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9
Restaurant 228. 아저씨는 강아지 키우지 마세요
“정말이지……. 이런 광경은 처음 보네요,”
정금자가 탄성처럼 말을 내뱉었다.
보호소 안의 모든 강아지들이 설탕이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심지어 마음의 상처가 심해서 꼼짝 않던 강아지들까지도 몸을 일으켰다.
설탕이는 그런 강아지들 한 마리 한 마리에게 다가가 인사하듯 코를 비벼주었다.
그런 장면들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겼다.
‘그림 죽인다.’
김다윗 감독이 속으로 생각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말도 안 되는 광경들은 그가 사전에 생각해 왔던 콘티들을 전부 사라지게 만들었다.
정금자가 원하는 컨셉에 따라 짜놓은 콘티보다 지금의 이 생생한 광경이 더욱 아름답고 가슴 절절히 와 닿았다.
버려진 강아지들과 주인에게 사랑 받으며 지내는 설탕이의 대조적인 모습이 한 앵글 안에 들어오니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유기견들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설탕이의 모습이 보는 이들의 심금을 제대로 울리고 있었다.
카메라는 계속 설탕이의 동선을 좇아 움직였다.
그에 따라 다른 사람들도 숨을 죽이고서 설탕이를 그저 바라보며 뒤따랐다.
설탕이가 모든 유기견들과 인사를 나눈 뒤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마침 차창 너머로 들어온 햇살이 설탕이의 몸을 비추었다.
그 고요한 모습은 유난히 성스러웠다.
‘시, 시바…… 신이 강림하셨다.’
스텝 중 누군가는 저도 모르게 그리 생각했다.
설탕이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시 움직였다.
그는 자신의 주인 강지한에게 다가와 살포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강지한이 설탕이의 머리와 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설탕이는 눈을 지그시 감고서 더없이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마치 무언가를 갈구하는 눈빛으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설탕이가 뭘 원하는지 아리송해했다.
그러나 교감도가 높은 강지한은 설탕이의 마음을 확실히 캐치했다.
“그래. 알았어.”
조용히 말을 흘린 강지한이 설탕이를 지켜보고 있는 유기견 한 마리에게 다가가 따스한 손길을 전해주었다.
그제야 상황을 인지한 정금자와 이향숙, 그리고 보호센터 관계자들과 카메라를 잡고 있지 않던 촬영 스텝들이 일시에 움직였다.
그들은 모두 주인을 잃고 방황하다 이곳까지 오게 된 외로운 영혼들을 부드러운 손길로 달래주었다.
‘……이건 미쳤다.’
이 광경을 모니터로 보고 있던 김다윗 감독의 전신에 전율이 일었다.
사람의 손길을 받아들이는 유기견들은 더없이 행복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이건 마치 설탕이가 이 광고를 보는 사람들, 정확히는 강아지를 유기한 이들에게 말하는 일침 같았다.
이렇게나 사람의 손을 그리워하는 강아지들이 보이세요? 당신들은 이 아이들에게 정말 몹쓸 짓을 했어요. 그렇게 말하는 설탕이의 마음이 전해졌다.
아무런 콘티도, 사전 약속도 없이 설탕이가 혼자서 만들어 낸 영상 하나가 보호센터에서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담아냈다.
한참 동안 유기 강아지를 만져주던 정금자가 김다윗 감독을 바라보며 눈빛으로 물었다.
‘촬영하고 계시나요?’
김다윗 감독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자 정금자 역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보호센터에서의 촬영은 이것으로 좋다는 뜻이었다.
* * *
유기견 보호소에서 나온 다음 설탕이는 유기묘 및 다른 유기 동물들의 보호소까지 들러 촬영을 마쳤다.
물론 콘티 같은 건 필요 없었다.
설탕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필요한 그림들을 알아서 척척 뽑아내었다.
게다가 그것이 단순히 촬영을 위한 연기 또한 아니었다.
설탕이는 진심을 담아 유기동물들을 대했고, 그 절절한 감정들이 카메라 안에 고스란히 담겼다.
‘워낙 영특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김다윗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기존에 설탕이를 봐왔던 다른 스텝들도 시종일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벗지 못했다.
설탕이를 아는 사람들도 이럴 진데 오늘 처음 본 사람들은 어땠을까?
다들 기절초풍할 지경이 되었다.
세상에 뛰어나다는 명견들은 방송을 통해서 다들 한 두 번은 봤을 터.
특히 정금자나 동물 관련 영상을 찍는 김다윗의 경우 똑똑한 강아지들을 더더욱 많이 보아왔다.
한데 그 모든 강아지들을 다 합치더라도 설탕이의 영특함은 따라갈 수가 없었다.
설탕이는 명견계의 천외천(天外天) 같은 존재였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지금 강지한의 품에 안겨 행복한 몸짓을 보이는 설탕이에게 향해 있었다.
“풍문으로 들어왔던 것 보다 더 똑똑한 강아지네요.”
정금자가 애정이 가득 담긴 음성으로 옆에 있던 김다윗에게 말했다.
그에 김다윗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저는 저번에도 봤는데 이번이 더 놀라워요. 어찌 저리 갈수록 똑똑해지는지 모르겠어요.”
그때 두 사람에게 다가온 조감독이 난감한 기색으로 물었다.
“감독님, 이건 어쩔까요?”
조감독의 손에는 콘티 한 뭉텅이가 들려 있었다.
“야외 촬영 씬 빼고는 다 버려.”
“아까운데.”
“콘티 보다 좋은 그림 나왔는데 뭐가 아까워? 어서 야외 촬영이나 준비해.”
“네, 알겠습니다. 자자, 자리 옮겨서 준비합시다!”
조감독이 자리를 피하자 김다윗이 정금자에게 말했다.
“협회장님도 만족하시죠? 추가 촬영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그럼요. 우리가 머리 맞대고 회의했던 것보다 몇 배나 귀한 장면이 나왔는걸요. 충분히 만족스러워요. 아무래도 설탕이한테는 보너스 출연료를 조금 더 얹어줘야겠어요.”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설탕이가 이렇게 노력해 줬는데, 저도 무리 좀 해야죠. 이번 씨에프가 송출되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게 될 테고 그건 곧 유기견이 줄어드는 데도, 그리고 우리 보호센터가 발전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겠지요.”
“저도 그럴 거라 생각됩니다.”
“그나저나 설탕이 정말 예쁘네요. 어쩜 저리 애기천사 같을까요. 호호호.”
“맞아요. 제가 카메라에 담아왔던 역대 피사체들 중에 가장 완벽한 것이 바로 설탕이거든요. 하하하.”
두 사람은 이후에도 설탕이 칭찬을 릴레이처럼 이어나가며 한참을 떠들었다.
* * *
평택에는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전부 알 만한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다.
작년 전국미견대회에서 우승을 한 요크셔테리어 알콩이였다.
“아유~ 우리 알콩이 어쩜 이리 예뻐? 응? 응?”
알콩이의 주인은 올해 마흔이 넘은 노처녀 김정란이었다.
그녀에게 알콩이는 삶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알콩이에게 부모, 형제보다 애정을 더 쏟았고 자기보다 알콩이를 더 챙겼다.
강아지에게 좋다는 것이 있으면 다 사다 먹였고, 최신 장난감은 그때그때 새로 사다 바쳤다.
집 안에는 온통 알콩이를 위한 물건들로만 가득했다.
미용과 건강검진 역시 시기가 될 때마다 놓치지 않고 꼬박 챙겨주었다.
주인의 이런 사랑을 받고 자란 알콩이는 똑똑했고, 아름다웠다.
괜히 전국미견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게 아니다.
김정란은 자신의 무릎에 앉아 있는 알콩이의 영롱한 털을 쓰다듬었다.
베란다에서 흘러들어오는 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골드실버의 털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알콩아, 우리 산책 나갈까?”
산책이라는 단어에 알콩이의 귀가 쫑긋 섰다.
벌떡 일어난 알콩이가 김정란의 무릎에서 뛰어내려 문 앞으로 가더니 제 주인과 문을 쉼 없이 번갈아보며 몸을 달싹였다.
“아유~ 우리 알콩이, 몸이 달았네, 달았어. 그래. 엄마랑 같이 나가보자.”
* * *
“어머~ 저 강아지 좀 봐. 넘 귀엽다.”
“요크셔테리어지? 털이 어쩜 저리 예쁘게 자랐을까. 주인이 관리도 잘해줬나 보네.”
“쟤 걔잖아! 알콩이. 전국미견대회에서 1등한 강아지.”
“아, 나도 강.사.평(강아지를 사랑하는 평택 사람들) 카페에서 사진 봤다. 우와, 실물이 더 귀엽네.”
알콩이를 데리고 밖에 나오자마자 주변에서 쏟아지는 감탄에 김정란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그럼~ 그럼~ 우리 알콩이가 최고지.’
김정란이 알콩이와 산책을 즐기는 가장 큰 이유가 이거였다.
물론 알콩이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도 산책은 필수였다.
하지만 갈수록 그보다도 알콩이를 칭찬하는 사람들의 얘기에 어깨가 으쓱해지고 콧대가 올라가는 데 맛이 들렸다.
‘내가 자식 하나는 정말 잘 키웠지.’
엉덩이를 흔들며 통통 튀듯 앞서가는 알콩이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김정란이었다.
‘세상에 우리 알콩이보다 예쁜 애가 또 있을까?
김정란이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정말?”
“응. 저기 소풍정원에서 촬영 중이래.”
“대박. 나 설탕이 실물로 처음 보는 거야!”
“빨리 가보자.”
김정란을 지나치던 두 남녀커플이 그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설탕이?’
그 이름이 낯설지 않은 김정란이었다.
‘설마…… 도그 푸드 씨에프 찍은 그 설탕이?’
김정란은 알콩이를 사랑하는 만큼 강아지 채널의 애청자였다.
때문에 거기에서 나오는 씨에프들은 전부 꿰고 있었다.
그 수많은 씨에프들 중에서 김정란에게 충격을 안겨준 것이 있었으니 도그 푸드의 새로운 사료 씨에프였다.
씨에프의 내용 때문에 놀란 게 아니었다.
모델로 등장한 시바견 때문이었다.
어쩜 저렇게 예쁘고 청초하면서도 귀여운 데다 영롱한 아이가 세상에 존재할까 싶었다.
세상에 다른 강아지를 보고 위기감을 느꼈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후 김정란은 설탕이 관련 자료를 잠깐 찾아봤다.
그러다 보니 도그앤라이프라는 유명 강아지 잡지에 표지모델을 장식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딱 거기까지.
더 이상은 배가 아파서 쳐다도 보기 싫었다.
“우리 알콩이도 운이 좋아 방송 한 번만 제대로 타면 설탕이보다 더 뜨는 건 일도 아니지. 그럼. 게다가 잡지책에 실린 것도 그렇고 씨에프에 나온 것도 전부 씨지로 손본 티가 팍팍 나잖아. 실물 가지고 부딪히면 우리 알콩이가 훨씬 예쁠 걸? 그렇지 알콩아?”
김정란이 말을 하면 항상 대답부터 해주는 알콩이였다.
그런데 이 녀석이 대답은 하지 않고 갑자기 멈춰 서서는 코를 킁킁거리는 게 아닌가?
“알콩아? 엄마가 물어봤는데 대답해야지?”
킁킁!
“알콩아, 왜 그래? 쉬야 마려워? 응가할까?”
김정란이 계속 물었다.
그때 알콩이가 갑자기 냅다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어머나, 알콩아!”
놀란 김정란이 순간적으로 알콩이의 목줄을 놓쳤다. 그리고서는 알콩이의 뒤를 따라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소풍정원이었다.
겨울이라 초목이 푸르지는 않았으나 나름대로의 운치와 멋이 있는 풍경을 간직한 곳이었다.
그 소풍정원의 들판 한 곳에 사람들이 크게 둘러 모여 무언가를 구경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달려가던 알콩이가 한가득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고 놀라 멈춰 섰다.
김정란은 그제야 겨우 알콩이의 목줄을 다시 쥐었다.
그러고서는 대체 뭐 때문에 사람들이 이리 몰려 있나 싶어 인파를 파고 들어갔다.
그녀의 시선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촬영장비들과 스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모든 신경은 들판을 가로지르며 신나게 뛰어 다니는 강아지 한 마리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제야 김정란은 자신이 들어선 곳이 소풍정원이라는 걸 깨달았다. 좀 전까지는 알콩이를 잃어버릴까 봐 정신이 너무 없어 미처 인지를 못했던 것.
헥헥헥!
알콩이는 저 멀리 있는 강아지를 보며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꼬리를 쳐대고 있었다.
‘그럼…… 쟤가 설탕인가 보지? 어디. 얼마나 예쁜지 보자고.’
김정란이 눈에 힘을 주고 설탕이를 자세히 살폈다.
설탕이는 계속해서 뒤태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다가 감독의 사인을 받는 순간 뒤돌아서서 김정란이 있는 방향으로 빠르게 질주했다.
설탕이와의 간격이 순식간에 줄어들었고 녀석의 얼굴이 김정란의 눈에 확연히 박히는 순간,
쿵! 쾅!
심장이 눈치도 없이 제 멋대로 나대기 시작했다.
심쿵 한다는 것이 무언지 이토록 확연하게 느껴보기는 태어나서 난생처음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너 되게 귀엽게 생겼다. 하하.”
바로 옆에서 낯선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옆을 돌아본 김정란은 쪼그려 앉아서 알콩이와 눈을 맞추고 있는 남자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알콩이가 꼬리치며 남자에게 다가가려 했다.
남자는 알콩이가 다가오자 가볍게 쓰다듬어 주려는 자세를 취했다.
그에 김정란이 알콩이의 목줄을 탁 당기며 날선 음성을 흘렸다.
“지금 남의 새끼한테 뭐하시는 거예요?”
“……네?”
“아저씨는 다른 사람이 아저씨 자식 함부로 쓰다듬고 그러면 좋아요? 왜 이렇게 경우가 없어요, 사람이?”
“아…….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네요. 기분 상하셨으면 사과드릴게요.”
남자가 민망한 미소를 지으며 정중히 사과를 건넸다.
“참 나. 진짜 이래서 안 돼, 우리나라. 아니 다들 강아지 알기를 예쁜 장난감같이 안다니까. 아저씨 같은 사람은 절대 강아지 키우지 마세요. 아저씨 밑에서 자란 강아지들이 얼마나 불행하게 클지는 안 봐도 비디오네요.”
김정란이 표독스런 말을 뱉었다.
그러자 민망한 미소를 짓던 남자, 강지한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