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
Restaurant 250. 최초의 완판
‘왜들 저렇게 오버해?’
인경 홈쇼핑의 형민욱 피디는 먹방 연기자들을 보며 실소했다.
지한 김치는 애초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방송인지라 힘을 빼고 연기해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지시한 적도 없건만 골든타임에 팔리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를 펼치는 게 아닌가?
한데 가만히 보다 보니 그 모습이 연기라고 하기에는 뭔가 좀 이상했다.
‘진짜로 맛있어서 먹는 것 같은데?’
그들과 함께한 시간이 제법 오래되었다.
때문에 조금만 지켜보면 저게 연기인지 진심인지 바로 알 수 있는 형민욱이었다.
그의 예상대로였다.
연기자 여섯 명은 지금 지한 김치의 맛에 푹 빠져 있었다.
김하늬가 김치를 죽 찢어 한 술 크게 뜬 밥에 둘둘 감아 입안에 쑥 넣었다.
손가락에 묻은 양념까지 쪽쪽 빨고서는 세상 맛있다는 얼굴로 꼭꼭 씹어 삼켰다.
이에 질세라 정보선도 밥을 물에 말아 김치 한 조각씩을 올려서 푹푹 떠먹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연기자들도 김치 맛에 반해서 이게 방송이라는 것을 잊은 채 먹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아이들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와아~ 김치 진짜 맛있어.”
그러다 남자아이가 저도 모르게 진심을 툭 내뱉었다.
여자아이는 입가에 김치 양념을 잔뜩 묻히고서 닦을 생각도 않고 허겁지겁 먹는 중이었다.
그 모습들이 카메라에 전부 담겨 전파를 탔다.
이를 지켜보던 탁영진이 바로 멘트를 깔았다.
“여러분 보이시죠? 얼마나 맛있게 먹고 있습니까? 진짜 맛있지 않으면 저런 표정 안 나오잖아요. 저도 지금 군침이 막 돌아서 주체를 못하겠네요. 일단 한 번 먹어봐야겠어요. 강지한 대표님. 저 김치 한 장 찢어 주세요.”
카메라가 다시 탁영진과 강지한을 잡았다.
“그럴까요?”
강지한이 김치를 손으로 죽 찢어 밥에 얹은 뒤 탁영진에게 숟가락을 넘겼다.
탁영진이 그것을 바로 입에 넣고 씹었다.
우적. 우적.
그런데 밥과 김치를 씹는 탁영진의 말문이 일순 턱 하고 막혔다.
카메라는 그의 얼굴만 잡고 있는데, 말을 하지 않고 있으니 이건 거의 방송사고나 다름없는 상황.
‘뭐가 이렇게 맛있어?’
탁영진은 지금 김치 맛에 진심으로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한동안 침묵이 계속되고 아삭거리며 김치가 씹히는 소리만 들려오자 형민욱 피디가 무서운 얼굴로 두 팔을 마구 휘저었다.
이를 본 탁영진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기가 막히네요. 여러분 방금 저 김치 맛에 놀라서 영혼 가출했다 돌아온 거 보셨어요? 제가 홈쇼핑 진행을 2년이나 했는데요, 음식 먹고 이렇게 넋이 나가 보기는 또 처음이네요. 와, 아주 신선하고 맛있습니다. 자, 이 맛있는 김치로 만든 찌개랑 두부김치랑 김치찜은 또 얼마나 맛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탁영진이 김치찌개를 떠먹었다.
“크으, 이건 정말 밥 몇 공기 뚝딱 해치우는 맛이에요.”
감탄을 뱉은 그가 두부김치와 김치찜까지 맛보고서는 더없이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홈쇼핑 하면서 입이 호강한다는 느낌은 오늘 처음 받아보네요. 근데 이게 강지한 대표님이 직접 만드신 게 아니잖아요. 다 우리 스텝들이 마련한 거지.”
“그렇죠.”
“근데도 이렇게 맛있네요. 김치가 맛있어서 그런 겁니다. 지한 김치가 이렇게 맛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지한 김치를 아주 저렴하게 만나볼 수 있는 기회 절대 놓치지 마세요. 놓치면 분명히 후회합니다.”
탁영진이 열심히 썰을 풀고 있자니 카메라가 다시 연기자들에게 넘어갔다.
그런데 연기자들의 앞에 놓인 밥과 김치가 싹 비워져 있었다.
김치 맛에 매료된 연기자들이 절제를 못하고 모조리 먹어 버린 것.
탁영진과 강지한에게 집중하고 있던 형민욱은 미처 이 사실을 몰랐다.
아니, 애초에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다들 나름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다.
맛있게 먹는 연기를 하면서도 페이스를 조절하는 것쯤은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김치가 선사하는 맛의 줄다리기에 페이스를 잃고 그대로 끌려가 버렸다.
상황을 파악한 탁영진이 얼른 새 김치를 갖다 주며 멘트를 쳤다.
“보셨습니까, 여러분? 이분들께서 정신을 놓고 먹어치울 정도로 대단한 맛입니다. 이 김치 놓치면 정말 두고두고 후회합니다.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도 있지만, 오늘 이 가격에 이 푸짐한 구성은 두 번 다시 접하실 수 없습니다.”
그때 주문 현황을 확인하던 작가 한 명이 밝은 얼굴로 스케치북에 글씨를 써서 들어 올렸다.
이를 읽은 탁영진의 얼굴도 덩달아 밝아졌다.
“지금 지한 김치 주문이 폭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방송 시간 35분 정도 남았는데요. 그 전에 완판되어 버릴지도 모릅니다. 제가 단언하건대 오늘은 조금이라도 전화기를 빨리 들어서 주문하시는 분이 승자입니다.”
‘이것 봐라?’
예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린 현황에 형민욱 피디의 기분이 얼떨떨했다.
본래 이 시간에는 무엇을 팔아도 완판을 하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지한 김치는 크게 신경을 쓴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지한 김치의 주문이 폭주하고 있었다.
가장 큰 원인은 연기자들의 진심 어린 먹방 덕분이었다.
연기자들은 탁영진이 새로 갖다 준 김치를 배부른 줄도 모르고 또다시 먹기 시작했다.
상 위에는 다른 반찬도 있었건만 손도 대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이쯤 되니 형민욱도 지한 김치의 맛이 궁금해졌다.
본래 홈쇼핑을 책임지는 피디라면 자신의 채널에서 광고할 제품들을 미리 경험하고 파악하는 것이 당연한 일.
그러나 지한 김치 자체를 대수롭잖게 생각한 그는 맛도 보지 않고 대충 편성을 짜버렸다.
그렇게 해도 인맥으로 부탁을 해온 신장호의 면은 살려줄 만큼 장사가 될 터였다.
한데 면을 살려주는 정도가 아니었다.
김치 주문이 미친 듯이 밀려들고 있었다.
‘그렇게 맛있나?’
홈쇼핑을 보는 피디 본인도 김치 맛이 궁금할 지경인데, 시청자들은 오죽할까?
결국 형민욱은 더 참지 못하고서 세트장 밖에 있던 김치를 뜯어 살짝 맛을 보았다.
아삭. 아삭.
‘어이고?’
김치를 먹은 형민욱의 콧잔등이 씰룩였다.
정말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만 나오는 그의 버릇이었다.
‘이거 완전 미친 맛이네.’
그것이 형민욱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그때였다.
작가가 형민욱의 귀에 대고 놀란 음성으로 말을 건넸다.
“피디님, 지금 시청률이 2%가 넘었대요.”
“뭐?”
형민욱이 눈을 부릅떴다.
홈쇼핑의 시청률은 잘나와 봐야 1%가 겨우 넘는 정도였다.
그런데 2%를 돌파했다니?
그 원동력은 진심을 담아 먹방을 펼친 연기자들에게도 있었지만 설탕이 팬들 또한 한몫 톡톡히 했다.
설탕이의 S컷 사진과 발바닥 젤리 사진을 받아보기 위해 홈쇼핑 본방 사수를 하며 김치 주문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 그들은 연기자들의 진심 어린 먹방에 재미있어 했다.
해서 일부 설탕이 팬들이 이러한 사실을 인터넷 커뮤니티 카페에 올렸다.
이를 본 누리꾼들 중 심심했던 이들은 홈쇼핑 채널을 틀었고 정말로 진심 어린 먹방을 펼치는 연기자들의 모습에 배꼽을 잡았다.
그들은 또다시 다른 커뮤니티에 글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시청자가 라이브로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자 결국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도 홈쇼핑 김치먹방이라는 키워드가 인기검색어 하위권에 등극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더욱 많은 시청자가 홈쇼핑으로 유입되어 2%라는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하게 되었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시청률 추이를 확인한 형민욱의 기분이 잔뜩 고조됐다.
이건 인경홈쇼핑 역사상 그 어느 피디도 해내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눈에 탁영진의 모습이 새롭게 비추어졌다.
평소에는 거슬리던 하이톤의 들뜬 음성도 꾀꼬리처럼 들렸고 조금 빠른 듯한 템포의 말도 리드미컬하게 전해졌다.
‘오늘따라 에너지가 엄청 좋은 것 같은데.’
형민욱은 작가에게 스케치 북을 빼앗아 무언가를 휘갈겨 들어 올렸다.
탁영진이 확인하니 거기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하고 싶은 거 다 해봐.’
그 글귀를 읽은 탁영진은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여태 형민욱이 자신을 믿고 저런 사인을 내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신임을 받는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탁영진이 감정을 빠르게 추스르고 계속 김치 판매에 열을 올렸다.
그러다 강지한에게 예정에 없던 제안을 건넸다.
“우리 강지한 대표님께서는 배틀 셰프에서 우승을 한 경력이 있는 만큼 요리에 대단한 내공이 있으신 분이시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지한 김치로 만들 수 있는 간단한 요리 몇 가지만 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 말에 새로 받은 김치마저 다 먹어버린 연기자들이 눈을 빛냈다.
강지한은 탁영진의 요구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럼 김치전이랑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드릴게요.”
탁영진이 형민욱의 눈치를 살폈다.
그가 엄지과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좋습니다. 아, 기대가 됩니다.”
강지한은 바로 칼을 들고 김치를 송송 썰었다.
그리고 밀가루 반죽에 썬 김치의 반을 넣고 마구 섞었다.
이를 지켜보던 탁영진이 넌지시 물었다.
“밀가루 반죽에 그냥 김치만 넣으시네요? 다른 조미료는 첨가를 안 하시나요?”
“김치가 워낙 맛있어서 반죽과 김치의 비율만 잘 맞춰주면 다른 걸 전혀 첨가할 필요가 없습니다.”
“캬~ 그렇군요!”
탁영진과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강지한의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그가 가스레인지 위에 프라이팬 두 개를 올리고 기름을 둘렀다.
그 모습을 본 탁영진이 혀를 내둘렀다.
“두 가지 요리를 동시에 하시려는 건가 봐요?”
“네.”
간단히 대답한 강지한이 프라이팬 한쪽에다가는 김치전을 부치고, 다른 한쪽에다가는 썰은 김치를 볶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김치 볶음밥에 김치랑 돼지고기가 들어가는 걸 가장 좋아합니다. 그런데 돼지고기가 없으면 햄을 넣어도 충분히 맛있습니다.”
말을 하며 강지한이 햄을 잘게 썰어 넣고 김치와 함께 볶았다. 그러다 김치가 적당히 익었을 때 밥을 투하한 뒤, 설탕 한 꼬집을 넣고 조금 더 볶아주었다.
프라이팬을 한 손으로 잡고 휙휙 돌리니 완성되어 가는 김치볶음밥이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고스란히 프라이팬 안으로 떨어지는 것이 마치 묘기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때쯤, 옆에 있는 프라이팬에서는 김치전의 한쪽 면이 완벽히 익어가고 있었다.
그에 강지한이 남는 손으로 팬의 손잡이를 잡고 위로 휙 들어 올렸다. 그러자 김치전이 붕 날아 반 바퀴를 빙글 돌고서 안정적으로 프라이팬에 다시 안착했다.
“와아, 한 손으로는 김치 볶음밥을 볶으면서 다른 손으로는 김치전을 뒤집는 기술 보셨나요? 저 눈 튀어나올 뻔했습니다.”
탁영진이 강지한의 능숙한 기술에 호들갑을 떨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가지 음식을 전부 완성한 강지한이 접시에 보기 좋게 담아냈다.
탁영진이 김치전부터 죽 찢어 입에 넣었다.
“와아! 이거 진짜…… 말이 나오지 않는 맛입니다. 정말 마법의 김치라는 말밖에 나오지가 않네요. 제가 근래 먹어본 김치전 중에서 가장 맛있습니다. 바로 막걸리 한잔 땡기는데요? 김치볶음밥도 먹어볼게요.”
탁영진은 김치볶음밥을 크게 한술 떠서 입에 넣었다.
이를 지켜보는 형민욱이 저도 모르게 군침을 꿀꺽 삼켰다.
“아……. 진짜 진심으로 맛있어요. 여러분. 지한 김치 하나면 집에 다른 반찬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탁영진은 음식을 조금 더 먹으려다가 뒤에서 느껴지는 살벌한 기운에 행동을 멈췄다.
고개를 돌리니 연기자들이 애처로운 시선을 그에게 던지고 있었다.
“아, 지금 우리 가족분들이 김치를 다 드시고 숟가락만 빨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이 음식을 나눠드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얼마나 맛있으면 김치를 드리는 족족 거덜내시겠어요. 그렇죠?”
탁영진이 김치전과 김치볶음밥을 연기자들의 상 위에 놓아주었다.
그러자 연기자들은 며칠 굶은 사람처럼 또다시 수저를 바쁘게 놀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작가가 호들갑을 떨며 스케치북에 두 글자를 적어 들어 올렸다.
‘완판!’
이를 본 탁영진의 전신에 소름이 쫙 끼쳤다.
그가 만면 가득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아~ 완판! 시청자 여러분. 지금 지한 김치가 완판되었다고 합니다! 아직 방송 시간이 15분이나 남아 있는 상황인데요. 안타깝게도 남은 물량이 없어서 더 이상 방송을 이어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보내주신 많은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탁영진의 쇼호스트 인생에서 처음으로 맛본 완판이었다.
목구멍에서 뜨거운 것이 넘어오려는 걸 겨우 내리누른 그가 카메라를 향해 넙죽 절을 했다.
“제가 이렇게 절을 드리고 싶을 정도로 열광적인 호응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절을 하고 일어선 탁영진이 강지한을 보며 마무리 멘트를 건넸다.
“강지한 대표님, 오늘 완판 축하드리고요,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인사를 끝으로 지한 김치의 홈쇼핑 방송은 마무리되었다.
촬영이 끝나자 형민욱이 들어와 탁영진을 와락 끌어안았다.
“영진아! 우리 홈쇼핑 최고 시청률 갱신했다! 2%가 넘었어! 하하하하!”
“네에?!”
그건 또 생각지도 못했던 희소식이었다.
놀라는 탁영진에게 스텝들과 연기자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강지한 역시 그들 사이에 서서 박수를 보냈다.
급기야 참았던 눈물을 터뜨린 탁영진이 강지한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 비추어지는 강지한은 지금 이 순간 인생의 구세주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