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31화 (231/330)

# 231

Restaurant 230. 깨달음

신푸드 신장호 사장의 매일매일은 축제나 다름없었다.

강지한과 손잡고 발매한 레토르트 식품들의 판매고가 날이 갈수록 신기록을 갱신하더니 지금은 회사 매출의 70퍼센트 이상을 책임지게 되었다.

물론 어떠한 물건이든 그렇듯이 강지한과의 합작품들도 어느 순간 정체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판매고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는 뜻이었지 하락한다는 건 아니었다.

매우 안정적인 상태로 계속해서 쭈욱 이어지고 있었다.

신장호 사장은 욕심이 생겼다.

‘강 대표가 요즘 여러 가지 사업을 많이 벌려놨으니 슬슬 새로운 식품을 개발할 적기인데.’

레토르트 식품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갈수록 사람들의 1인 가구화는 늘어나고 있다.

피곤한 업무와 편이성에 젖어드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집에서 해먹는 요리보다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선호하는 이가 많아졌다.

맛만 있다면 레토르트 식품은 날개를 달고 하늘 끝까지 오를 수 있는 사업이었다.

신장호는 이번 기회에 기존 대형마트 외에 편의점도 뚫어보기로 결심했다.

전국 어느 곳을 가더라도 어지간한 시골이 아니면 편의점 한두 곳쯤은 있게 마련.

편의점과의 계약을 뚫는다면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는다고 봐야 했다.

물론 음식이 맛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에 두어야 하겠으나 강지한의 손맛이라면 무조건 필승이다.

‘김밥이나 도시락 같은 건 이미 너무 많고 식상해. 차라리 반찬을 전문적으로 만들어 납품하면 어떨까? 그리고 단품 메뉴 같은 것들로 승부를 보는 거지.’

신장호는 강지한의 식당들을 지속적으로 방문하고 있었다.

제육볶음, 소불고기, 김치찌개, 된장찌개, 순두부찌개 등등의 한식 메뉴부터 시작해서 만두 전문점의 김치만두와 고기만두까지.

하나같이 단품으로만 내놓아도 대히트를 칠 것들이었다.

그는 강지한을 좋은 파트너라 생각하고 있었고, 강지한 역시 같은 마음이라 믿었다.

새로운 계획에 대해 이야기해 주면 분명히 손을 잡아줄 터.

‘근데 홍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뭔가 획기적인 홍보수단이 없을는지 신장호는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문득 쇼핑몰 호스트로 일하고 있는 친한 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거 아주 좋은데?’

손가락을 딱 튕긴 신장호가 후다닥 강지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 *

수요일의 이른 아침.

강지한은 출근 준비를 마치고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간밤에 연락 온 곳이 따로 있는지 체크하는 그의 눈에 반가운 이름이 보였다.

신장호 사장님.

그가 메시지를 확인했다.

-강 대표! 주무시고 계시죠? 제가 오늘 내일 중으로 레스토랑에 한 번 들르겠습니다. 기막힌 사업 아이템이 생각났습니다. 얘기 나눠보시죠!^^

신장호와의 사업은 강지한의 입장에서 조금도 손해 볼 것이 없었다.

레토르트에 어울리도록 음식 몇 가지의 레시피를 열심히 공부해서 내놓으면 이후로는 로열티가 다달이 들어오는데 이게 꽤 짭짤했다.

신푸드로 인해 강지한이 벌어들인 로열티가 벌써 2억이 넘어간다.

지금도 다달이 월 2천 이상씩은 꾸준히 통장에 꽂히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니 신장호의 새로운 사업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좋습니다. 오전 11시 이전이나 브레이크 타임 맞춰서 들러주세요. 브레이크 타임은 3시부터 5시까지입니다.

답장을 보낸 강지한이 바쁘게 출근준비를 했다.

* * *

지한 레스토랑의 간판, 창문, 식기구, 조명, 실내 공간, 수도 배관, 가스 배관은 전부 레벨 업 된 상태였다.

어제 만족도 포인트가 10만 포인트 이상 쌓여 투자를 해서 레벨 업 시킨 것.

겉보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으나 지한 식당의 레벨 업 효과들이 레스토랑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오늘은 만족도 포인트를 입수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현재 강지한의 누적 만족도 포인트는 17,429.

레스토랑 레벨 업에 10만 포인트를 투자하고 나서도 이만큼이나 남았다.

짧은 기간 모인 만족도 치고 상당한 수치.

갈수록 장사가 잘되어서 손님의 유입이 많아진 덕분이었다.

다만 아쉬운 건 지한 식당 이상의 만족도를 입수하기는 힘들다는 점.

지한 식당은 강지한이 본인의 전공인 한식의 매력을 최대한 살렸다.

그러나 레스토랑은 아직 한식보다는 수준이 한 단계 낮았다.

‘양식의 레벨도 높여야 할 텐데.’

지한 레스토랑이 오픈하고 난 이후 강지한은 꾸준히 양식에 대해서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집에 와서도 일찍 잠들 때가 거의 없었다.

늦게까지 책과 동영상을 보고 시스템 보상으로 얻은 제이미 램지의 지식을 바탕으로 요리 연습을 거듭해 나갔다.

그 결과 처음보다 많은 요리들을 6레벨 수준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지만 7레벨의 문턱은 여전히 넘기가 어려웠다.

레스토랑에 도착해 오픈 준비를 하면서도 강지한의 머릿속엔 어떻게 하면 양식요리의 레벨을 올릴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만 가득했다.

“지한아.”

고민에 빠져 있는 그를 도근한이 불렀다.

“응?”

“국민배우님한테 연락 없었냐?”

손현중을 말하는 것이었다.

강지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니 금방 지인들 데리고 다시 올 것처럼 하더니 코빼기를 안 비추네. 쩝.”

아쉬워하는 도근한을 보는 강지한의 눈이 가늘어졌다.

“뭘 기대하는지 알겠다.”

“알긴 뭘 알아.”

“여배우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잖아.”

“……돗자리 깔아라. 이 자식은 꼭 쓸데없는 부분에서 예리해요.”

두 사람이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 레스토랑의 문이 열리며 고급 정장을 말끔하게 빼 입은 중년 사내가 들어섰다.

그에 홀을 청소하고 있던 직원이 다가가 양해를 구하려 했다.

“저, 아직 오픈 전이라…….”

“강지한 대표님을 뵈러 왔어요.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한발 늦게 중년 사내를 확인한 강지한이 미소를 지으며 주방에서 나왔다.

“신 사장님, 오셨어요?”

상황을 이해한 직원이 다시 홀 청소를 시작했다.

“오래간만입니다. 하하하.”

신장호와 강지한은 가볍게 악수를 나눴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2:8 가르마와 진한 콧수염은 변함없이 여전했다.

“근한아, 인사드려. 신푸드 신장호 사장님이셔. 여기는 지한 레스토랑을 같이 운영하고 있는 도근한이라고 해요. 학교 동창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도근한이라고 합니다.”

“오, 반갑습니다. 신장호입니다.”

신장호가 명함을 꺼내 도근한에게 건네주었다.

두 사람이 통성명을 마치자 강지한은 도근한에게 혼자 오픈 준비 좀 해 달라 양해를 구하고 신장호와 빈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 * *

“홈쇼핑에 나가자고요?”

얼떨떨한 강지한의 물음이었다.

“네, 지한 김치가 쇼핑몰로 대박이 나긴 했는데, 현재 한국에서 강세를 보이는 김치 업체 ‘소담’의 판매량에 비하면 많이 떨어집니다. 한데 맛은 전혀 떨어지지가 않아요. 이건 순전히 브랜드 파워에서 밀리는 거다 이겁니다. 사람들의 인식이 한국 최고 김치하면 소담이라는 식으로 박혀 있는 거예요. 한데 마케팅에서 가장 확실한 게 뭡니까? 방송 타는 거거든요. 허락만 하시면 제 인맥으로 바로 홈쇼핑 잡아 드리겠습니다.”

듣고 보니 신장호의 말이 맞았다.

그리고 홈쇼핑 출연은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홈쇼핑이라는 게 워낙 파급효과가 커서 한 번 나오려고 뒷돈까지 오고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한데 인맥으로 해결된다고 하니 굴러들어온 복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한 가지가 걸렸다.

“혹시 저도 방송에 나가야 하나요?”

“꼭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이왕이면 나가주시는 게 더 좋지요. 본인이 직접 나오시면 화제성도 있고 보는 시청자들의 신뢰감도 더 높아지니까요. 게다가 강 사장님은 인지도가 없는 것도 아니니 크게 득이 될 겁니다.”

“음……. 그 부분은 고려해 볼게요.”

“그 얘기는 홈쇼핑 같이해 보시겠다는 말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네.”

“하하하! 잘 생각하셨습니다. 홈쇼핑에 나가게 되면 판매량이 지금의 몇 배로 뛸 겁니다. 그러니 미리 공장을 더 잡아놓는 게 좋을 거예요.”

“그 부분은 조 전무님에게 일임했으니 상의해 보시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홈쇼핑 건은 이렇게 정리하기로 하고……. 저 혹시 작은 부탁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무슨 부탁을 하려는 건지 신장호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워졌다.

“말씀하세요.”

“실은 우리 일중이 좀 부탁하려 합니다.”

“일중이를요?”

신일중은 신장호의 아들로 삼 대 독자이며 강지한과는 배틀 셰프에 함께 출연했었다.

원체 소심하고 겁이 많은 성격으로 강지한과 팀을 이뤄 경합을 하다가 긴장하는 바람에 스테이크를 태워 먹고 탈락할 위기에 처했었다.

한데 그것을 강지한의 재치로 해결하면서 다음 라운드에 출전할 수 있었고, 이 일을 계기로 둘은 친해졌다.

배틀 셰프가 끝난 후에는 개인적으로 종종 연락을 취해왔다.

“네, 일중이 녀석 꿈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파는 요리사라는 건 아실 겁니다. 한데 이놈이 요리만 할 줄 알지 장사를 할 줄은 모릅니다. 손님을 어찌 상대해야 하는지부터 어떻게 매장을 꾸려 나가야 하는지 하나하나 익히려면 다른 사람 밑에서 경험을 쌓아야 할 것 아닙니까? 해서 어차피 배워야 한다면 강 사장님께 배우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아 염치없는 부탁을 좀 드리려 합니다.”

신장호의 말에 강지한이 고개를 저었다.

“염치없다니요. 일중이가 도와준다면 저야말로 좋은 일이죠.”

원하던 대답이 돌아오니 신장호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허락하시는 겁니까?”

“네. 어차피 레스토랑이 계속 바빠지던 터라 주방 인원을 더 들이려 했어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부터라도 당장 여기로 출근하라 이르겠습니다. 하하하!”

“얼마든지요.”

“그럼 고민도 덜었겠다 이제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나눠 보실까요? 새 메뉴에 대해서 말인데…….”

* * *

신장호는 강지한과 만족스러운 대화를 나눈 뒤 돌아갔다.

그리고 지한 레스토랑의 점심 장사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홀에 조금 특별한 손님이 찾아와 있었다.

바로 올해 성인이 된 춘천 출신 인터넷 BJ 유정미였다.

강지한의 리어카 시절부터 단골팬인 그녀는 지한 푸드에서 새로운 식당을 오픈하면 언제나 찾아와 먹방을 선보이며 홍보를 해주었다.

오늘 그녀는 혼자서 카메라 하나만 달랑 들고 찾아와 미니 코스를 먹고 있었다.

한 상으로 차려져 나온 코스 메뉴를 하나하나 카메라에 비추어주며 그 맛에 대한 표현들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유정미는 스무 살답지 않게 말을 상당히 잘했고, 표현력이 풍부했다.

그것이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이었다.

유정미가 메인 메뉴로 선택한 안심 스테이크를 조금 잘랐다.

“이것 보세요. 와, 이 선홍빛 육질. 레스팅이 잘됐어요. 육즙이 고기에 잘 퍼져서 흘러내리지 않는 거 보이죠? 아, 그리고 여기 특이한 게 스테이크 소스를 따로 두 개 주거든요? 하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맛보던 레드와인소스고 다른 하나는 불고기 소스예요. 스테이크를 불고기 소스에 찍어 먹는다? 과연 어떤 맛일까요.”

멘트를 끝낸 유정미가 미디움 레어로 익혀 나온 스테이크 한 조각을 불고기 소스에 찍어 입에 넣었다.

“으음~ 진짜 맛있어요. 대박. 고기가 입안에서 육즙을 쫙 뿌리고는 사르르 녹아요. 와아. 메인 메뉴는 도근한 씨가 담당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역시 배틀 셰프 준우승자답네요. 그리고 불고기 소스를 곁들였더니 분명 양식을 먹는 건데 한식 특유의 풍미가 느껴지는 거 있죠?”

유정미가 감탄하며 스테이크를 한 번 더 불고기 소스에 찍어 먹었다.

“정말 맛있다. 근데 이렇게 먹으면서 생각해 보니까 양식이나 한식이나 같은 재료 가지고 만드는 건데 참 맛과 스타일이 달라요. 서양요리는 육류를 주재료로 쓰고 향신료를 많이 넣는 반면 한식은 밥을 주식으로 해서 반찬이나 찌개랑 같이 먹는 거잖아요. 메인이 무엇이냐에 따라 조리법이 달라져서 그런 것 같네요. 근데 이런 생각이 드네요.”

유정미가 고개를 살짝 모로 꺾었다.

“지금 이 테이블에 밥 한 공기가 있다고 해봐요. 스테이크는 향신료 빼고 그냥 구웠다 칩시다. 그 상태에서 불고기 소스를 뿌려서 메인이 아니라 반찬처럼 먹는 거죠. 그러면 그냥 한식 되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따져 보면 또 양식이냐 한식이냐 하는 게 한 끗 차이 같기도 하고 결국 크게 다를 게 없다는 생각도 드네요. 넘 복잡한가? 에잉 몰라몰라~ 뿌잉~!”

유정미가 그런 말을 했을 때였다.

강지한의 스킬 중 하나인 조언의 귀가 그녀의 말을 캐치했다.

[식당의 개선에 도움이 될 만한 얘기가 파악되었습니다.]

[조언의 귀가 손님의 얘기를 가져옵니다.]

[유정미: 지금 이 테이블에 밥 한 공기가 있다고 해봐요. 스테이크는 향신료 빼고 그냥 구웠다 칩시다. 그 상태에서 불고기 소스를 뿌려서 메인이 아니라 반찬처럼 먹는 거죠. 그러면 그냥 한식 되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따져 보면 또 양식이냐 한식이냐 하는 게 한 끗 차이 같기도 하고 결국 크게 다를 게 없다는 생각도 드네요.]

‘……어?’

유정미의 얘기를 전해 들은 강지한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렇지. 한식이든 양식이든 결국 하나의 재료를 가지고 맛있게 요리하는 것이 기본이지.’

그런데 강지한은 여태 한식과 양식을 서로 따로 두고 생각했다.

한식은 한식대로, 양식은 양식대로 서로의 영역이 있다고만 여겼다.

한식이든 양식이든 결국은 자신의 손에서 조리되어 나오는 결과물이니 따로 두고 볼 것이 아니라 하나로 생각해야 했다.

한식 조리법이 양식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존재했다.

‘둘을 선 그어 나누지 말고 하나로 보면서 여러 가지 방식들을 대입하고 섞어봐야 돼. 결국 모두 내 손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이니까.’

강지한이 그런 깨달음을 느끼는 순간,

[양식 요리 장인 고(故) 제이미 램지의 지식이 충분한 경험치가 쌓여 레벨 업 합니다.]

[양식 요리 장인의 지식이 레벨 3이 되었습니다.]

[레벨 업으로 인해 전보다 더 많은 지식이 오픈 됩니다.]

제이미 램지의 지식이 레벨 업 했다.

그의 머릿속에 수많은 양식 관련 지식들이 파도처럼 밀려 들어와 빠르게 갈무리됐다.

새로운 요리 지식들을 받아들인 강지한의 눈이 일순 현기를 발했다.

강지한의 입가에 미소가 자리했다.

그는 이제 더 높은 레벨의 양식 요리들을 만들어 낼 자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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