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
Restaurant 212. 레벨 업 하는 강지한
사람이 한 가지 일에 몰두하게 되면 그와 관련된 것들이 꿈에서도 나온다.
레벨 업 시스템을 접하고 난 이후부터 강지한의 삶이 그랬다.
현실에서도 요리, 꿈을 꿀 때도 요리였다.
어떻게 하면 더 맛있고 수준 높은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했다.
새벽녘.
강지한은 꿈을 꾸고 있었다.
꿈속에서 그는 낯이 익은 듯하지만 정체 모를 노인과 담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래, 고민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구나.”
인자한 인상의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떻게 해야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지 고민입니다.”
“요즘 넌 순수하게 요리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보기엔 아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명옥정을 갔다왔었지.”
“네.”
“명옥정의 음식을 먹고 나서는 그보다 뛰어난 음식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자라났고.”
“요리사라면 당연한 욕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암, 그래야지. 욕심이 있어야지. 한데 욕심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느냐?”
“방향이라니요?”
“요즘의 네 욕심은 순수하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고 싶다기보다는 명옥정을 이겨 춘천 최고가 되고 싶다는 부분에 더 가까운 것 같더구나.”
“……!”
노인의 말을 듣는 순간 강지한은 벼락이 전신을 관통하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네가 만드는 음식이라는 것은 진정 순수하게 요리 하나만을 바라볼 때 한 단계 더 성장하게 될 것이다.”
말미에 노인이 호쾌하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강지한의 가슴을 시원하게 뻥 뚫어주는 것 같았다.
한 줄기 바람이 불었다.
노인은 바람을 타고 강지한의 앞에서 멀어져갔다.
“헉!”
그와 동시에 강지한은 꿈에서 깨 눈을 떴다.
그의 전신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정신을 차린 강지한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한식 요리 장인 고(故) 한정신의 지식이 충분한 경험치가 쌓여 레벨 업 합니다.]
[한식 요리 장인의 지식이 레벨 3이 되었습니다.]
[레벨 업으로 인해 전보다 더 많은 지식이 오픈됩니다.]
“레벨 업 했어.”
메시지와 함께 강지한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한식 관련 지식들을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고보니 꿈 속에서 봤던 노인의 얼굴을 몇 년 전 타계한 한정신 대가를 꼭 닮아 있었다.
강지한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환희를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주방에 선 그가 당장 채수와 육수를 우려내는 한편 기존의 비법 양념장과 소스들을 손보기 시작했다.
* * *
변노민은 문화재단 행사 관리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강지한이 춘천시 알림이 요리대회에 참가 신청을 했다는 것.
그에 급히 천명옥에게 연락을 취했다.
두 사람은 고급 일식집에서 늦은 시각 은밀하게 회동했다.
“의외네요. 이런 곳에 흥미를 보일 사람이 아닌데.”
술잔을 나누며 천명옥이 말했다.
변노민이 어깨를 으쓱였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입니다.”
“……그렇네요. 제가 너무 자만했어요.”
“아무튼 그럼 이제 어찌할까요?”
“참가 흔적을 없애는 건 무리겠죠?”
“그러려고 했는데 강지한이 본인이 참가했다는 사실을 SNS와 자신의 사업체 홈페이지 게시판에까지 업로드했더군요.”
“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그 녀석도 사업가인지라 홍보를 목적으로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긴. 규모가 큰 대회에 참가한다는 건 홍보에 쓰기 좋은 재료지요. 한데 변 의원님. 조금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제게 말씀하시길 강지한은 절대 대회에 신청서를 내지 못할 것이라 하지 않으셨나요?”
“그 부분은 송구스럽게 됐습니다.”
변노민이 슬쩍 고개를 숙여 보였다.
천명옥은 그의 자존심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었다.
이 정도의 액션을 취했으면 그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미안한 마음을 전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큰일하시는 분께서 쉽게 고개 숙이지 마세요. 괜히 제가 더 미안해지네요.”
“하하하. 역시 천 대가님의 마음은 바다와 같네요.”
“아무튼 플랜 A가 실패했으니 플랜 B로 방향을 틀어야겠네요.”
“어떻게 할까요? 예선에서 떨어뜨릴까요?”
변노민의 물음에 천명옥이 슬며시 미소 지으며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니요. 본선까지 올라오도록 두세요. 강지한은 춘천 시민들이 보는 자리에서 볼품없이 무너질 겁니다.”
“묘책이라도 있는지요?”
천명옥이 생각해 두었던 수단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이를 듣고 난 변노민이 상을 탁! 치며 감탄했다.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하하하하!”
“더는 실수 없이 진행해 주실 것이라 믿어요.”
“저 변노민입니다. 믿으세요. 하하.”
* * *
12월 10일.
강지한은 거의 밤을 꼴딱 새다시피 하며 지한 식당의 반찬과 찌개, 메인메뉴를 만들고 있었다.
동이 틀 무렵.
강지한의 앞에는 지한 식당의 한 상 차림에 나가는 반찬과 메인 메뉴 두 가지, 다섯 종류의 찌개가 완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메뉴들의 레벨은 일괄적으로 7이었다.
“됐다!”
강지한이 기쁨에 소리쳤다.
그에 잠들어 있던 도근한이 놀라 부엌으로 뛰쳐나왔다.
“뭐야? 뭔데? 응? 이게 다 뭐야.”
“일단 먹어봐.”
강지한이 잠으로 덜 깬 눈을 비비는 도근한에게 시식부터 권했다.
반강제로 수저를 건네받은 도근한이 툴툴댔다.
“밥이라도 주고 먹어보라고 하지, 좀.”
“너 종일 굶을래?”
“먹는다, 먹어.”
도근한이 가장 좋아하는 순두부찌개부터 한술 떴다.
그런데 평소 먹어왔던 강지한의 순두부찌개가 아니었다.
전보다 맛이 깊어졌고 감칠맛은 진해졌다.
안에 들어간 재료들 또한 각자의 존재감을 확실히 발휘하고 있었다.
“너 무슨 마법을 부린 거냐?”
“어때?”
“겁나 맛있다.”
“다른 것도 먹어봐.”
도근한은 강지한의 말대로 상 위에 놓인 모든 음식들을 종류별로 먹어봤다.
그 끝에 나오는 것은 깊은 탄식뿐이었다.
“하아아.”
“왜 한숨을 쉬고 그래?”
“…….”
도근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숨의 이유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아서’라는 걸 차마 입 밖으로 내놓기 힘들었다.
‘진짜 괴물이다, 이 인간은.’
함께 산 한 달 보름간의 시간.
그동안 강지한은 또 한 번 성장했다.
대체 그 무시무시한 성장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전부 다 맛있다. 전에 네가 만들었던 음식들보다 더 맛있어.”
“그래?”
“비결이 뭐야?”
강지한은 대답 대신 싱크대 위에 죽 늘어져 있는 각종 육수통과 양념장, 소스통, 그리고 천연조미료들을 가리켰다.
“각각의 국물에 들어가는 육수와 양념장을 새로 만들었거든.”
도근한이 그것들을 살피며 조금씩 맛을 봤다.
우선 채수가 두 종류에 육수가 세 종류였다.
전부 들어가는 재료와 끓여낸 시간들이 제각각이라는 걸, 맛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양념장과 소스 또한 큰 틀은 비슷하나 자잘하게 들어간 재료들을 달리해서 총 여덟 종류를 만들어 냈다.
전에는 육수는 만능 육수 하나를 썼고, 양념장과 소스는 각각 두 종류만 있었다.
천연조미료 또한 전보다 맛과 풍미가 좋아졌다.
강지한은 각 음식에 육수와 양념장, 소스, 천연조미료의 조합을 서로 달리해서 넣어 만든 것이다.
“대단하다.”
도근한이 혀를 내둘렀다.
“요리라는 게 깊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더 어렵더라.”
육수라는 것이 무조건 좋은 재료를 사용한다고 능사는 아니었다.
각각의 음식에 더 맞는 조합이 있고, 맞지 않는 조합이 있는 법이다.
아울러 어떠한 재료를 몇 시간 끓여내느냐에 따라 육수의 맛이 변한다.
또한 육수 자체로 먹었을 때는 영 별로인데, 그것이 다른 재료와 섞였을 때 확 달라져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일주일 동안 그런 모든 경우의 수들을 전부 조합해서 만들어 낸 결과물이 눈앞에 있었다.
강지한은 이제 천명옥을 넘어섰다.
* * *
지한 밥차가 정식으로 촬영장에 가서 장사를 하고 돌아온 이후.
그 소문이 방송가 사이에 파다하게 퍼져 나갔다.
그로 인해 밥차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었다.
독고진과 오만석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영화와 드라마, 예능판을 헤집고 다녔다.
12월 중순부터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예약이 잡혔다.
그렇다 보니 지한 반찬과 지한 밥차의 음식을 전부 책임져야 하는 독고진은 눈코 뜰 새가 없어졌다.
결국 독고진은 강지한에게 음식만 담당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도 독고진이 음식을 담당하면서 촬영장까지 따라다니기에는 시간적으로 무리가 있었다.
해서 독고진은 춘천에서 요리만 만들기로 하고, 오만석은 강지한이 새로 붙여준 직원과 함께 밥차를 몰기로 했다.
그렇게 독고진의 포지션이 제대로 정해졌다.
한편 강지한은 도근한과 지한 레스토랑의 메뉴를 완벽히 정하는 데도 박차를 가했다.
지한 레스토랑의 오픈 일은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12월 26일로 정했다.
그동안 퇴근을 하고 나서 꾸준히 레스토랑 메뉴들을 만들어보고 조금씩 수정, 보완을 거쳐 더욱 완성된 형태로 만들어 오던 동갑내기들이었다.
그러다 레스토랑 오픈을 열흘 앞두고서 드디어 모든 메뉴들을 픽스 하는 날이 오게 됐다.
새벽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완성된 레스토랑 메뉴들을 시식한 강지한과 도근한은 시선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지?”
“끝내준다.”
“이대로 가자.”
“오케이.”
메뉴가 확고히 되는 순간 퀘스트 관련 메시지가 나타났다.
[퀘스트 90% 클리어! 성공 보상이 지급됩니다.]
[직원 능력치 올(All) 레벨 업권을 세 개 얻었습니다.]
90%라는 수치를 보니, 이제 정말 오픈을 코앞에 둔 기분이었다.
* * *
지한 식당의 한 상 차림 가격이 9,000원에서 10,000으로 인상되었다.
그에 다른 추가 메뉴들 역시 가격이 1,000원씩 똑같이 인상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에 불만을 표하는 이는 없었다.
올라간 가격 이상으로 지한 식당의 음식 맛이 좋아졌기 때문.
강지한이 가격을 올린 건 더 좋은 맛을 내기 위해 들어간 재료비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지간 하면 가격 인상 없이 가고 싶었으나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아무튼 손님들이 언짢아하지는 않을까 우려했던 것과 달리 반응이 한결같이 좋았다.
돈을 더 올려도 먹으러 올 것이라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인터넷과 개인 SNS에는 지한 식당을 찬양하는 글들이 갈수록 더 많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울러 명옥정에 대한 얘기는 점점 더 줄어들어가고 있었다.
그에 따라 명옥정을 찾는 손님들의 걸음이 대거 지한 식당으로 이동해 버리는 추세였다.
이제는 지한 식당 3호점을 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올 정도였다.
매일매일이 강지한에게는 축제였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천명옥은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감내하고 있었다.
그러다 드디어 그날이 찾아왔다.
‘춘천시 식문화 알림이 요리대회.’
12월 22, 23일에 붉은색 동그라미가 쳐진 달력을 보는 천명옥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 있었다. 착 가라앉은 두 눈은 소름끼치도록 차가웠다.
‘강지한, 좋은 시간도 이쯤에서 끝내야겠네요.’
속에 칼을 품은 천명옥이 다시금 얼굴에 미소를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