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12화 (212/330)

# 212

Restaurant 211. 밝혀진 음모

“구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 너, 나연이구나. 잘 지냈어?”

두 사람을 알아본 강지한이 인사를 건넸다.

구자승은 원체 지한 분식 때부터 단골이었다. 그런데 함께 온 여인의 얼굴은 기억이 날 듯 말 듯 했다.

그러다 불현 듯 배틀 셰프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와! 저 기억해 주셨네요? 완전 감동.”

구나연이 폴짝 거리며 신나했다.

“영업 끝날 시간인데도 빈자리가 거의 없네, 허허.”

“장사 대박 잘된다.”

두 부녀는 혀를 내두르며 유지호의 안내에 따라 비어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구자승은 딸에게 주문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음, 그럼 나는 참치 계란말이로 바꾸고 순두부찌개랑 제육 먹을래요.”

“순두부도 좋은데 여기는 김치찌개랑 된장찌개가 정말 끝내줘, 나연아.”

“아, 그래요? 그럼 된장찌개.”

“좋아, 그럼 아빠가 김치찌개 시킬게.”

그렇게 두 사람의 주문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문을 접수한 직원들이 상을 준비하는 동안 구자승은 딸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하여튼 여기 음식들 하나같이 기가 막혀.”

“아빠 예전에는 무조건 명옥정만 갔었잖아.”

“그랬지. 근데 갈수록 여기 사장님 실력이 쑥쑥 늘더니 지금은 거의 대등하다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해졌지 뭐냐.”

“그럼 딱 정해봐. 명옥정이야, 여기야?”

“으음.”

구자승이 팔짱을 끼고 고민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애매하다. 일단 김치찌개랑 된장찌개만 놓고 보면 지한 식당이 압승이야. 근데 전체적인 음식들을 두고 평가해 봤을 때는 지한 식당이 아주 살짝 밀리는 감이 없잖아 있지. 아아, 이건 천 여사가 직접 만들어준 특별 정식을 먹었을 때의 얘기지만.”

천명옥은 가끔 특별한 손님이 찾을 때만 자신이 직접 식사를 만들어 내어주고는 했다.

식당에서 일반적으로 나가는 음식들은 기본적으로 그레이드가 한 단계 떨어진다.

많은 손님들을 매일같이 소화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주방에 천명옥 같은 사람들만 있었어도 얘기는 달라졌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명옥정이 더 낫다는 거네?”

“근데 말했듯이 그 차이라는 게 아주 미세해서 말이다. 천 여사의 음식은 사실 몇 년 전부터 쭈욱 정체되어 있거든. 근데 강 사장은 짧은 시간 쭉쭉 발전해 나갔단 말이지. 지금도 발전하는 과정에 서 있고. 이건 내 생각인데 다른 음식들의 수준이 아주 조금씩만 더 올라가면 춘천 제일가는 셰프라 할 수 있을 거다.”

구자승이 솔직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한데 그것을 강지한이 가지고 있는 능력 중 하나인 조언의 귀가 캐치했다.

[식당의 개선에 도움이 될 만한 얘기가 파악되었습니다.]

[조언의 귀가 손님의 얘기를 가져옵니다.]

[5번 테이블 남자 손님: 음식들의 수준이 아주 조금씩만 더 올라가면 춘천 제일가는 셰프라 할 수 있을 거다.]

참치계란말이를 만들던 강지한이 메시지를 읽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군.’

사실 이는 강지한 본인도 생각하고 있던 바였다.

그는 얼마 전, 짬을 내서 명옥정에 다녀왔었다.

그에 강지한이 찾아온 것을 알게 된 천명옥이 손수 만든 특별 정식을 내보냈다.

물론 강지한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명옥정의 음식 수준이 이 정도라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천명옥이 직접 만든 음식은 겉보기엔 다른 손님들이 먹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맛의 차이는 확연히 느껴졌다.

천명옥은 강지한이 그걸 모를 것이라 생각했다. 다른 손님들 역시 같은 음식을 먹고 있을 것이라 여기겠지 짐작했다.

재미있게도 강지한은 음식을 보는 순간 천명옥의 의도를 간파했다.

다른 손님들의 식탁에 올려진 음식과 자신의 식탁에 놓인 음식의 레벨이 차이가 났기 때문.

‘왜 굳이 이런 짓을?’

강지한은 천명옥의 저의가 궁금했다.

속으로 칼을 갈고 있는 천명옥과 달리 강지한은 그녀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그러다 한 가지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한글날 요리대회에서 백상준이 망신당했던 일 때문인가?’

춘천에서는 한글날 작은 요리대회가 개최되었었다.

거기에서 천명옥의 아들 백상준은 지한 식당 막내 조정호에게 지고 말았다.

그게 기분이 나빠 어른스럽지 못하게 행동했다가 안 좋은 기사들이 우후죽순 올라왔고 명옥정의 명성에도 누를 끼쳤다.

아무래도 그 일로 인해 쓸데없는 자존심을 세운 것이라고 판단한 강지한이었다.

강지한이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테이블 위 음식은 일괄적으로 레벨 5였고, 그의 테이블에 올라온 음식들은 메인 메뉴 세 가지와 된장찌개가 7, 나머지는 전부 6이었다.

지한 식당의 경우 7레벨인 음식은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둘뿐이었다. 그 외의 찌개와 메인메뉴, 반찬들은 레벨 6이었다.

한데 같은 레벨이라고 해도 미세한 차이는 있었다.

된장찌개의 경우는 지한 식당의 것이 더 맛있었다.

그리고 반찬들은 아직까지 천명옥의 손맛이 조금 우위에 있었다.

명옥정에 다녀온 뒤, 강지한은 명옥정보다 맛있는 음식들을 만들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종이 한 장 차이야.’

강지한은 생각했다.

요리에서는 종이 한 장 차이가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그 종이 한 장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었다.

* * *

“진짜 맛있어, 아빠.”

“둘이 먹다 둘 다 죽어도 모를 맛이지?”

“레알루다가.”

지한 식당의 음식을 접한 구나연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동안 요리 공부를 하면서 맛있다고 소문난 한식집들을 많이 다녀본 그녀였다.

물론 너무 비싼 곳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다.

학생의 주머니 사정으로 출입이 가능한 수준의 한식집만 찾아다녔다.

그 범위 안에서는 단연코 명옥정과 지한 식당이 최고였다.

물론 그녀가 명옥정에서 먹어봤던 음식도 천명옥이 직접 만들어 준 것이었다.

그냥 직원들이 만들어 온 음식을 먹었더라면 지한 식당을 더 쳐주었을 터였다.

두 사람이 식사를 끝냈을 땐 식당도 마무리할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손님들로 가득하던 홀은 점점 빈자리가 많아졌고 결국 구자승 부녀만 남게 되었다.

주방에 있던 강지한이 홀로 나와 두 사람에게 물었다.

“식사는 괜찮았어요?”

“언제나 최고지요.”

“저도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감사해요, 지한 오빠.”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강 사장님. 혹시 이번에 춘천에서 요리경연대회가 제법 크게 열리는 걸 아시는지?”

“아……. 듣긴 했던 것 같네요.”

“거기에 참가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글쎄요. 요즘 제가 여기저기 벌려놓은 사업이 많은지라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직원들이라도 한가하면 나가보라 할 텐데 하나같이 전부 정신이 없어요. 하하.”

“그러시군요. 음……. 그래도 춘천의 식문화 홍보와 요식업계의 발전을 위해 하는 일인데 지원해 보심이 어떨까 싶습니다.”

그리 말을 하는 구자승의 얼굴이 간절하기 짝이 없었다.

그저 요리대회 참가를 권하는 사람치고는 필요 이상으로 진지했다.

강지한은 직감적으로 뭔가 있구나 싶었다.

“혹시 제가 참가 안하면 안 될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하하, 아닙니다. 그저 춘천 시민들이 강지한 씨에게 거는 기대가 생각보다 크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오빠!”

구자승은 서둘러 계산을 하고 딸과 함께 식당을 나섰다.

강지한은 구자승의 마지막 말을 몇 번이고 곱씹어 보았다.

* * *

집으로 돌아온 강지한이 문화재단 홈페이지에 접속해 공지사항을 살폈다.

그러자 가장 위쪽에 ‘춘천시 식문화 알림이 요리대회 참가신청 공지 및 개최 일정’이라는 제목의 글이 보였다.

“보자. 접수 마감은 이번 주 일요일 자정까지. 참가 자격은 현 요식업 종사자여야 하며 내부 서류심사와 잠행단 시식 후 총20팀을 뽑아 12월 22일에 예선전, 23일에 본선을 치른다. 단, 서류심사에서는 식당의 인지도를 우선적으로 평가하며 잠행단은 맛과 청결, 친절도를 평가하지만 대회에서 다양한 음식을 선보이기 위해, 되도록 겹치지 않는 분야의 음식을 선정함으로써 서류심사와 잠행단의 점수가 높아도 불가피하게 탈락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참가자격에 대해 읽어 내려간 강지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한마디로 자기네들 입맛대로 참가자를 뽑겠다는 거 아닌가?”

뭔가 적어놓은 기준이 애매했다.

하지만 그것에 의문을 갖는 댓글은 없었다.

요식업계 종사자들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고 대부분의 시민들은 큰 관심이 없었다.

시민들 대부분은 요리사가 아니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때 강지한의 스마트폰으로 장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보낸 사람은 구자승이었다.

-강 사장님, 잘 들어가셨습니까. 좀 전에는 자리가 자리인지라 미처 속 시원히 얘기를 못했어요. 잘라 말하겠습니다. 이번 요리대회 꼭 참가하세요. 참가신청서를 넣었다는 스크린샷도 꼭 찍어두세요. 그리고 그걸 SNS나 지한 푸드 홈페이지에 업로드하세요. 천명옥 여사가 변노민 의원과 손을 잡고 강 사장님을 해하려 하고 있습니다.

‘뭐?’

강지한은 기함을 터뜨리고서는 메시지를 계속 읽어나갔다.

-그들은 강 사장님의 성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누가 옆에서 부추기지 않으면 대회에 참가하지 않을 거라더군요. 그렇게 되면 크게는 춘천시와 작게는 춘천시의 요식업계를 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자리에 강지한은 관심조차 내비치지 않았다는 얘기로 음해를 가할 것입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그 여파는 상당할 거예요. 변노민 의원은 그런 수작질에 능한 사람입니다. 작은 불씨는 산불처럼 거대해져 반드시 강 사장님의 모든 것을 태워 버릴 겁니다.

메시지를 읽어나갈수록 그 내용이 가관이었다.

대체 자신이 무엇을 그리 잘못했다고 이런 일들을 꾸미는 건지 모를 노릇이었다.

강지한의 가슴속에서 분노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만약 참가신청서를 낸다고 해도 그들은 흔적을 감쪽같이 지워 버릴 겁니다. 그러고는 강 사장님께서 지원을 한 적이 없다고 잡아떼겠지요. 때문에 증거를 남겨두라 이른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참가하게 되면 그 이후에 또 다른 수작을 벌이려 들겠으나 우선은 두 손 놓고 당하는 것보다는 부딪혀 보는 게 나을 것 같아 언질 드립니다.

메시지는 그렇게 끝이 났다.

강지한은 바로 답장을 보냈다.

-절 생각해서 보내주신 충고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구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어찌 알았으며 그들이 왜 제게 해를 가하려 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물음에 대한 답은 5분 정도가 지난 후 돌아왔다.

-저는 천 여사와 변노민 의원, 두 사람 모두와 친분이 있습니다. 이야기는 변노민 의원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강 선생님과 그들 사이에서 어느 쪽 손을 잡아야 하는지 선택의 기로에 섰고, 강 선생님을 택한 것뿐입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그들 편을 든 것처럼 연기를 하겠지만 말입니다. ……제가 이루어 놓은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비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변 의원은 돈을 먹고 천 여사의 부탁을 들어줄 뿐입니다. 일을 꾸민 건 전적으로 천 여사입니다. 그녀가 왜 이런 일을 벌이느냐?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으며, 지한 식당의 성장세가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강지한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도 춘천에서 충분히 잘나가는 한식당의 오너라는 사람이 할 짓이란 말인가?

-제가 구 선생님의 말씀을 전부 믿어도 되는 걸까요?

-믿고 안 믿고는 강 사장님의 선택에 맡기겠습니다. 하나, 제가 이러한 메시지를 보내기까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는 것만 알아주세요.

아무리 봐도 구자승이 헛소리를 늘어놓은 것 같지는 않았다.

강지한은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꼭 은혜를 갚겠다는 답장 메시지를 보낸 뒤, 생각에 빠졌다.

‘날 잡으려고 춘천시 의원이 문화재단을 움직였다고?’

사이즈가 컸다.

강지한이 그들의 음모를 알아냈다고 한들 혼자서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

거실에서 한참 시름하는 강지한을 방에서 나온 도근한이 보고서 툭 건드렸다.

“뭐하냐?”

“응? 아…… 그냥 생각.”

“딱 보니까 무슨 걱정거리 있네. 내가 너랑 같이 살면서 느낀 건데 일을 너무 혼자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어.”

“내가?”

“그래. 졸라 답답해. 가끔씩은 주변 사람들한테 고민도 털어놓고 도움도 청하고 그래봐.”

그 말을 듣자마자 강지한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두 사람이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