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49화 (249/330)

# 249

Restaurant 248. 기내식

현 신선정의 신선숙수 한남선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다.

장남 한민국과 차남 한정국.

한민국은 차분하고 묵직한 성품으로 요리사로서의 길을 게으름 피우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는 중이다.

반면 한정국은 입이 가볍고 성격이 급한 데다 조금은 경망스럽기까지 했다.

요리 실력도 한민국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음식을 맛보는 혀는 뛰어난데 손이 따라가지를 못했다.

게다가 애초에 타고난 재능부터가 한민국보다 떨어졌다.

그렇다면 형보다 몇 배의 노력을 들여 요리를 배울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런 위인은 못되었다.

지금 정도만 해도 나름 요리계에서는 큰소리를 낼 수 있었다.

한정국은 그런 현실에 만족했다.

차기 신선숙수의 자리 역시 크게 욕심내지 않았다.

물론 그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이긴 하겠으나 딱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4대 신선숙수는 형이 될 것이고, 자신은 그저 좋은 들러리가 되어줄 셈이었다.

괜히 신선숙수라는 자리에 앉아 이것저것 책임지고 싶지가 않았다.

그저 지금이 딱 좋았다.

이른 아침 고급 호텔의 침대 위에서 눈을 뜬 한정국은 자신의 옆에 나체로 누워 있는 미인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름이 미나랬나, 미연이랬나.

뭐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가명일 테니. 그리고 이 호텔을 나가면 다시 볼 사이도 아니었다.

‘좋지, 좋아. 책임질 필요 없는 인생.’

한정국이 어젯밤 민국항공 조인철 이사와 함께 했던 술자리를 떠올렸다.

옆에 있는 여인은 룸에서 한정국에게 술을 따라주던 사람이었다.

‘나 정도만 되어도 민국항공 이사님이나 되시는 분이 비위 맞추려고 비싼 술 내놓고서 아부를 떨어주잖아.’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인가.

복잡한 일과 무거운 짐은 형에게 토스하고 자신은 지금의 위치에서 평생 호의호식하기를 바라는 한정국이었다.

* * *

1월 24일 목요일.

오늘은 뽀삐의 하루 2호점의 오픈일이었다.

2호점의 점주 연주연은 손님이 많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태산이었다.

본래 2호점의 오픈 예정일은 오늘이 아니었다.

훨씬 앞당겨졌어야 했다.

그런데 연주연이 예소린의 밑에서 더 배울 것이 있다며 오픈일을 미루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오픈을 준비하는 동안 열셋이나 되는 강아지를 기르게 됐다.

원래도 집에서 일곱 마리의 강아지를 기르고 있는 그녀였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연주연이었는데, 가족들이 하나같이 동물을 사랑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일곱 종의 강아지를 기르다가 본격적으로 애견 카페를 준비하며 유기견들을 입양하다 보니 현재는 열세 마리까지 늘어난 것.

연주연이 예소린의 바이올린 선생으로 일하면서 깊이 친해진 데에는 ‘동물 사랑’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무튼 연주연은 2호점 오픈을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녀의 자본금도 제법 투자되었다.

인생 2막을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니만큼 2호점이 꼭 잘되기를 바랐다.

이제 오픈을 한 시간 앞두고 있는 상황.

예소린의 도움을 바라서는 안 된다.

그녀는 본점을 지켜야 하니 혼자서 2호점 매장을 잘 이끌어가야 했다.

연주연은 자신의 주변에서 애교 부리는 강아지들을 쓰다듬어 주며 초조함을 달랬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비로소 오픈이 10분 앞으로 다가왔을 때였다.

딸랑.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강아지들이 일제히 꼬리를 흔들며 헐레벌떡 현관으로 다가갔다.

입구를 돌아본 연주연은 놀라서 소리라도 지를 뻔했다.

“안녕하세요, 주연 씨?”

2호점을 찾은 것은 다름 아닌 강지한과 설탕이었다.

* * *

설탕이의 행보는 이향숙에 의해 미리미리 카페에 업로드 되고는 했다.

이향숙이 강지한에게 미리 전화로 물어보고 글을 작성하는 것.

어제 통화에서 강지한은 연주연 몰래 설탕이를 데리고 깜짝 방문할 계획임을 알려주었다.

예소린에게 연주연을 도와 달라 부탁 받았기 때문.

이향숙은 이와 같은 사실을 팬카페에 알렸다.

그래서 지금 뽀삐의 하루 2호점은 설탕이의 팬들로 바글거렸다.

혹시라도 손님이 들지 않으면 어쩌나 했던 연주연의 걱정은 전부 사라져 버렸다.

오히려 웨이팅이 걸릴 정도였으니까.

강지한은 설탕이를 밤에 데리러 오겠다며 맡기고 떠났다.

그 이후로 꾸준히 사람들이 몰려들더니 지금 이런 상황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설탕이의 팬들은 매너까지 좋았다.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웨이팅이 너무 심해지지 않도록 적절히 카페를 나와주곤 했다.

설탕이는 자신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갖은 애교와 재롱, 재주를 선보이며 확실한 팬서비스를 제공해 주었다.

이를 보는 연주연은 기분이 좋으면서도 연신 놀라고 있었다.

‘쟤가 카페 하나의 운명을 좌지우지해 버리다니.’

설탕이 파워를 새삼 느끼는 연주연이었다.

* * *

신장호가 춘천으로 걸음 했다.

그러고는 춘천 별장에 머무르던 이항기 회장과 연락을 취해 만남을 가진 뒤 강지한을 찾아왔다.

세 사람은 강지한이 자주 찾던 카페에서 보게 되었다.

강지한의 실물을 처음 접하는 이항기의 눈에는 은근한 기대감이 가득 어려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간단한 인사가 오간 뒤, 이항기는 질질 끌지 않고 바로 본론부터 말했다.

“강 대표님께서 우리 한에어의 기내식을 연구해 주셨으면 합니다.”

역시나 신장호가 언질 주었던 얘기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죄송한데 제가 기내식을 먹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요. 기본적으로 기내식의 수준이 어떤지를 알아보고 난 이후에나 그것이 가능할 것 같네요.”

강지한의 말에 이항기는 물론 신장호까지 눈을 크게 떴다.

“강 대표, 정말인가? 진짜로 비행기를 타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신장호의 물음이었다.

“네.”

강지한에게는 여태 비행기를 타고 어디를 다녀올 만한 여유가 존재치 않았다.

학창시절이나마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면 또 모를까.

그런 기회마저도 그에게는 주어지지가 않았었다.

“허어. 여태 비행기를 못 타보셨다니.”

이항기는 놀라는 한편,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고는 바로 제안을 하나 건넸다.

“그럼 이번 기회에 한 번 타보심이 어떻겠습니까?”

“비행기를요?”

“네. 시간이 허락하신다면 어디든 가고 싶은 나라를 말씀해 주세요. 퍼스트 클래스석으로 서비스 해 드리겠습니다.”

평소에 여행하고자 했던 나라는 많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강지한이 이항기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여기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 해외에 나가는 건 나중으로 미뤄야 할 것 같네요. 그냥 기내식을 먹어보는 것만으로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그러시군요. 하면, 언제든 원할 때 말씀 주세요. 제 입에서 나온 얘기는 꼭 지킵니다.”

“그러도록 할게요.”

“그나저나 이거 기내식을 맛보기 전에는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겠군요. 어떻게…… 당장 저희 본사로 움직이시겠습니까? 괜찮으시면 제 차로 모시도록 하지요.”

강지한이 신장호와 시선을 교환했다.

신장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늘 별일 없으시면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그리하시죠. 강 대표님께서 이 회장님 차를 타고 가시면, 전 제 차를 타고 뒤따르도록 할게요.”

강지한도 이야기가 시작된 김에 일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결국 세 사람은 바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 * *

“드셔 보시죠.”

한에어 본사 접객실.

강지한의 앞에는 여섯 종류의 기내식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음식의 레벨이 하나같이 3이었다.

음식들의 설명 또한 가관이었다.

전부 조미료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들어갔고 간이 세다는 것이었다.

‘왜 이러지?’

강지한이 기내식을 맛봤다.

음식의 상태창에 나온 설명 그대로였다.

하나같이 짜고 달고 맛이 강렬했다.

그가 의아한 얼굴로 이항기를 바라보았다.

“음식들의 간이 너무 센데요?”

그러자 이항기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비행기를 타게 되면 높은 고도로 인해 미각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상에서 먹는 음식보다 간이 세지요. 다수의 항공사에서 제공되는 음식의 종류들이 튀김이나 볶음 등 기름진 것들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아…….”

비행기를 타보지 못했으니 기내식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강지한은 몰랐던 사실이었다.

다시 천천히 음식을 맛보는 강지한의 귀로 이항기의 설명이 이어졌다.

“아시겠지만 하늘은 기압이 지상보다 20% 정도 낮은 데다가 건조한 환경인지라 뱃속에 가스가 차기 쉽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소화하기 쉬운 음식들로 구성을 하는 게 좋아요. 그리고 퍼스트클래스와 이코노미에서 서비스 되는 기내식에는 차이가 있는데, 실상 조리법의 고급화라기보다는 재료의 고급화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기내에는 제대로 된 주방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

그 때문에 기내식은 케이터링 업체에서 조리된 것을 반가공, 혹은 냉동 상태로 지급받아 오븐에 데워 서비스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퍼스트 클래스의 기내식이라고 해서 일류 셰프의 어마어마한 요리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다만 재료의 고급화 및 제법 수준 높은 와인을 제공한다는 정도다.

신중히 시식을 끝낸 강지한의 눈치를 살피며 이항기가 물었다.

“어떻게…… 길이 보이십니까?”

이항기는 강지한의 입에서 긍정적 대답이 나온다면 바로 계약을 할 생각이었다.

이미 이항기는 신푸드에 대해서도 조사를 끝낸 이후였다.

신푸드는 강지한과 1년 전부터 파트너로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의 레시피를 기반으로 출시한 레토르트 식품이 큰 성과를 보였다.

이후 출시된 지한 반찬 관련 품목들 역시 높은 판매고를 자랑하는 중이었다.

둘이 손발을 잘 맞춰온 만큼 이항기는 신푸드의 능력이 따라주기만 한다면 그 회사를 케이터링 업체로 삼을 생각이었다.

한데 신푸드와 기술적 협약을 맺은 업체가 우리나라 식품 업계 1위인 세진 그룹이었다.

백진목 회장이 이끌어가는 세진 그룹의 힘을 등에 업고 있다면 그것만큼 확실한 보증수표도 없었다.

신푸드에 대한 신용은 생겼으니 강지한만 오케이하면 되는 일이었다.

문제는 강지한의 입에서 선뜻 도전해 보겠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

‘일단 비행기를 타고 기내식부터 먹어본 다음 결정해야겠는데.’

당장 이 음식들의 간을 기억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더욱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하늘에서 이 음식들을 먹어보지 않고서는 힘들 것 같았다.

‘눈에 보이는 요리들 레벨이 기내식 기준으로 바뀐다면 또 모를까.’

강지한이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요리들의 레벨을 기내식 기준에 맞춰 변경하시겠습니까?]

여태 본 적 없던 메시지가 나타났다.

강지한은 놀라워하며 그에 바로 응답했다.

‘응.’

[변경되었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강지한이 다시 앞에 놓인 기내식들의 상태창을 살폈다.

[기내식-정호인의 대단한 비빔밥]

요리 등급: LV5

-비빔밥에 들어간 재료들의 균형이 매우 좋다. 밥은 너무 되지도, 심하게 차지지도 않게 적당히 잘 지어져 비빔밥 특유의 매력을 잘 담아냈다. 비법 고추장의 맛이 핵심이다. 기내식에 어울리는 간을 정확히 포착했다.

[기내식-정호인의 대단한 불고기 쌈밥]

요리 등급: LV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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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식-정호인의 대단한 치킨 스테이크]

요리 등급: LV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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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들을 기내식 기준에 맞추니 레벨이 일제히 5로 올라갔다.

‘와아.’

강지한이 속으로 감탄을 자아냈다.

실로 그 한계가 어디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레벨 업 시스템이었다.

한참 동안 대답이 없는 강지한에게 이항기가 재차 물었다.

“강 대표님, 기내식 연구가 가능하실는지요?”

그제야 비로소 강지한이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네,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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