 넘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쳐 나가고 있었다.
* * *
6월 7일.
드디어 명옥정 건물이 중식당의 모습으로 완벽하게 바뀌었다.
3층 건물의 입구에는 ‘지한 객잔’이라는 간판이 멋있게 걸려 있었다.
본래는 지한 반점으로 하려 했는데, 객잔이 더 낫지 않겠냐는 예소린의 조언에 그 말을 따르기로 했다.
강지한은 아직 오픈 전인 지한 객잔의 홀로 들어섰다.
홀 내부는 그가 주문했던 대로 와인색의 고급스런 느낌을 잘 살려 디자인되었다.
깔끔한 대리석 바닥 또한 마음에 들었다.
적막함만 흐르는 홀의 허공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Last Stage. 지한 객잔]
[목표: 지한 푸드의 식당 중 한 곳이라도 미슐랭 스타를 받을 것.]
[성공 보상: 레벨 업 시스템 최종 레벨 업.]
[오픈 전입니다.]
[레벨 업은 오픈 이후 가능합니다.]
[상급자의 난이도가 적용됩니다.]
[만족도는 10일 동안만 습득 가능합니다.]
“라스트 스테이지?”
강지한이 메시지의 맨 윗줄을 읽었다.
“여기가…… 라스트 스테이지라고?”
마지막 무대.
그런 메시지가 나타날 줄은 예상 못했던 그였다.
라스트 스테이라는 말은 곧, 게임으로 치면 마지막 보스를 만났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마지막 보스를 잡고 나면 얻게 되는 것은 엔딩이다.
때문에 이번 스테이지 목표를 클리어하면 레벨 업 시스템 또한 엔딩을 보게 되는 것인가 싶었다.
그런데 보상을 보면 또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레벨 업 시스템 최종 레벨 업이라니.”
현재 강지한의 레벨 업 시스템은 두 번의 변화를 거쳤다.
한마디로 두 단계 레벨 업을 했다고 보는 게 맞았다.
한데 그게 끝이 아니라 마지막 한 번의 레벨 업이 더 남아 있었다.
만약 여기서 레벨 업을 또 하게 된다면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강지한은 궁금했다.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목표를 클리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라스트 스테이지답게 목표의 난이도가 상당했다.
미슐랭 스타를 받으라니.
그나마 다행인 건, 지한 푸드에서 운영하는 식당 중 어느 곳에서든 받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이었다.
만약 지한 객잔에서 미슐랭 스타를 받으라고 했다면 더욱 막막했을 것이다.
지금 강지한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중식의 최고 레벨은 7.
그것도 몇 가지 음식들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레벨 6이 최고치였다.
‘중식들도 일괄적으로 7레벨까지는 올려놓아야 할 텐데.’
일단 주방 보조들이 레시피대로만 따라하면 최하 레벨 5 이상은 만들 수 있도록 각 요리의 비법양념과 육수들은 만들어 놓은 상황.
하지만 중식이라는 것이 그 어떤 요리보다 불을 다루는 기술을 중시한다.
때문에 불과 웍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아무리 완벽한 레시피를 건네준다 해도 무소용이 되고 만다.
‘황태규 씨는 중식집 아들이니 걱정 없을 테고…… 하정운 씨가 잘 따라오려나 모르겠네.’
우선은 두 사람이 모든 메뉴를 최소 레벨 5 이상의 수준으로 만들 수 있을 때까지는 중식집 문을 열지 않기로 했다.
강지한은 둘에게 내일부터 지한 객잔에서 수업이 있을 테니 아침 일찍 나오라 메시지를 보냈다.
* * *
지한 식당은 언제나 그렇듯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점심 피크 타임이 거의 다 끝나가는 시각.
딸랑-
“어서 오세…… 아, 웰컴.”
손님을 맞이하려던 홀직원 한 명이 그가 금발에 벽안을 가진 외국 청년인 것을 보고 초급 영어를 구사했다.
외국인의 이름은 에이사 버터필드.
홀로 한국 여행을 하던 중 강원도 춘천에 도착했고, 소문이 자자한 지한 식당에 걸음을 하게 된 것이다.
에이사는 직원이 안내해 준 테이블에 앉아 메뉴판부터 살폈다.
그러고는 손짓으로 먹고 싶은 메뉴를 택해서 알려주었다.
직원이 이를 받아 적어 주방에 넘겼다.
에이사는 자신이 주문한 메뉴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식당 내부를 감상했다.
식당에는 빈자리가 하나도 없을 만큼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홀직원들은 쉼 없이 움직이며 음식을 서빙하거나 빈 그릇을 치웠다.
중간중간 손님들의 편의도 신경 쓰며 항상 얼굴에서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주방 또한 전쟁터였다.
밀려드는 주문을 최대한 빨리 소화하기 위해 요리사들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에이사의 음식은 10분이 채 되기 전에 서빙되었다.
에이사는 그 빠른 속도에 한 번 놀라고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아름다운 비주얼에 두 번 놀랐다.
“아름다워.”
이건 반드시 카메라에 담아야 했다.
찰칵!
스마트폰으로 인증샷을 찍은 에이사가 드디어 수저를 들었다.
상 위에 놓인 음식들은 대부분 한국을 돌아다니는 동안 여기저기서 맛보았던 적이 있었다.
의외로 한식이 입에 잘 맞았던 에이사는 먹는 문제로 여행이 고달프지는 않았다.
아무튼 지금껏 먹어왔던 음식의 맛을 상기한 에이사는 밥을 한술 떠 입에 넣고 제육볶음을 집어 먹었다.
“오!”
순간 저도 모르게 감탄이 터져 나왔다.
제육볶음 맛이 지금껏 먹어왔던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마치 여태 네가 먹은 건 전부 가짜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맛이었다.
“정말 놀라운데.”
춘천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이라더니 과연 이유가 있었다.
에이사가 이번엔 김치찌개를 한술 떴다.
한국에 와서 가장 많이 접해본 음식 중 하나가 김치찌개였다.
맛이 없는 곳도 있었고 맛이 있는 곳도 있었다.
그런데 여기 김치찌개는 환장하도록 맛있었다.
김치찌개의 격이 달랐다.
다른 반찬들 역시 마찬가지.
에이사는 음식 하나하나를 집어 먹으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런 멋진 식당이 있었다니. 아무래도 난 절대 여기를 잊지 못할 것 같아.”
홀로 감탄을 한 에이사는 이후로 열심히 먹는 행위에만 집중했다.
“후아, 배부르다.”
그가 식판에 놓인 모든 음식을 밥알 한 알까지 깔끔하게 비웠다.
정말이지 한국에 와서 먹었던 식사 중에 가장 만족스러웠다.
에이사는 기분 좋게 계산을 하고 지한 식당을 나섰다.
그러고서는 이제 어디를 가면 좋을까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검색을 하고 있을 때였다.
에이사에게 메시지 하나가 날아왔다.
그는 바로 메시지를 확인했다.
-에이사, 오디션 합격했다. 네가 배역 따냈어. 지금 어디야? 당장 사무실로 찾아와.
메시지를 읽고 난 에이사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걸렸다.
그가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