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50화 (250/330)

# 250

Restaurant 249. 홈쇼핑

2월 중순.

강지한은 여러모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우선 강원 TV에서 진행하는 냉장고 파먹기와 프로덕션 이리의 인터넷 방송 무엇이든 만들어 드립니다의 촬영 스케줄이 매주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두 프로그램 모두 시청률이 괜찮은 데다 반응 또한 호평일색이었다.

그럴수록 강지한과 지한 푸드는 연일 더 유명해지고 있었다.

강지한은 신푸드의 신제품과 기내식 레시피의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전국팔도 유명하다는 식당을 찾아다녔다.

단 한시도 쉼 없이 요리에만 빠져 살다 보니 요리사로서의 그의 역량은 날로 늘어갔다.

한편, 지한 푸드에서 관리하는 모든 식당들은 강지한이 없어도 여전히 평화롭게 잘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는 여기저기서 프렌차이즈 요청을 해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에 지한 푸드의 총무실장 유진아는 사무실을 너 넓은 곳으로 옮겨 지한 푸드의 사무직 직원들을 확충하고 각각의 분야를 세분화해서 운영을 해나갔다.

전에는 달랑 네 명의 인원으로 꾸려나가지던 사무실은 이제 홍보팀, 실무팀, 회계팀, 기획팀으로 세분화되어 총 15명의 인원이 함께하게 되었다.

유진아는 그 안에서 회계팀장의 직책을 맡았다.

지한 푸드의 사무실이 커지고 전문 분야의 인재들이 충원되면서 일부 브랜드에 대한 프렌차이즈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는 중이었다.

강지한의 특제 육수나 양념장을 가지고서 레시피에 충실하기만 해도 기본 4레벨 이상의 음식은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

그 정도면 손님들이 돈을 내고 먹었을 때 상당히 만족스러울 만한 수준.

단, 프렌차이즈 사업을 하게 되는 건 지한 분식과 김치전골, 지한 만두뿐이었다.

지한 식당과 지한 레스토랑은 음식의 고급화 전략을 도입한 브랜드인 만큼 아무나 덤벼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

아울러 프렌차이즈점들은 반드시 본점보다 음식 맛의 격차가 어느 정도 있음을 공지해야 한다는 규정 또한 만들었다.

프렌차이즈에서 먹어본 음식의 맛이 곧 본점의 맛이라 인식하게 되면 안 되기에 유진아가 주장한 방침이었다.

그렇게 강지한의 성장과 함께 지한 푸드의 덩치도 계속해서 커져 나가고 있었다.

* * *

올해 서른 살인 탁영진은 인경홈쇼핑 쇼호스트다.

본래는 아나운서를 꿈꾸다가 쇼호스트의 매력에 푹 빠져 갑자기 진로를 변경한 케이스.

덕분에 늦은 나이에 새로운 목표에 도전하게 되었고, 운 좋게도 일단 쇼호스트로 데뷔하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한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그가 쇼호스트로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도 벌써 2년째.

하지만 그의 인기는 갈수록 떨어져 가는 추세였다.

여태 단 한 번도 물건을 완판시킨 역사가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번 년도를 넘기지 못하고서 계약을 해지당할 판.

어떻게든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차, 탁영진에게 건수 하나가 잡혔다.

그가 팔아야 하는 물건은 바로 지한 김치였다.

인경홈쇼핑의 총괄 PD인 형민욱이 지한 김치를 그에게 맡긴 것.

말인즉.

‘큰 기대 안 한다는 것이겠지.’

탁영진은 바로 비관적인 생각부터 하고 말았다.

어느 순간부터 늘 그랬다.

인맥관리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받게 된 건이나 상대적으로 제작비용이 적게 들어온 건은 늘 탁영진에게 배당되었다.

이번의 경우는 전자였다.

형민욱은 신장호와 나름대로의 연이 있었다.

해서 이번에 지한 김치를 한 번 밀어 달란 그의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었다.

겉으로는 얼마든지 도움 주겠다 했지만 속으로는 투덜거렸다.

이런 식으로 지인 부탁으로 일을 받을 때마다 작게는 몇 백, 크게는 몇 천씩이 날아가는 것이니까.

홈쇼핑은 담당 PD의 성정에 따라 뒷돈이 무지하게 오가는 세상이다.

그리고 형민욱은 돈을 엄청나게 밝히는 인간이었다.

신장호가 연으로 부탁을 하긴 했으나 방송에 적합한 금액은 지불했다.

다만 다른 이들처럼 뒷돈을 얹어주지 않았을 뿐.

형민욱은 자기 주머니에 돈을 얼마나 꽂아주느냐에 따라 홈쇼핑 편성을 달리했다.

액수가 크면 골든타임에 인기 쇼호스트를 붙여주었다.

탁영진은 골든타임에 서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말인즉, 지한 김치 역시 골든타임에 방영되지가 않는단 얘기였다.

방송을 이틀 앞둔 상황.

탁영진의 한숨만 깊어지고 있었다.

* * *

홈쇼핑 당일.

강지한은 신장호와 약속한 대로 직접 홈쇼핑에 출연하기 위해 서울의 스튜디오로 걸음 했다.

그는 평소 자신이 일할 때 입는 검은색 조리사복을 착용한 뒤 세트장에 자리했다.

그러자 형민욱 피디가 다가와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줬다.

“생방송이라는 거 인지하고 계시죠? 기본적으로 NG 없이 가야 합니다. 사전에 보내드린 대본 숙지하셨죠?”

“네.”

“강 대표님께서 말씀 주셨던 지한 김치 장점에다가 작가들이 몇 가지 소스 첨가해서 더 맛있게 느껴지도록 대본 작성한 거니까 그대로만 말씀하시면 돼요. 그리고 손으로 김치 죽죽 찢어서 비주얼 보여주시는 것 잊지 마시구요. 삼겹살이랑 같이 굽고, 김치찌개랑, 목살김치찜, 두부김치까지 조리해 놓았으니까 드시면서 맛있다는 리액션 조금 과장되게 보여주시면 더 좋아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마이크를 착용한 탁영진이 무대로 올라섰다.

형민욱이 그런 탁영진을 강지한에게 소개해 주었다.

“인사하세요. 여기 오늘 강 대표님, 김치 팔아주실 탁영진 씨.”

“강지한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강지한이 손을 내밀자 탁영진이 얼른 그 손을 잡고 흔들며 고개 숙였다.

“아무렴요. 저만 믿으십쇼! 하하하.”

탁영진의 허세 가득한 말에 형민욱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 찔끔한 탁영진이었지만 모른 척하고서 너스레를 떨었다.

“자자, 그럼 제가 방송 선배로서 몇 가지 조언 좀 해드릴까요?”

탁영진은 방송에 들어가기에 앞서 실수하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좋은지에 관한 팁을 알려주었다.

여러 가지 팁 중에서도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대본으로 외운 것 외에 다른 말은 되도록 아껴야 한다는 점이었다.

괜히 애드립 치다가 꼬여 버리면 답이 안 나오기 때문.

어차피 방송의 사운드를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건 탁영진의 몫이었다.

탁영진이 강지한에게 이런저런 얘기들을 들려주는 사이 연기자들이 세팅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그들은 쇼핑몰 전문 먹방 연기자들이었다.

서른 초반의 남성과 여성, 십 대 초반 남녀 아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한 명씩, 총 여섯 명이 단란한 가족이라도 된 것처럼 연기를 하며 김치를 맛있게 먹을 예정이었다.

특히 서른 초반의 남성과 여성은 이 분야에 베테랑들이었다.

여성의 이름은 김하늬, 남성의 이름은 정보선이었다.

김하늬가 테이블에 놓인 지한 김치를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하고 많은 것 중에 하필 김치야.”

정보선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먹지 말아야겠다.”

“그래야지. 이다음에 바로 갈비찜이잖아?”

“응. 그걸로 배 채워. 이건 먹는 시늉만 하고.”

“그거 앵콜 상품이지?”

“맞아.”

강지한의 다음 타임에 일정이 잡힌 것은 두 달 전, 방송을 타고서 완판되어 버린 ‘대가 갈비찜’이었다.

이후 시청자들의 요청으로 인해 앵콜 상품으로 대박 구성을 해서 2탄을 방송하게 된 것.

시간도 골든타임에 맞게 편성이 되었다.

“기대된다. 엄청 맛있었는데.”

“그러니까 완판된 거야. 맛있으면 우리가 진심을 담아 맛있게 먹잖냐. 그거 보면 전화기 안 들고 못 배기거든.”

“그 말 들으니까 오늘 김치 팔러 나온 사장님한테는 조금 미안해진다.”

“저 사람도 나름 대단하던데. 배틀 셰프 우승자잖아. 요새 신푸드였나? 거기랑 손잡고 만든 레토르트 식품도 잘나가고.”

“오빠 정보력 대단하다. 저 사람이 그렇게 유명해? 근데 난 왜 모르겠지.”

“관심 없으면 모를 수 있지. 배틀 셰프 붐도 다 끝난 데다가 방송 같은 데 많이 나오는 사람은 아니니까.”

강지한이 춘천에서 유명하고 전국구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었다.

때문에 김하늬는 강지한을 아예 몰랐고, 정보선은 어느 정도 정보만 있었지 지한 푸드와 관련된 식품들을 먹어보지 못했다.

“자, 스탠바이 하시고.”

시간을 확인한 탁영진이 녹화 준비를 알렸다.

그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시계를 확인하다가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것을 신호로 생방송이 전파를 타고 각 가정집의 브라운관으로 흘러나가기 시작했다.

* * *

이향숙이 운영하는 향스리닷컴 쇼핑몰의 사장실.

이향숙은 강지한이 맡기고 간 설탕이와 함께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 중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인경홈쇼핑의 쇼호스트 탁영진입니다.

텔레비전에서는 탁영진의 상기된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시작한다, 설탕아!”

왕!

이향숙은 미리 준비해 놓은 팝콘을 뜯었다.

그러고는 소파 위에 놓인 설탕이의 밥그릇에도 애견용 팝콘을 담아주었다.

애견용 팝콘은 우유, 소금, 라임 주스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강아지의 건강에 무해한 간식이었다.

아삭. 아삭.

와작. 와작.

그렇게 사람과 강아지가 똑같이 팝콘을 먹으며 텔레비전에 시선을 두었다.

탁영진의 초반 썰 풀기가 끝나고 난 뒤 드디어 브라운관에 강지한의 모습이 나타났다.

“오빠 나왔다!”

왕왕!

그에 이향숙과 설탕이가 동시에 반색했다.

브라운관에 비추어진 강지한의 얼굴에서는 예전의 어색한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동안 강원 TV와 프로덕션 이리에서 꾸준히 촬영을 해온 결과 이제는 카메라가 완전히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오~ 자연스러워. 자연스러워.”

그런 강지한의 여유에 이향숙이 감탄했다.

그녀는 설탕이를 휙 돌아보더니 물었다.

“그 팝콘 맛있니?”

설탕이는 그렇다는 듯 헥헥 대며 꼬리를 흔들었다.

“아무튼 이번에 김치 완판 되면 네 덕이 큰 거 알지?”

그리 말하며 씨익 웃는 이향숙이었다.

그녀는 사실 강지한 모르게 팬카페에다 한 가지 일을 저질렀다.

오늘 홈쇼핑에서 지한 김치 산 것을 인증한 회원에게는 설탕이의 S컷 사진 다섯 장과 발바닥 젤리 사진을 개인 메일로 보내주겠다고 한 것.

그런 이향숙의 글에 설탕이 팬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고, 반드시 구매하겠다는 댓글이 백여 개 이상이나 달렸다.

“잘될 거야.”

이향숙이 주먹을 쥐고 설탕이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설탕이가 발바닥으로 이향숙의 주먹을 톡 건드리며 마주쳐 주었다.

그 영특한 행동에 이향숙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서 설탕이의 입에다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쪽쪽쪽! 아이고 예뻐라~ 이러다 언니 심쿵사 하면 오또케? 응?”

설탕이는 수컷이다.

가끔 제 기분에 따라 설탕이의 성별을 마음대로 바꾸는 이향숙이었다.

* * *

탁영진과 강지한은 무리 없이 생방송을 끌어 나가고 있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형민욱 피디가 스탠바이하고 있던 연기자들에게 사인을 보냈다.

이제 먹방을 시작하라는 뜻.

연기자들은 바로 수저를 들었다.

동시에 그들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가족의 풀샷을 잡고 있던 카메라가 김하늬의 얼굴을 클로즈업 했다.

김하늬는 잘 보라는 듯 김치 한 조각을 집어서 입에 넣고 최대한 맛있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씹으려 했다.

그런데,

‘어머?’

예상치 못했던 김치의 풍미가 입에서 터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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