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18화 (218/330)

# 218

Restaurant 217. 무너지는 천명옥

대회장의 분위기는 그저 흥겨웠다.

강지한이라는 이름은 춘천시에서는 이미 하나의 브랜드처럼 자리 잡았다.

그가 요리대회에 출전했다는 것만으로도 시민들은 즐거웠다.

다른 참가자들 또한 기분이 좋았다.

조금 뜨고 나면 이런 공익을 위한 행사 같은 건 모른 척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세상이다.

강지한은 이미 배틀 셰프에서 우승을 해, 전국구로 그 이름이 한 번 널리 퍼졌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방송 당시보다 많이 시들해졌으나 적어도 춘천 내에서는 손대는 식당마다 대성공 시키면서 새로운 신화를 쓰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자기 일만 열심히 하면 남부러울 것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공익을 위한 대회에 참가해 자리를 빛내주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세진 그룹 회장까지 초대했다.

따라서 대회는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고 이는 곧 춘천의 식문화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된다.

이 모든 것이 강지한 덕분에 가능했다.

그야말로 진정으로 춘천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다른 참가자들은 생각하게 됐다.

대회장의 초점이 전부 강지한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한 흐름은 갈수록 천명옥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네, 점수 집계가 끝났습니다.”

스텝으로부터 채점 결과를 넘겨받은 진행자의 경쾌한 음성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그럼 지금부터 5위부터 1위까지의 순위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상장과 상금은 춘천문화재단 함기택 이사장님께서 직접 수여해 드리겠습니다.”

진행자의 멘트에 무대 밑에 있던 함기택이 크게 숨을 골랐다.

그는 지금 시상 같은 걸 할 기분이 아니었다.

믿었던 친구 변노민에게 완전히 발등을 찍히고 말았다.

마음 같아서는 대회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하지만 함기택은 언제나 대의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만들어진 웃음을 머금고 무대 위로 올라섰다.

하지만 예정되었던 개인 멘트는 생략하기로 하고 핀마이크는 착용하지 않았다.

그럴 정신과 여유가 없었다.

“오늘의 대회를 기획하신 춘천만 생각하는 춘천 바보! 함기택 춘천문화재단 이사장님께 박수 부탁드립니다!”

와아아아!

사람들이 열렬한 박수와 함성으로 함기택을 반겼다.

무대 중앙에서 멈춰선 함기택은 객석을 둘러보며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그의 옆에 놓인 탁자 위엔 상장과 상금이 담긴 봉투가 놓여 있었다.

시상자와 시상품이 준비되자 진행자는 드디어 순위를 발표해 나갔다.

진행자는 빠르게 5위와 4위를 발표해서 시상했다.

“이어지는 3위! 공단솥칼국수 김정훈 사장님!”

“와아! 감사합니다! 아~ 하하하!”

3위에 호명된 김정훈이 만세를 부르며 좋아했다.

무대 중앙으로 나온 그에게 함기택이 악수를 나눈 뒤 상패와 상금을 지급했다.

강지한은 그런 김정훈을 축하하며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냈다.

‘역시.’

괜히 강지한이 감탄했던 칼국수가 아니었다.

“그럼 드디어 대망의 1위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1위에겐 상금 300만 원이 부상으로 주어집니다. 자, 춘천 식문화 알림이 요리대회! 그 영광의 1위는!”

진행자가 말을 끊고 긴장감을 유도했다.

관람객들 대부분은 강지한이 우승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춘천 식문화를 위해 세진 그룹 회장까지 모셔온 그가 우승을 하는 게 맞는 일이었다.

물론 이를 차치하고서도 지한 식당의 음식 맛은 춘천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명옥정에 비해 훨씬 저렴한 데도 그 맛은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명옥정보다 지한 식당의 음식이 더 맛있다는 의견이 춘천 맛집카페나 개인 SNS 등을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가는 추세였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은 고스란히 무대 위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전해졌다.

이제 강지한이 1등을 하지 않으면 이상할 것 같은 상황이 되어 버렸다.

좌중을 크게 훑어본 진행자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춘천 식문화 알림이 요리대회! 1등! 축하드립니다! 지한 식당의 강지한 사장님!”

와아아아아!

진행자의 1위 발표와 함께 관객들이 환호했다.

강지한은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서 환하게 미소 지었다.

반면 천명옥은 벌레라도 씹은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파들파들거렸다.

‘아니야. 이게 아니야.’

그녀가 세워둔 계획이 와르르 무너졌다.

‘대체 왜…….’

백진목이 아무리 대단하다지만 그는 무대에 올라서서 강지한을 띄워주기만 했을 뿐. 그 외에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돈까지 먹여가며 강지한에게 최하점을 주기로 했던 심사위원들이 그를 1등으로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시선으로 심사위원 셋을 바라보는 천명옥.

그러다 구자승과 눈이 마주쳤다.

한데 그의 눈동자엔 말로 다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었다.

그중 천명옥이 읽을 수 있는 것은 미안함이었다.

‘설마…… 구 선생님이?’

사실 구자승은 이번 일에 있어서 약간의 불안요소였다.

하지만 변노민 의원이 제대로 검증함으로써 구자승은 완전히 믿어도 된다고 판단을 했다.

그랬었는데.

‘……!’

구자승이 천명옥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것은 분명한 사과의 표시였다.

‘구자승…… 당신이…… 당신이 날 등져?’

천명옥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구자승은 더 이상 그녀와 감정을 교류하지 않고 시선을 피했다.

분노로 가슴이 터져 나갈 것 같은 천명옥.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의 머리는 멈추지 않고 회전했다.

‘단순히 구자승이 배신을 했다고 해서 상황이 이렇게까지 뒤집힌다고? 다른 심사위원들은 변노민 의원을 절대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을 텐데?’

천명옥이 의아해하고 있는 와중, 강지한의 시상식이 거행되었다.

무대 중앙에 나온 그에게 함기택이 상장과 상금을 건네주고는 악수를 청했다.

그가 내민 손을 강지한이 가볍게 쥐고 흔들자 함기택은 포옹을 하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

“고생했습니다. 그리고 미안했어요. 다 내가 무지했던 탓입니다. 더불어 감사의 말 드릴게요. 강 선생님 덕분에 이 대회가 더렵혀지지 않고 본연의 뜻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춘천시가 강 사장님께 큰 빚을 졌습니다. 이 은혜는 제가 반드시 갚도록 하겠습니다.”

함기택의 진심 어린 말에 강지한은 그저 미소 지을 뿐이었다.

시상을 마친 강지한이 객석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 작은 행동 하나에 관객들은 무대가 떠나가라 환호성을 질러댔다.

그리고 천명옥의 시상식이 이어졌다.

그녀는 어떻게든 미소 지으려 애썼지만 얼굴 근육이 자꾸 통제를 벗어나 굳어졌다.

결국 기괴한 웃음을 매단 그녀가 억지로 함기택에게 다가가 섰다.

천명옥을 바라보는 함기택의 눈엔 노기가 어려 있었다. 하지만 입만큼은 부드러운 호를 그리고 있었다.

그는 천명옥을 미소 지으며 노려봤다.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한 얼굴에 담겨 있으니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함기택이 천명옥에게 상장과 상금을 쥐어주며 짧은 말을 건넸다.

“당신이 변 의원과 저지른 죗값은 필시 치르게 될 겁니다.”

차갑게 날이 선 그의 음성에 천명옥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방황했다.

‘이사장의 귀에도 들어갔어?’

그는 절대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될 상대였다.

사람이 순진해서 속이기가 쉬웠으나 그만큼 곧은 성정으로 불의를 알게 되면 결단코 응징해 버리는 이였다.

그래서 변노민도 대학 동창인 그를 적대시하기보단 끌어안기로 한 것이다.

한데 함기택이 모든 사실을 알아버렸다.

‘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거야, 변 의원!’

천명옥은 당장 상황실로 내려가 변노민의 머리채라도 잡아채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번 일을 위해 그녀가 먹인 돈만 수천이었다.

그 돈이 전부 공중분해 되고 말았다.

시상을 마친 천명옥이 힘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바로 진행자의 멘트가 이어졌다.

“고생해 주신 함기택 춘천문화재단 이사장님께 박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짝!

함기택이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1등을 수상한 강지한 사장님의 수상 소감을 듣고서 이 자리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진행자가 들고 있던 마이크를 강지한에게 넘겨주었다.

평소 말주변이 없는 강지한인지라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잠시 생각하고서는 입을 열었다.

“우선 오늘 고생해 주신 심사위원 세 분과 자리를 빛내주신 관객 여러분, 그리고 춘천시를 위해 이런 축제를 개최해 주신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음…….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 짧게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비겁한 모략이 오가지 않는 정당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강지한의 수상 소감은 조금은 생뚱맞은 것이었다.

그러나 딱 한 사람. 천명옥만큼은 그것이 자신을 저격하는 말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기분이 고무되어 있는 곽객들은 아무렴 어떠냐 하는 식으로 호응해 주었다.

마이크를 진행자에게 넘긴 강지한이 천명옥을 바라봤다.

천명옥의 시선 역시 강지한에게 향해 있었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부딪혔다.

짧은 순간 말로 다 표현 못할 상당한 감정들이 둘 사이에 오고 갔다.

그리고 천명옥은 깨달았다.

자신이 이미 오래전부터 강지한의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었다는 것을.

그녀의 계략을 사전에 알고 있던 게 아니고서야 판을 이렇게 뒤집을 수는 없었다.

물론 강지한이 무슨 수를 쓴 것인지는 아직도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거창한 모략이 숨어 있던 이번 대회는 단순히 강지한을 띄워주는 것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함께 즐겨주신 관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전하면서, 춘천시 식문화 알림이 요리대회의 막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행자의 마무리 인사로 대회는 끝이 나았다.

결국 천명옥은 강지한에게 좋은 일만 해준 꼴이 되고 말았다.

강지한은 미련 없이 무대를 내려왔다.

그런 그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장님! 악수 한번 해주세요!”

“사진 좀 같이 찍어도 될까요?”

“사인 부탁드립니다!”

강지한은 사람들의 요구에 하나하나 친절이 응해주었다.

그런 광경이 천명옥의 복창을 터지게 만들었다.

오늘 음식을 평가했던 심사위원 세 명은 이미 빠르게 자리를 피한 이후였다.

“후우우우우.”

크게 한숨을 쉰 천명옥이 계단을 밟아 내려오며 애써 오늘의 패배를 위로했다.

‘괜찮아. 기회는 또다시 올 테니. 그나저나 대체 뭣 때문에 이 사달이 난 거야?’

한 차례 눈보라가 지나가고 나니 변노민에 대한 원망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녀가 당장 변노민의 멱이라도 잡을 기세로 상황실에 들어섰다.

“변 의원님! 저랑 얘기 좀 하시죠!”

그런데,

상황실에는 변노민 의원 말고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깡마른 체구의 인상 좋아 보이는 노신사였다.

그가 천명옥에게 물었다.

“댁이 천명옥 여사 되십니까?”

“……누구신지?”

“나 진상명이라고 합니다.”

“……!”

진상명.

변노민은 물론 친분이 있는 다른 정재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그 이름을 수도 없이 들어왔던 천명옥이었다.

패가망신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진상명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는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이 천명옥의 머릿속에 박힌 정보였다.

한데 그런 그가 지척 거리에 서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명옥정을 운영하고 있는 천명옥이라고 합니다.”

말을 하며 변노민의 눈치를 슥 살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머리는 봉두난발에 얼굴은 눈물자국으로 가득했다.

이마는 어디에 찧었는지 살짝 부어 있었다.

천명옥의 인사에 진상명이 답했다.

“천명옥 여사가 맞군요. 자, 여기 있는 변노민은 의원직을 스스로 사퇴하겠다 다짐했습니다. 천 여사는 어찌하겠습니까? 장사 스스로 접을 겁니까? 아니면 내가 접게 해드릴까요?”

진상명의 말에 천명옥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는 괜한 협박을 던지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어, 어르신. 대체 초면인 제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으셔서 이러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대체 어떤 잘못을 했나요?”

천명옥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진상명은 거기에 대한 답을 명쾌하게 들려주었다.

“내 은인을 건드린 것이 잘못입니다.”

말미에 진상명이 미소 지었다.

사진의 손에 들린 낫이 변노민에 이어 천명옥의 목까지 파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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