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59화 (259/330)

# 259

Restaurant 258. 설탕이 온다 시사회

“유나야, 솔직하게 말해봐.”

한정국이 우유나의 집에 놀러오자마자 던진 말이었다.

“뭘?”

우유나는 난데없는 추궁에 눈만 깜빡였다.

“그 김치, 정말 어머님이 담그신 거 맞아?”

“……그으러엄~”

우유나는 한 템포 느리게 대답을 하고 말았다.

이미 그녀를 의심하고 있던 한정국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유나야, 자꾸 나 실망시키지 마.”

한정국의 무거운 음성과 눈빛에 우유나가 찔끔했다.

그녀가 한정국에게 바짝 달라붙어 애교 가득한 눈빛을 보내며 콧소리를 흘렸다.

“이잉~ 오빠 무섭게 왜 그래?”

“그러니까 어서 말해. 그 김치. 어머니 김치 맞냐고.”

“……아니.”

결국 우유나의 입에서 진실이 튀어나왔다.

“그럼 어디 거야? 지한 김치지?”

“어떻게 알았어?”

“유나야. 나 한정국이야. 먹어보면 알지. 그걸 모르겠어?”

“……그걸 간과했네.”

“왜 그런 거짓말을 했어?”

“그냥…… 뭐. 아니, 그게 그렇게 중요해?”

애교 작전이 통하지 않자 바로 맞불 작전을 놓는 우유나였다.

그녀가 살짝 토라진 투로 쏘아붙였다.

그에 한정국이 생각해 보니, 우유나에게는 정말 그 김치가 어머니 것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휴, 아니야. 됐어. 넘어가자.”

한정국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사히 상황을 넘긴 우유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헤헷 웃으며 좋아했다.

“그래, 오빠. 별거 아닌 걸로 열내지 마~ 배고픈데 밥이나 먹자. 내가 차려줄게.”

우유나가 주방에서 뭔가를 하는 사이 한정국은 생각에 빠졌다.

‘그럼 일단 한에어에 납품되는 기내식 김치는 강지한의 김치라는 거고…… 설마 도시락도 강지한이 개입되어 있는 건가?’

강지한이 대단한 건 맞다.

그러나 한정국이 그의 식당에서 식사를 해본 결과, 자신보다 뛰어난 요리 솜씨를 자랑할 수준은 아니었다.

잘 쳐주어야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되는 정도였다.

고작 그 정도의 실력으로 한에어의 기내식을 만들었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럼 대체 누구야.’

궁금함만 커져 가는 한정국이었다.

* * *

5월 초순.

드디어 ‘설탕이 온다’가 개봉을 앞두고 시사회에 들어갔다.

유료시사회는 없이 무료 시사회를 한 주간 수도권에서 딱 세 번만 가지기로 했다.

물론 사전에 강지한과 합의된 대로 시사회 무대에는 설탕이가 등장한다.

이러한 사실은 영화제작사 측에서 충분히 홍보가 됐다.

그 덕에 설탕이의 실물을 보기 위한 팬들로 인해 시사회 티켓 얻기 경쟁이 심각해졌다.

제작사와 배급사 측에서 추측했던 예상 경쟁률은 많아야 100:1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경쟁률이 자그마치 1,200:1이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무료시사회 티켓을 구하기 위해 참가 신청을 보낸 것.

그런 일이 가능했던 건 설탕이가 유기견 CF로 세계적 스타견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인튜브에 업로드된 영상의 총조회수는 현재 5억 뷰를 넘어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강아지를 촬영해서 올린 영상 중에서는 가히 독보적인 기록을 자랑하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설탕이 붐의 원인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바로 설탕이의 외모였다.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귀여운 얼굴이 영상을 보는 전 세계 사람들의 심장을 마구 두들겼다.

한마디로 설탕이 얼굴이 일 다한 것.

무료시사회 티켓을 건 사람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에 제작사 측은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드디어 첫 번째 무료 시사회가 서울, 동대문의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열리게 되었다.

* * *

2019년 5월 3일.

동대문 멀티플렉스 극장의 특별관은 설탕이 온다의 상영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단 한 자리도 빈 객석이 없었다.

극장을 찾은 이들 사이사이에는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들도 제법 있었다.

시사회 시간이 당도하자 공간이 암전되며 스크린에서 영상이 흘러나왔다.

어두운 밤.

눈이 내리는 시골의 한적한 거리.

밤 산책을 나선 할아버지와 손자의 눈앞에 다리를 절뚝이는 강아지 한 마리가 다가온다.

누가 버린 유기견인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어미를 잃어버린 건지 알 수 없다.

하얗게 내린 눈을 잔뜩 뒤집어쓴 녀석은 두 사람을 보자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다 이내 푹 쓰러지고 만다.

그렇게 두 사람과 강아지의 인연을 보여주며 카메라는 검은 밤하늘을 비춘다.

이내 시골의 밤하늘 위로 내리던 눈송이들이 그치고 구름에 감추어져 있던 별빛이 드러난다.

별빛은 서로서로 이어지며 ‘설탕이 온다’라는 타이틀로 변한다.

그렇게 감동을 담은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 * *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엔딩 크레딧이 천천히 올라간다.

영화관 안에는 잔잔한 음악과 함께 관객들의 훌쩍이는 소리가 가득했다.

여기저기서 코를 풀어내고 눈물을 찍어냈다.

설탕이 온다는 관객들의 감수성을 완벽히 건드렸다.

객석 안에는 평론가들의 모습도 제법 보였다.

그들 역시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살짝 열린 문 안으로 조용히 들어선 김상수는 이 광경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잘하면 대중성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도 있겠다고.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암전되었던 극장이 다시 밝아졌을 때, 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설탕이! 설탕이!”

잔뜩 흥분한 누군가가 설탕이의 이름을 연호했다.

그때, 사회자가 김상수 감독과 함께 무대 위로 올라섰다.

영화의 여운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서 그대로 김상수에게 옮겨갔다.

“감독님, 영화 잘 봤어요!”

“정말 감동적이에요!”

그에 사회자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마이크를 입에 가져갔다.

“네네. 안 그래도 제가 이분이 감독님이라고 말씀 드리려 했었는데 수고를 덜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일단 진정들 하시고요. 감독님의 인사부터 들어볼까요?”

사회자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나자 김상수가 바로 입을 열었다.

“영화 잘 보셨어요?”

“네~”

객석에서 몇몇 사람의 활기찬 대답이 들려왔다.

“첫 시사회 반응이 기대 이상이어서 무척 안심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하, 우리 설탕이 귀엽죠?”

“너무 귀여워요.”

“영화에 심쿵 포인트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거 아닙니까?”

그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웃었다.

실제로 설탕이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는 컷마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질 뻔한 게 몇 번인지 모른다.

특히 설탕이의 얼굴을 크게 잡아서 슬로우로 돌리는 부분은 모든 관객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오도록 만들었다.

“원래 제목은 행복이 온다였어요. 작중 강아지 이름도 행복이였죠. 그런데 설탕이 녀석이 제가 생각한 캐릭터를 잡아먹어 버렸어요. 그 정도로 잘해줬죠. 그래서 캐릭터 이름도, 영화 제목도 설탕이 온다로 바뀌었답니다.”

김상수의 말에 관객들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제 영화의 주연배우님들을 무대 위로 모셔보도록 하죠.”

감독의 짧은 인사가 끝나자 아역배우 차인우와 노년배우 최만후, 그리고 악역을 맡았던 이정준이 차례대로 무대에 올랐다.

그들의 등장을 관객들이 박수로 맞아주었다.

그러나 박수 소리가 요란하지는 않았다.

모든 이들이 정말 기다리는 배우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

세 사람이 무대 위에 올라서고 난 뒤에 비로소 한마음으로 기다리던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설탕이였다.

“설탕아~!”

“세상에. 세상에! 설탕이를 실물로 영접하다니!”

“나 심장 터질 것 같아.”

설탕이의 등장에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열광적인 반응을 보냈다.

설탕이는 무대 중앙에 서서 의젓하게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영화가 설탕이의 미모를 다 담아내지 못했다는 것을.

저 완벽을 넘어선 미모를 고스란히 담아내려면 카메라 기술이 더 발달해야만 했다.

다들 설탕이에게 푹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강지한이 무대 위에 올라섰다.

설탕이의 보호자 자격으로 함께 무대인사를 하게 된 것.

“어? 강지한이다.”

“강지한이 누군데?”

“설탕이 아버지! 몰라?”

“아……. 배틀셰프 나왔던 사람 아니야? 우승했던…….”

“그래.”

“헐. 그분이 설탕이 아버지였다니.”

관객들 대부분은 강지한이 설탕이의 견주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몇몇 관객들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가 크게 놀라고 말았다.

강지한이 설탕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설탕아, 인사해야지.”

그러자 설탕이가 앞발을 들고 서서 고개를 아래위로 까딱 하고는 내려왔다.

그 작은 행동 하나에 객석은 그야말로 뒤집어졌다.

다들 스마트폰에 설탕이의 모습을 하나라도 더 담으려고 안달이었다.

“아무래도 포토타임부터 가지고 시작해야겠네요.”

사회자의 말에 설탕이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이런저런 포즈를 취해주었다.

자리에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뒤태를 보여주었다가, 배를 내놓고 발랑 드러눕기까지.

관객들은 난리가 났다.

찰칵! 찰칵!

여기저기서 스마트폰과 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액정에 담기는 설탕이의 모습들에 모두의 가슴이 쿵쾅거리며 요동쳤다.

한데 하이라이트가 아직 남아 있었다.

“여러분, 오늘 정말 잘 오신 겁니다. 실은 오늘을 위해 몰래 온 게스트가 있습니다. 모셔보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입구에서 강아지 여섯 마리가 우다다다 입장하기 시작했다.

바로 설탕이의 새끼들 인절미 육남매였다.

“어머나! 어머나!”

“꺄아~ 어쩜 좋아!”

“쟤들 좀 봐, 너무 사랑스럽다.”

설탕이에게 달라붙어서 애정 표현을 하는 새끼들.

설탕이는 그런 자기 자식들을 하나하나 핥아주었다. 한창 똥고발랄해서 정신없을 나이인 새끼들은 설탕이가 핥아주자 얌전히 앉아서 객석을 쳐다봤다.

사회자가 강아지들의 그런 행동에 놀라면서도 얼른 마이크를 들어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 녀석들은 설탕이의 새끼들인데요, 아빠의 영화가 잘되기를 기원하며 함께해 주었답니다. 근데 생긴 게 참 독특하죠? 아빠는 시바견인데 엄마는 골든리트리버라서 그렇답니다. 하하.”

설탕이의 새끼들은 덩치가 설탕이보다 약간 작았다.

털은 시바견이라고 하기엔 길고 리트리버라고 하기엔 짧았다.

얼굴의 전체적인 상은 리트리버인데 귀와 입이 설탕이를 꼭 닮아 있었으며 몸의 비율 또한 시바견에 가까웠다.

다 커도 아마 설탕이보다 약간 더 몸집이 커지는 정도에서 그칠 것 같았다.

아무튼 설탕이와 소금이의 사랑스러운 모습만 고스란히 빼다 박은 인절미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힐링시켜 주는 데 충분했다.

게다가 이 녀석들이 아빠를 닮아 엄청나게 영특했다.

왕!

설탕이가 무언가를 지시하듯 짖으니 새끼들이 첫째부터 여섯째까지 차례대로 주르륵 붙어서 바닥에 엎드렸다.

그러고는 가지런히 모은 앞발 위에 턱을 얹고 헥헥 대는 것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나름 설탕이가 가르친 개인기였다.

인절미 육남매의 개인기로 인해 사람들의 셔터질이 더욱 바빠졌다.

설탕이 온다의 첫 시사회는 매우 성공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 * *

한에어의 기내식 열풍은 식을 줄을 몰랐다.

갈수록 더욱 그 기세가 드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에 상황을 관망하고만 있던 한민국은 동생 한정국을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

그리고 추궁했다.

“너 일 제대로 안 할 거냐.”

“내가 제대로 안 하는 게 아니라 한에어 측에서 말도 안 되는 셰프를 고용한 것 같다니까.”

“누구?”

“그걸 알면 내가 이렇게 답답해하겠어? 보니까 김치는…… 지한 김치 쪽에서 납품받는 것 같던데. 그렇다고 강지한이 그 기내식을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나보다 실력도 없는 사람인데.”

한정국의 말에 한민국이 피식 웃었다.

“누가 그래?”

“응?”

“강지한이 너보다 실력이 떨어진다고 누가 그러냐고.”

“무슨 소리야. 그때 형이랑 같이 그 녀석 레스토랑 가서 음식 먹어봤잖아. 나 정도는 아니었잖아.”

“너 그거 아냐? 네 혀는 타인의 음식 맛볼 땐 참 정확한데 본인이 만든 음식 먹을 때는 너무 관대하다는 거.”

“……뭐라고?”

“너 자존심 구겨질까 봐 여태 말 안 했는데, 네가 먼저 입 열었으니 얘기해 주마. 강지한이나 너나 거기서 거기다.”

“형!”

“소리 지를 시간 있으면 최근의 네 모습을 돌이키고 반성 좀 해라. 툭하면 룸에 가서 술이나 빨고. 그게 아니면 애인 만나서 희희낙락하기 바쁜데 요리 실력이 늘겠냐.”

팩트로 찔러 버리니 한정국의 입이 턱 막혔다.

“네가 들쑤신 벌집이야. 상처받지 말고 주방 들어가서 칼이나 한 번 더 잡아.”

한민국은 동생에게 두었던 시선을 거두었다.

한정국은 벌레 씹은 얼굴이 되어 참담하게 형의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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