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7
Restaurant 236. 내가 미안해질 짓 하지 마
갑작스런 손현중의 등장에 홀에 있던 손님들 중 반 이상이 놀라 수군거렸다.
손현중이 들어올 당시에 있던 손님들은 대부분 식사를 마치고 나간 터라, 새로 자리한 이들이 많았다.
때문에 그들은 지금 손현중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손현중 맞지?”
“손현중이 왜 저기서 나와?”
“여기 레스토랑 소문 듣고 왔나 봐.”
주변에서 자기 얘기를 하거나말거나 손현중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성재우에게 다가갔다.
“잘 지냈냐?”
별것 아닌 인사에도 성재우는 잔뜩 위축되어서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 어어…… 혀, 형은?”
“너 텔레비전 안 봐? 영화는? 안 보냐? 내가 어디 안 나오는데 있든? 별 탈 없이 잘 나오고 있잖아, 자식아. 문화생활 좀 해라. 그리고 내가 너를 이렇게 타박하고 있는 와중에 제수씨 잘 지내셨어요? 인사드리는 센스.”
손현중이 김이지에게 고개 돌리고 눈인사를 건넸다.
“아…… 네. 잘 지냈어요. 호호.”
“근데 옷을 왜 그 모양으로 만들었어요? 좋은 날.”
“네? 아니 이건 제가 이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맞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정말 좋은 날 맞아요? 내가 알기로 두 사람 결혼기념일 겨울이었던 것 같은데. 저번에 술자리에서 그렇게 얘기했었잖아?”
손현중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성재우와 김이지는 가슴이 덜컹거렸다.
그때 강지한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 손 배우님. 아시는 사이십니까?”
“이 녀석 내가 자주 가던 레스토랑 사장님 동생인데요. 거기 사장님이랑 술자리 몇 번 가질 때 항상 껴드는 바람에 면 트고 편히 지냅니다. 아니다, 네 달 전부터였나. 불편한 관계로 돌아섰지만.”
그 말에 성재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기 기억에는 둘 사이가 틀어질 만한 사건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성재우에게 손현중이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넉 달 전, 네 형이랑 같이 한 마지막 술자리가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 안 나지?”
“……응.”
“아주 형제가 쌍으로…… 에효.”
손현중은 넉 달 전, 영화 촬영에 들어가기에 앞서 마지막 유흥을 불태우려고 성재민의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한데 그날 레스토랑에서 시작된 술자리는 영업시간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고 결국 손현중과 친분이 있던 성재민은 레스토랑 문을 닫고서 같이 어울려 놀았다.
소식을 들은 성재우도 합석을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형제가 유독 거나하게 취하더니 과거의 일들을 안주거리처럼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손현중은 물론, 그의 지인들이 듣기에 썩 유쾌한 얘기는 아니었다.
형제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주먹 자랑이었겠으나 그 주먹에 이유 없이 맞고, 돈을 뜯긴 사람들에겐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될 일들이었으니까.
물론 과오는 저지를 수 있는 법이고, 반성한다면 새사람으로 충분히 거듭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나 형제는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았다.
성재우는 원체 양아치 같은 인간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성재민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함께 어울려줬던 것뿐이다.
그런데 손현중이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겼던 성재민 또한 똑같은 인간일 뿐이었다.
그는 과거를 반성한 것이 아니라 묻어둔 것에 그쳤다.
그러니 술에 취해 이성이 사라지고 본능만 남았을 때 그때의 일을 자랑처럼 떠벌리는 것 아니겠는가.
추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인사불성이 된 성재민은 은하수에게 대놓고 음담패설을 하며 같이 자자는 식으로 집적댔다.
그 꼴을 본 손현중은 결국 두 형제와 연을 끊기로 했다.
그것도 모르고서 성재민과 성재우는 가끔 연락을 취해왔지만 손현중은 이를 깔끔하게 무시했다.
오늘 성재우의 반응을 보니 역시 형제가 그날의 추태와 실수에 대해 전혀 기억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왜? 형이랑 내가 뭐 실수했어?”
“실수? 모르면 됐다.”
“…….”
성재우가 꼼짝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는 유독 손현중을 무서워했다.
뭔가 그에게서는 함부로 까불 수 없는 웅혼한 기운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건 그렇고 방금 내가 본 건 뭐냐.”
“뭐를?”
“네가 여기 아름다운 여직원 분 발 걸어서 넘어뜨린 거.”
“아니 그건 그냥 화장실 가려다 실수한 건데. 형이 오해하는 거야.”
“제수씨도 파스타 엎어지는 거 몸으로 받으려고 몸 기울이시더만.”
“저도 화장실 가려고 일어나려다 봉변당한 거예요. 왜 말을 그렇게 하세요?”
“아~ 그래요? 그럼 오늘 결혼기념일이라는 거짓말은 왜 한 겁니까?”
“그, 그건…….”
“에이 형. 왜 그래. 지금 우리가 난감한 일 당했는데, 우리 편 들어줘야지.”
“내가 왜?”
성재우의 말을 단박에 거절하는 손현중의 눈빛이 차갑기 그지없었다.
비로소 성재우는 이 사람이 진짜 자신과의 관계를 끊어버렸다는 걸 인지했다.
터벅. 터벅.
손현중이 당황해하는 성재우에게 바짝 다가섰다.
성재우가 움찔하며 한 발을 뒤로 물리자 손현중의 손이 빠르게 뻗어나가 성재우의 어깨를 잡아챘다.
손현중은 성재우를 확 끌어 당겨 얼굴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눈을 쏘아보며 물었다.
“왜 이런 짓 했어?”
“무, 무슨 짓?”
“너, 니네 형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말고 다른 곳은 절대 안 가잖아. 다 경쟁업체인데 매상 올려주는 짓은 할 수 없다고. 근데 갑자기 여기는 왜 왔어? 결혼기념일이라는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다리는 또 왜 걸었냐. 갑자기 정신 차려 보니까 나쁜 짓 하고 싶어서 그랬어?”
“그런 거 아니라니까.”
“내가 똑똑히 봤다, 재우야.”
손현중은 2층 룸에서 식사를 하다가 소변을 보려고 나왔다.
한데 화장실이 1층에만 있었던 터라 계단을 밟아 내려가는 와중 성재우와 그의 아내 김이지를 보게 됐다.
해서 마음속으로 연을 끊은 마당에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윤민아가 두 사람의 옆을 지나치려 했다.
그 순간 성재우가 타이밍을 재며 다리를 걸었고 김이지가 몸을 쑥 빼서 파스타 소스를 뒤집어썼다.
식사에만 집중했던 손님들은 못 봤겠지만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면 의도적인 행동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혀, 형이 본 게 맞는 거라고 어떻게 확신해?”
성재우의 반박에 손현중이 피식 웃었다.
“내가 확신해. 내가 봤다면 본 거야. 내가 맞다고 하면 맞는 거야.”
그 말을 듣자마자 성재우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지금 그가 상대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국민배우라 일컬어지며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손현중이었다.
손현중은 보지 못한 것도 본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
근데 그가 더 무서운 이유는,
“그거 알지? 나는 안 본 걸 봤다고 하지 않고 틀린 걸 맞다고 하지 않는다.”
바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그의 이러한 신념과 철칙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스물 후반의 청년 성재우가 부딪혀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 술자리에서 너랑 네 형이 자랑처럼 나불거리는 과거 이야기를 전부 들었어. 이거 한 번 친한 기자 불러서 이빨 털어봐? 너희 형제 어떻게 되는지?”
손현중의 협박에 성재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우, 우리가 그런 얘기를 했었어?”
“지금 그게 중요해? 뭐가 중요한지 상황 파악 잘 안 되냐, 성재야.”
화가 날수록 손현중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고 있었다.
“사실대로 이실직고 레스토랑 관계자 분들께 사과하면 너희 형제 과거에 대해서는 별말 않으마. 그런데 오늘 여기서 벌어진 일들은 공론화될 수밖에 없을 거야. 식사하러 온 손님들 손에 들린 스마트폰 들리지? 하나 둘 셋 넷…… 어휴, 한 스무 명은 찍고 있는 것 같다.”
말인즉,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이 개수작을 부리다 걸린 것이라는 걸 공개적으로 인정하라는 것이다.
“공론화되면 저 영상에 내 모습도 담겼으니까 기자들이 취재하러 오겠지. 당시의 상황을 소상히 얘기해 달라. 그러면 내가 본 걸 사실대로 얘기할 거야.”
“형. 그건 안 돼!”
“응, 나도 안 돼, 인마. 내가 입 다물면 괜한 추측성 기사 나가고 그럼 레스토랑에 피해가 갈 수도 있어.”
“그럼 그 반대는? 형이 그렇게 얘기하면 우리 형 레스토랑은?”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겠지. 하지만 내가 너희 형제 과거 얘기 늘어놓는 것보다는 낫잖아.”
쿠웅!
성재우의 심장이 확 내려앉았다.
뒤통수는 해머에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얼얼했다.
이미 그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형이 지금 오줌이 급해서 너 데리고 오래 말 섞을 시간 없거든. 셋 셀 동안 대답 안 하면 바지에 오줌을 쌀 테고, 그 바지를 너한테 입힐 거야.”
손현중은 농담하는 것처럼 얼빠진 말로 협박을 마무리 지었다.
“하나. 둘. 세…….”
손현중이 셋까지 세려는 그때,
“죄송합니다.”
성재우가 고개를 숙이고 강지한에게 사과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다릴 건 거 맞아요. 제가 다리 걸었어요.”
갑작스런 고백이었다.
손현중과 성재우 사이에 오가던 대화를 이미 듣고 난 강지한은 그가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 충분히 눈치챘다.
그가 분노 어린 음성으로 성재우에게 말했다.
“저 말고 우리 직원에게 사과하세요.”
성재우는 이를 빠드득 갈고서 윤민아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이려는데 손현중이 이를 제지했다.
“아니아니. 너 이 자식아. 초등학교 다닐 때 어떻게 사과해야 하는지 안 배웠냐? 진심을 담아야지. 이빨 갈면서 사과하면 누가 사과로 받아들여 그걸? 그리고 제수씨는 뭐해요? 빨리 얘 옆에 서서 같이 사과해요.”
“나, 나까지요?”
“둘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더만. 하기 싫어요? 하고 싶게 만들어 드려요?”
“하, 할게요!”
성재우와 김이지가 윤민아의 앞에 나란히 섰다.
그러자 손현중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무릎 꿇고 정중히 사과하는 겁니다.”
“무슨 무릎까지 꿇어요?”
김이지가 발끈하자 손현중이 씩 웃었다.
“그럼 제수씨도 여직원 분께 똑같이 따귀 한 대 맞으시던가.”
“……이익!”
“아 시키는 대로 해, 그냥!”
욕이라도 내뱉으려 하는 김이지를 성재우가 진정시켰다.
지금 그에게는 무엇보다 형의 레스토랑에 피해가 덜 가는 것이 중요했다.
사실 오늘 이 사건만 알려져도 레스토랑의 피해는 상당할 테고, 자신은 형에게 어떠한 벌을 받을지 알 수 없었다.
당장 꼬박꼬박 내주던 원룸 월세부터 끊어버릴 경우 길바닥에 나앉고 말 상황이었다.
현실 앞에 무너진 성재우가 먼저 무릎을 꿇었다.
그걸 본 김이지가 씩씩대며 같이 꿇어앉았다.
“정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성재우는 고개를 푹 조아렸다.
“흐윽…… 흐으윽.”
자존심이 걸레짝처럼 구겨진 김이지가 펑펑 울었다.
성재우는 그런 김이지의 머리를 억지로 찍어 눌러 숙이게 만들었다.
“제가 레스토랑이 잘되는 게 샘나서 분탕질 한 번 치려고 했어요. 죄송합니다.”
자신의 앞에서 무릎 꿇고 있는 두 사람을 보는 윤민아의 마음이 착잡했다.
그녀가 얼얼한 뺨을 어루만지고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만하세요. 됐어요. 다음부터 보는 일 없었으면 좋겠네요.”
“그걸로 되겠어, 민아야?”
강지한이 물었다.
만약 윤민아가 풀리지 않는다고 하면 그가 아는 모든 인맥과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두 사람을 혼내줄 참이었다.
하지만 윤민아는 마음이 모질지가 못해서 그저 됐다고만 했다.
“그만 나가주세요.”
강지한이 성재우와 김이지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둘은 도망치듯 레스토랑을 떠났고 상황이 정리되자 지한 레스토랑을 흉봤던 사람들은 머쓱해져서 괜히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오해가 모두 풀리자 강지한은 손현중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손 배우님 아니었으면 곤혹스러울 뻔했네요. 감사드립니다.”
그러자 돌아온 손현중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전부 재우가 벌인 짓거리들의 업보고, 강 대표님이 행한 노력의 보상이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나쁜 짓을 하고 사는 사람은 그에 대한 벌을 받고, 좋은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은 그에 대한 상을 받는 거라고. 강 대표님은 본인이 응당 받아야 하는 걸 받았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강지한이 바르게 살았기에 오늘 같은 사건이 벌어졌을 때 손현중이 그 자리에 함께하는 행운을 얻게 된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럼 전 오줌이 급해서 이만. 아, 추가 주문 넣은 음식들 맛있게 부탁드려요.”
너스레를 떠는 손현중에게 강지한이 미소로 화답했다.
그러는 사이 윤민아는 다른 직원들과 함께 소란이 일었던 곳을 치우는 중이었다.
정리가 끝난 뒤.
강지한은 윤민아를 따로 불러 말했다.
“민아야. 오늘은 일단 퇴근해. 근무복도 소스 범벅이라 그 옷 입고 일하는 건 힘들겠다. 심적으로도 지쳤을 텐데 집에 가서 좀 쉬고.”
“……그럴게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윤민아의 어깨를 강지한이 가볍게 두드려 주며 꼭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전했다.
“민아야, 네가 떳떳한 데도 손님이 무작정 어깃장 놓는다고 자존감 구겨가며 머리 숙일 필요 없어. 너도 네 집안에서 사랑받고 자라온 소중한 사람이야. 네 부모님께 내가 미안해질 행동 하지 마.”
그 말을 듣는 윤민아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가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해요. 제 마음 지켜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사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