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
Restaurant 239. 설윤진이라는 여인을 아십니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강지한은 스마트폰부터 확인했다.
그러자 새벽녘, 한돈선으로부터 답장이 와 있는게 보였다.
강지한의 손이 바쁘게 액정을 터치했다.
-잘 지내셨나요, 지한 씨? 나이가 들수록 밤잠이 늘고 아침잠이 사라져서 어제는 일찍 잠들어 버렸네요. 새벽 닭 소리에 눈뜨자마자 메시지 확인했어요. 지한 씨가 먼저 날 찾아주는 게 흔한 일이 아닌데 무조건 갸아지요. 오늘 세시에서 세시 반 사이에 지한 레스토랑으로 걸음 하도록 할게요. 곧 보도록 해요^^
다행스럽게도 한돈선은 흔쾌히 와주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어쩌면 오늘 설윤진의 과거와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강지한은 한정신의 칼을 소중히 챙겼다.
* * *
지한 레스토랑의 오픈을 준비하며 바깥 상황을 살핀 홀직원들을 혀를 내둘렀다.
어제의 아픔은 모두 잊고 씩씩한 모습으로 출근한 윤민아가 주방으로 총총 다가와 강지한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대표님, 난리났어요.”
“왜?”
“밖에 웨이팅이 어마어마해요.”
“뭐?”
그 말에 강지한보다 먼저 도근한이 후다닥 달려 나가더니 휘둥그레진 눈으로 돌아와서 고개를 끄덕였다.
“야, 대박이다. 한 열 팀은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갑자기 무슨 일이래?”
강지한은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그러자 윤민아가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어젯밤부터 포털사이트 검색에 상위권에 지한 레스토랑이랑 손현중 배우님 이름이 계속 랭크되어 있어요.”
“아, 이것 때문이구나.”
“어라? 뭣 때문에?”
알겠다는 도근한과 달리 강지한은 이를 처음 본 사람처럼 놀라워했다.
그런 강지한을 도근한이 원시인 보듯 쳐다봤다.
“넌 왜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질 않냐, 답돌아. 퇴근하면 집에서 대체 뭘 하는 거야?”
“요리.”
“……그래, 네가 짱이다.”
너무나 단순무식한 강지한의 대답에 말문이 턱 막히는 도근한이었다.
“그래서 왜 이렇게 된 건데?”
강지한이 윤민아에게 다시 물었다.
“어제 우리 레스토랑 음해하러 오신 분들 있잖아요. 그때 벌어진 일들 손님들이 폰으로 찍어서 많이 올렸나 봐요. 그 바람에 우리 레스토랑 온라인에서 지금 난리 났어요. 사장님 얘기도 많아요. 보실래요?”
윤민아가 동영상에 달린 댓글들 몇 개를 보여줬다.
-와…… 사장님 진짜 멋지다♡_♡
-나도 직원 저렇게 믿어주는 사장님 밑에서 일하면 추가 수당 없이 연장 근무 뛸 수 있음.
-여윽시 강지한! 배틀 셰프때부터 인성 갑인 거 알아봤음.
-캬하! 손현중 사이다 지리고요!
-지한 레스토랑 안 그래도 소문 좋던데~ 내일 가봐야징!
-ㅋㅋㅋㅋㅋㅋㅋㅋㅋ동영상 제목 나만 웃김? 멍청한 자객이래ㅋㅋㅋㅋ
-시비 털러 왔다가 역관광 당하죠? 손현중이 인실ㅈ 시전하죠?
-여러분 동영상에서 직원 감싸주는 사장님은 배틀 셰프 우승자로서 지한 푸드라는 법인체의 대표이며, 춘천에 지한 분식, 지한 김치 전골, 지한 식당, 지한 만두 등 여러 요식업체 및 지한 김치를 온라인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지한 레스토랑에 머물며 저렇게 직원들이 근무하기 편한 근무환경을 위해 노력하고 계시답니다! 이상 설명충이었습니다.
댓글을 주르륵 읽어본 강지한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윤민아가 그런 강지한의 얼굴을 그윽하게 바라봤다.
“대표님, 기분 좋아요?”
“응. 나쁘지 않지. 오늘 다들 열심히 해야겠다. 힘내자.”
강지한의 부탁에 모든 직원들이 입을 맞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네!”
“최선을 다할게요!”
강지한은 그런 직원들의 상태창을 일제히 확인했다.
전부 강지한에 대한 신뢰도가 어제보다 적게는 3에서 크게는 10 이상 올라가 있었다.
강지한이 보여준 모습이 그들의 마음에 큰 감동으로 다가왔기 때문.
강지한의 기분이 더더욱 좋아졌다.
‘드디어 오픈 전 웨이팅도 걸리는구나.’
지한 레스토랑이 꾸준히 잘되긴 했지만 오픈 전에 웨이팅이 이토록 길게 걸린 건 처음이었다.
자칫 화가 될 뻔했던 어제의 일이 복으로 돌아온 결과였다.
뿌듯해하는 강지한을 지켜보던 윤민아도 속으로 파이팅을 다졌다.
자신을 믿어준 대표님을 위해서라도 더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꿈은 언젠가 유명한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 꿈을 위해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연극배우라는 것이 뜨기 전까지는 배고프고 힘든 직업이다. 때문에 알바는 필수였고, 지한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지런히 놓인 테이블과 의자의 위치를 다시 한 번 살피고 있는 윤민아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그녀의 친언니였다.
“여보세요.”
-민아야, 일 잘하고 있어?
“응. 지금 오픈 준비 중이라 바빠.”
-그러니까 어디서 일하고 있냐고. 찾아가서 언니가 시원하게 한 번 매상 올려줄게. 우리 동생 어깨에 힘 좀 넣어줘야 하지 않겠어?
“언니 오면 더 민폐라니까.”
-알았어, 알았어. 그럼 어디서 일하는지만 말해주면…….
“아, 언니! 나 대표님이 부른다. 끊어!”
윤민아가 얼른 전화를 끊고서 콧숨을 폭 내쉬었다.
“하여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면서.”
그녀의 언니는 요즘 잠 잘 시간도 부족할 정도로 바빴다.
그런데 자신이 어디서 일하고 있는지 얘기하면 그 안에서 또 시간을 쪼개 올 것이 분명했다.
때문에 속 깊은 윤민아는 일하는 곳이 어딘지 숨겼다.
한데 전화를 끊고 나니 바로 걱정이 뒤따랐다.
‘그 영상…… 언니도 보면 어쩌지?’
* * *
친동생과 통화를 끝낸 여인, 윤선아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하여튼 계집애. 되게 비싸게 구네.”
분식집 막내아들 방영 이후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몸값이 확 오른 윤선아는 요즘 매일매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지금도 드라마 촬영장에서 잠깐 짬이 나 동생에게 전화를 한 것.
현재 그녀가 찍고 있는 드라마는 분식집 막내아들을 연출했던 송만대 감독의 후속작으로 이제 겨우 6화가 방영되었을 뿐인데 시청률이 30퍼센트를 넘으며 승승장구하는 중이었다.
윤선아가 스마트폰을 보며 툴툴대고 있자니 그녀와 함께 드라마의 주연으로 맹활약 중인 좌경우가 다가와 물었다.
“동생?”
“응. 얼마나 도도하신지. 아니, 어디서 일하는 지 알려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
“속 깊은 거지. 네 성격 뻔히 아니까 괜히 부담 안 주려고 그러는 건데 뭐.”
“고지식한 거야, 그건.”
“요즘에도 꾸준히 연극판에서 놀고 있지?”
“응. 내가 힘 좀 써서 방송 한 번 타게 해주겠다니까 한사코 싫대.”
“자립심 투철하고 좋네. 원래 그렇게 들풀처럼 커야 험악한 연예계에 발 들여 놓았을 때 버티는 법이지.”
“얘는 이미 들풀 같은 애야. 하여튼.”
“그리고 보니까 너 아니더라도 곧 방송 탈 것 같던데?”
“응? 걔가 당장 뭘로?”
좌경우가 대답하려는 순간, 윤선아의 매니저 선동수가 헐레벌떡 달려와 스마트폰을 들이댔다.
“선아 씨, 이것 좀 봐봐.”
“뭔데?”
선동수가 내민 스마트폰 액정에서는 ‘경쟁 레스토랑에서 보낸 멍청한 자객’이란 제목의 동영상이 플레이 되고 있었다.
“응? 레스토랑 같은데?”
동영상 속에는 손님으로 보이는 남녀와 레스토랑 직원이 실갱이를 벌이는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데 레스토랑 직원의 얼굴을 살피던 윤선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이거 민아잖아.”
자신의 여동생을 확인한 이후 동영상을 말없이 지켜보던 윤선아는 윤민아가 따귀를 맞고 쓰러지는 순간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런데 동영상 속에 아는 얼굴이 또 등장했다.
“강 사장님?”
윤민아가 사과하려는 걸 막아서고서는 편 들어주는 강지한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손현중까지 나타나 두 진상들을 호되게 혼내주었다.
동영상을 전부 보고 난 윤선아가 분노에 치를 떨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하며 입을 열었다.
“얘가 어디서 근무하는가 했더니, 지한 레스토랑이었네. 그나마 좋은 사장님 밑에서 일하게 됐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된통 당할 뻔했잖아.”
“보니까 손 배우님은 이미 단골인 것 같던데? SNS에도 두 번이나 지한 레스토랑 음식 자랑했더라고.”
선동수의 말이었다.
“현중 오빠한테 감사하다고 전화라도 해야겠다. 그리고 지한 레스토랑도 찾아가봐야겠네. 우리 동생도 보고 강 사장님 얼굴도 보고. 아, 근데 그 진상 손님들 정체가 뭐래?”
“네티즌 수사대에 의하면 재스민 레스토랑에서 자객으로 보냈다고 하던데. 남자가 재스민 레스토랑 대표의 친동생이라더라고.”
재스민 레스토랑은 윤선아에게도 익숙한 곳이었다.
손현중의 주최로 한 번 모임을 가진 뒤, 음식 맛이 괜찮아서 이후로는 자주 걸음을 했기 때문.
“아~ 그래? 재스민 레스토랑이었구나. 여기 요즘 분위기 어떻대?”
“이번 사건 벌어지면서 불매 운동 시작되고 난리도 아니지. 그래도 어떻게 돌아가긴 하나봐.”
“응. 다행이네.”
“뭐가?”
“아직 완전히 무너진 게 아니라서. 내가 밟아줄 구석이 남아 있으니까.”
말을 하는 윤선아의 눈에 독기가 어렸다.
“동수 씨, 동영상 주소 나한테 보내줘.”
“응.”
윤선아는 선동수에게 넘겨받은 동영상 주소를 곧 지인들 전부에게 퍼뜨렸다.
이런 메시지와 함께.
-재스민 레스토랑 대표의 동생이 저지른 모략질에 당한 사람은 다름 아닌 제 친동생 윤민아입니다. 언니 된 입장으로 도저히 간과할 수가 없어 제 지인분들께 동영상 링크 보내드립니다. 다들 제 힘이 되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렇게 윤선아로 인해 사건의 사이즈가 한층 더 커지고 있었다.
* * *
폭풍 같은 점심 피크 타임이 지나가고 브레이크 타임이 시작됐다.
갑자기 불어난 손님으로 인해 주방과 홀은 거의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덕분에 브레이크 타임이 찾아오자 직원들은 전부 축 늘어져 버렸다.
“근한아, 고생했다.”
오늘 메인 메뉴를 담당하느라 누구보다 힘들었을 도근한이었다.
강지한의 말에 도근한이 옆에 있던 신일중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웃었다.
“일중이가 있어서 죽지는 않았다.”
“뭘요.”
신일중이 쑥스러운 듯 코를 쓸었다.
“그럼 이제 배 좀 채워볼까.”
도근한이 기지개를 켜며 식사 준비를 하려 할 때였다.
식당의 홀로 반가운 사람이 들어섰다.
한돈선이었다.
“어? 한 대가님! 어쩐 일이세요?”
후다닥 달려나온 도근한이 한돈선을 반기며 물었다.
“근한 씨, 잘 지내셨나요? 오늘은 제가 지한 씨에게 개인적인 용무가 있어서 찾아왔답니다. 호호.”
“아, 지한이한테요?”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는 사이 가까이 다가온 강지한이 한돈선에게 고개를 숙였다.
“한 대가님, 이렇게 몸소 걸음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찾아주어서 내가 기뻤지요. 그래, 어디서 얘기를 나누면 좋을까요?”
“여기서는 좀 그렇고…… 자리를 옮기시죠. 근처에 괜찮은 카페가 많거든요.”
“그럴까요?”
도근한이 보니 돌아가는 분위기가 어째 심상찮은 것 같았다.
그가 강지한의 등을 툭 치며 말했다.
“직원들 밥은 나랑 일중이가 책임질 테니까 너는 대가님이랑 얘기 잘 나누고 와라. 저녁에도 손님 엄청 들이닥칠 것 같으니까 꼭 배 좀 채우고.”
“그래, 고맙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대가님.”
“고마워요, 근한 씨.”
* * *
룸 형태의 카페 안.
강지한과 한돈선은 2인실 룸에 마주보고 앉아 음료를 주문해 놓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돈선은 따듯한 녹차를 음미하며 강지한의 입이 먼저 열리기를 끈기 있게 기다렸다.
그때, 강지한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우선 제가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한돈선은 테이블 위에 놓인 직사각형의 기다란 나무함을 보며 그 안에 무엇이 들었을지 짐작했다.
“칼을 가져오신 모양이군요.”
“맞습니다.”
대답과 함께 강지한이 함의 뚜껑을 천천히 열었다.
그러자 드러난 한 자루 명장의 부엌칼을 본 한돈선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이, 이건……!”
“맞습니다. 한 대가님의 아버님이신 한정신 명인님의 칼입니다.”
한돈선은 당장에라도 숨이 멎을 것처럼 정신없는 모습이었다.
그런 그에게 강지한의 물음이 이어졌다.
“혹시 설윤진이라는 여인을 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