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1
Restaurant 260. 더 높은 경지
백상준의 몸이 사시나무 떨 듯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 예경천은 의아한 시선으로 백상준을 바라봤다.
“백 선생님? 괜찮으십니까?”
“네? 아 네……. 아니, 아니요. 안 괜찮은 것 같네요.”
백상준의 눈이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그 시선을 강지한은 담담하게 받아내고 있었다.
“예 사장님.”
백상준이 예경천을 불렀다.
“네?”
“제 건물 매입한다던 사람이 저 인간입니까?”
백상준의 말에 예경천이 난감한 얼굴로 그를 달랬다.
“어허. 백 선생님, 요새 심경이 안 좋으신 건 알겠는데 거래하실 분한테 그 무슨 망발입니까?”
“하아아…….”
차마 길고 긴 사연을 다 얘기할 수는 없었고 그렇기도 싫었기에 그저 긴 한숨만 내쉬고 마는 백상준이었다.
그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예경천에게 부탁했다.
“사장님, 잠깐 자리 좀 피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에 강지한이 고개를 저었다.
“저랑 둘이 하실 얘기가 있으면 우리가 나가야죠. 여기 예 사장님 부동산입니다. 주인분께 자리를 피해 달라는 건 예의가 아니죠.”
강지한의 말이 구구절절 옳았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예경천의 눈이 애정이 담겼다.
‘역시 사윗감으로 저런 사람이 들어와야 하는데.’
백상준의 안하무인으로 살짝 올라오던 화가 강지한의 말 한마디에 누그러졌다.
예경천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저 바람 좀 쐬고 올 테니 두 분이서 얘기 잘 나눠보세요. 뭐 서로 안 좋은 일 있으시면 이 기회에 다 푸시고. 응?”
명옥정 건물 거래는 제법 큰 건이다.
빨리 해결해서 넘어가면 예경천에게 떨어지는 복비가 오백이 넘는다.
그는 두 사람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원만하게 해결되어 도장을 찍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사무실에 둘만 남게 되자 날카로운 기류가 공간을 휘감았다.
“너…… 절대 두 다리 뻗고 못 지내도록 만들 거야.”
백상준은 짐승이 으르렁대듯 말했다.
하지만 그의 얘기는 강지한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이미 한 번 겪어봐서 알 텐데. 나, 혹은 내 주변 사람들 건드리려 들면 어떻게 되는지. 그렇게 뜨거운 맛을 봤는데도 부족합니까?”
강지한이 누군가에게 이토록 모질게 말하는 것은 천명옥 이후 처음이었다.
그는 어지간한 문제들은 참고 넘어간다.
독한 말도 되도록 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런데 천명옥 모자 앞에서만큼은 달랐다.
강지한의 독설에 백상준이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잖아.”
“내가 뭘 어떻게 했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내 어머니는 죄인이 되셔서 세상 빛을 못보고 계시고 명옥정은 전부 무너졌어! 아버지는 한 달 전부터 행방이 묘연하시고! 우리 가족이 산산조각 나버렸다고!”
“그게 내 탓이라는 거야?”
“그럼 이 상황에서 누굴 원망해야 할까?”
“본인의 어머니를 원망해야지.”
“뭐?”
“애초에 천명옥이 뒤에서 더러운 짓거리들을 꾸며대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천명옥과 변노민이 손을 잡고 저지른 더러운 공작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강지한은 그저 감자 줄기 하나가 있다고 진상명에게 알려줬을 뿐이다. 그에 진상명이 뽑아 올리니 그 밑으로 감자들이 우르르 딸려 나온 꼴이다.
“학교에서 안 배웠어? 사람은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네 어머니가 지은 죄로 인해 너희 가족이 그 모양이 된 건데, 왜 나한테 와서 분노를 쏘아대는 거지?”
“이…… 개자…….”
백상준의 입에서 욕이 나오려 할 때 강지한이 그의 말을 잘랐다.
“말 가려서 해. 어르신 한 번 더 만나 뵙고 싶지 않으면.”
강지한이 말하는 어르신이 누구인지 익히 알고 있는 백상준이었다.
단 한 번.
진상명이 단 한 번 다녀갔을 뿐인데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이 날아가고 말았다.
“…….”
결국 백상준은 피가 나도록 아랫입술을 깨물며 입을 닫았다.
그가 격동으로 가득한 마음을 겨우 다스린 뒤 물었다.
“왜…… 왜 우리 건물을 인수하려는 거야. 네 저의가 뭐야? 비참함의 끝이 어디인지 보여주겠다는 거야?”
강지한은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새로운 사업을 위해 건물이 필요했고 지금 매물로 나온 모든 건물들 중에 그 건물이 가장 좋았을 뿐.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없었어.”
사실이었다.
강지한은 예경천에게 명옥정 본점의 건물을 추천받아 가격을 듣고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
명옥정 본점은 3층짜리 건물로 면적도 40평이나 되는 만큼 그가 원하는 조건에 딱 들어맞는 곳이었다.
가격 또한 10억으로 대단히 싸게 나왔다.
번화가에 위치한 데다 목이 좋으니 더할 나위 없이 괜찮았다.
아직까지 구매하려 덤벼든 이가 없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아무래도 잡음이 컸던 곳인 만큼 선뜻 건물을 사겠다고 덤벼들기가 힘들었으리라.
하지만 강지한은 그런 것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우리 건물이…… 네 새 사업에 적당했기 때문에 샀다…… 그게 다라고?”
“다른 이유가 필요해?”
당연하지 않냐는 듯 되묻는 강지한의 얼굴을 보며 백상준은 허탈한 웃음을 뱉었다.
“하…… 하하.”
싸움도 상대방이 같이 들이받아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부동산에 들어와 강지한을 보자마자 그가 필시 자신을 엿 먹이려고 이런 짓을 벌인다고 생각했다.
한데 지금의 저 반응을 보면 정말 필요하기 때문에 구매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강지한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무서운 인간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상대하기 힘든 타입이 목적을 위해서라면 이것저것 재지 않고 앞만 보며 달리는 이들이다.
강지한이 그랬다.
그는 명옥정의 건물이면 어떠냐는 투였다.
“하아.”
이건 싸움을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괜히 백상준 혼자 열 내고 덤볐다가 스스로 자멸한 꼴이 되고 말았다.
“거래할 겁니까?”
여태 반말로 응수하던 강지한이 말을 높여 물었다.
백상준은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합시다.”
“그러죠.”
“계약금부터 넣을 겁니까? 아니면…….”
“전액 바로 입금해 드릴게요.”
“그렇게 해주면 좋고요.”
그때 타이밍 좋게 예경천이 들어왔다.
“자~ 어떻게 감정들은 다 풀리셨고?”
“거래 진행하면 될 것 같아요, 사장님.”
강지한의 말에 예경천이 손을 싹싹 비볐다.
“아, 그래요? 좋습니다. 시작해 봅시다.”
* * *
춘천 명동의 명옥정 본점은 천명옥이 명옥정을 춘천 최고의 한정식당으로 올려놓으면서 얻게 된 건물이다.
그 건물 안에는 천명옥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것을 천명옥은 3년 전 아들인 백상준의 명의로 돌려주었다.
어차피 명옥정의 다음 주인은 그가 될 것이니 미리부터 책임감을 가지라는 의미에서였다.
그만큼 이 건물은 백상준에게 너무나 큰 의미가 담겨 있었다.
강지한에게 명옥정 본점 건물을 넘기며 백상준은 생각했다.
오히려 잘된 것이라고.
이것은 뼈에 사무치도록 깊이 새긴 각인이다.
앞으로 강지한의 손에 넘어간 건물 생각에 그가 두 발 뻗고 편히 잠들 날이 없을 것이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심정으로 타지에서 보란 듯이 일어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백상준이 아직 어린 나이라 하지만 현실을 너무 모르는 무지렁이는 아니었다.
강지한의 뒤에 누가 있는지 아는 이상 이제 그를 건드리기는 힘들었다.
그렇다면 강지한보다 더욱 크게 성공하는 것이 유일한 복수가 될 수 있을 터.
‘반드시. 반드시 그렇게 될 겁니다, 어머니.’
백상준이 이를 악물고 다짐했다.
물론 강지한은 그와 거래를 한 이후 더 이상 백상준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 * *
명옥정 본점 건물은 중식당으로 변화하기 위해 리모델링 공사로 한창이었다.
건물 규모가 상당한 만큼 리모델링 기간만 한 달이 꼬박 걸릴 예정이었다.
한편, 지한 김치의 홈쇼핑 앵콜 방송이 한 번 더 방영되었다.
이번에는 골든타임에 전보다 신경 쓴 티가 확 나는 세트장에서 대박 구성을 내세우며 판매에 열을 올렸다.
쇼호스트는 전과 같이 탁영진이었다.
인경홈쇼핑의 민경욱 피디는 지한 김치 완판 이후 탁영진을 줄기차게 밀어주고 있었다.
탁영진은 그런 민경욱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더더욱 열심히 노력했다.
그 결과 지금은 인경홈쇼핑에서 가장 잘나가는 쇼호스트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런 탁영진이 골든타임에 지한 김치를 만났다.
삼박자가 두루 갖추어지니 홈쇼핑은 시작부터 대박 조짐을 보이고 고공판매행진이 이어졌다.
그리고 방송 시작 25분 만에 준비해 두었던 모든 물량이 완판되는 기염을 토했다.
그동안 지한 김치는 홈쇼핑의 여파로 입소문이 톡톡히 나며 판매고가 꾸준히 늘어나는 중이었다.
그 바람에 지한 김치 쇼핑몰을 책임지고 있는 조미옥은 부랴부랴 새로운 김치 공장 두 개를 더 잡아 계약을 마쳤다.
이제 지한 김치는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김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번 홈쇼핑 사태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공장 하나를 추가로 계약해야 할 판이었다.
지한 김치는 10년 동안 김치 판매의 왕좌를 꾸준히 지켜온 소담 김치를 무섭게 위협하고 있었다.
* * *
강지한의 요새 일과는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첫째는 방송.
둘째는 맛집 탐방.
셋째는 요리 연구.
넷째는 매장 및 직원 관리.
다섯째는 설탕이 새끼들 육아.
그것이 전부였다.
물론 틈틈이 예소린도 신경 썼다.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두 세 번은 예소린과 데이트를 즐겼다.
한편, 인터넷방송 BJ 유정미의 여섯 인절미 육아 방송은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설탕이 온다가 흥행가도를 달리며 덩달아 시청자 수와 구독자 수가 폭발해 버린 것.
이제는 강지한이 부탁하지 않아도 먼저 연락이 와서 오늘은 아이들 봐주지 않아도 되느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아니, 강지한이 있어도 찾아와서는 아이들을 촬영하며 돌봐주고는 했다.
지한 푸드의 식당들도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는 중이었다.
강지한을 중심으로 뭉친 모든 이들에겐 그저 행복한 일들만 가득했다.
그러는 와중 강지한에게도 불현듯, 생각지 못했던 경사가 일어났다.
* * *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온 강지한은 요리 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요리란 견문이 넓어질수록 점점 더 알아야 할 것이 많아지는 신비한 것이었다.
그러한 것들을 공부하고 익혀 나가는 것이 강지한에게는 최고의 행복이었다.
그는 책에서 본 지식과 시스템으로 얻은 지식, 그리고 맛집을 탐방하며 직접 먹어본 경험들을 토대로 계속해서 자신의 실력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럴수록 요리의 과정은 더더욱 복잡해지면서 심화되었다.
그만큼 그의 손끝에서 탄생되는 요리들의 맛 또한 깊어졌다.
강지한은 이제 자신의 주 분야인 한식을 한 걸음 더 발전시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은 한식을 주로 파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평소에 흔히 접하기 힘든 식재료들 십수 가지를 늘어놓고 생으로 맛볼 수 있는 것은 생으로, 익혀 먹어야 하는 것은 익혀서 맛을 보고 있었다.
그것이 요즘 강지한이 몰두하고 있는 요리 연습이었다.
자고로 요리의 한계를 넓히기 위해서는 수많은 재료들의 맛을 전부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때문에 재료 본연의 맛을 느끼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이런 연습은 전부터도 꾸준히 해왔다.
다만, 요즘에는 구하기 힘든 재료들 위주로 맛을 보고 있다는 것이 달랐다.
그래야 세상에 있는 모든 맛을 내는 데 능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갖가지 특이한 재료들을 맛보던 와중이었다.
[한식 요리 장인 고(故) 한정신의 지식이 충분한 경험치가 쌓여 레벨 업 합니다.]
[한식 요리 장인의 지식이 레벨 4가 되었습니다.]
[레벨 업으로 인해 전보다 더 많은 지식이 오픈됩니다.]
한정신의 지식 레벨이 올라가며 새로운 지식들이 해일처럼 몰아쳤다.
그러고는 머릿속에 빠르게 갈무리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에 강지한의 얼굴이 잔뜩 상기되었다.
그가 음식 맛을 보다 말고 벌떡 일어나서 새로운 김치 양념 속을 만들었다.
동시에 한식 요리에 쓰일 새로운 육수와 비법 양념장 또한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만드는 요리들에 고정되어 있는 강지한의 눈은 더 높은 경지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