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11화 (211/330)

# 211

Restaurant 210. 지한 반찬과 지한 밥차

“어서 오세요, 지한 반찬입니다!”

“새로 오픈한 우리 지한 반찬을 찾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매장이 번쩍번쩍 빛납니다. 네, 어머니. 콩자반 굿 초이스입니다. 제가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어요. 그거 하나로 밥 두 공기 해치웠어요. 식탁에 놓아두시면 콩자반 하나로 행복해질 겁니다.”

손님들이 들어올 때마다 인사만 건네는 독고진과 달리 오만석은 입이 쉬지를 않았다.

따발총을 달아놓은 것처럼 나불나불 떠들어대는데 그게 시끄럽다기보다는 귀에 쏙쏙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어투와 억양이 편안해서 그런지 거부감이 없이 그저 재미있었다.

특히 어머니들에게는 취향저격이었다.

지한 반찬이 오픈한 지 사흘째.

이미 그 맛이 벌써 입소문을 타고 퍼졌다.

그래서 오픈 시간인 8시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는 현상이 벌어졌다.

일단 문을 열면 그때부터 파리 날리는 광경은 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너도나도 좋아하는 반찬을 선점하려고 몸싸움을 벌이기 일쑤였다.

그 바람에 반찬들은 오후 세 시쯤이 되면 매진이 되곤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오후 두 시 사십 분을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이미 준비한 반찬들이 모조리 팔려나갔다.

강지한이 정한 반찬 가게의 클로즈 시간은 오후 6시였다.

그런데 그때까지 매장을 지킬 필요가 없었다.

매일 같이 반찬의 양을 조금씩 늘려서 준비하는 데도 모자랐다.

그 바람에 퇴근이 빨라진 홀 직원만 신이 났다.

직원을 보낸 뒤, 텅 빈 매장 안에 독고진과 오만석, 두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형님, 진짜 볼 때마다 감탄스럽습니다. 어떻게 지치지도 않아요? 그렇게 떠들어대면 목 안 아파요?”

독고진의 말에 오만석이 사람 좋게 웃었다.

“하하. 내가 가장 잘하는 게 세 가지 있어. 힘쓰는 거. 운전 하는 거. 입 터는 거. 그것 말고는 다 젬병이야. 그러니까 잘하는 거에 집중해야지. 강 대표님이 내 재능 알아보고 꽂아주신 자린데, 무조건 열심히 해서 실망시켜 드리는 일 없게 할 거야.”

“물론 저도 그런 각오입니다.”

독고진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근데 형, 요리에도 제법 재능이 있던데요?”

지난 사흘간 독고진은 강지한이 붙여준 조리 담당 직원 두 명, 그리고 오만석과 함께 반찬을 만들었다.

그런데 오만석의 실력이 조리 직원 둘보다 못하지 않았다.

아니, 손에 익기만 하면 그들보다 훨씬 더 잘할 것 같았다.

“요리 쪽으로는 전혀 도움 안 될 거라고 그렇게 엄살떠시더니. 저 매번 놀라게 하시고.”

“아니 나 진짜 요리에 소질 별로 없었는데, 갑자기 손이 막 제멋대로 움직이더라고. 네가 잘 리드해 줘서 그런 거 아니야?”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형님이 본인 실력을 잘 몰랐었나 보죠.”

“그런가.”

오만석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기로 했다.

어쨌든 도움이 된다는 건 좋은 일이니까.

“이제 정리하고 나가자. 내일 장사하려면 부지런히 반찬들 밑준비 또 해 놔야지.”

“그래요.”

* * *

김상수가 강지한에게 밥차 관련 문의 전화를 받은 건 대략 보름 전이었다.

강지한은 진지하게 밥차 사업을 생각하고 있다며 김상수에게 이런저런 의견을 구했다.

김상수에게는 대단히 기쁜 소식이었다.

때문에 그는 촬영을 할 때만큼 열정적으로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첫째. 우선 맛있어야 한다.

스텝들의 입맛이 생각보다 까다롭다. 해서, 컴플레인이 몇 번 들어와 버리면 그 밥차의 생명은 끝났다고 봐야 했다.

둘째. 스텝과 배우들의 기분을 잘 맞출 줄 알아야 한다.

촬영장은 언제나 힘들고 고되다. 그래서 스텝과 배우들의 신경이 매우 날카로운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빠른 눈치와 유려한 말발로 식사 시의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인맥관리는 필수다.

밥차의 선정은 일반적으로 제작사의 피디나 제작팀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그들과의 유대감을 잘 쌓아놓을수록 다른 작품에서 다시 불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렇게 세 가지가 큰 맥락이었고 그 외에 자잘한 부분들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강지한은 그 모든 것들을 잘 숙지해서 독고진과 오만석에게 전달했다.

맛은 독고진이 책임져야 하고, 촬영장 분위기를 신경 쓰며 인맥 관리를 하는 건 오만석의 몫이었다.

강지한은 두 사람이 잘 해나갈 것이라 믿었다.

12월의 둘째 주 화요일.

드디어 그들에게 밥차 예약이 들어왔다.

첫 개시 무대는 당연히 설탕이의 촬영장이었다.

아직 아무런 인맥이 없기에 거기 말고는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밥차를 몰고 가야 하는 날짜는 12월 6일, 목요일.

독고진은 강지한의 도움 없이 혼자서 메뉴를 구성해 나갔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강지한이 넘겨준 레시피 안에서만 메뉴를 잡았다.

괜히 창작 요리를 한다고 까불다가 피를 보기는 싫었다.

반찬 가게를 운영해 나가며 밥차의 음식도 준비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바쁘게 지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 * *

경기도 남양주시의 시골 마을 검단리.

그곳에서는 여전히 ‘설탕이 온다’의 촬영이 한창이었다.

이제 촬영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설탕이의 NG 없는 무결점 연기 덕분에 예상했던 촬영 일수보다 한두 달 가까이가 줄었다.

그 말은 곧, 제작비가 훨씬 세이브되었다는 얘기다.

아울러 출연하는 모든 배우와 스텝들의 노고 역시 덜게 되었다.

돈과 개인적인 시간을 아끼고 피로를 덜 수 있게 해주었으니 설탕이는 그야말로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다.

녀석을 은근히 질투하던 이정준 배우도 지금에 와서는 열렬한 설탕이 추종자가 되었다.

삐딱한 마음을 지우고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설탕이의 연기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빛이 났던 것.

설탕이는 감독의 요구를 완전히 이해하고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감정선을 그대로 표현해냈다.

본래 연기라는 것이 상대 배우가 배역에 완전히 몰입해 있을수록 본인도 덩달아 몰입되는 법이다.

설탕이는 단 한 번도 몰입하지 않은 적이 없다.

덕분에 설탕이와 함께 연기를 하는 모든 배우들은 그 어느 때보다 완벽히 자신의 캐릭터와 동화되어 감정선을 잘 잡아 나갈 수 있었다.

이정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몰입이 깊어지니 저도 모르게 점점 연기가 늘어갔다.

그게 전부 설탕이 덕이라는 걸 이정준은 알았다.

때문에 녀석이 예뻐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이정준은 설탕이와 함께 연기를 하는 중이었다.

신의 내용은 극중 할아버지와 손주에게 못된 짓만 일삼던 이정준이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며 두 사람 앞에서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흐윽. 흑.”

이정준의 눈에서 마치 안약이라도 넣은 듯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모습이 마치 연기가 아니라 실제 같았다.

허벅지 위에 올려둔 그의 손등에 뜨거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제 설탕이가 액션을 할 차례.

녀석이 이정준에게 슬며시 다가와 그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손등에 떨어진 눈물을 할짝할짝 핥아주었다.

마치 이정준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준다는 듯.

“설탕아…….”

순간 이정준은 정말 자신의 영혼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설탕이의 몸을 살며시 끌어안았다.

그것은 사전에 약속된 적 없는 액션이었다.

한마디로 애드립이었는데, 이 경우 상대 배우가 당황해하면 애써 잘 찍어놓은 신을 통으로 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설탕이는 마치 그게 합의된 연기라도 되는 양, 자연스럽게 이정준의 품에 안겼다.

그러더니 한술 더 떠서 그의 뺨을 핥아주기까지 했다.

그러자 이정준의 울음소리가 더욱 구슬퍼졌다.

촬영장 밖에서 이를 지켜보는 배우와 스텝들의 눈가에도 눈물이 촉촉이 맺힐 정도였다.

김상수 역시 붉게 충혈된 눈으로 모니터를 확인하다가 크게 소리쳤다.

“컷! 오케이!”

오케이 사인이 떨어진 이후에도 이정준은 감정에서 한참 동안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그의 주변으로 다른 배우들이 몰려들었다.

“정준 씨, 연기 진짜 감동이었어요.”

“오빠, 많이 늘었다, 정말.”

“형아! 최고예요!”

갑작스런 동료들의 칭찬에 눈물을 훌쩍이던 이정준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때 스텝들에게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정준 씨, 멋져요!”

“진짜 가슴 절절해지는 연기였습니다!”

“브라보!”

이정준은 난데없이 쏟아지는 환호가 당황스러웠다.

자신의 연기에 촬영 현장에서 이토록 열광적인 반응이 일었던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

“정준 씨!”

여전히 정신이 없던 와중 김상수가 터벅터벅 다가와 이정준을 와락 끌어안았다.

“가, 감독님?”

“정준 씨, 나 오늘 정준 씨 정말 다시 봤어요. 정준 씨가 이 장면 다 살렸어. 정말 고마워. 앞으로도 이렇게만 부탁할게요.”

김상수가 진심 어린 말을 건네며 이정준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여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감독님!”

“그럼 모니터 한 번 해볼까요, 우리?”

“넵!”

이정준은 지금 이 상황이 전부 꿈만 같았다.

그가 김상수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런 그의 곁을 설탕이가 따라붙었다.

“응?”

이정준이 설탕이를 바라봤다.

길지 않은 다리로 통통 튀듯 가볍게 나아가는 걸음걸음과 봄바람처럼 살랑거리며 흔들리는 토실토실한 꼬리.

‘아이, 이 자식 되게 귀엽네.’

설탕이의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러웠다.

이정준이 설탕이를 저도 모르게 품에 안았다.

설탕이는 조금의 거부감도 없이 그런 이정준의 품에 편안히 안겨들었다.

그러고는 모니터 앞에 놓인 자신의 지정 간이의자에 설탕이와 함께 앉았다.

김상수가 바로 모니터를 시작하며 말했다.

“아 죽이다, 정말. 그림 예술이다. 정준 씨, 본인 표정 연기 보이지? 나 소름 돋았어요. 스텝들도 다 울었어. 그치? 지금 다시 보면서도 울컥한다.”

“감사합니다.”

“내가 감사하지. 내 영화 이렇게 잘 살려주는데. 하하.”

김상수의 입에서 나오는 계속된 칭찬들에 감동받은 이정준이 울컥했다.

그의 손은 저도 모르게 줄곧 설탕이의 몸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때였다.

“밥차 곧 도착한답니다!”

하동만 조감독의 상기 된 음성이 들려왔다.

그에 조건반사처럼 모든 스텝들의 입에 군침이 살살 돌았다.

“그래? 다들 식사하고 갑시다.”

얼마 안 있어 지한 밥차가 도착했다.

강지한이 큰돈을 들여 직접 구입한 밥차는 일전에 끌고 왔던 것보다 더욱 크고 멋졌다.

밥차가 적당한 공간에 주차를 했다.

그리고 차에서 독고진과 오만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대했던 강지한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일순 사람들의 눈에 실망한 기색이 어렸다.

이를 알아차린 오만석이 얼른 입을 열었다.

“여러분~ 실망하지 마세요. 전부 사장님 레시피따라 그대로 만든 음식입니다. 사장님 손맛을 고스란히 담아왔습니다.”

“아, 그렇다면 뭐.”

“깜짝 놀랐네.”

비로소 안심한 사람들을 뒤로 하고 독고진과 오만석이 얼른 배식 준비를 해나갔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은 이미 줄을 서서 배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자, 맛있게 드세요!”

배식 준비가 끝나자 오만석이 기분 좋게 소리쳤다.

사람들은 설레는 맘으로 음식들을 뷔페 접시에 담아, 하나둘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기대 가득한 얼굴로 식사를 해나갔다.

독고진과 오만석은 초조하게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아~! 이거지. 역시 맛있다.”

“하아, 진짜 지한 밥차를 접했던 게 큰 실수였어요. 다른 밥차 음식은 성에 차지를 않아.”

“나는 분식집 음식도 못 먹겠다 이제.”

“재료를 특별한 걸 쓰지도 않은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다르지?”

“사장님들! 맛있습니다!”

“짱이에요!”

다행스럽게도 사람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배우와 스텝들 모두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김상수 역시 음식 하나를 맛볼 때마다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아자!”

독고진과 오만석이 힘차게 하이파이브를 맞췄다.

지한 밥차의 첫 신고식은 성공적이었다.

* * *

지한 식당이 마무리되어 가는 시각.

“강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하하.”

“지한 오빠! 오래간만이에요. 저 기억하세요?”

식당의 홀로 반가운 얼굴 한 명과 낯익은 얼굴 한 명이 들어섰다.

구자승과 구나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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