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
Restaurant 202. 강지한의 밥차
강지한이 끌고 온 밥차를 본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뭐야? 설탕이가 쏜다고?”
“설탕이가 부른 밥차야?”
“향숙씨가 힘 썼어요?”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다들 이런저런 말들을 내뱉는데, 밥차에서 세 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강지한과 도근한, 그리고 조정호였다.
깔끔한 검은색 조리사복을 입은 신체 건장한 훈남 세 명이 내려서자 여자스텝들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촬영장에서 보게 되는 얼굴들은 언제나 똑같다.
특히 스텝들은 매일같이 엉망이 된 몰골로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간만에 마주하게 된 깔끔한 훈남들로 인해 마음이 설레는 건 당연했다.
한데 자세히 보니 그중 제법 유명한 얼굴이 둘이나 있다는 걸 몇몇이 알아채고 기함을 터뜨렸다.
“강지한 사장님이다!”
“헐, 사장님이 밥차를?”
“설탕이 아버지가 직접 오셨어.”
“대박. 그럼 뭐야? 밥차에 음식도 직접 하신 건가?”
“저기 도근한 맞지? 배틀 셰프 준우승하신 분.”
“맞아! 와, 눈빛 섹시하신 거 봐.”
“설마 요리사가 두 명이나 있는데 음식을 업체에 부탁해서 가져오진 않았을거야.”
“당연한 소리.”
강지한과 도근한으로 인해 사람들의 기대감이 마구 치솟았다.
그리고 강지한은 그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설탕이 아버지 강지한입니다. 오늘 제가 고생하시는 여러분을 위해 여기 계시는 동료 요리사분들과 함께 직접 음식을 만들어서 밥차에 실어 왔습니다.”
“와아아아! 대박!”
“미쳤다.”
“감사합니다, 설탕이 아부지!”
짝짝짝짝짝!
감동을 한 사람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곁에 서 있다가 덩달아 박수를 받게 된 조정호는 안절부절이었다.
대인기피증이 있는 데다가 누구에게도 이런 환호를 받아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주인을 알아본 설탕이가 마구 달려와 그의 앞에 섰다.
왕!
“설탕아!”
강지한이 설탕이를 격하게 반겨주었다.
하지만 곧 음식을 세팅해야 하는 입장이라 품에 안을 수는 없었다.
그것을 설탕이도 알고 있는 건지 평소처럼 뛰어 올라 안기지 않았다.
둘은 그저 서로 애정 가득한 시선을 주고받으며 좋아할 뿐이었다.
“지한 씨,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그때 김상수 감독이 다가와 강지한을 포옹으로 반겼다.
그가 만든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생각하니 필요 이상으로 기분이 격앙됐다.
그 광경을 보게 된 이정준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나도 저렇게 안 반겨줬는데?’
자기 영화의 악역을 맡은 가장 인지도 있는 주연 배우가 왔음에도 악수로 환영했던 김상수였다.
그런데 겨우 요리사 한 명에게 포옹이라니.
‘아, 개인적 친분 때문에 그런 건가?’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자 이정준의 마음이 조금은 위로되었다.
“그럼 얼른 세팅부터 해드릴게요.”
김상수와 짧게 인사를 나눈 강지한이 일행들과 함께 바로 배식대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준비해 온 음식들을 하나하나 꺼내놓기 시작했다.
“와, 갈비찜이다.”
“된장찌개 냄새 죽이네.”
“어머, 나 잡채 환장하는데.”
“저거 토마토비프스튜 아냐? 대박이네. 밥차에서 저걸 먹을 수 있다고?”
음식들이 하나둘 공개될 때마다 보는 이들의 미소가 진해졌다.
김상수는 군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하동만은 당장 먹고 싶어서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강지한의 음식을 맛본 다른 사람들도 전부 비슷한 심정이었다.
10분여가 지나고 나서야 음식의 세팅이 완료됐다.
뷔페 접시와 식기구들도 잘 놓여 있었다.
“자, 오셔도 됩니다. 식사하세요.”
강지한의 시작 선언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언제나처럼 연기자 먼저, 스텝은 그 이후였다. 정현수 소장은 스텝이라기보다는 외부 참여 인력으로 손님 대우를 받았기에 배우들 틈바구니에 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정준은 스텝들에게 차례를 양보했다.
“먼저들 드세요. 저는 조금 늦게 먹어도 됩니다.”
“정준 씨, 매너 감사히 받을게요.”
얼마 전 밥차를 쐈던 이정준이었다.
당시 제법 비싼 메뉴들로 주문을 해서 사람들이 상당히 좋아했었다.
그런데 오늘 메뉴를 보니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될 수준이었다.
배알이 꼴린 이정준의 식욕이 살아날 리 없었다. 그렇다고 안 먹어버리면 혹시 속내를 간파당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줄의 맨 끝에 섰다.
음식은 조금만 담아서 먹는 척만 할 셈이었다.
배식을 마친 배우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설탕아, 잘 먹을게.”
“설탕이 아버님, 맛있게 먹겠습니다.”
“내 살다 살다 강아지가 쏘는 밥차 음식 먹어보긴 처음이네요. 허허.”
배우들이 한마디씩 하고 있을 때 최만후와 차인우, 정현수 소장은 이미 음식들을 입에 욱여넣고 있었다.
“어머, 세 분 배 많이 고프셨나 봐요.”
그 광경을 본 조연 여배우 한 명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누나! 빨리 먹어봐요. 지한 아저씨 요리 진짜 맛있어요!”
차인우의 극찬에 여배우는 가장 만만한 소세지야채볶음부터 입에 넣었다.
요리사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누가 만들어도 비슷한 맛이 나는 요리부터 먹어보는 게 확실했으니까.
소세지야채볶음이 그런 음식이었다.
그런데 강지한이 만든 소세지야채볶음은 달랐다.
입에 들어가는 순간 케첩의 달콤새콤한 단순한 맛이 아닌, 중후한 맛의 소스가 깊은 바디감을 자랑하며 혀에 착 달라붙었다.
분명히 케첩 특유의 맛과 향이 느껴졌다.
그런데 달랐다.
“어머.”
왜 그리도 다른 것인지, 어째서 소스 하나만으로 감탄이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야채와 함께 입안에 들어온 소세지를 씹었다.
탱글거리는 소세지가 톡 터지듯 씹혔다. 그러자 안에 있던 다짐육이 즙을 확 토해냈다.
“무슨 소세지가 이렇게 고급스러워?”
강지한이 특별히 신경 써서 비싸고 맛있는 소세지를 잘 골라 넣은 덕이다.
여배우의 반응을 살피던 다른 배우들도 일제히 수저를 놀렸다.
그리고 동시다발적인 탄성이 흘러나왔다.
입속으로 들어가는 요리 하나하나가 작품이었다.
메인 요리들은 물론이고 반찬까지 전부 맛있었다.
하다못해 콩자반과 오징어채볶음까지도 감동을 안겨주었다.
“이게 배틀 셰프 우승자의 요리구나.”
배우들이 정신을 놓고서 식판을 비우고 있을 때 배식을 완료한 스텝들도 강지한의 음식에 푹 빠져들었다.
그들의 반응 역시 배우들의 반응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전부 범상치 않은 음식 맛에 정신을 놓았다.
한편 이정준은 마지막으로 배식대 앞에 섰다.
“이정준 배우님, 예능 프로에서 대활약 잘 보고 있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그에게 강지한이 방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제가 나오는 예능 프로를 봤어요?”
“네.”
강지한은 예능 프로 마니아다.
이정준은 방송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름대로 끼가 있는 사람이라 이런저런 예능 프로에 자주 등장했었다.
해서 강지한은 그를 작품보다 예능프로에서 더 많이 접했었다.
“죄송하게 됐네요. 저는 배틀 셰프를 못 봤는데.”
이정준이 유치하게 나왔다.
강지한은 이를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도근한은 아니었다.
“지한아, 저분 배우야?”
“……네?”
이정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도근한을 올려다봤다.
강지한이 그런 도근한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실례잖아, 이 자식아.”
“아, 이거 죄송합니다. 제가 진짜 유명한 영화나 드라마 말고는 잘 보지를 않아서요. 맛있게 드세요.”
“……끄응.”
마음 같아서는 한바탕하고 싶었지만 이정준은 담이 작았다.
그래서 애써 참고 넘어갔다.
그가 배식대에 있는 많은 음식들 중 몇 가지만 깨작거리며 접시에 담았다.
이를 본 강지한이 의아해서 물었다.
“그걸로 되겠어요?”
“딱히 식욕이 생기지 않네요. 수고하세요.”
이정준이 배식대를 떠나자 도근한이 가운데 손가락을 날렸다.
“밥맛없네.”
그러자 조정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재수 없습니다.”
죽이 맞은 두 사람이 자석에 끌리듯 하이파이브를 쳤다.
강지한이 그런 둘을 보고 피식 웃었다.
이정준은 배우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서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다들 별다른 말 없이 조용히 음식을 먹고 있었다.
사방에서 음식을 씹고 삼키는 소리만 들려왔다.
자신이 밥차를 불렀을 때와는 사뭇 다른 광경이었다.
그때는 스텝과 배우가 이게 맛있네, 저게 죽이네 하다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즐거운 분위기를 자아냈었다.
그런데 지금은 뭐에 홀린 사람들처럼 먹는 행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왜들 이래? 맛이 생각보다 별로라서 서로 눈치 보느라 말을 못하는 건가?’
은근히 그러길 기대하며 이정준은 접시에 담아온 빈약한 음식들 중 갈비 한 대를 집었다.
사실 배가 상당히 고파서 이것저것 많이 담아오고 싶었으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해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 다섯 가지 정도를 딱 한 점씩만 들고 왔다.
그중 하나가 갈비찜이었다.
‘어디.’
이정준은 맛이 없으면 솔직하게 얘기해 줄 생각으로 갈비찜을 물었다.
순간 살이 슥 발라져 입안으로 쏙 들어갔고, 젓가락엔 갈비뼈만 남았다.
입으로 들어간 갈비살은 눈처럼 사르르 녹아들었다.
그 안에 잘 배어 있던 달콤짭짤한 간장양념이 혀 위에서 춤을 추었다.
물론 소의 잡내는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진한 간장과 고기의 풍부한 육향이 기분 좋게 뒤섞여 풍미를 극대화시키며 식욕을 마구 자극할 뿐이었다.
꿀꺽!
갈빗살을 삼킨 이정준이 놀라서 눈만 크게 깜빡였다.
그의 손이 저절로 다른 음식들로 향했다.
이윽고 정신을 차렸을 땐, 들고 있는 접시가 깔끔하게 비워진 후였다.
“…….”
그제야 이정준은 사람들이 어째서 말도 없이 식사에만 집중하는 지 알 수 있었다.
음식의 맛이 어마어마해서 다른 데 정신 팔 새가 없었던 것이다.
‘더 먹고 싶다.’
하지만 자존심을 팍팍 세우면서 식욕이 없다고 한 마당에 음식을 더 퍼올 수는 없는 노릇.
‘내가 왜 그랬지?’
이정준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직도 다른 사람들은 식사에 열중하는 중이었다.
접시를 비운 이들은 급하게 배식대로 다시 달려가 음식을 더 받아왔다.
대부분이 한 접시로는 만족을 못했고 금세 밥차 앞에는 또다시 사람들의 줄이 이어졌다.
그럴수록 강지한이 준비해 온 푸짐한 음식들은 빠르게 줄어들어 가는 중이었다.
‘저러다 다 없어지겠네.’
이정준의 마음이 초조해졌다.
다들 배가 부르다며 남기기라도 하면 음식물 쓰레기 핑계 삼아 나서려 했는데 돌아가는 모양새가 절대 남을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저녁 시간이 거의 다 끝나갈 무렵.
강지한이 배식대를 국자로 탕탕! 두들기고서 외쳤다.
“이제 남은 음식 얼마 없습니다. 더 드실 분 오세요.”
그 말에 잘 먹기로 소문난 사람 몇몇이 우르르 배식대로 몰려갔다.
‘저 메뚜기 떼가 쓸고 가면 끝인데.’
“으으음…….”
밥차를 보며 초조하게 발을 굴리던 이정준이 결국 벌떡 일어나서 배식대로 다가갔다.
자존심이고 체면이고 일단 강지한의 음식을 더 먹어보지 못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이정준의 앞에 선 사람들이 남은 음식들을 퍼가고 드디어 그의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이게 뭐야?’
배식대에 남은 음식이 하나도 없었다.
메인메뉴와 반찬, 찌개는 물론 밥과 김치도 전멸이었다.
메뚜기 떼들이 완벽하게 쓸어간 것이다.
배식대 앞에서 석상처럼 굳어 통한에 찬 표정을 짓는 이정준에게 날 선 음성이 들려왔다.
“엥? 식욕 없으시다더니?”
도근한이었다.
“그, 그게…….”
얼굴이 붉어져서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이정준에게 도근한이 씩 웃어 보였다.
“먹어보니까 맛있죠?”
“……맛있더라고요.”
이정준이 순순히 인정했다.
그러자 도근한이 갖가지 반찬과 밥이 담긴 뷔페 접시와 김치찌개가 담긴 국그릇을 내밀었다.
“어? 뭡니까?”
“제가 먹으려던 건데 다른 분들 드시는 것만 봐도 배가 불러서 안 먹어도 되겠어요. 드세요.”
“저, 정말 그래도 됩니까?”
“왜요? 아까처럼 괜히 체면 차리다가 또 놓치시려고요?”
“아니요. 아니요. 감사히 먹겠습니다.”
이정준이 접시와 국그릇을 얼른 받아들었다.
“다음부터는 좀 솔직해집시다, 이정준 배우님.”
“하하…… 예.”
이정준이 머쓱하게 웃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행복에 겨운 얼굴로 열심히 음식을 먹었다.
이를 본 도근한이 후련하다는 듯 말했다.
“속이 다 시원하네.”
“역시 도근한.”
강지한이 웃으면서 도근한의 어깨를 탁탁 두들겼다.
“너 그거 무슨 의미냐?”
“알아서 해석해.”
고등학생 때나 지금이나 제 눈에 아니꼬운 인간들은 어떻게든 괴롭혀 주는 데는 도근한이 최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