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30화 (230/330)

# 230

Restaurant 229. 아줌마가 우리 주인 건드렸어요?

김정란의 독설은 도를 넘어섰다.

아무리 강지한이 무골호인(無骨好人)이라 하더라도 면전에서 날선 얘기를 계속 듣고 있자니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사과까지 했는데도 비난에 가까운 언사를 거침없이 해대니 화가 울컥하고 일었다.

그에 강지한이 한마디를 하려는데, 그보다 먼저 앙칼진 목소리가 뒤에서 튀어나왔다.

“뚫린 입이라고 말 너무 막하는 거 아니에요?”

이향숙이었다.

그녀가 강지한의 옆에 서서는 도끼눈을 하고 김정란을 노려봤다.

“뭐야? 이 교양 없는 여자는?”

“어머나, 지금 교양 찾으셨어요? 제가 근래 겪었던 상황 중에 가장 재미있을라 그러네요.”

“하, 저기요. 말본새가 참 저렴하시네요? 어른 상대로?”

“나이 많다고 다 어른인가? 어른다워야 어른이죠.”

“이 어린년이 진짜.”

“진짜 뭐요, 아줌마?”

“아, 아줌마? 아줌마? 나 처녀야!”

“네네. 딱 보니까 왜 그 나이 잡수실 때까지 시집 못 갔는지 바로 알겠네요.”

“야!”

김정란이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자마자 저쪽에서 김다윗 감독의 호통이 들려왔다.

“아이, 진짜! 누가 촬영장에서 고함을 지릅니까! 조감독! 사람 통제 제대로 안 하지!”

“죄송합니다! 여러분! 정숙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벼락이 치는 듯 쩌렁쩌렁한 음성에 김정란이 입을 얼른 닫고 자기가 아닌 척 딴청을 부렸다.

“에이. 끊은 김에 5분 쉬었다 갑니다!”

김다윗의 말에 촬영이 잠깐 끊어졌다.

그에 김정란이 다시 표독스레 이향숙과 강지한을 노려봤다.

“하여튼 교양 없는 사람들이랑 상종을 못하겠다니까.”

“축하해요. 방금 두 번 웃기셨어요.”

이향숙이 지지 않고 혀를 놀렸다.

“그만합니다. 나 댁들 보러온 거 아니고 설탕이 보러온 거니까.”

그때 마침 설탕이가 김정란이 있는 쪽으로 헥헥거리며 달려왔다.

꼬리까지 팽팽 돌리는 게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김정란이 그런 설탕이를 보며 활짝 미소 지었다.

“강아지도 사람 가린다고, 나한테 오는 것 좀 봐. 얼마나 교양 있는 주인 밑에서 자라면 이렇게 예쁘게 클까? 이리 온~ 우쭈쭈.”

두 손을 앞으로 쭉 내밀고서 설탕이를 부르는 김정란.

그런데 설탕이가 가까워질수록 달려오는 방향이 미묘하게 틀어진다 싶더니, 김정란을 무시하고 그 옆에 있던 강지한에게 다가가는 게 아닌가.

그것도 모자라 폴짝 뛰어서 강지한의 품에 쏙 안겨 뺨을 마구 핥아댔다.

김정란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이향숙이 고소하는 듯 씩 웃으며 말했다.

“여기 계시네요, 그 교양 있는 설탕이 주인.”

“서, 서, 서, 설탕이 주인이라고…… 요?”

“네, 그런데요.”

강지한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미간에는 여전히 세로줄이 지워지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강지한의 그런 모습을 본 적 없는 이향숙은 그가 단단히 화났음을 인지했다.

원래 안 그러던 사람이 화를 내면 더 무서운 법이다.

여기서 김정란이 한 번 더 무례하게 나와 버리면 분명 뭔가 사달이 나도 달 터였다.

한데.

“어…… 어머나, 그러셨구나. 죄, 죄송해요.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그만. 호, 호호호…… 호.”

거짓말처럼 꼬리를 확 내리는 김정란의 모습에 이향숙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갑자기 사람이 백팔십도 달라지니 전의까지 사라졌다.

하지만 강지한의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얼렁뚱땅 말을 흐리며 슬쩍 자리를 피하려는 김정란을 강지한이 잡아 세웠다.

“저기요. 제대로 사과하세요.”

“……네?”

“그렇게 심한 말씀 늘어놓으시고 사과 한마디 없이 가시면 됩니까?”

“아니, 내가 또 뭘 얼마나 심한 말을 했다고 그래요?”

강지한과 김정란의 설전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슬슬 모여들었다.

“저 같은 사람한테서 큰 강아지들이 불행해진다고 하셨는데, 그건 저뿐만 아니라 우리 설탕이도 모욕하는 언사라는 거 모르십니까?”

“아니, 그건 잠깐 오해가 있어서 그랬던 거잖아요. 무슨 남자가 속이 그렇게 좁아요?”

김정란이 다시 본색을 드러냈다.

한데 오가는 대화를 듣고 난 설탕이가 고개를 휙 돌려 강지한을 쳐다보더니 다시 김정란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치 그 눈동자가 ‘아줌마가 내 주인 건드렸어요?’ 하고 묻는 것 같았다.

이내 설탕이가 갑자기 짖어대기 시작했다.

왕! 왕왕! 왕왕왕! 왕왕! 왕왕왕왕왕!

느닷없는 설탕이의 발작에 주변에서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얼굴에 동시에 노기가 어렸다.

그리고 여인 한 명이 김정란을 꾸짖었다.

“저기요. 아까부터 보니까 아주머니가 충분히 잘못하셨거든요? 뭘 그렇게 잘했다고 뻗대요?”

“뭐라고요?”

김정란이 여인을 쳐다보니 여인의 옆에 있던 남성이 눈을 부라렸다.

“아줌마가 잘못한 거 맞잖아!”

그것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비난이 쇄도했다.

“진짜 뻔뻔한 여자일세.”

“아니, 우리 설탕이 주인님이 얼마나 온화하고 자상한 분인데.”

“딱 봐도 독하게 생겼네.”

“뭐 저런 경우 없는 사람이 다 있어?”

한마음이라도 된 듯 맹공격을 퍼붓는 사람들로 인해 김정란이 크게 당황했다.

사실 촬영장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설탕이의 팬클럽 회원이었다.

설탕이의 팬클럽은 몇 달 전에 창설되었고 그 회원수가 벌써 십수만에 달했다.

이향숙은 인터넷을 잘 안 하는 강지한 대신 설탕이 매니저 자격으로 그 팬클럽에 초대되었다.

그래서 회원들에게 설탕이의 일정에 대한 것들을 공지해 주었다.

그로 인해 영화 촬영장에도 팬클럽 회원들이 설탕이의 간식이나 옷, 장난감을 선물로 가지고 몇 번이나 다녀갔었다.

오늘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정란을 몰아세우는 사람들의 손에는 강아지 관련 용품들이 들려 있었다.

전부 설탕이에게 줄 선물들이었다.

설탕이의 팬인 만큼 그 주인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는 건 당연한 일.

김정란에게 필요 이상의 비난을 들어버린 강지한을 설탕이의 팬들이 싸고돌았다.

상황이 커지자 결국 김다윗 감독도 다가왔다.

“무슨 일들입니까?”

그리 묻는 김다윗 감독에게 설탕이 팬 한 명이 귓속말로 상황을 알려주었다.

“아니, 사람이 사과를 하는데 뭘 그렇게 몰아붙여요, 아주머니. 그래놓고 본인은 사과도 없이 빠져나가려 하는 게 가당키나 합니까? ……응?”

김정란에게 한마디 하던 김다윗의 시선이 알콩이에게 향했다.

“어? 요 녀석 어디서 봤는데.”

김다윗이 알콩이를 아는 척하자 김정란은 옳지! 싶었다.

김정란이 알콩이를 들어 품 안에 안고서 얼른 화제를 돌렸다.

“어머나~ 알아보시겠어요? 전년도 전국미견대회에서 1등한 알콩이에요. 제가 얼마나 애지중지 하면서 기른다고요.”

김다윗이 알콩이를 지그시 바라보다 한마디를 툭 던졌다.

“털관리도 아주 잘됐고 생긴 것도 예쁜데 어째 얘는 신나 보이지가 않네. 견주님이 너무 자기만족 위해서 혹사시키는 거 아닙니까?”

“네? 무슨 말씀이에요?”

김다윗은 동물들을 유난히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강아지와 고양이라고 하면 사족을 못 쓴다.

그래서 동물 관련 영상들도 많이 찍고 있는 것이다.

찍는 것의 수십 배 이상으로 동물이 나오는 영상들을 즐겨보곤 한다.

기사들도 틈만 나면 뒤적인다.

그렇다 보니 알콩이에 대한 기사 역시 접했던 기억이 있다.

알콩이를 알아본 건 그 덕분이었다.

한데 미견대회에 나갔을 때와는 표정이 딴판이었다. 알콩이는 무언가에 많이 지쳐 있는 것 같았다.

“알콩이 견주님. 혹시 알콩이가 설탕이처럼 씨에프도 찍고 잡지에도 실리고 그러기를 바랍니까?”

“그럼요.”

“포기하세요. 강아지 얼굴이 저렇게 우울한데 어디서 쓰겠다고 하겠어요?”

“우리 알콩이 어디가 우울해요? 예쁘기만 한데.”

“완전히 자아도취하셨구만. 미견대회 1등이 사람 다 망쳐놨네.”

“뭐라고요?”

“견주님이면 견주님답게 강아지의 입장에서 생각하세요, 좀. 본인 입장에서 생각하시지 말고. 강아지를 기르는 건지 자기 욕심을 기르는 건지도 구분 못하고 말이야.”

김다윗의 비수 같은 말에 김정란의 입이 턱 막혔다.

그러다 어떻게든 반박할 말을 만들어서 쏟아내려는데 문득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수십 쌍의 시선이 느껴졌다.

‘윽!’

태어나서 사람 눈빛에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처음이었다.

이곳에 아군은 없고 전부가 다 적군이었다.

일단은 여기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였다.

“알콩아, 가자!”

김정란이 알콩이의 목줄을 끌어당겼다.

그런데 알콩이는 설탕이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가자니까!”

결국 김정란이 알콩이를 확 끌어당겨 품에 안고 허겁지겁 자리를 벗어났다.

그 모습을 보며 김다윗이 혀를 찼다.

“쯧쯧쯧. 강아지가 불쌍하다.”

이향숙은 속이 다 후련해져서 혀를 쭉 내밀고 아래위로 흔들었다.

괜히 설탕이 주인 잘못 건드렸다가 된통 당해 버리고 만 김정란이었다.

* * *

한남선은 한돈선의 친형으로 그보다 두 살 연배가 많다.

매주 일요일은 신선정의 정기휴일이다.

신선정이 문을 닫는 날이면 한남선은 집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올 줄을 몰랐다.

신선정의 위명만큼이나 신선숙수인 한남선의 집은 궁궐처럼 거대하고 화려했다.

집 안에 배치되어 있는 가구나 예술작품, 기물 하나까지 비싸지 않은 게 없었다.

보통 사람은 엄두도 내지 못할 가격의 명품 브랜드와 명장의 손을 탄 물건들이 아니면 아예 쳐다도 보지 않는 사람이 바로 한남선이었다.

한남선은 일반 주택의 거실보다 넓은 자신의 방에서 거대한 원목 침대에 누워 브랜드잡지를 뒤적이고 있었다.

노크가 들려온 건 그가 잠시 눈을 부칠까 싶었을 때였다.

똑똑.

“누구야.”

달콤한 낮잠을 방해받은 한남선이 살짝 짜증 섞인 음성으로 물었다.

“구민호입니다, 대가님.”

구민호.

한남선의 개인 비서다.

그가 하는 일은 간단했다. 한남선이 개인적으로 맡기는 모든 일들을 처리하면 된다.

“들어와.”

한남선은 신선정에서 왕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명령이 없이는 숨 쉬는 것도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씁쓸한 농담이 나돌 정도였다.

한남선이 허락을 한 이후에 구민호는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섰다.

“그래, 알아봤어?”

“네.”

대답을 한 구민호가 노란색 서류봉투 하나를 들고 와 한남선에게 건넸다.

한남선이 봉투를 열어 안을 들여다봤다.

거기엔 사진 몇 장이 담겨 있었다.

사진을 꺼내 한 장 한 장 확인하는 한남선의 귀로 구민호의 설명이 들렸다.

“배틀 셰프가 끝난 이후에도 개인적으로 유일하게 만남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외의 다른 참가자와는 접촉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밖에는 딱히 경계할 만한 대상과의 접촉이 없었습니다.”

“그렇군. 네 생각은 어때? 이 청년…… 신경 써야 할 수준인가?”

구민호가 고개를 저었다.

“요즘 들어 상승세를 타고 있긴 하지만 민국님의 상대로는 부족합니다.”

한민국.

한남선의 첫째 아들이자 신선정을 이을 유력한 다음 후계자 후보였다.

올해 서른다섯인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한남선에게 혹독한 요리 훈련을 받아 같은 나이 대에서는 전국적으로 독보적인 실력을 자랑하는 괴물이었다.

구민호의 대답을 듣고 난 한남선이 피식 웃었다.

“그럼 그렇지.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을……. 돈선아, 네가 또 괜한 짓을 벌이려는구나.”

한남선이 들고 있던 사진을 테이블에 툭 던졌다.

거기엔 지한 식당과 지한 레스토랑에 들어서는 한돈선의 모습, 그를 마중 나온 강지한의 모습들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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