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8
Restaurant 247. 수제비 라면과 찬밥
이항기는 온전히 식사에 집중했다.
상에 놓인 반찬 하나, 음식 하나를 신중하게 음미하며 맛보았다.
그리고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감탄을 흘렸다.
정해일은 근 몇 년 간 이항기의 저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지한 식당의 음식이 그만큼 맛있었던 것.
정해일 역시 이항기와 마찬가지로 음식의 맛에 놀라는 중이었다.
“진짜 맛있습니다, 회장님.”
“음.”
이항기는 정해일의 말에 대꾸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맛의 향연에 정신이 빠져 그럴 틈이 없었다.
아울러 맛도 맛이지만 이항기가 특히 놀란 부분은 따로 있었다.
‘고작 만 원 한 장에 이런 퀄리티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니.’
이항기가 기내식의 업그레이드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던 것이 비용적 측면이었다.
돈을 더 쓰면 얼마든지 더욱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었다.
한데 그렇게 하면 이득이 아닌 손해가 나고 만다.
듣기로 경쟁사인 민국항공의 기내식은 훌륭한 셰프를 스카웃한 덕에 가격 대비 최상의 맛과 퀄리티를 자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맘 같아선 이항기도 그런 셰프와 접선을 하고 싶은데 그게 어려웠다.
민국항공은 그들이 스카웃한 셰프가 누구인지 그 정체를 철저히 감추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라 기내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서 아까운 시간만 보내고 있었던 이항기였다.
그런데 지한 식당에서 답을 찾았다.
순식간에 식사를 끝낸 이항기가 직원을 불렀다.
홀매니저 유지호가 이항기에게 다가갔다.
“뭐 필요하신 것 있으신가요?”
“혹시 여기 강지한 대표님을 좀 만나 뵐 수 있을까요?”
“대표님은 현재 식당에 나오지 않으시거든요. 어떤 용무로 대표님을 찾으시는지 말씀 주시면 제가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비즈니스적인 문제인데…… 아, 내 소개를 먼저 해야겠군.”
이항기가 명함 한 장을 꺼내 유지호에게 건네주었다.
명함을 확인한 유지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고 보니 그의 얼굴을 뉴스나 신문 기사 등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한에어 회장님이시군요. 몰라뵈었네요.”
“내가 연예인도 아니고 모를 수 있지. 아무튼 강지한 대표님하고 다이렉트로 연결을 하기는 조금 어려운 모양이지요?”
“워낙 바쁘셔서요. 제가 따로 말씀 전해드릴게요.”
“그럼 편한 시간에 연락 좀 넣어 달라고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유지호가 물러나자 이항기가 정해일에게 물었다.
“신푸드 쪽이랑은 연락이 됐어?”
“네. 곧 신장호 사장에게서 전화가 올 겁니다.”
“그래. 이쪽저쪽 다 찔러놓아야 진행이 빠르지. 일어나자고.”
두 사람이 일어나 계산을 하고 식당을 나섰다.
그들의 식판은 설거지를 한 듯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 * *
강원 TV의 새 요리 프로그램 냉장고 파먹기 촬영을 마친 강지한은 간만에 춘천에 있는 자신의 식당들을 한 곳 한 곳 둘러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걸음을 한 곳은 지한 분식이었다.
점심 피크 타임의 지한 분식은 언제나 그렇듯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 대표님! 히히.”
홀에서 서빙을 하던 이주희가 가장 먼저 강지한을 알아보고 미소를 보냈다.
그에 최지민과 김아랑도 강지한에게 인사를 건넸다.
“대표님. 진짜 오래간만이네요?”
“와아, 얼굴 잊어버릴 것 같아요.”
“다들 잘 지냈어?”
“회사 복지가 워낙 좋아서 한겨울에도 따뜻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최지민이 넉살 좋게 대답했다.
그는 못 본 사이 전보다 더 잘생겨져 있었다.
단톡방에서 그가 지한 분식의 얼굴 마담이라는 농담이 종종 나오곤 하는데, 괜한 얘기는 아니었다.
실제로 최지민을 보러 지한 분식에 오는 여고생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추세였다.
강지한은 자신을 반기는 직원들의 머리 위를 살폈다.
서로 이어져 있는 선은 파란색이었다. 시너지가 좋다는 뜻.
그가 이번엔 주방을 살폈다.
이리나와 용성우, 고중만은 강지한이 온 줄도 모른 채 요리를 하느라 바빴다.
고중만은 이리나, 용성우와 파란색 끈으로, 이리나와 용성우는 무지개빛 끈으로 이어져 있었다.
무지개빛은 최상의 상성임을 나타낸다.
‘이 정도면 괜찮네.’
직원들 사이에 딱히 문제가 없으니 다행이었다.
강지한이 주방 가까이 다가갔다.
“다들 고생이 많아요.”
그의 인사에 고중만이 환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야~ 강 대표! 요새 공사다망하지? 레스토랑이 아주 연일 화제더만!”
“잘 지내셨어요, 아저씨?”
“대표님~ 짱 반가워요!”
“대표님, 오셨습니까! 저는 열심히 주방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리나와 용성우도 강지한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들 반가워.”
“지한 레스토랑 장난 아니던데요? 막 벌써부터 연예인들이 방문하고.”
“은하수는 실물이 어떻습니까?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과 똑같습니까?”
용성우의 눈치 없는 물음에 이리나가 그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으윽!”
그걸 본 고중만이 킥킥 웃었다.
“봤지, 강 대표? 우리 용 이사 완전히 잡혀 살고 있다니까. 딱 봐도 공처가 될 상이야.”
“다들 활기차 보여서 좋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엥? 벌써 가려고요?”
“응. 그냥 인사만 하려고 들른 거거든.”
그러면서 강지한은 손님들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의 레벨을 살폈다.
음식들은 일괄적으로 6레벨을 자랑하고 있었다.
지한 식당의 음식 레벨이 7이니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셈.
그래도 이 정도면 여느 고급 식당의 음식들 못지않은 맛을 자랑하는 수준이었다.
“그럼 가볼게요. 고생들 하세요.”
“안녕히 가십시오!”
“다음에 봐요~ 대표님.”
“조만간 단합대회 한 번 열자고, 강 대표!”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강지한은 분식집을 나섰다.
* * *
강지한은 지한 분식을 시작으로 지한 김치전골과 김치 매장, 그리고 만두 가게와 지한 식당 분점까지 둘러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직원들을 연결하는 끈이 검은색이거나 붉은색인 경우는 아직까지 없었다.
검은색은 상성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고, 붉은색은 둘 사이에 문제가 있음을 나타낸다.
이제 남은 곳은 지한 식당 본점뿐.
그가 본점에 도착했을 때는 브레이크 타임이라 직원들이 한창 식사를 하는 와중이었다.
강지한을 보고 일어서서 인사하려는 직원들을 만류한 뒤, 그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오늘 직원들이 먹는 메뉴는 수제비를 넣고 끓인 라면이었다.
라면에 계란을 넣어 먹거나 떡, 만두 등을 넣어도 맛있지만 강지한이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것은 바로 이 수제비였다.
고소한 라면의 향기가 매장 안에 가득 퍼져 강지한의 입에 절로 군침이 사르르 돌았다.
“저 라면 한 그릇 먹어도 될까요?”
수제비 라면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던 강지한은 염치 불구하고 물었다.
그러자 한지민이 얼른 한 그릇을 떠서 수저와 함께 놓아주었다.
“대표님은 너무 예의 바르셔서 탈이에요. 이럴 땐 그냥 한 그릇 달라고 당당하게 얘기해도 되는데. 제가 끓인 거니까 맛있게 드세요.”
“고마워, 지민아.”
인사를 건넨 강지한이 직원들 사이의 관계를 살폈다.
이번에도 검은색과 붉은색 끈은 없었다.
전부 하얀색과 푸른색뿐이었다.
이것으로 지한 푸드의 전 직원들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고, 강지한의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잘 먹겠습니다.”
강지한이 직원들과 함께 수제비 라면을 먹었다.
“후후~ 호록!”
일단은 면부터 크게 한입 넣고 씹었다.
면이 아주 꼬들꼬들 잘 익어 있었다.
대량의 라면을 끓이면 대부분 면이 불고 만다. 이렇게 끓이려면 엄청난 기술이 필요했다.
꿀꺽!
만족스럽게 면을 삼킨 강지한이 이번엔 수제비 한 점을 맛봤다.
얇게 떠서 푹 익은 수제비가 쫀득쫀득 기분 좋게 씹혔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반죽을 아주 잘했네.’
강지한이 마지막으로 국물을 맛보았다.
“후룩. 음~”
수제비를 넣은 라면 국물은 일반적인 라면 국물보다 조금 더 걸쭉하고 진했다.
밀가루는 요리들을 조금 더 고급스러워지게 하는 마법의 재료다.
수제비 반죽이 국물 안에 들어가 푹 끓여지면서 라면 특유의 인스턴트 향은 날아가고 풍미는 깊어졌다.
‘이번에는 김치랑.’
강지한이 잘 익은 배추김치 한 점을 집어서 면에 올려 입에 넣었다.
‘끝내준다.’
김치와 라면의 조합은 언제나 옳았다.
게다가 이 김치가 어디 보통 김치인가?
강지한만의 비법 레시피로 만들어낸 지한 김치였다.
꼬들꼬들한 면과 아삭거리는 김치는 그야말로 환상의 짝꿍이었다.
금세 면과 수제비를 다 건져 먹은 강지한은 직원들이 미리 떠놓은 찬밥을 국에 말았다.
라면 국물에 찬밥.
이것만큼 잘 어울리는 궁합이 또 있을까?
식어서 단단해진 밥알들이 국에 스며들어 낱알로 흩어졌다.
국과 혼연일체가 된 밥을 한술 크게 퍼서 입에 넣으니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었다.
‘맛있다.’
그것 말고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강지한은 게 눈 감추듯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서 시원한 물 한 컵을 꿀꺽꿀꺽 마셨다.
“후우. 좋다.”
밥맛이 꿀맛이라는 게 이런 걸 말하는 것이겠지.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직원들도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친 모습이었다.
“잘 먹었어, 지민아.”
“감사해요, 대표님.”
맛있는 걸 먹고 나면 항상 기분이 좋은 강지한이었다.
배도 채웠겠다, 직원들 사이의 상성도 확인했겠다, 파이팅을 외쳐주고 그만 식당을 나서려는데 유지호가 잊고 있었다는 듯 말은 전했다.
“아! 대표님. 전해드릴 말이 있는데요. 한에어 아시죠?”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에어를 모를 수가 없었다.
“알지. 왜?”
“점심에 한에어 회장님이 오셨었어요.”
“그래?”
“네. 대표님이랑 비즈니스적으로 긴히 할 말이 있다고 꼭 연락 좀 달라 하시더라고요. 명함 받아놨어요.”
유지호가 잘 간직하고 있던 명함을 꺼내 건넸다.
명함을 넘겨받은 강지한이 거기 적힌 이름과 전화번호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연락해 볼게. 수고해.”
“네. 들어가세요.”
* * *
강지한이 지한 식당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을 때, 신장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신 사장님, 안녕하셨습니까.”
강지한의 음성이 유난히 반가웠다.
요즘 새로 출시한 신푸드의 지한 반찬 반응이 상당히 좋았기 때문이다.
-강 대표! 별일 없죠?
“그럼요. 어쩐 일이세요?”
-아, 다른 게 아니고…… 혹시 한에어 이항기 회장으로부터 접촉 없었습니까?
“안 그래도 우리 식당 들러서 직원에게 명함을 주고 갔다더라고요. 사장님한테도 연락이 갔나 봐요?”
-맞아요. 강 대표랑 어떻게 자리 한 번 주선해 줬으면 하던데. 대충 몇 마디 나누면서 의중을 파악해 보니 우리 신푸드를 사이에 끼고 강 대표랑 함께 기내식 개발을 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강 대표만 생각이 있다고 하면 한 번 만나볼까 하는데.
항공사 쪽에서 이런 식으로 연락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강지한이었다.
아울러 요리사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강지한은 무조건 환영이었다.
“저는 좋습니다.”
-오케이. 그러면 오늘 중으로 약속 잡아서 바로 연락 주도록 할게요.
* * *
민국항공의 조인철 이사는 한남선의 둘째 아들 한정국과 고급스러운 룸에서 은밀한 회동을 갖고 있었다.
두 사람의 옆에는 몸에 딱 달라붙는 옷을 입은 여인들이 앉아 있었고, 앞에 놓인 테이블에는 비싼 양주와 안주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조인철 이사가 한정국에게 술 한 잔을 따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한 대가님 덕에 우리 민국항공이 매년 한에어를 앞서고 있습니다. 하하하. 과연 신선숙수의 차남다우십니다. 아마 다음 신선숙수는 우리 한정국 대가님이 되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조 이사님은 그냥 저만 믿으시면 됩니다. 주어진 상황 안에서 최상의 맛을 끌어내는 데는 절 따라올 사람이 없으니까요. 하하하.”
“아무렴요. 자자, 한 잔 쭉 드시죠.”
둘은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술로 목을 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