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33화 (233/330)

# 233

Restaurant 232. 9년 전의 여인

2019년 1월 12일 토요일.

레스토랑 오픈을 준비하고 있던 강지한에게 드디어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강지한 대표님. 저는 손현중 배우님의 매니저 이준호라고 합니다. 일전에 레스토랑에서 뵈었었는데 제 얼굴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이렇게 문자 드린 건, 다름이 아니라 손 배우님께서 레스토랑에 예약을 잡고자 해서 날짜와 인원수를 말씀드린 뒤, 자세한 사항들을 조율해 보기 위함입니다. 문자 확인하시면 바쁘지 않으실 때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배우에 그 매니저였다.

문자 하나도 참 정중하고 매너 있게 보내왔다.

강지한은 바로 답장을 전송했다. 11시 전까지는 언제든 통화 가능하니 편한 시간에 연락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전화가 걸려왔다.

“네, 강지한입니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이준호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와, 전화기로 들으니까 목소리가 더 좋으시네요. 레스토랑에서도 음성이 참 낭랑하다고 생각했었는데요.

“그런가요?”

-빈말이 아니라 성우 쪽 일 했어도 잘나갔을 겁니다. 대표님 정도면 외모도 훈훈하니까 성우 일 하다가 배우로 전향하는 루트 타도 잘될 것 같아요. 요리로 날리지만 않으셨으면 바로 제가 알아봐 드렸을 텐데.

이준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강지한은 요리만 하기에는 마스크와 보이스가 참 괜찮았다.

물론 초절정미남 같은 건 아니었다.

다만 훈훈하게 생긴 것에 더해 이상하게 자꾸 정감이 가는 그런 얼굴이었다.

그래서 보면 볼수록 더 잘생겨 보이는 타입의 남자였다.

그런 이들을 흔히 마성이 있다고 한다.

강지한에게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그런 마성이 있었다.

이준호의 칭찬이 낯간지러운 강지한은 얼른 말을 돌렸다.

“예약일은 언제로 생각하고 계신가요?”

-아, 제가 너무 딴소리만 했네요. 다음 주 수요일 저녁 6시 괜찮을까요?

“네. 괜찮습니다. 몇 분이 오시죠?”

-다섯 명이요.

“전부 탑스타들이시겠네요.”

-그렇죠. 근데 다들 주변 시선 별로 의식하지 않는 분들로 또 유명들 하세요.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현중이 형님 성격이 털털하셔서 하나같이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사람들인데도 까다롭지 않아요. 그냥 방 하나 잡고 조용히 먹다가 갈 겁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디너 코스로 5인분 준비해 드릴까요?”

-네. 메인이랑 파스타는 그날 가서 고르도록 할게요. 그리고 와인은 어떻게 준비되어 있습니까?

“원하시는 와인 말씀해 주시면 준비해 드릴게요.”

-아, 그럼…….

강지한은 이준호와 세세한 부분들을 전부 조율한 뒤 통화를 끝냈다.

그러자 옆에서 스마트폰에 귀를 바짝 대고 통화를 엿듣던 도근한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지!”

신나하는 도근한에게 강지한이 물었다.

“그리 좋냐.”

“넌 안 좋냐?”

“누가 오는지도 모르는데 뭐.”

이준호는 손현중의 지인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서는 얘기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강지한도 은근히 기대가 되긴 했다.

사흘 뒤, 손현중이 누구를 데려오느냐에 따라 네 번째 스테이지의 목표가 한 방에 달성될 수도 있었기 때문.

그리 되면 보상을 받아 강지한이 잃고 살았던 모든 기억들을 다시 되찾을 수 있었다.

이왕이면 국내 인지도가 90이 넘는 셀럽들이 오기를 바라는 강지한이었다.

* * *

지한 만두는 언제나 손님들로 호황이었다.

조정호는 지한 만두의 주방에서 열심히 만두를 빚고 있었다.

늘 아침마다 일찍 출근해서 전덕직과 냉장고에 수용 가능한 만큼의 양을 빚어두는 데도 팔다 보면 모자랐다.

그래서 만두가 빠질 때마다 그만큼의 양을 바로바로 빚어 채워 넣느라 바빴다.

전덕진은 그의 옆에서 만두를 쪄내고 포장했다.

주방에는 두 사람을 도와주는 주방 보조가 한 명 더 있었다.

좁은 주방에 세 명이 들어가 일을 하려니 영 답답해 보이는 게 아니었다.

홀에도 세 명의 직원이 있었는데 둘은 홀에서 식사하는 손님들을 담당하고 한 명은 줄 서 있는 손님들을 담당하느라 분주했다.

홀 직원이 한 명만 더 있었어도 조금 여유로울 것 같은데 그러기엔 너무 좁았다.

카운터에서 이를 지켜보던 박춘식이 심각하게 고민했다.

‘증축 공사라도 해야 하려나. 아니면 이제 하늘 계신 아버님 소원 이루어 드렸으니 더 넓은 건물 찾아 옮겨야 하나.’

박춘식의 욕심은 아버지의 흔적이 묻어 있는 이 건물을 증축하고 싶었다.

그러나 증축 공사를 하는 기간 동안 만두를 먹지 못할 손님들을 생각하니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마침 몇백 미터 떨어진 옆 상가 건물이 비워진 참이었다.

20년 정도 감자탕 장사를 하던 곳이었는데 손님들이 점점 줄어들더니 이제는 유지하기 힘들 정도가 되어 건물을 내놓은 것이다.

내부가 주방, 홀을 합해 30평이 조금 넘었다.

‘강 대표님한테 얘기를 해봐야 하려나. 너무 염치가 없을까?’

박춘식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서 속앓이를 했다.

“휴.”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는 박춘식의 모습을 우연히 조정호가 보게 됐다.

‘영감님도 나처럼 마음이 뒤숭숭하신가.’

조정호는 오늘 가슴 먹먹해지는 꿈을 꿨다.

9년 전, 첫 사업에 실패하며 헤어졌던 마지막 사랑이 꿈속에 나왔다.

조정호의 인생에서 가장 사랑했던, 그러나 가장 큰 아픔을 안겨준 여인이었다.

이제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꿈에 나오는 걸 보니 아직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 꿈을 꾼 이후로 조정호는 영 마음이 뒤숭숭했다.

조정호와 박춘식의 심경이 어찌 되었든 식당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만석이었던 홀의 테이블 하나가 빠지고 새로운 손님이 안으로 들어섰다.

병약해 보이는 여인과 어딘지 모르게 주눅 들어 있는 사내아이였다.

모자지간인 둘은 출입문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지한아, 무슨 만두 먹고 싶어?”

여인은 아들을 지한이라고 불렀다.

아이의 이름은 서지한이었다.

바로 강지한이 배틀 셰프 파이널 라운드를 치르기 위해 올라탔던 기차 안에서 만났던 아이였다.

당시 서지한은 다니던 교회에서 서울로 체험학습을 가는 바람에 강지한과 같은 기차를 타게 됐다. 그것도 강지한의 바로 옆자리에 앉았었다.

한데 엄마가 아파서 도시락은커녕 과자 같은 것도 싸오지 못한 서지한은 다른 아이들이 기차에서 까먹는 과자를 부럽게 쳐다봤다.

그것이 가슴 아팠던 강지한은 자신이 싸온 김밥을 서지한에게 나누어 주었었다.

마치 서지한이 집에서 김밥을 싸온 것처럼 연기도 해주었다.

그 덕에 서지한은 아이들에게 주목 받으며 선심을 쓸 수 있었다.

그게 벌써 작년의 일이었다.

서지한은 그 당시 자신에게 김밥을 주었던 사람이 배틀 셰프 우승자였다는 걸 최근에 한 재방송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서지한의 엄마, 서민정도 아들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난 이후 꼭 은혜를 갚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그러나 마음만 간절할 뿐이었다.

딱히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하는지도 알 수 없을뿐더러, 물질적으로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병약한 몸으로 혼자 아이를 길러온 서민정은 딱 잘라 말해서 가난했다.

하다못해 감사했다는 말이라도 전해드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방송에도 나왔던 유명한 사람이 자신을 만나줄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직접 마음을 전하지 못해도 간접적으로나마 전하자는 마음에 이렇게 지한 만두를 찾은 것.

“메뉴 정하셨어요?”

서민정과 서지한의 테이블에 홀직원이 다가와 친절한 미소로 물었다.

올해로 여덟 살이 된 서지한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고기만두 일 인분이랑 김치만두 일 인분이요!”

“네,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서지한이 더없이 해맑은 미소를 짓고는 북적거리는 홀 내부를 신기한 듯 살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이 서민정의 가슴엔 아프게 박혔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외식 자체를 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때문에 어쩌다 한 번 이렇게 외식을 하러 나오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기저기 관찰하기 바빴다.

‘그나저나 이제 학교 들어가면 여러모로 돈이 많이 들 텐데.’

만두를 먹으러 와서 마냥 신이 난 서지한과 달리 벌써부터 돈 걱정이 가득한 서민정이었다.

“주문하신 고기만두랑 김치만두 나왔습니다.”

“와아!”

“지한아, 천천히 호호 불어서 먹어.”

“응!”

서지한이 고기만두부터 집어서 후후 불어 간장을 살짝 찍더니 서민정에게 건넸다.

맛있는 만두를 얼른 먹고 싶을 텐데 엄마부터 챙기는 마음이 참 예뻤다.

“우리 지한이부터 먹어봐.”

“헤헤. 응.”

서지한이 충분히 식힌 고기만두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러자 만두 속 육즙이 터지며 입안을 만두소와 함께 가득 메웠다.

서지한은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는 만두가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그 만두는 여덟 살 아이 인생 평생에 먹어본 적이 없는 충격적인 맛이었다.

맞은편에 앉아서 김치만두를 맛본 서민정 역시 놀라움에 눈이 커졌다.

서로 시선을 마주친 두 모자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미소를 지었다.

“엄마, 진짜 맛있어.”

“그치, 그치? 너무 맛있다. 우리 지한이 많이 먹어.”

“엄마도!”

* * *

모자의 식사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만두의 어마어마한 맛에 둘 다 정신줄을 놓았었다.

“와……. 정말 맛있었어.”

“우리 아들 잘 먹었어?”

“응.”

“그럼 가자.”

서민정이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하며 박춘식에게 말했다.

“저, 할아버지. 혹 강지한 사장님께 제 말을 전해드릴 수 있으실까요?”

“특별히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기차에서 제 아들 기죽지 않게 김밥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인사 좀 전해주세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아실 거예요.”

“네. 그러도록 하지요. 식사는 맛있게 하셨나요?”

“너무 맛있었어요. 주방에 계시는 분들께도 맛있게 먹었다고 전해주세요.”

서민정이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주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주방에서 만두를 빚는 조정호와 시선이 마주치자 잘 먹었다는 의미로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네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조정호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번개가 내리쳤다.

조정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 호?”

“……민정아.”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봤다.

만두를 빚던 조정호의 손이 멎었다.

서지한의 손을 잡고 있는 서민정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어, 엄마. 아파아.”

“아!”

아들의 목소리에 정신이 퍼뜩 든 서민정이 후다닥 홀을 나섰다.

“민정아!”

조정호가 주방에서 뛰쳐나와 그런 서민정의 뒤를 따라잡으려 했다.

그런데, 빈 그릇을 나르던 홀직원과 부딪혀 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아야야.”

“윽! 미안. 미안해.”

사과를 한 조정호가 다시 일어나 홀을 나섰다.

하지만 서민정은 그새 어디로 간 건지 보이지가 않았다.

그녀를 찾아 나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조정호였지만 지금은 영업시간이었다.

조정호는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터덜터덜 주방으로 들어섰다.

“왜 그래? 아는 사람이야?”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조정호의 모습에 놀란 전덕진이 물었다.

“……네.”

조정호가 착잡하게 대답했다.

서민정의 손을 잡고 천진하게 자신을 바라보던 아이의 얼굴이 두 눈에 박혀 사라지지를 않았다.

* * *

일요일 저녁.

강지한은 예소린을 집으로 초대해 조정호와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다.

오늘의 메뉴는 한겨울에 먹으면 더 좋은 샤브샤브였다.

상 위엔 손질이 된 야채들과 버섯, 육질이 좋은 소고기가 한가득 놓여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선 강지한이 직접 만든 샤브샤브 육수가 좋은 향을 풍기며 끓어가는 중이었다.

강지한의 집에 조금 일찍 도착한 예소린은 재료 준비를 돕고, 앞접시와 수저를 세팅했다.

모든 준비는 끝!

이제 조정호만 별채에서 넘어오면 된다.

“정호 씨 불러올까?”

예소린이 말을 꺼내자마자 현관 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조정호였다.

거실로 들어선 그가 정갈히 차려진 상을 보고서는 면목 없다는 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도와드렸어야 했는데 깜빡 잠이 드는 바람에…….”

그리 말하는 조정호의 머리 위엔 강지한의 눈에만 보이는 초록색 느낌표가 떠 있었다.

퀘스트였다.

강지한이 퀘스트의 내용을 확인했다.

[퀘스트-조정호의 고민을 해결해 주세요.]

[클리어 보상: 중식 요리 대가의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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