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38화 (238/330)

# 238

Restaurant 237. 되찾은 기억

윤민아가 조기 퇴근을 하고 난 이후, 지한 레스토랑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은 개인 SNS를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갔다.

대부분 동영상을 찍어 올렸는데 그 영상 속에 손현중까지 담겨 있던 터라 파급력이 어마어마했다.

영상은 대부분 ‘경쟁 레스토랑에서 보낸 멍청한 자객’이라는 제목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영상에는 주로 세 가지 양상의 댓글이 달렸다.

하나는 사기를 치려던 성재우와 김이지에 대한 욕이었다.

또 하나는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한 손현중에 대한 찬양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직원을 끝까지 믿어준 강지한을 치켜세우는 글이었다.

요즘 세상은 소위 말하는 ‘갑질’로 인한 스트레스가 도처에 만연해 있었다.

그런 와중에 자신의 직원을 끝까지 믿어주고 감싸주는 사장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짧은 동영상이었지만 여러 가지 의미가 많이 담겨 있는 데다가 손현중까지 등장하니 공유되어 퍼지는 속도가 무서웠다.

여러 개의 비슷한 동영상들이 업로드된 후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토탈 조회수가 수십만을 넘어갔다.

그쯤 되니 냄새를 맡은 인터넷 기자들도 빠르게 기사를 써 나갔다.

하나의 기사가 나가자마자 이를 본 다른 기자들이 비슷한 기사들을 쏟아냈다.

거의 동시에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도 이 동영상들을 퍼 나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오늘 사건과 관련된 키워드들이 검색어 상위권을 장식하게 됐다.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지한 레스토랑 사건을 접했고 강지한과 손현중의 대한 호감도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았다.

반면, 성재우와 김이지가 벌인 만행에는 분개했다.

사람들은 어디 레스토랑에서 저들을 보낸 것인지 밝혀야 한다며 네티즌 수사대가 나서줄 것을 종용했다.

물론 네티즌 수사대는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동영상이 올라오고 두 시간이 채 지나기 전, 성재우의 모든 신상을 털어버렸다.

성재우는 성재민의 동생이며 학창시절 양아치와 다름없는 생활을 해왔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가 어느 학교 몇 회 졸업생이며 그가 찍힌 사진 또한 입수했다며 증거자료를 함께 올렸다.

아울러 성재민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지한 레스토랑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재스민 레스토랑임도 알아냈다.

그러자 여론은 결국 성재민이 동생을 시켜 지한 레스토랑을 견제하려 했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순식간에 재스민 레스토랑의 불매 운동이 벌어졌다.

주방에서 조용히 음식만 만들고 있던 성재민은 아무것도 모른 채 화를 당하고 만 것.

아직까지는 인터넷에서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 못했으나, 확인하는 순간 성재민의 눈이 돌아갈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편, 지한 레스토랑에서 톡톡히 수모를 당하고 원룸으로 돌아온 성재우와 김이지는 스마트폰으로 시시각각 커져가는 사건의 심각성을 느끼며 바들바들 떨었다.

이제 곧 폭풍이 몰아칠 터.

폭풍전야 앞에서 성재우는 눈앞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 * *

누군가의 앞날이 결코 좋을 수는 없는 가운데 지한 레스토랑은 그저 평화로웠다.

손현중 일행은 지한 레스토랑의 영업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모든 손님들이 빠져나가고 홀 직원이 영업 종료가 됨을 알리자 그제야 하나둘 엉덩이를 떼기 시작했다.

“오늘 정말 잘 먹었습니다.”

1층으로 내려온 손현중이 주방에 있는 강지한과 도근한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돌아가며 한마디씩을 건네주었다.

은하수는 엄지 두 개를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제가 소문 많이 내드릴게요.”

은하수의 말에 도근한의 입이 귀에 걸렸다.

그녀가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 꽃향기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은하수는 아름다웠다.

“아 근데, 강 대표님. 아까 봉변당한 여직원 분은 좀 괜찮으신가요?”

“네. 덕분에 일이 더 커지지 않아서 마음 많이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한데 혹시 그 여직원, 언니가 있지 않던가요?”

“글쎄요. 제가 직원들 가족 관계까지는 잘 파악하지 않는 터라. 알아봐 드릴까요?”

“아아, 아닙니다. 내가 아는 여배우랑 좀 비슷하게 생긴 것 같아서 물어봤어요. 하하.”

“누구요?”

강지한의 물음에 손현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여배우가 성형하기 전의 얼굴이랑 비슷한 거라서 말씀 드릴 수가 없네요.”

그런 손현중의 어깨를 은하수가 탁 쳤다.

“어휴! 됐어, 오빠. 툭하면 장난이야.”

“으하하.”

손현중이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열심히 윤민아와 닮은 연예인을 떠올리던 도근한은 김이 팍 새버렸다.

“아무튼 좋은 음식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이 친구들도 하나같이 맛있다더군요. 덕분에 면이 확 섰어요.”

“에이. 찾아주셔서 저희가 영광이죠.”

도근한이 싹싹하게 손현중의 말을 받았다.

“다음번에도 잘 부탁드릴게요. 강 사장님. 도 사장님.”

“감사합니다.”

“네! 언제든 찾아주세요!”

손현중과 그 일행들이 작별 인사를 나누고서 레스토랑을 나섰다.

그와 동시에 팡파르가 울리며 폭죽이 터졌다.

펑! 퍼펑!

빰빠밤빰빠! 빰빠밤빰빠!

[축하합니다. Stage 4. 지한 레스토랑의 목표를 완수했습니다.]

[보상 ‘잃어버린 강지한의 모든 기억’이 지급됩니다.]

메시지가 나타나자마자 강지한의 눈앞이 까마득해지더니 사위가 어둠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의 의식이 어딘지 모를 깊은 곳으로 침잠하기 시작했다.

* * *

강지한의 부모님은 교통사고를 당했다.

일반도로에서 졸음운전을 하던 화물트럭과 정면충돌을 했는데, 아버지는 즉사했고 어머니는 위중한 상태에서 수술실로 옮겨졌다.

수술을 받고 난 이후에도 경과는 좋지 못했다.

당장 숨이 끊어져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였고, 그녀를 곁에서 간호하던 강지한은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아직 중3밖에 되지 않은 아이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기에, 엄마만이라도 데리고 가지 말아 달라 하늘에게 빌었다.

기도가 닿은 것일까.

가망이 없다던 어머니는 의식을 회복하고 너무나 평안한 얼굴로 자신의 아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지한아, 넌 엄마를 생각하면 뭐가 제일 먼저 떠오르니?”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강지한은 대답해야 했다. 그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것이 엄마의 마지막 질문이 될 것이라는 걸.

“요리.”

강지한의 어머니, 설윤진은 기가 막히게 요리 솜씨가 좋았다.

이미 그녀가 사는 동네에서는 소문이 자자했다.

방송국에서도 설윤진을 촬영하기 위해 제법 연락을 취해왔을 정도였다.

세상에 설윤진이 못하는 요리는 없었다.

그중에서도 한식을 가장 잘했었다.

그녀의 요리는 누구나 한 번 먹어보면 탄성을 뱉을 만큼 맛이 있었다.

강지한은 그런 엄마의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래서 요리대회도 종종 나가 1등을 거머쥐곤 했다.

강지한은 요리가 즐거웠다. 요리를 할 때가 세상에서 가장 신이 났다. 설윤진도 그랬다.

아들과 엄마의 취미가 같으니 둘이 함께할 때는 늘 요리 얘기를 하거나, 요리를 만들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기에 강지한에게 엄마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그것은 요리였다.

반대로 요리를 생각해도 자연스레 엄마가 떠올랐다.

아들의 대답을 듣고 난 설윤진은 강지한의 손을 힘겹게 잡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는 요리에 대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그냥 잊고 살렴.”

잔인한 얘기였다.

하지만 아들을 두고 떠날 것임을 아는 설윤진으로서는 그런 말밖에 해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아들이 되도록 먼저 간 부모 생각을 하지 않고 슬픔에 잠기지 말아주기를.

빨리 아픔과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그러니까 부모가 떠오를 것 같은 매개체 자체를 생각하지 말기를.

피눈물을 흘리는 심정으로 마지막 유언을 던져놓고 설윤진은 눈을 감았다.

그것이 강지한의 기억에 남아 있는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2005년 2월 25일.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렇게 고인이 되었다.

이후로 강지한은 거짓말처럼 요리에 관한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엄마가 요리를 그렇게 잘했다는 것도, 자신이 요리를 좋아했으며 상당한 소질이 있었다는 것도.

심지어 미각까지 퇴화했다.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죽음 앞에 뱉어놓은 유언이 트라우마가 되어 스스로의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요리에 관한 것들을 봉인해 버린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강지한은 이미 정신을 놓아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떠난 사람이 그리워지는 이유, 보고 싶어 가슴에 사무치는 이유는 아름다운 추억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강지한의 인생에서 부모님과 함께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80% 이상이 요리와 관련된 추억들이었다.

그것들이 사라지고 나니 부모를 잃어버린 충격이 정신을 망가뜨릴 정도로 강지한을 옥죄어오지는 않았다.

‘이제…… 생각나. 전부.’

강지한의 의식이 또 다른 기억들을 끄집어냈다.

부모님과 같이 요리를 하며 행복했던 시절들의 모습이 필름 카메라처럼 빠르게 눈앞에서 흘러갔다.

마치 죽기 직전 본다는 주마등을 경험하는 것 같았다.

정신없이 지나가던 필름은 어느 한 장면에서 멈췄다.

한밤중, 설윤진이 장롱 앞에 앉아 칼 한 자루를 쓰다듬으며 눈물짓는 광경이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기억의 한 조각을 지급받았을 때도 보았던 기억이었는데 이번에는 그 이후의 장면이 더 이어졌다.

잠에서 깬 열다섯의 어린 강지한은 엄마에게 다가가 물었다.

“엄마, 왜 울어?”

“지한이 깼니?”

설윤진이 황급히 눈물을 닦으며 강지한을 쳐다봤다.

“왜 울었냐니까.”

“그냥……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엄마. 오늘 이상해. 저녁도 같이 안 먹고 어디 나갔다 오더니 지금은 이상한 칼 들고 울고 있고.”

설윤진에게는 철칙이 하나 있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녁만큼은 가족끼리 함께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저녁상에는 정작 그녀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전화 한 통을 받고서는 황급히 밖으로 나가 버린 것.

설윤진은 저녁이 다 끝난 시간에 들어와서는 어딘지 모르게 침울해 있었다.

“지한아, 이 칼이 뭔지 알아?”

설윤진이 손에 들고 있던 식칼을 보여주며 물었다.

식칼은 어린 강지한이 보기에도 평범한 물건이 아니었다.

달빛은 받은 날은 예기를 풍겼고, 손잡이에는 용의 비늘이 각인되어 있었다.

“무슨 칼인데?”

“엄마한테 아주 소중한 분이 주신 칼이야.”

“근데 왜 한 번도 안 쓰고 모셔놨어?”

“안 쓴 게 아니라 못 썼어. 엄마가 그 소중한 분한테 면목이 없어서.”

강지한은 설윤진의 말을 들으면서 식칼을 구석구석 살폈다.

그런데 칼날에 누군가의 이름 석 자가 한문으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韓正信.

강지한은 그것을 읽어보았다.

‘한정…… 신?!’

한정신.

칼날에 적힌 이름은 한돈선의 아버지이자 강지한이 레벨 업 시스템으로 요리의 지식을 전수받고 있는 한정신이었다.

‘왜…… 한정신 대가의 칼을 엄마가 갖고 있는 거지?’

설윤진은 칼을 다시 나무로 된 함에 넣고 강지한을 품에 꼭 안아주었다.

“지한아, 어쩌면…… 엄마가 앞으로 조금 바빠질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아들이 이해 못할 이야기를 하며 다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이틀 뒤, 사고를 당했다.

멈췄던 필름이 다시 지나갔다.

이번에는 부모님의 장례식장 광경이 나왔다.

거기서 강지한은 형사들과 함께 나타난 중년인의 멱을 잡고 흔들며 소리치고 있었다.

“우리 엄마, 아빠 살려내요! 살려내란 말이야! 으아아아!”

중년인은 트럭을 몰았던 사람이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서 얼굴을 자세히 확인하기는 힘들었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죄인의 모습으로 강지한의 악을 전부 받아냈다.

“미안하다……. 내가 정말 미안해. 내가…….”

트럭 기사는 눈물을 흘리며 강지한에게 용서를 구했다.

가슴 아팠던 기억은 거기서 끝이 났다.

동시에 잊어버린 기억 속을 부유하던 강지한의 의식이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러자 바로 메시지가 나타났다.

[트라우마를 이겨냈습니다. 스스로 봉인했던 기억들을 되찾았습니다.]

“다…… 생각났어.”

강지한은 비로소 잊고 있던 기억들을 떠올리게 됐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었다.

[충격 보정을 위해 한 가지의 기억은 시간을 두고 오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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