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43화 (243/330)

# 243

Restaurant 242. 아임 유어 파더?

토요일 저녁.

비슷한 인상을 가진 형제 둘이 지한 레스토랑을 방문했다.

그들은 코스 메뉴 두 개를 주문했다.

그러고는 하나씩 나오는 음식을 신중하게 음미하며 이런저런 의견을 나누었다.

그 모습이 흡사 요리 대회의 심사위원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파스타 어때?”

“맛있네. 소스가 훌륭하고 특색 있어. 면도 아주 잘 삶았고. 근데 거기까지. 기가 막히진 않아. 에피타이저 어땠냐.”

“형이 방금 얘기했던 파스타 평이랑 비슷하다면 답이 될까? 확실히 맛있는데 그 이상의 무언가가 없네.”

“동감한다.”

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메인 메뉴가 서빙됐다.

그들은 메인을 먹으면서도 평가를 멈추지 않았다.

“스테이크 굽는 솜씨는 훌륭한데?”

“허브를 잘 사용했고, 소스와의 궁합도 좋아.”

“근데 이것도…… 그치?”

“응. 그 이상이 없다.”

“그럼 판단은?”

동생의 물음에 형은 고개를 저었다.

“견제구 던질 필요 없어. 신경 끄자.”

“오케이.”

두 사람은 메인 접시를 반도 비우지 않고서 일어섰다.

그러자 윤민아가 다가와 난처한 듯 물었다.

“손님, 식사 다 하셨어요? 아직 후식도 못드렸는데.”

“아, 괜찮습니다. 더 안 먹어도 될 것 같네요.”

동생이 말을 했고 형은 미소 지으며 눈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음식값을 계산하고 나갔다.

윤민아는 아직 음식이 많이 남아 있는 메인 접시를 치우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 * *

한남선의 저택, 다실(茶室).

늦은 밤, 그곳엔 한남선과 그의 두 아들 한민국, 한정국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차 한 잔을 나누고 있었다.

한남선은 은은하게 퍼지는 차향을 즐기며 아들들에게 물었다.

“그래, 어떻더냐.”

먼저 대답을 한 건 차남 한정국이었다.

“별거 없었어요, 아버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한정국의 말투는 조금 껄렁껄렁하고 가벼웠다.

한남선은 그런 작은 아들보다는 큰 아들을 신뢰했다.

“민국이는 어떻더냐.”

“맛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입니다.”

한민국의 입에서 낮고 차분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제야 한남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큰아들은 참 듬직하고 무거운 사람이었다.

같은 형제임에도 몸에서 풍겨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발전 가능성은?”

한남선이 다시 물었다.

“2년 안에 더 높은 경지 이르기는 힘들 것 같았습니다.”

“짧은 시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알고 있는데 과연 그럴까?”

“그런 요리사들은 전국을 뒤져보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빠른 성장은 스스로의 한계 역시 빠르게 직면하도록 만드는 법입니다.”

한민국의 대답이 한남선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바로 그가 원하는 대답이었기 때문.

“그래, 그렇지. 자고로 칼을 쥔 자들의 실력이란 다양한 경험과 오랜 실전 속에서만 깊은 성장을 이룩할 수 있는 법. 요리사처럼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가장 확실하게 와 닿는 직업도 없다.”

한남선의 비서 구민호는 강지한의 뒷조사를 해서 그에게 넘겨주었다.

강지한은 3년 전까지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팔다가 갑자기 각성을 해서 승승장구를 하게 된 사람이었다.

필시 상당한 재능이 잠재되어 있다가 개화한 타입일 테지만 경험의 부재는 결국 더 높은 곳으로 가는 길을 막아버리게 되고 만다.

혼자만의 노력으로 해결되는 경지가 있고 경험이 쌓여야 뚫을 수 있는 경지가 있다.

강지한이 지금 올라선 곳까지가 딱 전자에 해당하는 경지였다.

레벨을 더 높이려면 경험이 필수적인데 2년으로 그 경험을 채우기엔 무리가 있었다.

반면 그의 두 아들은 의사소통이 되는 순간부터 요리라는 것을 숙명처럼 생각하고 배우며 살아왔다.

그 방대한 경험의 차이라는 것은 감히 비교할 수가 없었다.

설사 기적이 일어나 2년 사이 한 단계 더 올라선다 해도 상관 없었다.

한민국와 한정국 역시 놀고 있는 건 아닐테니까.

“그럼 2년 동안 치러지는 잠행단의 시험은 통과할 것 같더냐?”

“운이 좋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될 경우 너희들은 어찌해야 하겠느냐.”

한민국이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작은 아버지의 제자를 본무대에서 무너뜨려 급이 다르다는 걸 보여주겠습니다.”

“그렇지. 가장 큰 기대를 안고 당도한 무대에서 모든 것이 짓밟혀 잃고 말았을 때에야, 두 번 다시 허튼 꿈을 가지지 않으려 할 것이다. 너희들은 그날을 위해 정진하고 또 정진하도록 하거라.”

“알겠습니다.”

“그럴게요, 아버지.”

한민국과 한정국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 * *

일요일.

강지한은 아침 일찍부터 조정호를 깨웠다.

그러고는 자신과 함께 가보아야 할 곳이 있으니 최대한 깔끔하게 꾸미고 나오라 일렀다.

갑자기 무슨 일인건지 조정호는 의아했으나 일단 시키는대로 따랐다.

그런데 한껏 꾸미고 나온 조정호의 모습은…… 평소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조정호는 여태 돈을 벌면 저축하기 바빴지 자신을 위해 투자하지 않았다.

작은 전셋집을 얻어 독립하기 위해 열심히 저축을 하는 중이었다.

강지한이 지금 살고 있는 조용한 동네의 옛날 집 같은 경우 전세금이 그리 비싸지 않았다.

3천 정도면 충분히 입주가 가능했다.

이제 그 목표지에 근접할 만한 돈이 모인 상황이었다.

다음 달에는 전셋집을 얻어 나갈 계획을 세워놓은 그였다.

그렇다 보니 멋을 낼 만한 옷이라고 할 것이 없었다.

결국 강지한은 자신의 옷과 구두를 빌려주어 입힌 뒤, 조정호를 차에 태우고서 집을 나섰다.

“저…… 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교회요.”

“교회…… 요? 전도하시려고요?”

강지한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 무교예요.”

“그런데 왜……?”

“정호 씨가 말했던 서민정이라는 분, 찾았어요.”

“네? 찾았다고요?”

조정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거기에서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서민정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잔뜩 긴장을 한 조정호의 입이 풀칠이라도 한 것처럼 딱 달라붙었다.

강지한은 그런 조정호에게 더 말을 걸지 않고 마음을 진정시킬 시간을 주었다.

그러는 사이 차는 교회의 주차장에 들어서 있었다.

강지한이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8시.

전에 만났던 목사님은 이 교회의 오전 예배가 이른 아침 7시부터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한 시간가량 진행된다 했으니 지금쯤이면 끝날 때가 되었다.

두 사람은 차 안에서 굳게 닫힌 예배당의 정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8시가 조금 넘어가는 시각.

드디어 정문이 활짝 열리고 사람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 인파 속에는 조정호가 그렇게 찾으려 했던 얼굴도 섞여 있었다.

‘민정아.’

조정호가 강지한을 바라봤다.

“가보세요.”

강지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후우우.”

긴장된 숨을 내쉰 조정호가 차에서 내렸다.

만두를 빚을 때와 달리 말끔한 슈트에 세련된 구두를 신은 그의 모습은 제법 멋이 있었다.

그의 떨리는 걸음이 서민정에게 향했다.

서민정은 조정호를 보지 못하고서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아들, 서지한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러다 서지한이 우뚝 멈춰 서서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어? 엄마. 만두 가게 아저씨야.”

“응?”

서민정은 그제야 조정호를 확인했다.

아들을 바라볼 땐 자리했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민정아.”

조정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주변의 시선이 그들에게 집중되었다.

오지랖 넓은 어르신 한 분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다가와 물었다.

“서 집사님, 이 잘생긴 분은 누구셔?”

“아, 그게 저…….”

서민정이 난감해하다가 저도 모르게 풀려 버린 미소를 흘리며 대답했다.

“애, 애 아빠예요. 헤헤.”

“…….”

“…….”

“…….”

순간 서민정을 제외한 그 자리에 서 있던 세 사람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아, 아이고. 하늘이 꾸리꾸리한 게 비가 올 것 같은데 빨리 가서 빨래 걷어야겠다.”

어르신은 자기가 낄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서 재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조정호가 눈을 여러 번 깜빡이다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물었다.

“민정아, 9년 만에 만나서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서지한이 조정호와 서민정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엄마. 만두 가게 아저씨가…… 우리 아빠야?”

무슨 스타워즈도 아니고 대혼란에 빠져버린 상황에서 서민정만 침착했다.

“이럴까 봐 내가 그때 너 피했던 건데. 결국 다 알고 말았네.”

서민정은 힘없는 미소를 머금었다.

얼굴에 없던 잔주름 몇 개가 생겼어도 그 미소만큼은 예전 그때와 변함없이 똑같았다.

조정호가 아는 그녀는 필요 이상으로 웃음이 헤프고 허술한 면도 많고 사차원 세상에 사는 것 같은 특이한 사람이었지만 거짓말은 잘 못했다.

“너…… 정말이야? 정말 얘가…….”

“응. 네 아들이야. 잘생겼지?”

“엄마. 왜 만두 가게 아저씨가 내 아빠야?”

서지한이 서민정의 치맛자락을 잡고 흔들어댔다.

“9년 전에 엄마가 만두 가게 아저씨랑 사랑을 하는 사이였을 때 너를 임신했었거든.”

“……?”

서지한의 얼굴이 점점 더 혼란으로 물들었다.

혼란스러운 건 조정호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게… 아… 그, 근데 왜 그때 바로 말을 안 했어, 민정아.”

서민정이 시선을 피하며 발로 땅을 툭툭 찼다.

“염치가 없어서. 너 사업 실패하고 내가 먼저 찼는데 임신했다는 거 알고 다시 만나자고 하기에는 너무 염치가 없었으니까. 근데 너랑 헤어졌다고 아이를 포기할 수도 없었어.”

그리고 그로 인해 서민정은 집에서 쫓겨나야 했다.

남편도 없는 미혼모의 몸으로 아이를 낳아 키우려 하는 걸 고지식했던 그녀의 아버지는 이해해 주지 않았다.

결국 9년이라는 세월 동안 홀몸으로 이 일 저 일을 전전해 가며 낡은 집에서 아이를 키워 나갔다.

그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랐다.

그러다 우연히 만두 가게에서 조정호를 봤는데, 순간 그에게 의지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도망쳤다.

마음이 흔들릴까 봐.

조정호는 이미 다른 사람을 만나 잘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본인이 먼저 떠났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그건 그렇고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서민정이 물었다.

“그건 지금 별로 중요한 것 같지가 않아.”

“그런가? 헤헤.”

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서지한은 무언가를 계속 생각하며 혼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서민정이 갑자기 대화 주제를 틀었다.

“그냥… 엉망이었어. 하는 사업마다 전부 말아먹고…… 개인파산신청하고…… 안 좋은 마음으로 춘천에 왔다가 우연히 좋은 분을 만나서 다시 열심히 살고 있어.”

“그렇구나. ……만나는 사람은?”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었는데 그럴 여유가 있었을까.”

“그랬겠네.”

두 사람의 대화는 거기서 잠깐 끊겼다.

그리고 무거운 침묵이 자리했다.

서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선뜻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마음은 같았다.

서민정은 아들의 아빠인 조정호에게 의지하고 싶었고 조정호는 서민정과 서지한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한 명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던 그때였다.

“좋아. 이해했어.”

서지한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정호에게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앞으로 잘 부탁해요, 아빠.”

“……어?”

“어머나.”

서지한이 뭐 문제 있냐는 시선으로 조정호와 서민정을 번갈아 보았다.

그 엄마에 그 아들이었다.

한편, 아빠라는 말을 듣고 난 조정호의 마음에 이상한 울림 같은 것이 전해졌다.

서민정은 조정호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그의 눈치를 살폈다.

답은 바로 나왔다.

조정호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의 투박한 손이 조심스레 서지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차 안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강지한의 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퀘스트 클리어! 성공 보상이 지급됩니다.]

[중식 요리 장인 고(故) 여위용(呂威?)의 지식을 흡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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