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52화 (252/330)

# 252

Restaurant 251. 둔갑해 버린 어머니 손맛

인경홈쇼핑에 기적이 일어났다.

지한 김치가 자체 역대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며 완판되어 버린 것.

그것만 해도 대단한 일인데, 지한 김치를 완판시킨 사람이 누구인가?

주가가 갈수록 바닥을 치다 못해 땅을 뚫고 들어갈 지경인 탁영진이었다.

과연 그가 이번 년도까지 버티느냐 마느냐를 놓고 동료 쇼호스트들 사이에서는 내기까지 벌어질 정도였다.

그런 그가 인경홈쇼핑의 역사를 갈아치워 버렸다.

게다가 골든타임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모든 악조건 속에서 완판을 이루어냈으니 이게 기적이 아니면 뭐가 기적이겠는가.

방송이 끝나고 난 뒤 탁영진과 강지한은 한순간에 영웅이 되어버렸다.

탁영진을 포옹해 준 형민욱 피디가 강지한의 손을 덥석 잡고 말했다.

“강 대표님이 우리 방송국 귀인이십니다.”

“제가 뭘 했습니까. 탁 선생님이 다 하셨죠.”

“이거 분위기가 아마도 앵콜 한 번 더 들어올 것 같은데, 그때도 꼭 출연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골든타임으로 편성해 드릴게요.”

오늘 준비했던 지한 김치의 양이 1만 2천 개였다. 그것이 전부 다 팔렸다.

골든타임이 아닌 데도 이 정도의 판매고를 올렸다면 골든타임 때는 2만 개를 준비해도 충분히 완판이 가능할 것 같았다.

물론 형민욱이 바라는 것은 완판 여부보다는 시청률의 기록이었다.

한 번 더 오늘의 시청률을 능가해 준다면 그보다 좋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뒷돈을 받지 못해 손해 보는 장사라고 생각했었는데, 황금 알을 낳는 거위였다.

시청률이 높은 홈쇼핑엔 그만큼 많은 청탁이 엉키게 되기 마련.

강지한을 바라보는 형민욱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그의 재출연 요청을 강지한은 쉽게 받아들였다.

“다시 편성 잡아주시면 꼭 출연할게요.”

형민욱이 뒷돈을 밝히는 사람이건 아니건 그런 사실은 강지한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 알지도 못한다.

강지한의 입장에서는 이런 홈쇼핑을 한 번 더 잡아준다면 이득이 되니 그러겠다고 했다.

형민욱이 거의 절을 할 기세로 허리를 숙이고서 소리쳤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저도 감사드려요.”

“실은 촬영 하실 때 밖에서 김치 맛을 좀 봤어요. 미쳤더라고요. 아니 어떻게 김치를 이렇게 담그십니까?”

“맛있죠?”

강지한이 자부심을 가득 담아 물었다.

“맛있고말고요. 오늘 팔린 김치는 컴플레인 절대 안 들어올 거라고 자신해요, 제가. 아! 이걸 드려야지.”

형민욱이 개인 명함 한 장을 강지한에게 건넸다.

그는 가뜩이나 여기저기서 청탁 전화들이 많이 오는지라 타인에게 개인 연락처가 적힌 명함 주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 그의 행동은 강지한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는 뜻.

“일 있으시면 언제든 전화하세요. 밤이고 새벽이고 이른 아침이고 다 괜찮으니까요.”

“네.”

형민욱이 한참 감사 인사를 하고 지나가니 이번엔 탁영진이 강지한에게 연신 고개 숙이며 눈물을 닦았다.

“대표님께서 오늘을 제 인생 터닝포인트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짜 제가 너무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이 열심히 하신 거죠.”

“제가 이 은혜는 잊지 않고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강지한을 바라보는 탁영진의 표정은 귀인을 앞에 둔 듯했다.

촬영장에 있는 다른 스텝들의 표정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다.

강지한은 인경홈쇼핑의 영웅이 되었다.

* * *

지한 김치의 완판 소식에 기뻐하는 무리가 또 있었다.

바로 설탕이 팬클럽 회원들이었다.

사실 오늘 지한 김치가 완판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들은 바로 이들이었다.

처음에는 설탕이의 S컷 사진과 발바닥 젤리 사진을 받기 위해 지한 김치 홈쇼핑을 시청했다.

김치를 사서 인증할 경우, 이향숙이 구매자 이메일로 사진을 보내준다고 했기 때문.

그런데 김치를 먹는 연기자들의 반응이 너무나 과하게 리얼이었다.

그 모습이 웃겨서 자신들이 아는 커뮤니티 사이트에 이러한 사실을 몇몇이 올렸다.

한데 그게 빠르게 퍼지며 시청률이 폭발해 버린 것.

인경홈쇼핑은 이러한 소식을 후다닥 자사 홈페이지에 공지해 광고를 때렸다.

그것을 설탕이 팬클럽 회원 한 명이 가져와 게시판에 올렸다.

그러자 팬클럽 회원들은 자신들이 해냈다는 식의 댓글을 우르르 게재하며 자축했다.

설탕이 팬클럽 카페 설사모의 분위기는 거의 인디펜던스 데이였다.

설탕이 주인의 홈쇼핑 판매 품목을 완판시켰다는 뿌듯함에 한 명 한 명이 역전의 용사라도 된 기분이었다.

이향숙도 이 기쁜 소식을 카페에 메인 소식에 올리고서는 김치 구매 인증자들에게 바쁘게 설탕이 사진을 보내주었다.

총 다섯 장의 사진은 이향숙이 고성능 카메라로 설탕이를 찍은 것이다.

누워서 자는 와중 촉촉한 코가 크게 잡히도록 찍은 것 한 장, 마치 웃는 것처럼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을 지그시 감았는데 머리 위에 잠자리 앉은 컷 한 장, 개울가에서 신이 나 헤엄을 치는 컷 한 장, 소파 위에서 분홍 배와 발바닥 젤리를 내놓고 자는 컷 한 장, 토실토실 엉덩이와 꼬리를 흔들면서 뒤돌아보는 컷 한 장으로 총 다섯 장이었다.

거기서 보너스로 발바닥 젤리 확대샷까지 추가된 알찬 구성이었다.

S컷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이향숙 개인적으로도 엄청나게 아끼며 소장하던 사진들이다.

이를 받아본 카페 회원들은 후회 없다며 만족스런 후기를 작성해 올렸다.

물론 사진 유출은 절대 없었다.

그로 인해 소식을 늦게 알았거나 돈이 없어서 김치 구매를 못한 다른 회원들의 전투력이 마구 올라갔다.

-아, 정말 아쉽 ㅠㅠ 이벤트 집에 들어와서 봤어요.

-하필이면 생활비 딱 떨어졌을 때 이벤트를 해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다음 번에 앵콜 판매하면 놓치지 않을 거예요.

이처럼 하소연에 가까운 글들이 자유게시판이 무지막지하게 올라왔다.

회원들은 카페에서만 하소연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인경홈쇼핑 홈페이지에 찾아갔다.

그리고 지한 김치 앵콜 판매에 관한 글들을 마구 올리기 시작했다.

* * *

홈쇼핑이 방영되고 난 다음 날.

신장호는 형민욱의 전화를 받았다.

“그래, 민욱아. 완판 됐다며?”

-형. 나 진짜 형한테 고마워하고 있어.

“자식아, 내 동생 쇼호스트 하는데 내가 도움을 줘야지! 하하하!”

-아니 진짜. 형은 계속 날 쇼호스트라고 하는 거야, 왜? 나 피디라니까?

“아, 그랬지. 쇼호스트로 시작했잖냐 네가. 그래서 그게 입에 붙어 버렸다. 아무튼 봐봐. 내 말 믿고 넣었더니 후회 없잖냐.”

-그러게. 완판도 완판이지만 우리 홈쇼핑 역대 최고 시청률까지 찍을 줄은 몰랐다니까.

“아마 사람들 맛보면 앵콜 판매 해 달라고 난리날 거다.”

-안 그래도 지금 게시판 난리났어. 언제 앵콜 판매 하냐고. 아니 아직 김치는 받아보지도 못 했을 텐데 왜들 저러나 몰라.

“인마. 지한 김치가 너희 홈쇼핑에서만 파는 게 아니잖아. 지한 김치 홈페이지에서 구매한 사람들이 더 좋은 구성으로 사재기하고 싶으니까 물어보는 거겠지.”

-아……. 그렇겠다. 나도 김치 먹어봤는데 어휴, 장난 아니더라고.

“그럼 다음번에는 인색하게 굴지 말고 골든타임으로 잡아.”

신장호가 툭 던진 말에 형민욱은 찔끔해서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아니, 그건 내가 골든타임에 넣어주고 싶었는데 이미 다른 제품들로 스케줄이 선점되어 있어서 어떻게 못했던 거지. 내 마음은 골든타임으로 바로 꽂고 싶었지.

그런 형민욱의 말을 신장호는 믿지 않았다.

어차피 장사꾼들 속내는 다 똑같다. 특히 형민욱처럼 뒷돈 좋아하는 녀석들은 더더욱.

그러나 신장호는 그런 걸 크게 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해서 모른 척 넘어갔다.

“알았으니까 신경 더 쓰라고.”

-말 안 해도 그리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 아, 그리고 기회 되면 강 대표랑 술자리도 한 번 주선 좀 해줘.

“좋지. 자리 생기면 연락줄게. 쉬어라.”

-응.

전화를 끊고 난 신장호가 컴퓨터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모니터 안에는 지한 김치의 홈쇼핑 완판과 관련하여 폭발적으로 상승한 브랜드 이미지와 매출 순위에 대한 기사들이 죽 이어져 있었다.

아울러 이 추세라면 올해 하반기엔 한국 김치 브랜드 절대적 1위인 소담 김치의 판매고를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성 기사까지 함께였다.

전부 세진 그룹의 백진목 회장이 힘을 써준 덕분이었다.

세진 그룹이 신푸드와 손을 잡고 일하는 데다가 신푸드의 상품들이 좋은 성적을 보여주는 상황이니 밀어주는 게 당연했다.

지한 푸드의 인지도 상승은 곧 신푸드와 세진 그룹의 인지도 상승과도 같았다.

이는 판매고를 올려 버린다.

지한 김치로 인해 신푸드의 레토르트 상품들이 더 잘 팔리게 될 건 당연한 일이었다.

* * *

우유나는 올해 스물여섯의 여인이다.

그녀는 맛있는 걸 좋아한다. 원체 먹어도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인 데다 집안도 부유해서 어렸을 적부터 먹고 싶은 걸 원없이 먹고 자랐다.

그 때문일까.

여태 만나온 남자의 직업군도 요리와 관련된 이들이 많았다.

지금도 우유나는 요리사와 연애를 하고 있었다.

사귄지 이제 겨우 100일이 넘어 한창 애정으로 불타오를 때였다.

우유나가 지금껏 만나왔던 그 어떤 요리사보다 지금 만나는 사람의 요리 솜씨가 더 좋았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오늘은 우유나가 자취하는 오피스텔로 애인이 찾아오기로 한 날.

우유나는 늘 애인이 만들어 준 음식만 얻어먹은 것이 미안해 직접 한 번 만들어 대접하기로 했다.

그녀가 만들기로 한 메뉴는 김치찌개!

먹는 걸 좋아하는 만큼 만들기도 많이 만들어봐서 음식을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잘한다고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자신 있었다.

그녀에겐 얼마 전 접하게 된 마법의 김치가 있기 때문.

우유나가 냉장고에서 미리 사두었던 삼겹살과 홈쇼핑으로 주문해 넣어둔 지한 김치를 꺼냈다.

우유나는 인경홈쇼핑에서 강지한이 나와 요리하는 모습을 보며 세 번 반했다.

강지한의 비주얼에 한 번, 그의 직업에 한 번, 그리고 그가 요리하는 모습에 한 번.

만약 주변에 저런 요리사가 있었다면, 지금 자신이 만나는 사람보다 요리를 비슷한 수준으로만 만들 수 있다면 당장 갈아타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아무튼 정신을 차린 우유나는 이미 김치를 주문한 이후였고 어제 받아보았다.

홈쇼핑에서 강지한은 김치가 워낙 맛있으니 누구나 삼겹살과 김치, 설탕만 넣으면 멋진 찌개를 완성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반신반의하며 그대로 만들어 보았다.

김치와 삼겹살을 볶다가 물을 넣고 보글보글 끓을 때 설탕 한 꼬집만 넣어 간을 맞췄다.

이어 완성된 김치찌개의 맛을 본 우유나는 크게 놀랐다.

이게 정말 자신의 손에서 탄생한 김치찌개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여느 식당에서 파는 것 보다 훨씬 맛이 있었다. 요리를 김치가 다 했다.

자신감이 생긴 우유나는 바로 애인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보글보글.

김치찌개가 거의 완성되어 가며 맛있는 냄새를 집 안 가득 풍기고 있을 때쯤.

띵동-

타이밍 좋게 초인종이 울렸다.

“자기 왔어~?”

우유나가 신나게 달려가 문을 열어주었다.

문 너머에는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환하게 미소 짓는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서 있었다.

바로 한남선의 차남 한정국이었다.

“와아, 냄새 죽인다.”

한정국이 칭찬부터 하며 구두를 벗었다.

우유나는 그를 식탁에 앉히고서 인덕션의 불을 껐다.

식탕 위에는 이런저런 반찬들 몇 가지가 놓여 있었다.

밥과 찌개만 세팅되면 끝.

“짜잔!”

식사 준비를 마친 우유나가 한정국의 맞은편에 앉았다.

“자기, 찌개부터 먹어봐.”

우유나는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찌개부터 먹기를 권했다.

“어디.”

한정국이 시키는 대로 찌개를 떴다.

일반 비주얼과 냄새는 완벽한데 과연 맛은 어떨지 모르는 일.

그래도 여자친구가 노력을 한 만큼 무조건 칭찬을 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후우~ 호록.”

한정국이 찌개를 한입 떠먹는 걸 우유나가 가만히 지켜봤다.

그런데 그가 놀라 우유나를 바라봤다.

“어때?”

“유나야, 이거 정말 네가 만든 거라고? 어디서 사온 거 아니고?”

“응. 왜? 어디서 사온 것 같아? 그렇게 맛있어?”

“아니 맛있는 정도가 아니라 완벽한데…… 어지간한 식당에서도 이렇게 만들기 힘들어. 무슨 김치 썼어?”

“어? 아, 우리 엄마가 보내준 김치.”

만약 지한 김치를 사용했다고 하면 모든 공로가 그 김치로 넘어가 버릴 것 같아서 빠르게 둘러댄 우유나였다.

“어머니 김치 담그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가 본데.”

“내가 잘 끓인 거야!”

“응? 그렇지. 재료가 아무리 훌륭해도 요리를 잘못하면 다 망치는 거지. 완전 잘했는데, 우리 유나?”

“히힛~ 정말?”

“응.”

한정국이 웃으며 김치찌개를 더 맛보았다.

잡스러운 맛은 전혀 없이 깔끔하면서도 깊은 감칠맛과 풍미가 확 퍼지는 것이 가히 환상적이었다.

‘아니 대체 김치를 얼마나 잘 담그면 이런 맛이 나?’

이건 일반인이 만들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 있었다.

‘한 번 어머니를 뵈러 가볼까?’

지금 한정국에게는 다른 음식들에 비해 조금 떨어지는 분야가 바로 김치였다.

그러나 신선정의 김치비법은 신선숙수가 아니면 알려주지 않으니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나마 그의 형 한민국은 비법 없이도 스스로 노력해 아버지에게 상당히 인정받는 수준까지는 만들어냈다.

하나 한정국은 그게 되지 않았다.

“유나야, 김치 좀 남았어?”

“어? 아니, 다 먹었는데.”

식탐이 어마어마한 우유나는 김치를 빼앗길까 봐 저도 모르게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한정국이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음번에 어머님이 김치 보내주시면 나도 좀 나눠줘.”

“응. 알았어.”

“김치찌개 진짜 대박이다.”

애인에게 깜빡 속은 한정국은 자신이 먹는 김치찌개가 지한 김치로 만든 것인 줄도 모른 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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