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19화 (219/330)

# 219

Restaurant 218. 명옥정의 몰락

‘내가…… 벌집을 들쑤셨구나.’

진상명을 보는 순간 천명옥의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다.

백진목만 해도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연줄이었다.

하지만 세진 그룹의 회장이나 되는 사람이 강지한만 신경 쓰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때문에 기회를 보아 강지한을 다시 건드리려 했다.

그런데 진상명이 자리했다면 얘기가 달랐다.

그는 칼을 뽑은 순간 반드시 휘두르는 사람이었다.

용서 같은 건 없었다.

털썩.

천명옥이 진상명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변노민이 거쳐간 절차를 똑같이 밟고 있었다.

“어르신……. 강지한이 어르신의 사람인 줄 모르고 벌인 일입니다. 용서를 부탁드릴게요.”

“그가 내 사람이 아니었다면 계속 이런 일을 벌였겠지. 애초에 정신머리가 잘못됐어.”

“어르신!”

“보아하니 스스로 식당을 그만둘 위인으로 보이지는 않고……. 아무래도 내가 직접 목을 쳐야겠군.”

그러면서 진상명은 주머니에서 녹음기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가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녹음기에서 간절한 변노민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맞습니다, 어르신! 전부 천명옥 그 여인이 돈으로 사주해서 벌인 일입니다! 저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절 불쌍히 여기셔야 합니다. 돈을 수천을 주는데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변 의원, 당신이 어떻게 저한테……!”

천명옥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고 변노민을 노려봤다.

조금 전, 변노민은 자신의 죄를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천명옥을 열심히 팔았다.

한데 그것을 진상명이 녹음하고 있는 줄 꿈에도 몰랐다.

둘이 한 판 붙을 기미가 보이자 진상명은 또 다시 녹음 버튼을 몰래 눌렀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천명옥이 고함을 쳤다.

한데 변노민은 미안해하기는커녕 두 눈을 부릅뜨고 같이 고함을 터뜨렸다.

“내가 틀린 말 했어? 전부 천명옥 당신이 사주한 일 아니야! 내가 싫다고 했는데도 끝까지 밀어붙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벌인 일이잖아!”

“하……. 근본이 천한 인간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엉망일 줄이야.”

“너 방금 뭐라 그랬어, 썅년아!”

급기야 변노민이 욕까지 뱉었다.

“둘 다 그만.”

상황을 지켜보던 진상명이 입을 열었다.

“서로 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구나. 너희 둘 다 저지른 죄의 대가는 치러야 돼. 단순히 의원직을 박탈당하고 식당 문을 닫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을 거야.”

그것은 사형 선고였다.

변노민과 천명옥이 돌부처라도 된 듯 굳었다.

그때 상황실에 백진목이 들어왔다.

그러자 진상명이 그를 깍듯하게 대했다.

“은사님,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상명이 네가 했지.”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대화에 천명옥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천하의 진상명이 백진목의 앞에서는 순한 강아지처럼 굴었다.

‘진짜 무서운 인간은 진상명을 휘두르는 백진목이었구나.’

백진목은 진상명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그만 가자, 상명아.”

“네, 은사님.”

두 사람이 느긋하게 상황실을 벗어났다.

상황실에 단 둘만 남은 천명옥과 변노민은 서로를 노려보며 말이 없었다.

상대가 어지간해야 담합해서 맞서 싸울 마음이라도 드는 것이다.

그들이 척을 지게 된 이들은 너무나 거대한 태산이었다.

“다 끝났어. 나도, 당신도.”

힘없는 변노민의 음성이 공허하게 흩어졌다.

부릅떠진 천명옥의 눈에서 눈물이 고여 뚝뚝 떨어졌다.

모든 것이 끝났다.

* * *

춘천 식문화 알림이 요리대회가 끝난 날 저녁.

춘천 바닥이 발칵 뒤집혔다.

천명옥과 변노민의 더러운 공작에 대한 내용이 일파만파 퍼져 나간 것.

시작은 누군지 모를 사람이 편집해서 올린 인튜브 음성 파일에서부터였다.

약 1분 남짓의 짧은 파일 안에는 변노민이 심사위원 중 누군가와 주고받은 것 같은 통화내역, 그리고 천명옥이 돈으로 사주를 해 어쩔 수 없이 이런 짓을 벌였다는 그의 절규 어린 음성, 마지막으로 천명옥과 변노민이 악을 쓰며 싸우는 내용까지 담겨 있었다.

그 음성 파일을 어느 유명 블로거가 퍼왔고, 그의 이웃들이 너도나도 개인 SNS며 덩치가 큰 카페, 유머 사이트 등에 공유를 해대기 시작했다.

인터넷의 힘이란 참으로 대단했다.

그 음성 파일은 단 몇 시간 만에 백만 조회수를 넘어섰다.

그에 춘천시청과 춘천문화재단에서는 난리가 났다.

당장 변노민 의원에게 위 사건의 진실에 대해 규명하라 요구했다.

변노민 의원은 모든 것이 사실임을 인정하고서 스스로 의원직을 내려놓았다.

그것이 변노민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리 하지 않을 경우 진상명에게 더한 꼴을 당할 것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하나 그와 달리 천명옥은 모든 사실을 부정했다.

어떻게든 이번 일을 덮고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부정은 최악의 선택이었다.

사건이 터지고 24시간이 다 흘러가기도 전에 명옥정의 불매 운동이 춘천시 전역으로 불거졌다.

* * *

다음 날.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가 시작되고 명옥정이 문을 열자마자 고객들의 전화가 숱하게 쏟아졌다.

전화를 건 고객들은 하나같이 오늘 예약을 취소해 달라고 요구했다.

본래 크리스마스나 발렌타인데이, 혹은 가정의 날 등등은 명옥정에게 있어 가장 큰 대목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기념일이 있을 때엔 일주일 전부터 예약 전화가 빗발친다.

한데 그렇게 잡아 두었던 예약이 거의 대부분 취소되고 있었다.

아울러 명옥정을 찾는 손님들의 수도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천명옥의 더러운 모략질을 알게 된 마당인데, 모르쇠로 일관하는 그녀의 태도가 손님들의 반감을 제대로 사버린 것이다.

결국 천명옥은 식당 문을 연지 한 시간 만에 명옥정 홈페이지를 통해서 정식으로 사과문을 올렸다.

내용은 뻔했다.

일이 터지는 순간 너무 두려워서 회피하려 했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이렇게 죄인 된 마음으로 용서를 빈다. 앞으로는 절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

이런 골자의 사과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한 번 손님들을 기만한 그녀의 사과가 진정성 있게 전해질 리 없었다.

결국 저녁에는 명옥정의 손님이 점심때보다 더욱 줄어 겨우 여섯 팀을 받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천명옥은 지금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마치 꿈만 같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던 명옥정이 어찌 하루 만에 무너질 수 있단 말인가?

거기에는 진상명의 무서운 행동력이 한몫 톡톡히 했으나 그것만으로는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다.

애초에 진상명이 설계했던 것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바스러지고 있었으니까.

원인은 천명옥이 건드리려 했던 것이 강지한이라는 데 있었다.

춘천 시민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인물을 명옥정의 매출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없애려 들었다.

그러니 사람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설레야 할 크리스마스이브가 그녀에겐 고통의 시간으로 흘러갔다.

한데 그것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천명옥의 지옥은 크리스마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지상파 뉴스는 물론이고 인터넷 기사에 천명옥과 변노민의 행각이 크게 송출되었다.

두 사람과 관계된 검색어가 연일 인터넷 인기순위를 점한 채 내려올 줄을 몰랐다.

그로 인해 사건은 더더욱 커져 나갔고 그들의 과거 행적까지 다시 한 번 파내야 하지 않겠냐는 여론이 들끓었다.

엄격한 세무조사는 물론이며 또 다른 불법적인 커넥션이 있지는 않았는지 전부 들춰봐야 한다는 의견들이 마구 터져 나왔다.

이제 두 사람의 일은 춘천시에서 끝날 사이즈가 아니었다.

지상파 뉴스에 전파를 탔고 인터넷 실검을 장악한 마당이니 그들의 악행을 전 국민의 반 이상은 알게 된 것이다.

실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불과 이틀 전에 지방에서 터진 사건이 이렇게 빨리 전국으로 퍼져 버리다니.

명옥정의 홈페이지 게시판엔 네티즌들의 테러가 시작됐다.

나중에는 트래픽이 초과되어 홈페이지가 마비되고 말았다.

테러는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도 이어졌다.

명옥정의 마당은 사람들이 버리고 간 온갖 쓰레기들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본점과 분점들 모두 같은 상황이었다.

결국 크리스마스 당일에 명옥정은 식당 문을 닫아야 했다.

패잔병이 된 것 같은 비참함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 천명옥은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웠다.

가슴 속 가득한 화가 빠져나가지 못해 결국 화병이 나버린 것.

그녀의 아들 백상준은 오래전 이혼한 천명옥의 남편 대신 그녀를 간호해 주었다.

“으으…… 끄으으…….”

천명옥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머리에서는 열이 끓었고, 전신은 심하게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렸다.

백상준은 그런 그녀를 병원에 데려가려 했지만, 천명옥이 한사코 이를 거절했다.

이건 병원에 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명옥정이 살아나야 나도 산다. 명옥정이 죽으면 나도 죽는다.’

명옥정은 천명옥 자신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모든 것을 걸고 일으켜 성공시킨 식당이 바로 명옥정 아니던가.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명옥정을 살려야 했다.

하지만 일이 돌아가는 꼴을 보니 더 악화되면 악화되었지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명옥정을 죽이려는 상대가 진상명이다.

천명옥이 발악을 해도 진상명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는 명옥정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결국 진상명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는 얘긴데,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

누워있던 천명옥이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놀란 백상준에게 말했다.

“너 나랑 같이 가자.”

“네? 그 몸으로 어디를 가시게요?”

“지한 식당 본점.”

* * *

크리스마스엔 지한 식당에 늘어선 줄이 다른 때보다 두 배는 더 길어졌다.

그런 지한 식당 앞 도로변에 세단 한 대가 멈춰 섰다.

차 안에서 두 사람이 내렸다.

천명옥과 백상준이었다.

웨이팅을 하며 기다리던 손님 몇몇이 그들 모자를 알아보고 수군거렸다.

두 사람은 기나긴 줄을 무시하고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딸랑-

“아, 손님. 아직 자리가 나지 않았거든요. 밖에서 기다리시면…… 어?”

자신의 안내도 없이 멋대로 들어온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려던 유지호가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천명옥과 백상준은 주방 가까이 다가갔다.

강지한이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어쩐 일로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식당 영업 중이니 나중에 다시 오시죠.”

그러나 천명옥은 도로 나가지 않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백상준은 물론이고 식당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놀랐다.

손님 중 몇몇은 스마트폰을 꺼내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왜 이러십니까? 일어나세요.”

강지한의 정중한 부탁에 천명옥이 고개를 푹 숙이고서 눈물 젖은 음성으로 호소했다.

“강 사장님, 미안합니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절 불쌍히 여기셔서 진상명 어르신의 마음 좀 돌려놓아 주십시오. 이렇게 고개 숙여 부탁드립니다.”

“어, 어머니! 왜 이러세요. 일어나세요. 이건 아니에요!”

남 앞에서 단 한 번도 비굴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천명옥이었다.

철의 여인이나 다름없던 그녀가 처음으로 용서를 구걸하고 있었다.

그 광경에 백상준의 가슴이 찢어질 지경이었다.

하나 강지한은 냉정했다.

“이미 제 손을 벗어난 일입니다. 그만 돌아가세요.”

“용서해 주실 때까지 여기서 꼼짝하지 않을 겁니다.”

“영업에 방해됩니다. 돌아가 주세요.”

“용서해 주신다고 약조하시면 돌아가도록 하지요.”

“당신과 변 의원을 용서할 마음도 없지만, 제가 용서한다고 뭐가 변하지는 않습니다.”

“제발 이렇게 부탁드리니…….”

천명옥이 계속해서 물고 늘어지자 갑자기 손님 한 명이 버럭 성을 냈다.

“아, 거 진짜 밥맛 떨어지게 뭐하는 겁니까! 기분 좋게 식사하러 왔는데 이게 뭐냐고!”

“얼굴만 봐도 역겨워. 명옥정? 내가 지한 식당 생기기 전까지 거기에 쓴 돈이 아깝다.”

“그만 나가요, 아줌마. 왜 다른 사람들 분위기까지 망쳐요?”

“신고합시다!”

생각지도 못했던 손님들의 성화에 천명옥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끄으으…….”

그녀가 가슴을 그러쥐고 널브러져 신음을 흘렸다.

“어머니!”

놀란 백상준이 그런 천명옥을 들쳐 업었다.

그러고는 강지한을 매섭게 쏘아본 뒤 도망치듯 식당을 나섰다.

딸랑-

거칠게 열렸다 닫히는 식당 문을 보며 강지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결국 변하지 않는구나.’

방금 전 천명옥의 사과엔 진심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식이었다.

그녀의 아들 백상준도 반성하는 기색이 없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확연하게 다가왔다.

2018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명옥정의 몰락이 시작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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