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8
Restaurant 207. 미식에 빠진 조각가
11월 24일 목요일.
오늘도 서정혜는 강지한보다 먼저 식당에 나왔다.
누가 보든 안 보든 그녀는 자신의 위치에서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강지한은 그런 서정혜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요리의 레벨이 9라.’
곧 지한 레스토랑이 오픈하면 지한 식당에 있던 누군가는 강지한의 역할을 대신해야 했다.
현재 주방에 있는 사람은 한지민과 서정혜, 강희주 세 명이었다.
강희주는 애초에 보조로만 일을 할 목적으로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제외.
남은 후보는 한지민과 서정혜 두 사람이었다.
‘어디 지민이는?’
강지한이 오래간만에 한지민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한지민의 능력치>
직급: 지한 식당 주방 직원
등급: B+
능력: 요리 LV 11, 설거지 LV 7, 서빙 LV 9, 청소 LV 7, 회계 LV 4, 화술 LV 3
정직도: 100/100
신뢰도: 100/100
종합 평가: 각 능력의 잠재력이 뛰어나며 배움이 빠르다. 특히 요리의 경우 창의력만 길러진다면 대성을 이룰 수 있다. 게으르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정직하다.
‘역시.’
강지한이 속으로 감탄했다.
그녀의 요리 레벨은 11이었다.
처음 지한 식당에 왔을 때는 6이었는데 짧은 시간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낸 것.
종합 평가에 적혀 있는 것처럼 배움이 빠른 타입이었다. 게다가 강지한에 대한 신뢰도는 98에서 100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울러 전에는 없었던 설거지와 화술이라는 능력이 개화되었다.
서정혜와 비교해 봤을 때 한지민의 능력이 압도적으로 좋았다.
‘게다가 더 오래 근무하기도 했지.’
강지한은 자신의 후임을 한지민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요리 레벨11로는 좀 부족한 감이 있었다.
자기 몫을 차고 넘치게 하고는 있었으나 주방을 이끌어가기는 무리였다.
무엇보다 주방 터줏대감인 강희주는 은근히 기가 셌다.
본인보다 요리 실력이 월등히 높지 않으면 말을 잘 들을 타입은 아니었다.
때문에 한지민의 요리 레벨을 더욱 높일 필요가 있었다.
현재 강지한에게는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요리 능력치 1레벨 업권이 세 개 있었다.
강지한은 그것을 한지민에게 투자했다.
[한지민의 요리 레벨이 14가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됐겠지.’
요리 레벨 14면 최근 확인한 용성우의 레벨과 동급이었다.
용성우는 레벨이 아직 10도 되지 않았을 때 지한 분식을 이끌어 나갔다.
물론 그건 이리나와 고중만처럼 든든한 지원군들이 뒷받침을 해준 데다가 지한 분식의 요리 레벨이 지한 식당보다 낮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한지민은 입장이 다르다.
강희주, 서정혜는 좋은 사람들이지만 지한 분식 직원들처럼 끈끈한 가족애 같은 것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녀의 요리 레벨을 압도적으로 높여놓은 것이다.
한데 그것이 생각지 못했던 부분에서도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퀘스트-도근한이 요리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퀘스트 진행도-20/100]
[퀘스트 20% 클리어! 성공 보상이 지급됩니다.]
[직원 요리 능력치 1레벨 업권을 두 개 얻었습니다.]
‘럭키네.’
강지한이 자신의 후임을 정하고 투자를 했다는 것은 그만큼 지한 레스토랑에 관한 일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것은 지한 레스토랑을 떠날 날을 위한 대비였다.
따라서 퀘스트의 진행도가 올라간 것.
강지한은 새로 얻은 아이템을 아껴 둔 뒤,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10시 55분.
이제 식당을 오픈해야 할 시간이었다.
유지호가 식당 문을 열어 손님들을 안으로 들였다. 이어 주방으로 주문이 쇄도했다.
“오늘도 열심히 해봐요, 언니.”
한지민이 서정혜를 독려했다.
“응. 확실하게 받쳐줄게.”
서정혜가 빙긋 웃어 보였다.
그리고 들어온 주문을 능숙하게 처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합은 강지한이 생각했던 것보다 잘 맞았다.
성실하고 우직한 성정이 비슷하게 닮아서 그런 모양이었다.
그 만큼 빠르게 친해졌고 금방 언니 동생 하는 사이가 됐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니 강지한은 더욱 마음이 놓였다.
‘한 번 시험해 봐?’
강지한은 요리 레벨이 14까지 오른 한지민이 어디까지 할 수 있나 궁금해졌다.
그래서 폭탄선언을 했다.
“오늘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네?”
“그게 무슨 말이래요?”
주방 직원들이 놀라 강지한을 바라봤다.
“지민이가 내 역할 대신해 보자.”
“제가요?”
“응. 어차피 언젠가는 그렇게 해야 할 상황이 올 테니까 지금 미리 연습해 보는 거야.”
“그렇지. 연습은 필요하지.”
강희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확실하게 받쳐줄게. 믿어봐.”
서정혜가 포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에 용기를 얻은 한지민이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해볼게요, 선생님!”
“좋아.”
* * *
기대 이상이었다.
한지민은 본인 스스로도 놀랄 만큼 훌륭하게 강지한을 대신하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손이 정교하고 빨랐었나?’
손뿐만이 아니었다.
미각과 후각도 훨씬 예민해진 것 같았다.
그로 인해 음식들의 간이 전보다 완벽하게 잡혔다.
그녀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메인 메뉴의 레벨은 5와 6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물론 강지한이 만든 천연조미료와 비법 소스, 육수, 양념에 비밀 레시피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없었어도 족히 레벨 4 이상의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수준까지 오른 한지민이었다.
‘조만간 일률적으로 6레벨까지 오르겠네.’
그녀가 만든 음식들을 확인한 강지한이 만족스러워했다.
한지민은 자신의 요리에 계속해서 놀라는 중이었다.
* * *
집으로 돌아온 강지한과 도근한은 곧 오픈 예정인 지한 레스토랑의 새 메뉴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사실 어제까지는 도근한이 기존에 팔던 메뉴들을 살짝만 수정, 보완해서 내놓을 셈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다른 레스토랑과 전혀 차별화가 되지 않아 확 바꾸기로 한 것.
우선은 어떠한 음식을 주력으로 팔지부터 정해야했다.
강지한이 먼저 아이디어를 냈다.
“패밀리 레스토랑처럼 스테이크랑 파스타, 볶음밥. 이렇게 세 가지에 주력하면 어떨까? 물론 식전 에피타이저랑 수프 같은 것들도 신경 좀 쓰고.”
“나쁘지는 않은데 그 메뉴들로 차별화를 두기가 쉬울까 싶다.”
“파스타는 해결할 수 있어.”
“어떻게?”
“명란냉파스타를 넣자.”
“오.”
얼마 전, 강지한은 도근한에게 명란냉파스타를 만들어 주었었다.
그리고 이를 먹어본 도근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정말 새롭고 맛있는 파스타였기 때문.
“내가 만들던 기존 명란냉파스타에 바질페스토를 아주 살짝만 섞어주면 향이 기가 막힐 거야.”
강지한의 말을 들으면서 머릿속으로 그 맛을 바로 조합한 도근한이 군침을 꿀꺽 삼켰다.
“죽이겠다, 그거.”
“그리고 하나 더. 내가 명란소스라는 걸 개발했는데, 한 번 볼래?”
“명란소스? 명란냉파스타랑 뭐가 다른 건가?”
강지한이 씩 웃더니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마늘과 베트남 고추를 썰어 팬에 넣고 올리브 오일을 넉넉히 부어 약한 불에서 끓였다.
마늘과 고추의 풍미가 충분히 오일에 퍼졌을 때 불을 끄고 오일만 채로 걸러냈다.
그것을 한소끔 식히면서 명란젓의 알을 바른 뒤 계란 두 알을 노른자만 걸러냈다.
이후, 식은 오일에 명란젓과 계란 노른자를 넣어 마구 섞었다.
그렇게 하니 그 질감이 마치 마요네즈와 비슷했다.
강지한은 그것을 도근한에게 내밀었다.
“이게 명란소스야. 먹어봐.”
도근한이 손가락으로 찍어 명란소스를 맛봤다.
순간 맛의 신세계가 펼쳐졌다.
“와, 이거 장난 아니네.”
입에 소스가 들어오자마자 확 하고 풍기는 풍미가 그만이었다.
아울러 생각 못했던 재료들의 조합이 오묘하면서도 풍부한 맛을 가득 안겨주었다.
마치 진한 치즈를 먹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게다가 명란의 알이 톡톡거리며 씹히니 식감 또한 재미있었다.
“이걸 파스타 소스로 쓴다는 거야?”
“응. 비빔 파스타를 만드는 거지. 볼 안에 익힌 파스타 면이랑 각종 채소, 그리고 그 소스를 넣어서 비비는 거야.”
“이건 냉파스타가 아니라 그냥 뜨겁게 가는 거지?”
“그렇지.”
“이것도 먹히겠는데. 페페타마 같은 느낌도 살짝 날 것 같고.”
페페타마는 알리오올리오에 날계란을 풀어 열기에 살짝 익혀 비벼 먹는 일본식 파스타다.
“이거 무조건 맛있다.”
강지한이 자신했다. 이미 맛을 그려본 도근한도 확신에 차 고개를 끄덕였다.
“이 두 가지만 해도 메리트는 충분할 것 같다.”
“응. 파스타 대표 메뉴로 내걸고 오일, 토마토, 로제, 크림 파스타도 하나씩 만들어 넣어. 그리고 스테이크는…… 사실 맛으로는 흠 잡을 부분이 없어서 뭘 추가해야 할지 감이 좀 오질 않는다.”
“소스로 잡을게. 어디서도 만들 수 없는 나만의 소스를 만들어 낼 테니까 걱정 마라.”
“그게 가능하다면 좋고. 아, 플레이팅도 조금 약한 것 같아. 스테이크 집이라고 하면 보통 연인이나 여자 그룹이 많이 오잖아. 그럼 눈으로 보는 맛도 있어야 돼.”
그 말에 도근한이 큰 충격을 먹은 얼굴로 입을 쩍 벌렸다.
“……내 플레이팅이 약하다고?”
“응. 지영 누나가 하는 거 보면 넌 한참 멀었다. 내일부터 가서 배워.”
“……알았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은 못했던 도근한이었기에 욱하는 마음도 있었으나 배우는 입장에서 무조건 숙이고 들어가야 했다.
자존심이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걸 이미 오래전 강지한으로 인해 깨달은 그였다.
“아, 그 메뉴도 추가하자. 배틀 셰프에서 선보였던 고추냉이 소스 스테이크.”
“안 그래도 그거 넣으려고 했다.”
“됐네. 그럼. 그걸 스테이크 대표 메뉴로 걸어. 광고 효과도 있으니까. 맛은 말할 것도 없을 테고.”
이제야 비로소 지한 레스토랑의 골격이 갖추어졌다.
나머지 자잘한 메뉴들을 정해서 살을 붙이면 80퍼센트 이상 완성된 그림이 그려질 것 같았다.
그때였다.
[퀘스트-도근한이 요리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퀘스트 진행도-50/100]
[퀘스트 30% 클리어! 성공 보상이 지급됩니다.]
[직원 요리 능력치 1레벨 업권을 세 개 얻었습니다.]
[퀘스트 40% 클리어! 성공 보상이 지급됩니다.]
[직원 능력치 한계 돌파권을 얻었습니다.]
[퀘스트 50% 클리어! 성공 보상이 지급됩니다.]
[직원 능력치 한계 돌파권을 두 개 얻었습니다.]
‘오.’
메뉴의 토대만 잡아 놓은 것이었는데 퀘스트가 무려 50퍼센트까지 차올랐다.
지한 레스토랑의 오픈을 위한 준비까지 이제 반 정도 왔다는 얘기였다.
“건물 리모델링은 어찌 되어가고 있어?”
강지한이 물었다.
“간판은 이미 새로 달렸고 내부 인테리어 작업 거의 끝나가. 다음 주면 끝날 거야.”
“오케이.”
강지한은 도근한의 스테이크 하우스를 레스토랑으로 바꾸기로 하자마자 가장 먼저 간판부터 새로 달라고 했다.
‘지한 레스토랑’이라는 이름의 간판이 우선 달려 있으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
이것은 곧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되는 한 달 동안 절로 광고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도근한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었다.
이건 레벨 업 시스템과는 별개로 강지한 스스로 경영자로서의 수완이 좋아지고 있다는 걸 뜻했다.
“그럼 오늘 얘기한 것들부터 한 번 만들어보자.”
도근한이 두 팔을 걷어붙였다.
* * *
춘천에서 나고 자란 조각가 구자승은 요즘 지한 식당에 푹 빠져 있었다.
그는 명실상부 강지한의 열렬한 팬이었다.
강지한의 음식은 먹으면 먹을수록 식욕을 왕성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그렇다 보니 전국의 맛집이란 맛집은 다 섭렵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자라났다.
요즘에는 조각을 하는 시간보다 맛집에서 음식을 먹고 그 맛에 대해 SNS에 평론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한데 예술가라 그런지 글줄이 제법이었다.
그가 SNS에 올린 글들은 그의 조각품 사진을 올렸을 때보다 더한 반응을 끌어냈고 급기야 요즘에는 작은 요리 관련 서적에서 에세이를 연재하는 중이었다.
본업인 조각은 뒷전이고 요리평론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 그였다.
그런 구자승에게 대학 선배이자 춘천에서 가장 성공한 예술인인 변노민 의원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구자승은 변노민을 잘 따르는 후배였기에 주저 없이 그날 밤 술자리를 가졌다.
그런데 변노민의 입에서 의외의 제안이 흘러나왔다.
“자승아, 이번에 내가 문화재단 이사장 옆구리 찔러서 제법 큰 요리대회를 개최하려고 한다. 너 거기 심사위원으로 나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