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32화 (232/330)

# 232

Restaurant 231. 777번째 손님

1월 11일 금요일.

지한 레스토랑이 오픈하기 전, 다른 날보다 일찍 출근한 강지한은 주방에서 미니 코스 13인분을 홀로 만들어 준비했다.

그리고 도근한을 비롯, 출근한 직원들 모두에게 시식을 권했다.

강지한의 미니 코스를 맛본 직원들은 하나같이 놀랐다.

그중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도근한이었다.

“뭐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맛있지?”

강지한의 물음에 도근한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된 거야? 또 무슨 마법을 부렸냐?”

농담이었지만 진짜 마법이라도 부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레스토랑을 오픈한 지 보름 만에 갑자기 실력이 좋아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강지한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깨달음을 얻었다.”

“괴물 같은 놈.”

성장이 빨라도 너무 빨랐다.

도근한은 강지한이 아무리 요리를 잘해도 양식에서만큼은 본인이 앞서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뒤처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에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뒤처지면 안 되겠다는 투지가 일었다.

‘잠을 줄여야겠네.’

도근한이 각오를 새로 다졌다.

강지한은 그에게 있어 가장 좋은 라이벌이자 스승이었다.

“진짜 맛있어요, 대표님.”

“맛이 깊어졌다고 해야 하나? 우리 식당 메뉴들 하나같이 평가 좋은데 입소문 더 빨리 퍼지겠네요.”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했다.

강지한의 눈에 비추어지는 미니 코스 모든 메뉴들의 레벨은 7이었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밤낮없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던 그는 유정미의 한마디에 작은 깨달음을 얻었고 레벨 업 했다.

사실 레벨 7의 요리들은 레벨 6의 요리에서 크게 변화를 주지는 않았다.

향신료를 바꾸거나 각 요리마다의 양념 배합을 다르게 한 비법 시즈닝을 만들어냈고 들어가는 재료의 양들을 조금씩 더하고 뺐다.

조리법에서는 몇 초를 더 굽는다든가 재료를 몇 초 더 빨리 넣고 몇 초 덜 볶는다든가 하는 정도만 수정했다.

한데 단지 그것만으로 요리들의 맛이 확 달라졌다.

작은 변화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작은 변화가 음식의 수준을 바꿔 버리는 법이다.

어떠한 재료와 맞지 않는 향신료와 잘 맞는 향신료가 있다고 치자.

맞지 않는 향신료를 사용하면 그 요리는 망치게 된다.

반대로 잘 맞는 향신료를 사용할 경우 요리의 질이 높아진다.

강지한은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본인의 지식수준 안에서 ‘가장 잘 맞는’ 향신료와 ‘가장 잘 맞는 양념 배합’ 즉, 비법 시즈닝을 찾아낸 것이다.

그것을 도근한은 바로 알아챘다.

각각의 음식들을 맛보며 달라진 재료들이 무언지 가늠하던 도근한에게 강지한이 물었다.

“메인 요리 똑같이 재현하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지한 레스토랑의 메인 담당은 강지한이 아닌 도근한이다.

때문에 그가 지금 이 수준의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했다.

“오늘 안에 해낸다.”

7레벨 요리의 답은 그 맛 속에 전부 담겨 있었다.

도근한은 실력 있는 요리사였고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게다가 도근한에게는 ‘문일지십’이라는 특수 능력이 있지 않은가.

때문에 강지한이 뚫어 놓은 길을 따라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케이.”

강지한이 믿음 가득한 시선을 보내며 미소 지었다.

* * *

다음 날.

신일중이 지한 레스토랑의 새 직원으로 들어왔다.

“신일중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래간만에 얼굴을 마주한 신일중은 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소심하고 위축된 모습 대신 자신감이 얼굴에 가득했다.

사람이라는 게 바뀌기 어렵다고 하지만, 실상 한순간에 바뀌기도 하는 법이다.

신일중은 후자였다.

훗날 자신만의 식당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본인의 성격이 결코 도움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그러자 변화는 찾아왔다.

강지한은 신일중의 그런 변화가 퍽 마음에 들었다.

“아시는 분은 아시죠? 저랑 같이 배틀 셰프에 참가했던 분이에요. 요리 실력은 확실하니까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앞으로 서로 도와가며 잘 지냈으면 합니다.”

강지한은 신일중을 다른 직원들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신일중은 싹싹하게 먼저 다가가서 직원들 한 명 한 명과 통성명을 나누었다.

그렇게 지한 레스토랑의 하루가 또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 * *

신일중은 첫날부터 레스토랑 주방에 완벽 적응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줬다.

그는 도근한을 도와 메인 파트를 맡았는데 레시피에 따라 완성하는 요리가 전부 레벨 6이었다.

강지한의 눈에는 그런 신일중의 상태창이 보였다.

<신일중의 능력치>

직급: 지한 레스토랑 주방 직원

등급: A-

능력: 요리 LV 17, 청소 LV 7, 설거지 LV 5, 화술 LV 2

특수 능력: 초감각(超感覺)

정직도: 92/100

신뢰도: 99/100

종합 평가: 개화할 수 있는 능력이 많지 않다. 그마저도 잠재력이 낮다. 그러나 요리의 잠재력이 상당히 높으며 성장 또한 빠르다. 특수 능력 초감각으로 인해 미각, 촉각, 후각, 시각, 청각이 모두 뛰어나게 발달해 있다. 몇 번 먹은 음식은 맛과 향, 식감, 비주얼을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누군가의 요리과정을 지켜보고 어느 정도 연습하면 그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와 향신료, 양념의 양을 미세단위까지 분석해서 계량 없이 똑같이 넣을 수 있으며, 조리법과 조리 시간 또한 그대로 따라할 수 있다. 다만, 창의력이 부족해 끌어주는 이가 없다면 홀로 대성하기가 힘들다.

‘초감각이라니.’

신일중은 그야말로 보석 같은 사람이었다.

그를 놓치지 않게 해준 신장호에게 감사한 마음까지 이는 강지한이었다.

초감각으로 인해 신일중은 강지한이 알려준 레시피를 거의 완벽 근처까지 흉내내는 것이 가능했다.

하루 이틀만 지나면 도근한과 마찬가지로 레벨 7의 요리를 만들어 내는 것 또한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물론 도근한도, 신일중도 강지한의 도움이 없었다면 레벨 7의 요리를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했다.

강지한이 알려준 비법들이 빠진다면 도근한은 레벨 6, 신일중은 레벨 5의 수준에서 그치고 만다.

딸랑-

한창 바쁘게 돌아가는 저녁 시간.

문이 열리며 여인과 청년 한 명이 안으로 들어섰다.

깔끔하게 차려입고 레스토랑을 찾은 다른 손님들과 비교했을 때 그들의 차림은 조금 추레했다.

두 사람은 이런 장소가 어색한지 딱딱하게 굳어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때 홀직원이 다가가 두 사람을 맞았다.

“어서 오세요. 두 분이신가요?”

“아……. 네.”

“자리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청년 이준명이 여전히 굳은 얼굴로 직원을 따라 움직이려 하자 누나 이미영이 동생의 옷깃을 살짝 끌어당겼다.

“저기…… 준명아. 여기 너무 비싼 것 같은데. 누나 이런 데서 밥 안 먹어도 돼. 그냥 집에 가서 뭐 만들어 먹자.”

“아, 왜 그래 누나. 나 돈 있다니까.”

“이제 겨우 스물 된 놈이 무슨 돈이 있어? 버는 돈 대학 생활 하는 데 쓰기도 버거울 텐데…….”

이준명은 올해 약관이 된 청년이었고, 이미영은 스물세 살의 회사 경리였다.

둘은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왔다. 이미영은 일찍부터 공부를 접고 돈을 벌기 위해 회사에 다니며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못 이룬 공부의 한을 동생에게까지 이어지게 하고 싶지 않아 열심히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먹을 것, 입을 것 아껴서 전부 동생에게만 베풀어주었다.

덕분에 이준명은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 입학금 역시 이미영의 담당이었다.

그런 누나의 마음이 고마웠던 이준명은 누나의 생일인 오늘을 멋지게 챙겨주고 싶었다.

부모님도 함께였다면 좋았겠지만 두 분 다 집에 계시지 않았다.

워낙 배움이 일천하고 기술이 없는 분들이다 보니 여기저기 사람들이 일손 도와달라는 곳을 전전하며 당일로 돈을 벌고 계시는 상황이다. 해서 집에 있을 때보다 없을 때가 더 많았다.

이준명은 올해 초에 알바 자리 두 군데를 구했다. 다음 등록금부터는 누나의 도움을 받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아직 알바비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수중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지한 레스토랑에 방문했다.

그동안 이미영은 자신의 생일을 챙기지 않았다.

그저 혼자 미역국만 끓여 먹고 말았을 뿐이다.

동생이 케이크라도 사오려 치면, 괜한 돈 낭비 말라며 핀잔을 줬다.

이준명은 그런 누나의 모습이 늘 가슴 아팠다.

해서 성인이 된 올해에는 어떻게든 누나의 생일을 제대로 챙겨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어디에서 식사를 하면 좋을지 검색하다 보니 지한 레스토랑이라는 곳이 나왔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인터넷에 좋은 평가들이 수두룩했다.

그 글들은 하나같이 지한 레스토랑의 음식을 어마어마하게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단 돈 2만 8천 원으로 인당 10만 원씩 하는 코스요리 부럽지 않은 맛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설명 또한 많았다.

게다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배틀 셰프 우승자와 준우승자라고 했다.

이준명은 이거다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주머니엔 6만 원 정도가 있었다.

해서 오늘 미니 코스 두 개를 주문해 누나 생일을 챙겨주고 알바비를 받을 때까지 돈을 쓰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지한 레스토랑을 찾았다.

물론 이미영은 그럴 필요 없다며 끝까지 가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이준명은 필사적이었고, 결국 이번에는 20년 만에 누나가 동생의 고집에 지고 말았다.

두 사람이 테이블에 앉자 홀직원이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그에 이준명은 준비해 온 말을 꺼냈다.

“아, 저희 미니 코스 먹으러 왔어요.”

이준명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말했다. 그에 홀직원이 난감한 음성으로 양해를 구했다.

“미니 코스 드시러 오셨군요. 근데 어쩌죠? 그건 런치 한정 메뉴라서 저녁에는 드실 수가 없어요.”

“……네?”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이준명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는 3만 원이 안 되는 돈으로 훌륭한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를 즐기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미니 코스 하나만을 보고 온 건데 그게 안 된다고 하니 갑자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런 레스토랑을 가본 적이 없었기에 벌어진 실수였다.

“죄송해서 어떡하죠? 대신 우리 식당 단품 메뉴들도 훌륭하니 한 번 보시겠어요?”

이준명이 당황하고 속상한 얼굴로 메뉴판을 살폈다.

하지만 다른 메뉴들이 도저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누나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레스토랑의 코스 메뉴 음식들을 대접하고 싶었다. 오늘 누나를 최고로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이 다 수포로 돌아갔다.

괜히 억울하고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스스로가 바보 같았다. 그래서 메뉴판을 살피는 이준명의 눈가에 눈물이 촉촉이 맺히고 있었다.

이를 본 이미영이 조심스레 동생에게 말했다.

“준명아, 그냥 집에 가서 밥 먹자. 누나가 맛있는 거 해줄게. 응?”

“…….”

이준명이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괜히 메뉴판만 뒤적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홀직원의 마음이 괜히 울컥해졌다. 해서 메뉴를 정하면 다시 불러 달라 말하고 자리를 피했다.

홀직원은 후다닥 주방으로 다가와 강지한에게 혹시나 싶어 물었다.

“대표님, 혹시 지금 미니 코스 안 되죠?”

“그거 런치 메뉴잖아.”

“네, 알죠 알죠.”

“근데 왜?”

“그게…….”

홀직원이 조금 전 상황을 강지한에게 전부 얘기해 주었다.

“그래?”

“네. 누나 생일에 저렴하게 코스 요리 대접하고 싶어서 온 것 같은데…… 그렇다고 디너 코스 메뉴를 추천할 수도 없고 난감하네요.”

디너 코스 메뉴는 기본 45,000원부터 시작된다.

딱 봐도 그렇게 많은 돈을 가져온 것 같지는 않았다.

강지한의 시선이 이준명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이준명은 울먹거리며 메뉴판을 뒤적이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지한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홀직원에게 사과를 건넸다.

“미안해. 내가 너 이번 한 번만 일 제대로 못하고 실수한 직원으로 만들게.”

“넹? 무슨 말씀이에요?”

홀직원의 물음에 강지한은 대답 없이 주방에서 나와 직접 남매의 테이블로 다가갔다.

주방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다가오자 이미영이 놀라서 강지한을 바라봤다.

이준명은 지금 자신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서 푹 숙인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지한 레스토랑의 대표 강지한이라고 합니다.”

강지한의 자기소개에 비로소 이준명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아직 어린 티를 다 벗지 못한 선한 눈망울에는 흘러내릴 듯 말 듯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런 이준명과 이미영을 강지한이 번갈아 보며 미소 지었다.

“축하드립니다. 두 분께서는 정확히 우리 레스토랑을 777번째로 방문해 주신 손님이십니다.”

말하면서도 속으로 오글거린다는 생각이 드는 강지한이었다.

이거 너무 뻔한 수법이라 바로 들통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됐다.

한데 남매의 반응은 강지한의 우려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네?”

이미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준명은 맺힌 눈물을 닦아내고서 귀를 쫑긋 세웠다.

남매는 너무 난감했던 상황에 처했던지라 강지한의 말을 의심할 겨를이 없었다.

“저희 직원의 착오로 미리 말씀 전해드리지 못한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두 분께서는 지한 레스토랑 오픈 이후 777번째로 찾아주신 손님이시기에 오늘 레스토랑의 식사 메뉴를 무료로 서비스해 드리겠습니다.”

“무, 무료라고요?”

이준명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고 강지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무료입니다.”

“우리가 777번째 손님이에요? 진짜?”

“맞습니다.”

“와아, 누나. 들었지?”

“응.”

이미영은 마치 꿈이라도 꾸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기뻐하는 두 남매에게 강지한이 메뉴를 추천했다.

“개인적으로는 디너 코스를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믿고 맡겨 주신다면 파스타와 메인 요리도 제가 직접 선택해서 최고의 요리를 선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떠신지요?”

“조, 좋아요. 그렇게 해주세요. 누나도 좋지?”

이미영은 얼떨떨해서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강지한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서 물러나 주방으로 돌아왔다.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본 홀직원이 강지한을 보며 뺨을 부풀렸다.

“헐. 대표님. 저 완전히 일 못하는 직원 만드셨네요?”

“미안. 그래서 미리 사과했잖아.”

“장난이에요. 엄청 멋졌어요. 헤헹.”

씩 웃은 강지한이 직접 받아온 주문을 주방 직원들에게 통보했다.

도근한은 강지한의 어깨를 툭 치고는 잘했다는 듯 고개를 아래위로 주억거렸다.

그날 저녁.

이미영은 태어나서 가장 행복한 생일상을 받았고 이준명은 평생토록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순간을 간직할 수 있었다.

강지한이 두 남매에게 영원토록 남을 추억을 선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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