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
Restaurant 213. 돌아온 설탕이
12월 22일.
강지한은 춘천시 식문화 알림이 요리대회 예선에 참가했다.
일주일 전, 그는 서류심사와 잠행단 심사에서 합격해 예선 참가 자격이 주어졌다는 통보를 받았다.
예선에는 본인의 매장에서 파는 음식을 그대로 재현해서 경합을 한다.
이후,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참가자부터 차례대로 10명을 추려 본선에 합격시킨다.
예선 참가자가 20명 중 절반이 떨어지는 것이다.
예선은 두 개 조로 나뉘어 총 10팀씩 경합을 벌이게 된다.
강지한이 속한 건 B조, 천명옥은 A조였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
대기실에는 20명의 참가자들이 두런두런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야, 춘천의 스타 셰프를 이렇게 뵙게 되네요. 영광입니다. 저, 짬뽕전문점 하고 있는 정대만이올시다.”
“강 사장님, 반가워요~ 저도 거두리에서 작은 레스토랑 하고 있어요. 소담이라고 혹시 아세요? 시간 나면 한 번 들러요. 호호.”
“안녕하세요. 공단솥칼국수 사장 김정훈이라고 합니다. 일전에 한 번 들러주셨었죠? 정말 기뻤습니다. 아~ 하하하!”
거의 모든 사람들의 관심은 강지한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강지한은 그들 모두에게 밝게 웃으며 화답해 주었다.
특히 공단솥칼국수 사장님은 정말 반가웠다.
기계공고 근처에서 운영하고 있는 해물칼국수집이었는데, 강지한이 근래 먹어본 칼국수 중 가장 맛있었기 때문.
강지한이 당시 먹었던 것은 짬뽕칼국수였다.
1인분에 8,000원 하는 음식으로 2인분부터 판매하는 데 들어가는 해물들이 한마디로 혜자였다.
국물 또한 진하고 풍미가 깊은 것이 보통 내공으로 만든 게 아니었다.
면 또한 대단했다.
칼국수면에 흑임자를 넣어 족타 방식으로 만드는데 그 쫄깃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짬뽕칼국수의 레벨은 5.
하지만 사장님이 가격 신경 쓰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면 레벨6의 수준까지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아직 자리를 잡은 지 오래되지 않아 유명한 곳은 아니었으나 서서히 입소문이 나고 있는지라 곧 춘천의 맛집으로 자리 잡을 것 같았다.
아무튼 당시 칼국수를 먹으며 요식업계에 숨은 고수들이 많겠구나 하고 느낀 강지한이었다.
그러나 다른 요식업계 종사자들이 보기에는 강지한이야말로 하늘 위의 하늘이었다.
그들은 전부 자신의 주력 분야에서만 고레벨의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런데 강지한은 배틀 셰프에서 한식, 일식, 양식, 중식 등 전방위적인 활약을 하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게다가 분식집으로 시작해서 만두 가게에 이르기까지, 손을 대는 사업들이 족족 대박을 터뜨리고 있지 않은가?
아울러 지한 식당은 빠른 성공가도를 달리며 본점을 런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분점을 냈다.
지금은 사람이 너무 몰려 그도 모자라 3호점까지 내야 할 상황이었다.
이미 춘천의 한정식당이라고 하면 요식업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명옥정보다 지한 식당이 더 입에 오르고 있었다.
지금 대기실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이를 자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천명옥에게는 형식적인 인사만 건넨 참가자들이 강지한을 붙잡고서는 쉼 없이 입을 놀려대는 중이었다.
천명옥은 고고한 학처럼 살짝 떨어져서 그 광경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러나 미소 뒤로는 칼을 더욱 날카롭게 가는 중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행복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강지한에게 박혔다.
* * *
춘천에서 행해지는 행사 치고는 이례적으로 많은 시민들이 군집했다.
행사 무대 아래를 촘촘히 메운 사람들은 너도나도 즐거운 얼굴로 요리 대회를 즐기고 있었다.
지금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건 A조 열 팀의 예선 경합이었다.
천명옥은 A조에 속해 있었다.
그녀는 명옥정의 정식 한 상 메뉴를 만들며 개미떼처럼 모여든 시민들을 쭉 훑었다.
‘많이들도 오셨네.’
이토록 많은 관중들이 걸음을 하도록 한 원동력이 무엇인지 익히 알고 있는 그녀였다.
이것은 강지한의 힘이었다.
속에서 열이 끓었다.
강지한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춘천에서 최고는 자신의 아들이었고, 명옥정이었다.
그런데 강지한은 그 둘 모두를 위협하고 있었다.
아니, 백상준은 이미 강지한에게 한참 뒤로 밀려나 버렸다.
‘후우. 진정.’
요리를 만들 때 잡념이 들어가면 제대로 된 맛이 나오지 않는 법.
천명옥은 강지한에 대한 생각을 접어두고서 자신의 요리에 집중했다.
* * *
춘천 식문화 알림이 요리대회에 특별 초청된 문화예술계 심사위원 세 명은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눈앞에 놓인 참가자들의 요리가 하나같이 먹음직스러웠기 때문.
심사위원 중엔 구자승도 있었다.
다른 두 명의 심사위원은 구자승처럼 예술가 출신으로 변노민 의원의 친한 후배이기도 했다.
그리고 구자승과 마찬가지로 변노민 의원과 긴밀한 관계에 있으며 여러 가지 도움을 많이 받았다.
때문에 그들은 절대적인 변노민의 편이라고 봐야 했다.
“그럼 시식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세 명의 심사위원은 음식들을 음미해 나갔다.
그들이 예선전에서 변노민에게 받은 지령은 천명옥과 강지한을 무조건 본선 진출시킬 것.
그 외에는 본인들의 입맛대로 점수를 주어도 무관하다 했다.
지령을 받을 당시 구자승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찼었다.
‘강 사장 음식을 먹어보지 않았으니 그런 말이 나오지.’
강지한의 손맛을 봤다면 굳이 그런 지령을 내리지 않아도 무조건 예선을 통과할 수 있으리란 걸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하여튼 형님, 겉멋만 너무 들었소.’
변노민은 기본적으로 식대가 1만 원 이하로 떨어지는 식당엔 발걸음조차 하지를 않는다.
맛집이니 뭐니 소문이 나도 격이 떨어진다며 콧방귀만 뀌었다.
그도 어렸을 적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예술로 먹고살겠다며 종일 라면 한 봉지로 때웠던 청춘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 버렸다.
구자승은 떨떠름한 기분으로 음식들을 시식해 나갔다.
‘하나같이 맛은 있네.’
기분이 안 좋은 와중에도 입맛은 여전하니 어쩌면 그에겐 조각가보다도 이쪽 일이 더 맞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음식들은 춘천을 대표하는 식당의 대가들이 만든 것인 만큼 대부분 맛있었으나 역시 제일가는 건 천명옥의 요리였다.
‘크, 오래간만이구나, 이 맛.’
간만에 천명옥의 요리를 먹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녀의 음식은 같은 조 안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맛있었다.
‘천 여사. 그저 묵묵히 요리 하나만 보고 나아갔다면 이미 전국구로 이름을 날렸을지도 모를 터인데.’
천명옥의 요리 솜씨가 멈춰 버린 건 물욕에 눈을 뜨면서 부터였다.
명옥정은 첫 개시부터 나름 잘나가는 한식당이었다.
그것이 잘되어 5년간 무려 확장 이전을 세 번이나 했다. 마지막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3층 건물이었다.
그런데도 손님들을 다 소화할 수가 없어서 지금은 3호점까지 체인을 낸 상태였다.
그렇게 빨리 성장해 나가는 과정 언젠가부터 천명옥의 요리 솜씨는 벽에 가로막히기라도 한 듯 딱 멈춰 버렸다.
요리를 요리 하나로만 보지 않고 사업으로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번 A팀 최고는 천 여사야.’
구자승이 천명옥에게 100점을 주었다.
강지한의 손맛도 대단하지만 아직까지는 천명옥을 당해낼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만점의 절대 기준이 된 것.
A팀의 시식이 모두 끝나고 잠시 찾아온 휴식 시간.
구자승은 얼른 강지한의 음식도 맛보기를 바랐다.
* * *
‘……어라?’
B팀의 음식을 시식하는 시각.
강지한의 음식을 맛보는 구자승의 눈썹이 확 치켜 올라갔다.
‘아니 뭐, 이런.’
그것은 지금까지 맛보았던 강지한의 손맛이 아니었다.
그 이상이었다.
‘그새 또 발전을 했단 말이야?’
구자승은 자신의 딸과 함께 지한 식당을 방문한 뒤, 천명옥의 속셈을 알려준 이후로 지한 식당에 걸음하지 않았다.
어쩐지 스스로 껄끄러웠기 때문.
때문에 구나연은 따로 친구들과 지한 식당을 자주 방문했다.
그녀는 식당에 다녀온 이후 저번보다 더 맛있었다는 걸 구자승에게 어필했었다.
하지만 구자승은 자신의 딸이 강지한에게 너무 큰 환상을 가지고 있어서 혀가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강지한은 그 사이 또 한 번 레벨 업 해버렸다.
구자승이 놀라는 한편 신중하게 음식들을 음미해 나갔다.
그러고는 저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다.
‘천 여사의 점수를 너무 섣부르게 매겼다.’
강지한의 음식들은 천명옥의 음식들보다 뛰어났다.
한데 이미 천명옥에게 만점을 줘버렸으니 그보다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든 노릇.
‘천 여사보다 1점이라도 높아야 맞는 것일진대.’
이미 지나간 일이다.
게다가 가만 생각해 보니 예선이긴 하지만 강지한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줬다가는 변노민에게 괜한 의심을 살지도 몰랐다.
결국 구자승은 강지한에게도 똑같이 100점을 주었다.
그러면서 다른 심사위원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뭐가 제일 맛있는 것 같아?”
구자승과 함께하는 심사위원들은 하나같이 사이가 막역한 동생들이었다.
두 사람은 막힘없이 대답했다.
“강지한 씨 음식이 단연 돋보이는데요.”
“B팀에서는 으뜸입니다.”
“천 여사 음식이랑 비교하면?”
“으음…….”
“그게, 저…… 크흠.”
동생들은 시원하게 대답 못하고 서로의 눈치만 슬슬 살폈다.
강지한의 음식이 더 맛있지만 사실대로 말 못하는 티가 팍팍 났다.
“됐다. 말 안 해도 무슨 얘긴지 알겠다.”
동생들의 반응까지 보고 난 구자승은 시름이 깊어졌다.
차라리 천명옥의 손맛이 더 나았었다면 좋으련만.
강지한의 솜씨가 천명옥을 넘어서 버렸으니 본선 무대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변노민은 그에게 내일 본선에서 강지한의 음식에 최하점을 주라 일렀다.
다른 심사위원들 역시 같은 당부를 받은 상황.
‘이 동생놈들은 지체 없이 노민 형님 지시대로 하겠지.’
강지한에게 최하점을 주게 되면 대회를 관람하러 온 시민들은 분명히 의구심을 품을 테지만, 다음 날이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이라 변노민은 자신했다.
하지만 구자승은 줄곧 고민이 됐다.
변노민의 지시대로 따르자니 강지한에게 미안했고 양심이 아팠다.
또한 요리사의 세계가 실력으로만 경쟁하는 것이라 믿고 있는 딸을 볼 면목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소신껏 밀고 나가기에는 변노민의 눈 밖에 날 것이 두려웠다.
최악의 경우 춘천 땅에서 더는 조각가 일을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찌해야 하는가.’
예선 무대가 모두 끝난 이후.
구자승의 가슴속엔 심란함만 가득했다.
* * *
춘천 식문화 알림이 예선전을 치룬 강지한.
그는 본선 진출을 확정 받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지한 식당은 쉬는 날이 아니다.
그럼에도 강지한은 출근하지 않았다.
요리대회에 나가기로 한 날에는 출근을 못할 것이라고 이미 못을 박아둔 상황이었다.
어차피 이제 지한 식당 주방은 강지한이 없어도 잘 돌아간다.
그리고 슬슬 그가 주방에서 발을 빼줄 타이밍이기도 했다.
“후우, 고되다.”
대회라는 것이 그랬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신경을 쓰게 되는지라 치르고 나면 늘 녹초가 되곤 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도근한과 조정호는 아직 각각의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적막이 강지한은 달갑지 않았다.
‘설탕아, 보고 싶다.’
설탕이는 영화 촬영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며 더더욱 집에 오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갈수록 강지한은 설탕이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 갔다.
집에 있을 때면 눈을 감아도 떠도 설탕이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왕!
“너무 보고 싶으니까 이제 환청이 다 들리는구나.”
그런데,
왕왕!
환청이 아니었다.
저 멀리서 설탕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설탕아?”
강지한이 후다닥 달려 나가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매니저 이향숙과 함께 마당으로 들어서는 설탕이의 모습이 보였다.
“설탕아!”
강지한이 두 팔을 쫙 벌려 설탕이를 반겼다.
설탕이가 우다다다다 달려서 그런 강지한의 품에 폴짝 뛰어 안겼다.
“아이고 내 새끼! 진짜 보고 싶었어!”
왕! 헥헥!
설탕이가 강지한의 얼굴을 침으로 도배했다.
녀석의 꼬리는 그 어느 때보다 팽팽 돌아갔다.
저러다 꼬리로 날아가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 광경을 보며 이향숙이 살짝 질투를 했다.
“흥, 촬영장에서 계속 돌봐준 건 난데. 너무 반기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이향숙의 그런 목소리는 지금 강지한에게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는 현관 앞에서 설탕이와 마구 뒹굴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참을 그러고 난 뒤에야 정신을 차린 강지한이 이향숙에게 물었다.
“향숙아, 왜 연락도 없이 왔어?”
“놀래 주려고 했지. 오늘 설탕이 촬영 끝났지롱!”
“진짜? 그럼 이제 촬영장 안 가도 돼?”
“응.”
“아싸! 설탕아. 이제 너를 두 번 다시 촬영장에 보내지 않을 거야.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 줄 알아? 응?”
강지한은 설탕이의 배에 뺨을 마구 비벼댔다.
설탕이가 좋아서 몸을 배배 꼬았다.
이를 지켜보던 이향숙이 눈을 샐쭉하게 뜨고 고개를 저었다.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
“왜?”
이향숙은 메고 있던 가방에서 책자 세 개를 꺼내 강지한의 앞에 툭 던졌다.
“이게 뭐야?”
“설탕이 앞으로 들어온 시나리오야. 아직 영화는 개봉도 안 했는데 관계자들 사이에 소문이 퍼져서 그렇게 됐어. 설탕이도 영화는 계속 찍고 싶어 하는 눈치던 걸? 그치?”
왕!
“그리고 광고 계약 건도 두 개나 들어왔어. 촬영 끝나면 바로 일정 잡기로 했어. 설탕이도 이미 허락했고. 그렇지~?”
왕왕!
신나서 대답하는 설탕이를 강지한은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너 대체 어디까지 가려 그러니?”
그 끝이 어디인지 가늠도 할 수 없는 설탕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