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23화 (223/330)

# 223

Restaurant 222. 영화판의 운명은 지한 밥차에

“지한 밥차?”

느닷없이 지한 밥차를 추천하는 조감독의 말에 나현철 감독이 고개를 갸웃했다.

“네. 요새 촬영판에서 가장 핫한 밥차예요.”

“확실해? 난 처음 들어보는데.”

“감독님은 워낙 그런 쪽에 소식이 늦잖아요. 게다가 지한 밥차가 이 바닥 뛰어든 지 얼마 안돼서 더더욱 모르실 겁니다.”

“이 바닥 뛰어든 지 얼마 안됐다고? 근데 뭘 믿고 불러.”

“그러니까 믿음이 가는 거죠. 뛰어든 시간에 비해 퍼지는 소문의 속도가 미쳐 버린 수준이라니까요.”

“음……. 근데 밥차가 다 거기서 거기지. 손 선배 입맛 맞출 수 있겠어?”

“에이. 손 선배님도 입맛이 예전보다 까다로워진 거지, 무슨 미식가 수준은 아니에요. 지한 밥차 한번 믿어봐요. 거기 밥 먹고서 불만 얘기하는 사람 한 명을 못 봤다니까요.”

조감독은 열정적으로 나현철을 설득하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손현중의 밥투정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였지만 속내는 달랐다.

그는 최근 명성이 자자한 지한 밥차의 맛이 어떤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러던 차에 손현중의 밥투정이 좋은 핑계가 되었을 뿐이다.

“으음……. 그 정도야?”

“네.”

“그럼 연락 한번 넣어봐.”

계획대로 일이 진행됐다.

조감독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지한 밥차의 연락처 수소문에 나섰다.

* * *

독고진은 요즘 신이 났다.

지한 밥차가 개시를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그 소문이 방송가나 영화관계자들 사이에 파다하게 퍼져 나가 주문이 끊임없이 밀려 들어왔기 때문.

주문이 많아질수록 독고진의 주머니 사정은 좋아졌다.

물론 돈 때문에 이 일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

그는 요리를 하는 행위가 말도 못하게 즐거웠다.

요즘에는 하루 종일 요리만 할 수 있어서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물론 출장을 나갈 여력이 되지 않아 요리만 해야 한다는 게 조금 아쉬웠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뿌듯한 건지 독고진은 알고 있다.

해서 그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해 밥차를 모는 오만석은 가끔씩 촬영장 사람들이 식사하는 광경을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아오곤 했다.

“웃차! 마지막!”

오늘도 오만석은 출장 준비로 분주했다.

독고진이 만들어준 음식을 출장 파트너 직원과 함께 싣고 나니 오후 3시.

촬영장까지 저녁 시간에 맞춰 가려면 지금 출발해야 했다.

“그럼 갖다올게.”

오만석이 말하며 운전석에 올랐다.

파트너 직원은 조수석에 자리했다.

차창 너머로 다가온 독고진이 오만석을 격려했다.

“고생해요, 형. 사고 내지 말고.”

“걱정 마라. 근데 우리 예약 계속 들어오지?”

“네. 이미 이번 주말 예약은 전부 차서 들어오는 족족 거절하고 있는 상황.”

독고진이 손가락 두 개로 브이자를 그렸다.

“아, 진짜 아깝다. 밥차 하나 더 들여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러고 싶은데 내 소관이 아니라서요. 밥차 들이면 사람도 몇 더 들여야 할 텐데 그게 돈이 어마어마하게 나갈 거 아녜요. 대표님한테 직접 건의해야 할 겁니다.”

“음……. 그건 그렇지. 그래도 지금 같은 기세면 투자 조금 더해서 두 대를 돌려 버리는 게 훨씬 이득일 텐데.”

“계속 이렇게만 된다면 내가 벌써 총대 메고 말해봤겠지. 근데 그렇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음……. 그것도 그렇지. 알았다. 아무튼 다녀올게. 이따 돌아와서 치킨에 한잔 어때?”

“크크크. 누가 보면 형이 술 마시자는 줄 알겠네. 사이다만 축내면서. 그래도 콜!”

“콜.”

오만석이 기분 좋게 차를 몰아 떠나갔다.

그때 독고진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라라라라~ 라라라라~

“네, 지한 밥차 독고진 전무입니다.”

-안녕하세요. 저, 밥차 좀 예약하려고 하는데요.

“아, 그러세요? 그런데 이번 주말에는 이미 예약이 다 차버려서 다음 주부터나 가능한데,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 점심에 혹시 예약 가능할까요?

“네. 그때 됩니다. 총 몇 분이시죠? 참고로 120인분까지 가능하고 120인분 넘어가면 추가 요금이 따로 붙어요.”

지한 밥차에서 굴리고 있는 밥차는 달랑 한 대다.

밥차가 제법 커서 120인분까지는 수용 가능했지만, 그 이상이 넘어가면 밥차를 한 대 더 빌려야 하고 인력도 일용직으로 구해야 한다.

기름값도 두 배로 든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추가 요금이 밥값 외에 60 정도 붙어버린다.

-저희 100인분이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메뉴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일반 메뉴가 있고 특선 메뉴, 호화 메뉴가 있습니다. 가격은 일반 메뉴가 1인분에 육천 원, 특선 메뉴가 구천 원, 호화 메뉴가 만이천 원이고요.”

-일반으로 부탁드릴게요.

“네. 일반으로 100인분. 성함하고 촬영장 주소 말씀해 주신 다음, 계약금 50% 결제해 주시면 예약 완료됩니다.”

-한강난지공원이고요. 영화 ‘예언자’ 촬영 현장 조감독 찾으시면 됩니다. 제 이름이…….

* * *

지한 레스토랑의 첫날 성적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문을 연 순간부터 손님들의 행렬이 끊이지를 않더니 런치가 끝날 때까지 몰려들어 빽빽하게 라스트 오더를 받았다.

웨이팅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주방에서 잠시 손 놀릴 새 없이 손님들이 꾸준히 들어왔다.

이후 두 시간 반의 브레이크 타임을 가진 뒤, 저녁 장사를 시작했다.

저녁 장사 때는 미니 코스 메뉴를 팔지 않는다.

한데 몇몇 손님들은 미니 코스부터 찾았고, 점심 한정이라는 얘기에 아쉬워했다.

이미 지한 레스토랑의 얘기가 방문해 본 손님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퍼져 나가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이는 곧, 손님들이 레스토랑의 음식에 만족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저녁 타임에는 점심때보다 더 많은 손님들이 몰렸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단품 메뉴보다는 코스를 주문했다.

원래 도근한이 스테이크 하우스로 운영했던 이 건물은 50평짜리 2층 건물이다.

때문에 코스 메뉴를 즐기는 손님들이 많아도 회전률이 좋았다.

저녁 코스 메뉴의 가격은 기본 47,000원.

거기에서 메인 메뉴의 종류에 따라 최고 69,000원까지 가격이 올라간다.

하지만 기본으로 주문을 해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식사가 가능했다.

지한 레스토랑의 저녁 라스트 오더는 오후 9시.

그때까지 웨이팅은 없었지만 모든 테이블이 거의 만석으로 채워진 상태로 홀이 돌아갔다.

오후 11시.

하루의 영업을 마치고 직원과 알바들이 모두 퇴근한 시각.

강지한과 도근한은 둘이서 주방 마무리를 한 뒤 오늘 하루 수익을 계산해 봤다.

총매출은 400만 원이 조금 넘었다.

첫날 수입부터 상당히 괜찮았다.

거기에서 재료값을 빼고 나니 240이 남았고 다달이 나올 여러 가지 세금과 인건비를 하루치로 계산해서 제했다.

그렇게 하고 나니 순이익이 80 정도 나왔다.

한 달 네 번 쉰다 치고 26일을 일한다 가정했을 때 하루 80씩만 벌 수 있으면 순이익은 2080만 원이 된다는 얘기다.

매일같이 적자만 봤던 도근한으로서는 꿈만 같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강지한은 거기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손님은 계속 늘어날 거야.”

“난 매일 이 정도 씩만 벌려도 소원이 없겠다. 다음 달에 떳떳하게 아버지 얼굴 볼 수 있겠어.”

도근한은 흑자로 전환하지 못하면 요식업계에서 손을 떼고 가업을 이어야 할 판이었다.

한데 강지한의 도움으로 전망이 밝아졌다.

싱글벙글하는 도근한의 얼굴을 감상하던 강지한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퀘스트-도근한은 요리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아버지의 등쌀에 가업을 이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가 요리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퀘스트 진행도-100/100]

[퀘스트 100% 클리어! 성공 보상이 지급됩니다.]

[직원 요리 능력치 1레벨 업권, 직원 설거지 능력치 1레벨 업권, 직원 서빙 능력치 1레벨 업권, 직원 화술 능력치 1레벨 업권, 직원 청소 능력치 1레벨 업권, 직원 회계 능력치 1레벨 업권을 두 개씩 얻었습니다.]

‘대박.’

강지한이 보상으로 받은 아이템들에 놀라고 있을 때 메시지 하나가 더 나타났다.

[퀘스트-기존의 매장과 다른 메뉴를 파는 새로운 매장을 런칭하세요.]

[무사히 런칭 완료했습니다. 성공 보상이 지급됩니다.]

[S급 랜덤 박스를 얻었습니다.]

메시지와 함께 황금빛으로 빛나는 작은 상자 하나가 뿅 하고 나타났다.

상자의 위에는 ‘S’라는 알파벳이 박혀 있었다.

S급 랜덤 박스는 랜덤 박스의 강화판으로 상급과 최상급 아이템이 무작위 비율로 열 가지가 들어 있는 것이다.

강지한이 박스의 개봉을 원하자 뚜껑이 열리며 그 안에서 열 가지 아이템이 튀어나왔다.

[직원 능력치 한계 돌파권x3, 직원 능력치 올(All) 레벨 업권x3, 손님 부스터x2, 직원 요리 능력치 1레벨 업권x2]

‘보상 미쳤다.’

S급 랜덤박스라더니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퀘스트 두 개를 한 번에 해결하고 나니 괜히 기분이 뿌듯해졌다.

“내일도 열심히 해보자, 친구야.”

도근한이 강지한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씩 웃었다.

그간 서로 많이 편해졌어도 이런 식의 애정 표현은 하지 않았던 그였다.

한데 강지한 덕분에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게 생겼으니 호감도가 급속도로 치솟아 버린 것.

강지한은 그런 도근한의 팔을 걷어내며 괜히 퉁명스럽게 말했다.

“치워. 무거워.”

“에이, 딱딱한 새끼.”

도근한의 투덜거림을 무시하고서 강지한은 홀 내부와 주방을 둘러봤다.

창문, 식기구, 조명, 실내 공간, 수도, 가스 배관이 파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레벨 업이 가능하다는 뜻.

한데 레벨 업 조건을 살펴보니 이런 메시지가 나타났다.

[10만 만족도 포인트를 투자해 지한 레스토랑을 지한 식당의 레벨 업 상태와 동기화할 수 있습니다.]

지한 레스토랑의 레벨 업은 10만 만족도 포인트 한 방으로 해결되는 식이었다.

그렇게 하면 지한 식당 내부 여섯 곳과 외부의 간판 까지 총 일곱 군데가 지한 식당과 같은 형태로 레벨 업이 되는 것이다.

오늘 강지한이 모은 만족도 포인트는 7,223.

기존에 누적되어 있던 것과 합하면 총 24,746만족도 포인트가 수중에 있었다.

10만 포인트에는 아직 한참 모자란 수치지만 만족도 포인트가 입수 가능한 10일 이내에는 얼마든지 입수 가능했다.

“아무튼 오늘은 시마이. 고생했다. 근데 진짜 춘천 가서 잘 거냐? 피곤할 거 같은데.”

“응. 향숙이가 우리 설탕이 데리고 있대. 얼른 가서 데리고 와야지.”

“알았다. 내일 보자. 운전 조심하고.”

“그래.”

지한 레스토랑의 오픈을 성공적으로 이끈 강지한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홀을 나섰다.

* * *

2018년 한 해의 끝을 알리는 12월 31일, 월요일.

새로운 해를 맞이한다는 생각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떠 있는 그날도 촬영판엔 어김없이 카메라가 돌아갔다.

국민배우 손현중이 주연으로 참여한 예언자의 촬영도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특히 오늘은 영화의 클라이맥스 부분을 촬영하는지라 주인공인 손현중의 감정 연기가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우를 편안하게 해줘야 하는데, 손현중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만들려면 무엇보다 맛있는 식사가 최고였다.

점심나절, 아직 슛이 들어가기 전 상황.

손현중은 기분이 엉망이었다.

인터넷만 믿고 맛집이라 소문난 곳을 방문했다가 그저 그런 식사를 했기 때문.

“에이, 입맛만 버렸네.”

벌써 저 말을 백 번도 넘게 했다.

이대로라면 오늘 촬영은 말아먹었다고 봐야 했다.

‘미치겠네.’

나현철 감독은 말 그대로 똥줄이 탔다.

지금 손현중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한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었다.

바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오늘 촬영은 현장에서 점심을 먹은 후에 들어가는 것으로 잡았다.

그리고 점심 메뉴로 택한 것은 조감독이 그렇게 어필했던 지한 밥차였다.

“밥차 들어옵니다!”

오만석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조감독이 크게 외쳤다.

과연 그의 말대로 저 멀리서부터 거대한 밥차가 촬영현장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감독의자에 앉아 있던 나현철이 벌떡 일어나서 밥차를 쳐다봤다.

‘제발 맛있어라. 제발!’

그의 주먹이 굳세게 쥐어졌다.

이제 이 영화판의 모든 운명이 저 밥차 하나에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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