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
Restaurant 206. 레시피 엄수
독고진의 집 거실.
독고진과 강지한의 앞에 놓인 상에는 여러 가지 반찬과 음식들, 그리고 찌개 몇 종류가 차려져 있었다.
“일단 주신 레시피대로 해보는 데까지 해봤습니다.”
강지한이 독고진에게 여러 가지 음식들의 레시피를 넘겨주고 난 뒤 일주일.
그동안 독고진은 레시피에 충실해서 여러 가지 음식들을 열심히 만들어 보았다.
요리에 필요한 재료들은 스스로 공수했다.
다만 특제 양념과 비법 소스, 육수 같은 것들은 지한 식당이나 분식에 가서 조금씩 받아오곤 했다.
거기에 대한 비법은 레시피에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
그 노력의 결과물을 오늘 강지한의 앞에서 선보이게 됐다.
강지한은 밥차에 들어갈 반찬의 커트라인을 4, 메인 메뉴의 커트라인을 5로 잡았다.
그 정도만 해도 기존의 다른 밥차들보다 훨씬 뛰어난 맛을 자랑했다.
독고진이 만들어 온 음식들 중 반찬은 대부분 커트라인을 넘겼다.
그러나 3으로 떨어지는 것이 두 가지 섞여 있었다.
콩자반과 오징어채볶음이었다.
둘 다 기본 중의 기본이랄 수 있는 반찬이지만 만드는 것이 은근히 까다로웠다.
간장에 설탕을 넣고 콩을 조려서 만드는 콩자반은 설탕이 필요 이상으로 들어가면 심하게 꾸덕해지고, 너무 적게 들어가면 양념이 콩에 달라붙지 않으며 싱거워진다.
그리고 콩을 너무 조리면 힘없이 물렁해지는데, 그렇다고 너무 짧게 조리면 콩이 딱딱해진다.
그 적정선을 지키는 것은 능숙해지지 않는 이상 힘든 일이었다.
오징어채볶음 역시 마찬가지의 경우였다.
‘그래도 이 정도면 뭐.’
이것은 감의 문제이기 때문에 독고진이 금방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메인 요리들은 레벨 4와 5의 수준을 왔다 갔다 했다.
“진아.”
“네.”
“사흘 뒤에 한 번 더 보자. 이거랑 이거. 그리고 저거. 반찬은 이렇게 두 개. 더 연습해 와.”
강지한은 음식의 맛을 보지도 않고 몇 가지를 지적해 연습해 오라 일렀다.
그에 독고진의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그가 지적한 것들은 스스로도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음식들이기 때문.
‘어떻게 맛도 안 보고 알았지?’
독고진이 강지한을 귀신 보듯 쳐다봤다.
강지한이 나가고 난 뒤, 독고진은 만들어 놓은 요리들을 하나하나 냉장고에 보관하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진짜 대단하셔. 레시피만 그대로 따라했는데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독고진이 혼자 노력했으면 몇 년이 지나도 이런 음식들을 만들어내 놓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강지한이 적어준 레시피에 충실했더니 음식들의 수준이 확 올라갔다.
정말이지 우러러 볼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 * *
한 주의 시작을 알리는 월요일, 점심 피크 타임의 지한 식당 주방.
전덕진과 포지션을 바꾼 서정혜는 이제 완벽하게 일에 적응했다.
기본 베이스가 되는 비법 소스나 육수 등을 만들어 놓으면 이제 강지한이 없어도 스스로 비슷한 맛을 낼 수 있을 정도였다.
특수 능력 한식 특화 덕분이었다.
게다가 부지런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녀는 주방에 가장 늦게 들어왔으나 실력 하나만 보면 부주방장 급이었다.
해서 식당 열쇠와 도어락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보안 장치에 그녀의 지문까지 추가로 등록해 놓았다.
이후 서정혜는 강지한보다 일찍 출근해서 음식들을 준비하고는 했다.
손이 빨라서 반찬들 또한 전보다 많은 양을 준비하는 게 가능했다.
덕분에 점심 피크 타임이 시작되면서 전부 팔려 버리는 반찬이 이제는 저녁 시간대에도 판매가 가능해졌다.
그런 서정혜의 눈부신 성장을 보며 강지한은 이런 생각을 했다.
‘반찬이 이렇게나 잘 팔리는 걸 보면 반찬 가게를 조그맣게 따로 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마땅한 사람만 있었어도…….’
순간 강지한의 머릿속에 독고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고민과 함께 바로 답이 나왔다.
* * *
“여기 어때?”
늦은 밤.
강지한과 함께 작은 매장을 찾은 예경천이 내부를 보여주며 물었다.
반찬 가게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자마자 강지한은 예경천에게 연락을 취했다.
괜찮은 매물이 있겠냐는 물음에 예경천은 바로 몇 군대 리스트를 뽑아 놓았다.
강지한이 말한 조건에 부합하는 매물이 세 곳 정도였는데, 지금 들른 곳이 마지막 매물이었다.
건물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살펴 본 강지한이 예경천에게 말했다.
“두 번째로 봤던 곳이 제일 좋겠네요. 지한 식당이랑 가장 가깝기도 하고요.”
“역시 보는 눈이 제법이야, 강 사장.”
두 번째로 본 매물은 지은 지 10년 정도 된 20평 매장이었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지한 식당과 30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리모델링이야 어느 건물을 들어가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강지한은 두 번째 매물을 택했다.
“계약은 내일 4시쯤 어때?”
“네, 좋아요.”
“오케이. 바로 연락 넣어 놓을게요.”
말을 하는 예경천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어렸다.
그는 일을 시원시원하게 진행하는 강지한이 참 좋았다.
게다가 건물 보는 눈도 있고, 손대는 사업마다 망하는 법이 없으니 그것 또한 멋졌다.
‘이런 청년이 우리 소린이 남편감이라면…….’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던 예경천이 머리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니지. 아직 안되지. 암. 그럼. 아직 멀었지.’
혼자 웃었다가 흐뭇해했다가 정색했다가 하는 예경천의 표정 변화가 재미있었다.
그는 꿈에도 몰랐다.
금지옥엽 같은 자신의 딸이 이미 강지한과 연애 중이라는 사실을.
* * *
11월 21일 수요일.
독고진과 약속한 사흘이 지났다.
식당이 쉬는 날이기에 강지한은 일찍부터 독고진의 집으로 향했다.
딱히 할 일이 없는 도근한도 함께였다.
조정호는 같이 오지 못했다.
지한 만두의 휴일은 토요일이었기 때문.
밥차를 끌고 영화 촬영장에 갈 때는 밑 준비를 완벽하게 해놓고 전덕진에게 주방을 맡겼었다.
한데 전덕진이 홀로 주방을 맡는 건 역시 힘든 일이었다.
다음 날 무릎을 자꾸 주물거리는 모습을 보고나서 조정호는 두 번 다시 주방을 비우지 않기로 했다.
“만들어 봐.”
주방에 음식에 필요한 재료들을 늘어놓은 독고진에게 강지한이 말했다.
독고진은 두 사람이 보는 앞에서 능숙하게 반찬과 메인 메뉴, 찌개를 만들어 나갔다.
머릿속에 완벽히 기입한 레시피대로 재료를 다듬고 손질해서 음식을 하나하나 완성해내는 독고진.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도근한이 혀를 내둘렀다.
‘지한이가 만드는 거랑 크게 차이 없는데?’
일단 겉보기에는 완벽했다.
중요한 것 맛이다.
강지한의 눈에는 그 맛이 수치화되어 보였다.
독고진이 만든 반찬들은 일괄적으로 레벨 4였다.
메인 메뉴의 경우 레벨 5, 찌개는 된장찌개와 김치찌개가 레벨 6, 나머지가 레벨 5였다.
그 정도면 아주 훌륭했다.
강지한과 달리 도근한은 직접 맛을 봐야 상태를 알 수 있었기에 하나하나 시식을 해나갔다.
모든 메뉴의 시식을 마친 그의 고개가 아래위로 끄덕여졌다.
이를 본 독고진의 눈에 기대가 어렸다.
독고진이 긴장한 시선으로 강지한을 쳐다봤다.
이번에도 강지한은 음식들을 시식하지 않고 슥 훑어만 보더니 판단을 끝냈다.
“이 정도면 됐어. 합격.”
“합격인가요?”
“응. 밥차 몰아도 되겠어.”
“예쓰!”
독고진이 두 주먹을 움켜쥐고 위에서 아래로 힘껏 당겼다.
드디어 무료하던 김치 매장에서 벗어나 직접 요리를 만들 수 있게 됐다.
비록 매일같이 장사를 하는 건 아니고, 밥차 주문이 들어와야 할 수 있는 일이었으나 그게 어디냐 싶었다.
한데 그때 강지한이 솔깃한 제안을 건넸다.
“진아. 어차피 밥차 하는 초반에는 중간중간 시간이 좀 뜰 텐데 반찬가게 찬들 좀 만들어 볼래?”
“네? 반찬가게요?”
강지한이 반찬가게까지 운영하려 한다는 사실은 단톡방에서 들어 알고 있었다.
“응. 본격적으로 밥차 장사 뛰어들려면 차도 장만해야 하고, 촬영판이랑 연결되는 루트도 하나둘 파야 하고…… 무엇보다 네가 익숙해져야 하니까. 현장 가서 어리바리 안 하려면 적어도 한 달 정도는 연습해야 할 거 아니야. 그렇지?”
“그렇죠.”
“사실 지금 네 요리 수준은 딱 밥차 장사 정도고, 반찬 가게에 들이기에는 부족해. 근데 일주일 더 주면 그 정도 수준까지 올라갈 거라고 본다.”
독고진은 성장이 대단히 빨랐다.
창의성은 없지만 특수 능력 ‘레시피 엄수’로 인해 따라하는 음식들은 기가 막히게 만들어낸다.
그러니 일주일 뒤에는 충분히 레벨 5의 반찬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듯했다.
그 정도는 되어야 반찬 가게에 진열이 가능했다.
“보름 연습하고, 이후부터 반찬가게에 찬들 만들어서 제공해 봐. 매장 운영하고 반찬 파는 일은 직원 새로 뽑아서 붙여줄 테니까.”
그러니까 자신은 반찬만 만들면 된다는 얘기였다.
“할 수 있겠어?”
독고진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오케이.”
그때 도근한이 끼어들었다.
“근데 반찬 만드는 건 그렇다 쳐도 밥차는 혼자 끌어 나가기 힘들 텐데.”
도근한은 강지한과 함께 촬영장에 밥차를 몰고 가서 일을 했었다.
그때 느낀 건 도저히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많은 음식들을 세팅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람들 상대하고, 몇몇 음식은 직접 배식을 해줘야 하고, 계란프라이 같은 경우는 그 자리에서 구워내야 하는 데다가 식사 후 뒷정리까지.
혼자서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맞아. 어차피 음식은 진이가 준비할 테니까 이런저런 잡일 도와줄 만한 사람 좀 들일 참이야. 운전까지 잘하면 더 좋고.”
강지한의 말이 막힘없이 술술 나왔다.
“생각해 둔 사람이 있구나?”
“응.”
* * *
독고진의 집에서 나온 강지한은 서정혜의 집을 찾았다.
대문을 두들기자 오장호와 오나라가 맨발로 튀어나와서 강지한을 반겼다.
“아저씨! 오셨어요?”
“아저씨~ 보고 싶었어요!”
오장호가 강지한의 손을 잡아끌었고 오나라는 다리에 찰싹 매달렸다.
강지한이 두 남매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아버지 아직 안 돌아오셨지?”
오만석은 일용직 일을 나간다.
해서 저녁 전에는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강지한은 오만석이 올 때까지 아이들과 조금 놀아줄 참이었다.
그런데,
“강 사장님 오셨습니까?”
방 안에서 오만석의 다 죽어가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어 열린 문 너머로 잔뜩 지쳐 보이는 오만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저씨, 오늘 일 안 나가셨어요?”
물음에 답을 한 건 오장호였다.
“아빠 감기몸살 심해서 하루 종일 끙끙 앓았어요.”
“하하, 면목 없지요.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판에.”
오만석이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오만석에게 가까이 다가간 강지한이 걱정스레 말을 건넸다.
“어디 크게 다치신 건 아니에요?”
“아유, 그런 건 아니에요.”
“건축일 나가는 게 많이 힘드시죠?”
“갈수록 그런 것 같아요. 요새는 추우니까 더 고되네요. 아무래도 슬슬 다른 일 좀 찾아봐야 하나 싶습니다.”
그것이야말로 강지한이 듣고 싶은 소리였다.
“마침 잘됐네요. 실은 제가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뵈러 왔어요.”
“네? 저한테 부탁을요?”
“정혜 씨한테 듣기로 대형 면허 있으시다던데. 운전은 제법 하시겠네요?”
“그럼요. 운전이야 기가 막히게 하죠. 춘천에서 눈 감고 운전해도 서울까지 무사히 갑니다.”
오만석의 농 섞인 허풍에 대화를 듣고 있던 도근한이 피식 웃었다.
강지한이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아저씨, 지한 푸드에서 일해보시지 않겠어요?”
“네? 제, 제가요?”
“네.”
“제가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강지한은 밥차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전후사정을 듣고 난 오만석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할게요. 저 잘할 수 있습니다. 운전은 말할 것도 없고 힘쓰는 일도 잘합니다. 노가다 판에서 몇 년을 굴렀는데요.”
“잘됐네요. 그럼 같이하시는 걸로 알게요.”
“알겠습니다. 근데…… 밥차가 그렇게 자주 불려 나갈까요? 수익도 얼마 안 나면서 월급 받기에는 제 마음이 영 편치 않을 것 같은데.”
오만석이 불안해하자 도근한이 나섰다.
“아저씨, 지한이 음식 드셔 보셨죠?”
“그럼요.”
“어땠어요?”
“환장할 맛이더라고요.”
“그럼 답이 됐네요.”
“아…….”
도근한과의 짧은 대화에 오만석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강 사장님.”
오만석과 강지한의 가볍게 악수를 나눴다.
이것으로 밥차를 끌어나갈 멤버가 확정되었다.
오만석은 이때 알지 못했다.
자신이 직원으로 채용된 밥차가 방송가와 영화판에 얼마나 큰 돌풍을 몰고 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