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
Restaurant 201. 설탕이가 쏜다!
요즘 설탕이는 일주일에 닷새는 촬영을 나가 있었다.
집에 들어오는 이틀도 강지한이 식당 일을 하니 밤에 잠깐잠깐씩만 볼 수 있었다.
자식 같은 녀석인데 집에 없는 날이 많아지니 강지한의 마음이 휑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설탕이가 걱정됐다.
김상수 감독과 이향숙으로부터 설탕이가 열심히 촬영에 임해주고 있으며 사고 없이 무사 진행 중이라는 보고를 주기적으로 받기는 했다.
그래도 부모 마음이라는 게 늘 노심초사하게 마련이다.
아울러 설탕이를 위해 무언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을까 고민도 됐다.
그러다 떠올린 것이 바로 밥차였다.
영화의 주연인 설탕이가 쏘는 것으로 해서 밥차를 한 번 끌고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강지한은 그날로 푸드트럭을 대여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과연 쉽게 대여가 되려나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놀고 있는 푸드트럭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대여는 어렵지가 않았다.
요식업계를 가볍게 보고 푸드트럭에 무작정 뛰어드는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많은 모양이었다.
그들이 어설프게 덤볐다가 포기하고 팔아버린 푸드트럭의 수가 상당해서 이를 중고로 매입해 렌탈 사업을 벌이는 곳이 제법 있었다.
비용도 A급 푸드트럭을 하루 렌탈하는 데 20만 원 정도로 크게 비싸지 않았다.
해서 강지한은 화, 수 이틀 동안 트럭을 빌리기로 했다.
트럭을 끌고 현장에 가는 건 수요일이지만 화요일 날 미리 빌려서 이것저것 준비를 해 놓고, 구조를 익히기 위해서였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와 밥차에 올릴 메뉴들을 고민하던 강지한이 무심코 달력을 봤다.
‘벌써 내일이 화요일이구나.’
내일은 푸드트럭을 인수받아 와야 한다.
하지만 강지한이 움직일 수 없으니 도근한에게 부탁을 해둔 터였다.
거실에 앉아 이것저것 메뉴를 구성하는 강지한을 소파에 누워 있던 도근한이 흘긋 쳐다봤다.
“아직도 안 끝났어?”
“응. 처음 해보려니까 생각이 많아진다.”
“그냥 지한 식당 메뉴 그대로 옮겨서 가.”
“식당 메뉴를?”
“상하기 쉬운 나물 종류 줄이고 메인을 몇 가지 더 추가하면 되잖아. 식당 메뉴는 메인이 제육볶음이랑 불고기 두 개라서 조금 빈약하니까. 떡갈비랑 두루치기, 갈비찜 같은 걸 추가하든지 해서.”
“오? 그럼 되겠네. 생각도 못했다.”
신나서 메모지에 필기를 해나가는 강지한.
그에 도근한이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임기응변 없는 인간이 어떻게 배틀 셰프에서 우승을 했지?”
“네가 결승전 상대라서.”
“네 임기응변은 남 비난할 때면 빛을 발하는 거냐.”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게 꼭 덜 자란 고등학생들 같았다.
“내일 밥차 잘 부탁한다. 끌고 오다가 사고내지 말고.”
“반파시켜서 끌고 올 테니까, 기대해라.”
도근한이 엄지를 치켜세워 보이고서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피식 웃어버린 강지한은 다시 밥차에 실을 메뉴들을 추가해 나갔다.
* * *
다음 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강지한을 설탕이가 반겨주었다.
“설탕아!”
왕!
“보고 싶었어, 내 새끼!”
장장 5일 만에 이루어진 재회였다.
강지한이 설탕이를 품에 안고 거실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그런 강지한을 도근한이 밟고 지나갔다.
“억!”
“어이쿠, 못 봤네.”
도근한이 능청을 떨었다.
그런데 강지한은 이미 그가 안중에도 없었다.
“설탕아, 아빠 많이 보고 싶었지? 어디 다친 데는 없고?”
강지한의 호들갑에 이를 지켜보고 있던 이향숙이 말했다.
“내가 매니저로 따라다니는데 그럴 일이 있겠어?”
“어? 향숙아, 어디 있었어?”
“뭐야! 계속 오빠 앞에 있었거든!”
이향숙은 오늘 점심나절 설탕이를 데리고 강지한의 집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강지한이 돌아올 때까지 설탕이를 돌봐주고 있었다.
사실 설탕이는 애견 카페에 맡겨두면 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본인이 일찍 떨어지기 싫어서 강지한이 올 때까지 돌봐주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이향숙에게는 강지한의 집 열쇠가 따로 있었다.
설탕이의 매니저를 자청하면서 강지한에게 복사본을 받은 것.
“고생 많았어, 향숙아. 근데 정말 매니저 비용 안 줘도 돼?”
강지한은 그녀에게 전부터 매니저 비용을 따로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향숙은 이를 줄곧 거절해 왔다.
이유인즉,
“난 순수하게 설탕이가 좋아서 매니저 자청한 거야. 그런 나의 순수한 마음을 돈으로 더럽히려 하지 말아줘.”
이런 것이었다.
결국 강지한은 이향숙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아무튼 오빠 왔으니까 나 갈게. 그리고 내일 아침 일찍 설탕이 데리러 올 거야.”
“알았다. 고마워.”
“수고해. 준우승 오빠도 고생해요.”
준우승 오빠란 도근한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이향숙은 얼마 전, 도근한을 처음 봤을 때부터 그렇게 불렀다.
“들어가세요.”
* * *
10월의 마지막 날은 수요일이었다.
지한 식당이 쉬는 날이자, 강지한이 밥차를 몰고 영화 촬영장에 가는 날이기도 했다.
촬영장은 이미 한 번 찾아갔던 적이 있었다.
지난 수요일, 변화의 알을 부화시켜 퀘스트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했던 날.
강지한은 설탕이의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직접 촬영장을 찾았다.
당일치기로 가서 열심히 촬영에 임하는 설탕이의 모습을 밤늦게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었다.
설탕이는 이른 아침부터 찾아온 이향숙이 데려갔고, 강지한은 도근한, 조정호와 함께 지한 식당에 출근해서 밥차에 실릴 요리들을 만드는 중이었다.
집보다는 설비가 잘 갖추어진 식당에서 요리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밥차에 실릴 메뉴는 지한 식당의 기본 반찬들에 흰 쌀밥과 잘 익은 배추김치, 겉절이 배추김치, 무김치, 계란말이, 즉석계란프라이, 계절샐러드, 콩나물무침, 깻잎장아찌, 콩자반, 오징어채간장볶음, 묵사발, 산적, 동그랑땡, 녹두전, 토마토비프스튜, 소세지야채볶음, 찹스테이크, 갈비찜, 제육볶음, 소불고기, 김치찌개, 된장찌개, 비지찌개, 계절과일이었다.
원래 도근한이 말했던 대로 지한 식당 기본 반찬에서 메인만 몇 가지 추가하려 했었는데 욕심을 내다 보니 이렇게 됐다.
메뉴들 하나하나가 고스란히 밥도둑이었다.
게다가 천재 요리사 세 명이 손을 모아 만들었으니 그 맛이야 오죽하겠는가.
강지한의 눈에 들어오는 모든 메뉴들의 레벨이 5에서 6이었고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는 7이었다.
한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따로 소고기고추장볶음과 참기름도 비치해 두었다.
흰 쌀밥에 계란프라이 두 개 넣고 소고기고추장볶음 크게 한 술, 참기름 넉넉히 둘러서 슥슥 비벼 먹으면 다른 반찬 없어도 한 공기가 금세 사라질 만큼 맛이 있었다.
모든 음식을 준비하고 나니 오후 네 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이제 슬슬 경기도로 나설 때였다.
이번 일에는 조정호와 도근한도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그에 강지한의 마음이 더없이 든든해졌다.
세 사람이 차에 올라타자 도근한이 운전대를 잡았다.
셋 중에서는 그가 가장 운전을 잘하기 때문이었다.
“출발합니다.”
부르릉.
맛있는 음식들을 가득 실은 밥차가 영화 촬영장을 향해 떠났다.
* * *
“컷! 오케이! 정준 씨, 잘했어.”
김상수가 오케이 사인을 보낸 뒤, 이정준을 칭찬했다.
“감독님께서 디렉션을 잘 주신 덕입니다.”
겸손한 말을 뱉은 이정준에게 매니저가 다가와 어깨에 점퍼를 덮어주었다.
그리고 미리 준비했던 뜨거운 물을 보온병 뚜껑에 담아 건넸다.
그것을 호로록 마시며 김상수의 곁으로 다가서는 이정준.
김상수가 조금 전 장면을 모니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좋다니까.”
“그렇게 좋아요?”
“응, 정말 좋아.”
모니터에서는 악역을 맡은 이정준이 설탕이를 위협하는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는 김상수의 입에서 연신 좋다는 말이 터져 나왔다.
‘역시 밥차가 제법 효과가 있었던 거지.’
밥차를 쏜 다음 날, 예상했던 대로 이정준을 대하는 스텝들의 행동이 달라졌었다.
하나같이 이정준을 미소로 대하며 전보다 친근하게 다가와 챙겨주려고 했다.
밥차 정말 감사했다는 인사도 여러 번 받았다.
그런데 김상수 감독만큼은 밥차 고마웠다는 말 이후로 별다른 액션이 없었다.
이정준은 그게 조금 불만이었다.
촬영장에서의 실질적 오너는 감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만큼 감독이 자신을 추켜세워 줘야 다른 사람들도 분위기에 휩쓸려 따라올 텐데 김상수는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밥차의 약발도 고작 이틀로 끝나고 말았다.
이거 괜한 돈을 들인 거 아닌가 싶어서 살짝 억울한 마음이 들려고 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김상수가 자신이 원하는 액션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 정말 연기 예술이야. 다들 이리와 봐요!”
모니터를 보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던 김상수가 급기야 사람들을 불러 보았다.
그에 이정준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밥차 부른 게 이제야 제대로 효력 발휘하네.’
이정준은 김상수의 입에서 터져 나올 칭찬을 기대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한데 김상수가 모니터 속의 설탕이를 가리켰다.
“저것 봐봐. 정준 씨가 위협하니까 그냥 자지러지는 거. 저게 어떻게 연기야, 리얼이지. 베테랑 배우의 포스가 느껴지지 않아? 강아지 얼굴에서 표정이 보이는 것 같잖아.”
‘……어?’
느닷없는 설탕이 칭찬에 이정준이 당황한 시선으로 김상수를 바라봤다.
‘왜 설탕이 칭찬을 하고 있어?’
당연히 본인의 연기를 칭찬할 거라고 믿고 있던 이정준의 뒤통수가 욱신거렸다.
그런데 더 황당한 건 모두가 같은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진짜 멋있다, 설탕이. 사람이었으면 반했겠어.”
“어떻게 강아지가 사람 보다 연기를 잘해요?”
“영화 개봉하면 설탕이한테 러브콜 엄청 들어오겠네.”
“나도 설탕이 같은 강아지 한 마리 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한참 설탕이 칭찬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이향숙에게 다가가 물을 얻어먹은 설탕이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꺅~ 설탕이 왔어?”
“모니터링하러 왔구나?”
“설탕아~ 하이파이브!”
설탕이의 등장에 모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애정을 표현했다.
그 광경을 보는 이정준의 아랫배가 살살 아파왔다.
‘아니, 나는 밥차까지 쐈는데 이 극명한 온도차 대체 뭐냐고.’
차마 속에 있는 말을 내놓지는 못하고 한숨만 푹푹 쉬는 이정준이었다.
그때 이향숙이 김상수에게 다가와 말했다.
“감독님. 밥 먹고 하시죠.”
“아, 저녁때 됐죠?”
“네.”
“그래요. 근데…… 우리 저녁거리 준비해 온 게 없을 텐데. 지금 김밥 사러 다녀오려고 해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릴 테고. 막내한테 분식집 다녀오라고 할 테니까 몇 컷 더 찍어요. 설탕이 아직 힘들어 보이지는 않는데.”
그러자 이향숙이 대답 대신 강지한에게 온 메시지 하나를 보여주었다.
-향숙아, 거의 다 와간다. 감독님한테 식사 준비하시라고 전해드려.
메시지 내용을 확인한 김상수의 눈이 번쩍 뜨였다.
“지한 씨 오신다고, 향숙 씨?”
“네.”
“지금?”
“네.”
김상수가 그 어느 때보다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었다.
이를 본 이정준이 깜짝 놀랐다.
촬영하는 동안 한 번도 저러 미소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식사 준비하라는 거 보니 뭘 만들어 오시는 모양이네. 조 감독, 상황 파악 됐지?”
“네! 자자, 저녁 먹고 쉬었다 갑니다!”
하동만이 모두에게 큰 목소리로 공지했다.
바로 그때, 타이밍이 기막히게도 저 멀리서 강지한의 밥차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촬영 현장 지척까지 다가와 멈춰선 밥차를 본 사람들이 절로 이정준을 쳐다봤다.
이번에도 그가 밥차를 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오해는 밥차의 배식대가 오픈되는 순간 바로 풀렸다.
배식대의 위에는 설탕이의 사진과 함께 ‘설탕이가 쏜다! 왕왕!’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를 본 김상수가 이향숙에게 물었다.
“저 밥차에 실린 음식을 지한 씨가 직접 한 거예요?”
“네.”
그 대답에 김상수의 측은한 시선이 놀라서 입을 헤 벌리고 있는 이정준에게 향했다.
“……정준 씨 측은해서 어쩔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