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39화 (239/330)

# 239

Restaurant 238. 한정신의 칼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강지한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그저 혼란스러울 뿐.

차를 몰아 춘천으로 넘어오는 한 시간 반이 약간 넘는 시간 동안, 강지한은 마음을 다스리고 기억들을 천천히 정리했다.

그리고 집 앞에 주차를 마치고서 마지막 여운을 갈무리했다.

“후우.”

강지한은 비로소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는 요리에 관련된 모든 기억들을 스스로 봉인시켰다.

엄마의 마지막 유언과 그의 트라우마가 맞물려 가장 행복했던 기억들을 의식의 깊은 곳으로 파묻어 버린 것이다.

이제 그 기억들을 꺼내 마주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들 몇 가지를 알게 됐다.

강지한의 엄마는 누간가의 연락을 받고 그녀답지 않게 정신없이 집을 나섰다. 한 번도 가족과의 저녁상에 자리하지 않은 적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날은 저녁이 한참 지나서야 귀가했다.

귀가한 날 밤, 엄마는 칼 한 자루를 보며 울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 칼날에는 한정신이라는 이름이 박혀 있었다. 엄마가 걱정되어 다가간 강지한에게 그녀는 말했다.

앞으로 엄마가 조금 바빠질지도 모르겠다고.

그리고 이틀 후.

엄마는 아빠와 함께 어딘가로 향하던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해 죽고 말았다.

그로 인해 강지한은 자신의 엄마에게 어떠한 변화가 다가오려 했던 것인지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다.

한데 생각해 보면 설윤진은 강지한에게 그녀의 과거에 대해 그 무엇도 확실히 말해주지 않았었다.

강지한이 아는 것은 엄마가 고아원에서 자라 아빠를 만났고, 자신을 낳아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지금 유일한 단서가 될 수 있는 건 한정신의 칼뿐이었다.

‘그 칼은…… 분명 엄마 무덤에 유품으로 같이 묻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것 역시 봉인되었던 기억을 되찾음으로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아무튼 칼이 무덤에 함께 들어갔으니 다시 파서 꺼내올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강지한이 모르는 엄마의 과거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한정신과의 연결선이 있는 사람을 만나야 했다.

그런 사람은 당장 한 명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한돈선 대가님.’

당장 전화를 해서 설윤진이라는 여인을 아시느냐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너무 늦은 밤이었다.

무엇보다 이런 얘기는 직접 얼굴을 보고서 나누고 싶었다.

지한 레스토랑이 쉬는 일요일까지 참고 있기에는 강지한의 인내심이 버텨주지 못할 것 같았다.

해서 일단 문자를 하나 남겨놓기로 했다.

-한 대가님, 늦은 밤 문자 드려 죄송합니다. 혹 내일 세시 반쯤 시간이 되신다면 만나 뵙고 싶습니다. 꼭 여쭙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그리고 일방적인 부탁 죄송합니다. 문자 확인하시면 답장 주십시오.

문자를 보낸 강지한은 비로소 차에서 내려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과연 한돈선에게 엄마의 과거를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이 드는 강지한이었다.

‘그건 그렇고. 그 마지막 메시지가 말하는 건 대체 뭘까.’

기억을 되찾은 이후 흘러나왔던 메시지.

[충격 보정을 위해 한 가지의 기억은 시간을 두고 오픈됩니다.]

과연 저 한 가지의 기억이란 무엇일지 궁금해지는 강지한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들어서니 눈앞에 몽실몽실한 솜사탕 같은 것이 둥실 뛰어올라 강지한의 품으로 와락 안겨들었다.

바로 설탕이였다.

설탕이는 강지한이 몹시도 그리웠다는 듯 정신없이 얼굴을 핥으며 좋아했다.

그 모습을 거실에 있던 이향숙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향숙의 얼굴은 마치 실연이라도 당한 사람 같았다.

“설탕아, 오늘 하루 종일 널 봐준 게 난데…… 어쩜 주인 왔다고 바람처럼 달려가니?”

“누나 삐졌다, 설탕아.”

거의 눈물이라도 흘릴 것처럼 구슬픈 이향숙의 목소리에 강지한이 설탕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설탕이가 이향숙에게 토다다다 달려갔다.

그러고는 자신의 코를 이향숙의 코에 살포시 맞대주었다.

촉촉한 설탕이의 코가 닿는 순간 이향숙의 눈이 하트로 변했다.

“꺄아아아아~ 이건 또 무슨 팬서비스야? 뭐야? 누나 심쿵사하면 어쩌라궁~!”

이향숙이 설탕이를 꽉 끌어안고 목에다 뺨을 마구 비벼댔다.

복슬복슬한 털의 감촉이 얼굴 전체를 자극하자 점점 이향숙의 기분이 고조되며 양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결국 참을 수 없어진 이향숙은 설탕이를 바닥에 눕혀 놓았다. 그러자 설탕이의 분홍빛 배가 훤히 드러났다.

이를 본 이향숙이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서는 배에다 얼굴울 쿡 파묻었다.

헥헥헥!

설탕이가 간지러운지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이대로 기절해 버릴까 보다.”

정신이 반쯤 나간 이향숙의 목덜미를 강지한이 잡고 살짝 들었다.

“켁! 목 졸려!”

“그 정도로 세게 안 당겼거든. 설탕이 간지럽다잖아.”

“칫. 치사하기는. 가볼게!”

“고생했어, 향숙아. 매번 고마워.”

“진짜 고마우면 뭐라도 해주던가.”

“지한 푸드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평생 무료로 시식할 수 있게 해줬잖아.”

“오빠가 피땀 흘려 만든 음식 파는 곳인데 어떻게 무전취식을 해? 그거 말고 다른 거.”

말하는 걸 보니 원하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 다른 거 뭐?”

“시간 날 때 요리 좀…… 알려주면 안 돼?”

“요리? 너 먹는 것만 관심 있던 애가 갑자기 왜? 누구 만들어 주려고?”

“그냥 나도 관심이 좀 생겨서 그런다!”

발끈하는 걸 보니 정곡을 찔린 모양.

그에 뭔가 감이 온 강지한이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가르쳐 줄게. 뭘 만들고 싶은데?”

“그냥 집밥 같은 느낌 날 수 있게 찌개나 반찬 같은 거?”

“어려울 거 없지. 시간 맞춰보자. 날 잡고 가르쳐 줄게.”

“오케이! 콜! 그럼 나 가볼게~ 설탕아 안녕! 누나는 오늘도 널 그리워하며 잠들 거야. 너도 그럴 거지?”

왕! 헥헥헥.

“마지막으로 그거 해줘. 빠이빠이~!”

이향숙의 부탁에 설탕이가 홱! 하고 돌아서서 엉덩이를 보여주더니 꼬리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그것이 마치 손을 흔들며 빠이빠이 하는 것만 같았다.

강지한 모르게 이향숙이 가르쳐 놓은 개인기였다.

“꺄아악! 더 보면 심장 튀어나오겠다. 안녕, 설탕아. 다음에 봐!”

설탕이의 반응에 비로소 만족한 이향숙이 집을 떠나갔다.

강지한이 얼빠진 얼굴로 설탕이를 보며 물었다.

“향숙이가 너한테 별 걸 다 가르치는구나.”

그러자 설탕이는 살짝 피곤하다는 듯 콧방귀를 킁! 뿜었다.

그 모습이 또 어찌나 귀여운지.

강지한은 설탕이의 엉덩이를 토닥여 주었다.

“오늘 아빠가 맛있는 거 해줄게.”

‘맛있는 거’라는 말에 설탕이의 귀가 쫑긋 서고 입에서 군침이 돌았다.

왕! 헥헥!

신나서 짓는 설탕이의 상태를 강지한이 살폈다.

[설탕이 LV15(MAX)]

지능+20

교감도+50

핥기, 손, 앉아, 엎드려, 하이파이브, 빵, 굴러, 점프, 노래: 행복+10

특수 능력: 물어오기 LV5(MAX), 명성: 95(전국적으로 유명한 강아지)

설탕이 퀘스트: 설탕이의 명성을 98까지 올릴 경우 감추어진 특수 능력을 얻게 됩니다.

그동안 설탕이의 명성이 95까지 올랐다.

‘진짜 엄청 더디다.’

설탕이가 영화촬영을 끝냈을 때가 94였다.

한데 그동안 겨우 1이 오른 것.

95의 명성에 적힌 설명이 전국적으로 유명한 강아지다.

아무래도 그 이상을 바라보려면 설탕이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야 하는 것 같았다.

‘설탕이 퀘스트…… 클리어가 은근히 어렵네.’

강지한은 옷을 갈아입고 바로 설탕이가 먹을 강아지용 간식 조리에 들어갔다.

그는 종종 설탕이에게 간식을 직접 만들어 주곤 했다.

오늘 그가 만들 음식은 고구마 닭가슴살 말이.

견주들이 반려견들에게 가장 대중적으로 해주는 요리 중 하나였다.

고구마와 닭가슴살은 강아지들에게 전혀 해가 되지 않고 도움 되는 영양소가 많으며 장운동을 활성화해 주기까지 하니 더없이 좋았다.

강지한이 닭가슴살과 미리 쪄 놓은 고구마를 꺼냈다.

우선은 고구마를 감자튀김 모양으로 길게 잘라야 했다. 강지한이 쥐어든 칼의 상태창을 오래간만에 확인했다.

그런데,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하는 명인의 미숙한 강철칼?진화형]

LV5: 숙련도 99/100

-어떤 명인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미숙한 강철칼입니다. 진화를 거듭해 완성형 부엌칼이 되면 감추어진 명인의 이름이 드러납니다.

-숙련도를 가득 채울 경우 레벨 업 조건이 열립니다.

숙련도가 99였다.

1만 더 채우면 레벨 업 조건이 열린다.

운이 좋으면 오늘 그 모자란 1을 채울지도 모른다.

아니, 채울 때까지 요리를 하면 그만이다.

‘어쩌면 이 칼이…….’

강지한의 손에 쥐어진 칼은 꿈속에서 봤던 칼과 너무도 흡사했다.

‘가만, 그러고 보니.’

칼을 가만히 바라보던 강지한의 머릿속에 무언가 스치는 그림이 있었다.

이 칼은 과도부터 시작해서 레벨이 하나씩 오를 때마다 그 형태가 달라지며 여기까지 진화해왔다.

강지한이 지금 떠올린 건 칼의 레벨이 2였을 때였다.

당시 칼의 설명은 이러했다.

[날이 무딘 부엌칼-진화형]

말 그대로 날이 전혀 서 있지 않았다. 무딘 정도가 아니라 중간중간 미세하게 이가 빠진 부분도 있었다.

한데 곰곰이 생각하니 그 칼의 형태가 강지한이 리어카를 몰던 시절, 술에 취해 집어 들었다가 손가락을 벴던 칼과 비슷한 것 같았다.

‘왜 이걸 몰랐지?’

당시 강지한은 괜히 누가 버린 걸 주웠다가 변을 당했다는 생각에 칼을 두고 집에 들어왔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부터 그에게 레벨 업 시스템이 나타났다.

‘어쩌면 내가 집었다가 손을 베인 칼이 이 칼이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야.’

그런 생각을 하니 더더욱 칼의 최종 형태가 궁금해지는 강지한이었다.

그가 바쁘게 손을 놀려 고구마를 썰고 닭가슴살도 편 썰었다.

하지만 설탕이의 간식을 넉넉하게 만드는 동안에도 숙련도 1이 오르지 않았다.

강지한은 완성된 간식부터 설탕이를 챙겨줬다.

녀석은 주인이 만들어준 요리를 환장하며 먹어댔다.

접시에 코를 박고 꼬리는 쉴 새 없이 팽팽 돌리며 식사를 했다.

그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던 강지한은 다시 칼을 들고 냉장고에서 이런저런 식재료를 꺼내 마구 썰어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원했던 메시지가 나타났다.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하는 명인의 미숙한 강철칼?진화형’의 숙련도가 100이 되었습니다. 레벨 업 조건이 열립니다.]

‘됐다!’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하는 명인의 미숙한 강철칼?진화형]

.

.

.

-단골 포인트 150을 투자할 경우 레벨 업 가능.

강지한이 바로 레벨 업 현황창에서 누적 단골 포인트를 살폈다.

‘124.’

150에는 26 포인트가 모자랐다.

하지만 강지한에게는 40,012 만족도 포인트가 존재했다.

만족도 포인트는 100포인트 당 1단골 포인트로 환전이 가능했다.

강지한이 바로 2,600만족도 포인트를 사용해 26단골 포인트로 환전했다.

그리고 150 단골 포인트를 칼에 투자했다.

순간 칼에서 빛이 일었다.

외관적인 변화는 없었다.

다만 손잡이의 무늬가 또렷한 용의 비늘무늬로 바뀌었다.

아울러 날이 더욱 단단하고 예리해졌으며 옆면에 한문 석 자가 떡 하니 파였다.

‘韓正信’.

그것은 강지한이 어린 시절 엄마가 가지고 있던 칼에 박혀 있던 한자와 똑같은 것이었다.

“한정신……. 이게 엄마가 갖고 있던 그 칼이 맞았어.”

강지한이 칼의 상태창을 살폈다.

[한정신의 완벽한 명장 칼?완성형]

LV MAX

-한정신이 평생을 두고 아끼던 세 자루의 칼 중 하나다. 명장의 손으로 강철과 연철을 얇게 두드려 합침으로써 두 금속의 단점은 서로 보완해 주고 장점은 극대화시켰으니 날카로우면서도 금세 무뎌지지 않으며 쉽게 부러지는 일도 없다. 날카로운 칼날은 쉬이 썰지 못하는 재료가 없고, 칼의 전체적인 균형 또한 전후좌우로 완벽하게 잡혀 있어 재료를 썰 때 손에 힘이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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