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
Restaurant 215. 끝판왕들
강지한은 애견카페가 오픈할 때 즈음해서 떠났다.
오늘도 예소린의 애견카페에는 문을 열기 바쁘게 손님들이 걸음을 했다.
이제 뽀삐의 하루는 명실공이 춘천을 대표하는 애견카페로 자리매김했다.
처음에는 설탕이의 명성 덕분이었다.
그런데 설탕이를 보러왔던 손님들은 차츰 카페의 아기자기한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이후에는 다른 곳보다 유독 맛있는 음료수와 음식, 디저트 등에 감탄하며 뽀삐의 하루 자체를 애정하게 되고는 했다.
그래서 설탕이가 촬영으로 인해 한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때에도 단골들은 꾸준히 찾아와주었다.
물론 설탕이가 있을 때처럼 바글거리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차고 넘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런 손님들에게 오늘은 깜짝 선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 선물은 다름 아닌,
왕!
“어머나! 설탕이야!”
설탕이의 복귀였다.
“우와~ 설탕아! 보고 싶었다, 녀석아!”
“나 경진이한테 연락할게. 걔 요새 꿈에서도 설탕이 나온다고 난리였잖아.”
“어머머머. 여보. 설탕이 복귀했나 봐요.”
“영화 촬영 갔었다 그러더니 이제 끝났나 보네. 설탕아~ 잘하고 왔어?”
“그새 더 귀여워진 것 같지 않아요?”
뽀삐의 하루를 찾는 손님들은 하나같이 설탕이를 환영하며 반겼다.
그들은 자신의 지인들에게 설탕이가 돌아왔음을 알렸고 정오가 다 되어갈 때 즈음엔 카페 안의 모든 테이블이 가득 찼다.
미처 카페에 들어오지 못한 이들은 창밖에서나마 설탕이의 모습을 감상하려고 애를 썼다.
“와아, 우리 설탕이 파급력이 장난 아닌데?”
연주연은 오늘 여러 번 설탕이에게 놀라는 중이었다.
예소린이 그런 연주연에게 다가가 은밀히 귓속말을 건넸다.
“주연 씨, 설탕이 파워가 얼마나 대단한지 피부로 느끼겠죠?”
“말해봤자 입만 아프죠.”
“혹시 이런 인생의 진리 알아요? ‘고난과 역경은 이겨낸 만큼 나를 성장시킨다’는.”
“진리까지 가야 돼요? 당연한 말이잖아요.”
연주연이 새삼스러워서 피식 웃었다.
그러자 예소린이 연주연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럼 그 당연한 말, 오늘 몸소 실천해 보시겠어요?”
“……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되묻는 연주연에게서 예소린이 갑자기 멀어졌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이미 외출용 백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오늘 세 시간만 혼자서 봐주세요. 저는 우리 자기 요리 대회 구경 가야 해서요.”
“자, 잠깐만요 소린 씨! 나 이렇게 분주해진 게 오래간만이라 아직 감을 못 잡았는데!”
연주연이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이미 구두까지 챙겨신은 예소린이 찡긋 윙크를 날렸다.
“애정해요. 내 맘 알죠?”
그리고서는 매몰차게 카페를 나가 버리는 예소린.
딸랑-
애처로운 종소리만 연주연의 귓가에 맴돌았다.
“그 맘…… 모르고 싶네요. 하아.”
연주연이 손님들로 바글거리는 카페를 바라보며 한숨짓더니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때 설탕이가 다가와 연주연의 무릎 위에 턱을 슬며시 괴고 섰다.
“응?”
무릎에 턱을 얹은 채 눈만 살짝 위로 치켜뜬 채 자신을 바라보는 설탕이의 모습이 귀엽기 그지없었다.
연주연이 그런 설탕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지금 미안해하는 거야? 쿠쿡. 너 때문에 힘들어 하는 거 아니니까 안 그래도 돼.”
그때, 손님 한 커플이 카운터로 다가왔다.
“계산이요.”
“네~!”
연주연에게 계산을 마친 커플이 밖으로 나가자 새로운 손님들이 기다렸다는 듯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사이좋은 노부부였다.
이를 본 설탕이가 노부부 앞으로 후다닥 달려가서 앞을 가로막고 섰다. 그러더니 곧 휙 하고 뒤돌아서서는 통통 거리듯 빈자리로 걸어갔다. 손님들을 에스코트한 것!
설탕이의 신통방통한 행동에 노부부가 활짝 미소 지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연주연도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예쁜 짓을 알아서 하다니. 지금처럼 몸이 두 개여도 부족한 상황에서는 손님을 에스코트 해주는 작은 행동 하나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다.
“바로 자리 치워드릴게요!”
연주연이 테이블을 닦고 메뉴판을 가져다 주려 했다.
그런데 설탕이가 이미 메뉴판을 물어서 곁에 다가와 서 있는 게 아닌가?
“어머나. 설탕이 봐. 메뉴판 물고 왔어요.”
“정말 영특하다, 고놈. 허허허.”
노부부는 설탕이에게서 메뉴판을 건네받고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 설탕이를 연주연이 애정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손님들을 빈자리로 안내해 주더니 메뉴판까지 가져다주고. 사람 알바가 해야 할 일을 설탕이가 대신하고 있었다.
연주연은 그런 설탕이의 존재가 너무나도 든든했다.
이제는 예소린 없이도 잘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는 그녀였다.
* * *
12시.
춘천 식문화 알림이 대회의 본선이 시작됐다.
본선 무대 주변으로는 어제보다 더한 인파가 몰려들어 있었다.
그 광경을 무대 뒤에서 지켜보는 문화재단 이사장 함기택의 만면엔 미소가 가득했다.
그의 옆에는 변노민 의원도 함께 서 있었다.
두 사람은 대학 동창으로 절친한 친구 사이기도 했다.
“노민아, 네 말 듣기를 잘했다. 아주 성공적이야.”
“내가 언제 너한테 안 좋은 일 부탁한 적 있냐. 이제 봐라. 기사 여기저기서 터질 테니까.”
“알지, 알지. 고맙다, 친구야. 하하하.”
함기택은 그저 변노민이 고마웠다.
그렇게 담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이번 대회 무대 연출을 맡은 이양규 감독이었다.
‘두 사람 이 바닥에서 도는 소문이 완전 정반댄데.’
변노민 의원이 어떤 인간인지에 대해서는 이미 예술가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겉으로는 대의를 위하는 척, 춘천의 예술과 예술인들의 발전을 위하는 척하며 자기 배만 불리기 바쁜 인간.
그것이 변노민에 대한 세간의 평가였다.
반면 문화재단 이사장 함기택은 사람이 좋고 청렴결백한 데다 순박하기 그지없는 인물로 평가되고 있었다.
능력이 대단한 인물은 아니지만 적어도 뒤로 더러운 배를 불리는 짓은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실 그래서 변노민이 함기택과 붙어 다니려 하는 것이었다.
그의 순진함을 이용하면 본인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쉬웠으니까.
이번 일도 마찬가지였다.
함기택은 변노민이 순수하게 춘천의 발전을 위해서 이런 대회를 벌인 것이라 여겼다.
그 뒤에 어떤 더러운 꿍꿍이들이 숨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럼 나 근처에서 따로 점심 약속이 있으니 이만 가볼게.”
변노민은 자리를 끝까지 지키지 않고 떠나려 했다.
“약속 좀 미루라니까. 네가 기획한 대회가 이렇게 대박 터졌는데 꼭 엉덩이 떼야겠어?”
“한 달 전부터 잡은 약속이라서 그래. 이해 좀 해라. 이 감독님.”
“네, 의원님.”
“행사 마무리까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변노민이 이양규 감독에게 당부했다.
“걱정 마시고 일 보세요.”
“그럼.”
변노민은 그제야 안심 된다는 듯 자리를 나섰다.
그때 함기택의 스마트폰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한 그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함기택은 주저없이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전화를 받는 그의 모습이 전에 없이 공손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제가 먼저 연락드리고 찾아뵙고 했어야 하는데 경황이 없어 그러질 못했습니다. 하하. 한데 어쩐 일로 전화를 다주시고…… 네? 아…….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통화를 끝낸 함기택이 황망해져서는 이양규 감독에게 다가왔다.
“이 감독님, 핀마이크 하나만 더 세팅해 주시겠어요?”
* * *
드디어 천명옥과 강지한이 같은 무대에 섰다.
두 사람은 다른 여덟 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주어진 한 시간 반 동안 각 식당의 대표음식을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특히 명옥정의 천명옥은 근래 들어 그 어느 때보다 요리에 집중하는 중이었다.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대충해서 내놓을 수는 없는 일.
조리에 열중하던 그녀가 강지한을 슬쩍 바라봤다.
‘하늘아래 두 개의 태양이 뜰 수는 없는 법.’
심사위원들은 오늘 강지한에게 최하점수를 줄 것이다.
물론 강지한의 음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천명옥은 그가 가져온 재료들에 아무런 수작도 부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최하점을 주는 이유.
그것은 오늘 밤, 심사위원 셋 모두가 식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들은 정말로 식중독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그런 척을 할 뿐.
입원을 해서도 수액을 맞는 것 외에 다른 처방은 내려지지 않을 터.
하지만 변노민은 그들이 식중독으로 입원했으며 그에 따른 처방을 받았다는 걸 서류상으로 위조할 수 있었다.
병원에도 그의 덕을 많이 본 연줄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대체 심사위원들은 무엇을 먹고 식중독에 걸렸는가?
그 대답은 강지한에게 준 최하점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필시 사람들은 강지한이 상한 음식을 내놓았기에 심사위원들이 음식 맛에서 이상함을 느껴 낮은 점수를 준 것이라 받아들일 터였다.
춘천에서 한창 명성을 떨치고 있는 강지한.
그가 만든 음식을 먹고 심사위원들이 일제히 식중독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그건 빈틈 하나 없던 강지한이라는 큰 댐에 작은 구멍을 뚫는 것과 같았다.
요식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일수록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것이 바로 위생과 청결이었다.
잘못 관리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었다가는 심한 경우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법이다.
변노민은 이 사실을 아주 크게 만들어 산불처럼 번지게 할 것이다. 그것을 시작으로 또 다른 음해들이 줄을 이어 터져 나간다면?
댐에 났던 작은 구멍 주변으로 잔금이 가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댐 자체가 무너지고 말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자~ 주어진 시간이 끝났습니다. 참가자분들께서는 그만 손을 멈춰 주시기 바랍니다.”
진행자의 멘트에 참가자들은 마무리한 음식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시식의 시간이 다가왔다.
‘으음.’
지금 이 순간, 구자승의 마음은 그 누구보다 심란했다.
그는 오늘 본선이 시작되기 불과 한 시간 전에,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겨우 마음을 굳혔다.
“그럼 특별심사위원 여러분께서는 시식을…….”
멘트를 치던 진행자는 갑자기 무대로 난입한 스텝에 의해 말이 끊기고 말았다.
스텝에게서 무언가 귓속말을 전해 들은 진행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네네. 알겠습니다.”
스텝이 무대에서 내려간 뒤, 진행자가 좌중을 둘러보며 미소 지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정말 잘 오셨습니다. 주최 측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깜짝 심사위원을 한 분 더 모셨다는 얘기를 지금 막 전해 들었습니다. 이거 정말 서프라이즈인데요. 그분이 누구시냐? 아마 짐작도 못하셨을 겁니다. 바로 모셔보겠습니다. 그 이름만 들어도 전 국민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세진 그룹! 그 세진 그룹의 이사도 아니고 사장도 아니고! 무려 회장님께서 자리해 주셨습니다! 무대로 모시겠습니다. 백진목 회장님께 환영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진행자의 말에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 만큼 세진 그룹은 대한민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거대 기업이었다.
사람들의 함성 속에서 백발이 성성한 백진목 회장이 비서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 위에 올라섰다.
그의 얼굴에는 핀 마이크가 채워져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진 그룹 백진목 회장이올시다.”
백진목이 인사 끝에 고개를 살짝 숙였다.
사람들은 그 작은 행동 하나에도 크게 열광했다.
제대로 축제를 즐기는 현장의 분위기와 달리 천명옥의 마음은 진흙탕이 됐다.
그녀는 창백해진 얼굴로 백진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분이…… 어떻게 이런 자리에……?’
뭔가 일이 틀어져도 제대로 틀어지고 말았다.
천명옥의 안색이 점점 더 나빠져 가는 와중 백진목의 말이 이어졌다.
“저는 오늘 여기 이 자리에 강지한 사장님의 초대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아, 물론 특별심사위원 자리는 제가 욕심이 생겨서 주최 측에 땡깡 좀 피웠습니다. 하하, 특별심사위원으로 자리한 만큼 점수는 매기지 않겠으나 음식들 맛은 좀 보고 가겠습니다.”
백진목의 너스레에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천명옥은 조금도 웃을 수가 없었다.
강지한의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는 신 푸드의 레토르트 식품들이 세진 그룹과 손을 잡고 그 덩치를 키웠다는 건 기사로 접해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하나, 그 사업은 강지한이 아닌 신 푸드의 대표가 이루어낸 과업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그렇게 인지하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 강지한이 불러서 이 자리에 왔다고?’
대체 어떤 마술을 부리면 저런 거목을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계획했던 일이 크게 틀어지자 천명옥의 숨이 턱턱 막혔다. 그런데 문제는 밖에서만 터진 게 아니었다.
무대 뒤, 함기택과 이양규가 자리한 상황실 아래에는 어지간해서는 그 털끝조차 보기 힘든 사람이 행차해 있었다.
그가 함기택 이사장을 보며 물었다.
“변노민 의원은 아직이랍니까?”
“제가 언질 넣었습니다! 바, 바로 도착할 겁니다, 어르신.”
“하하하. 내가 이사장님께 볼 일이 있어 온 게 아니니 그리 긴장 안 하셔도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어르신.”
함기택은 자신에게 볼일이 없다는 노신사의 말이 그토록 감사할 수 없었다.
그는 한 번 찍은 인간을 반드시 저승으로 데리고 간다는 사신 진상명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