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
Restaurant 200. 이정준의 밥차
‘뭐야 이건? 도근한의 요리 능력치를 18까지 올려주라니.’
도근한의 요리 능력은 현재 16이었다.
그러니 2를 더 올려야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었다.
강지한은 보상을 확인했다.
[클리어 보상: 직원 능력치 1레벨 업권 3개.(랜덤)]
클리어 보상이 제법 짭짤했다.
‘근데 무슨 퀘스트가 이렇지?’
여태 주어지는 퀘스트는 결과적으로 강지한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이번에 주어진 퀘스트 역시 강지한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거라는 건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만 도근한을 성장시키는 것이 어떤 식으로 자신에게 도움을 준다는 건지가 애매했다.
‘라이벌이 성장하는 만큼 자극받아서 성장하라 이건가?’
그런 생각을 잠깐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도근한을 성장시켰는데 자신이 노력을 안 하면 결국 이 퀘스트는 강지한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일단은 시키는 대로 해보자.’
답을 모를 때는 따라가 보면 되는 일.
강지한은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요리 능력 1레벨 업권을 도근한에게 사용했다.
[도근한의 요리 레벨이 17이 되었습니다.]
‘와, 신기하네.’
아이템이 효력을 발휘했다는 건 곧 도근한의 요리 능력이 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본인은 그것을 모르고 있는 상황.
과연 그가 요리를 할 때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며 스스로 어찌 받아들이게 될지 강지한은 궁금했다.
* * *
‘음? 오늘 이상하네.’
도근한은 지한 식당의 주방에서 장사에 필요한 반찬들을 미리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보다 손이 가볍게 움직였다.
똑같은 레시피대로 반찬을 만드는데도 훨씬 수월했다.
‘그새 음식들이 손에 많이 익었나?’
또한 각 반찬들의 간을 전보다 정밀하고 완벽하게 잡아낼 자신이 있었다.
간을 하고 보니 실제로 그랬다.
“반찬 끝.”
자신에게 주어진 네 가지 반찬을 순식간에 완성한 도근한이 혼잣말을 흘렸다.
그에 주방 직원들이 놀라서 그를 쳐다봤다.
“벌써? 간 대충 본 거 아니야?”
전덕진이 다가와 잡채를 집어 먹고는 눈을 크게 떴다.
“옴마? 만드는 시간은 줄어들었는데 맛은 더 좋아졌네? 이제 강지한 사장이 AS 안 해줘도 되겠어!”
“그래요?”
“젊은 사람이 참 손맛 좋아?”
전덕진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도근한도 기분이 좋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는 강지한의 손맛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가 알려주는 레시피 그대로 반찬을 만드는데 뭐가 문제인 건지 그 맛이 똑같이 나지 않았다.
항상 무언가 2퍼센트가 부족한 느낌.
근데 오늘은 그 부족한 부분이 메워졌다.
비밀은 아주 미세한 차이들에 있었다.
식재료를 1초 더 삶고 덜 삶고, 소금 한 꼬집이 더 들어가거나 덜 들어가고.
개별로 놓고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런 작은 것들이 중첩되어 맛의 질이 살짝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요리란 건 날카로운 감각으로 만드는 만큼 더 맛있어지게 되어 있는 법이다.
신나하는 도근한을 보며 강지한이 미소 지었다.
반찬 준비가 다 되어갈 때쯤, 홀매니저 유지호와 부매니저 설인아가 함께 출근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둘 다 기운이 넘치는 것이 보는 사람들도 덩달아 힘이 나는 기분이었다.
두 사람은 바쁘게 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더 흐르고 홀 알바 박진희와 이종수가 들어왔다.
박진희는 지한 식당이 오픈할 때부터 꾸준히 알바를 해온 사람이고 이종수는 이제 한 달 된 신참이었다.
그 전에 하던 알바가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는 바람에 급하게 구한 사람이었다.
둘 다 올해 스물세 살 동갑으로 여태 큰 문제없이 일을 잘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따라 박진희의 표정이 살짝 좋지 않았다.
그런 박진희의 머리 위에는 초록색 느낌표가 떠 있었다.
‘퀘스트다.’
강지한이 퀘스트 내용을 확인했다.
[퀘스트-박진희는 몸살에 걸렸습니다. 그녀를 쉬게 해주세요.]
[클리어 보상: 직원 선택 능력치 1레벨 업권 1개.]
‘직원 선택 능력치 1레벨 업권?’
이번에 받는 레벨 업권은 직원의 능력을 아무거나 선택해서 올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짧은 생각을 마친 강지한이 박진희를 불렀다.
“진희야, 오늘 몸 안 좋아?”
“네? 티나요?”
“응. 어디가 안 좋은데?”
“그냥 몸살이 좀 걸린 것 같은데 몸 움직이다 보면 괜찮아질 것 같아요.”
“아니야. 무리하지 말고 그냥 들어가서 쉬어.”
“쉬면 그대로 돈 까먹는 건데 안 돼요.”
“내가 들어가서 쉬라 그런 거니까 오늘 일한 걸로 쳐 줄게.”
“헐. 제가 정말 돈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하시다니. 사장님 너무해요!”
“하하, 알지. 홀 제대로 안 돌아갈까 봐 그러는 거.”
“아시면 절 등 떠밀지 말아주세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설인아가 그녀의 등을 출입문으로 떠밀었다.
“쉬어, 쉬어. 하루 정도는 우리만으로도 괜찮아.”
“그치만…….”
“그러다 건강 악화돼서 며칠 못나오면 그게 더 민폐인 거 몰라?”
“그래. 진희야. 인아 말 듣는 게 좋겠다.”
유지호까지 그렇게 나오니 박진희는 결국 고집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오늘 들어가고 내일 쌩쌩해진 모습으로 다시 뵙겠습니다!”
박진희가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했다.
“얼른 들어가 봐.”
박진희를 돌려보내자 퀘스트가 클리어되며 보상이 지급되었다.
강지한은 그것을 당장 도근한에게 사용했다.
‘직원 선택 능력치 1레벨 업 권을 도근한의 요리 레벨에 쓰겠어.’
[도근한의 요리 레벨이 18이 되었습니다.]
[퀘스트 클리어! 성공 보상이 지급됩니다.]
[직원 서빙 능력치 1레벨 업권을 얻었습니다.]
[직원 서빙 능력치 1레벨 업권을 얻었습니다.]
[직원 화술 능력치 1레벨 업권을 얻었습니다.]
[얻은 아이템은 레벨 업 현황에 기록됩니다.]
도근한의 요리 레벨을 18까지 올리라는 퀘스트가 클리어됐다.
클리어 보상으로 직원 능력치 1레벨 업권 세 장이 랜덤으로 지급되었다.
그때 유정호의 머리 위에 초록색 느낌표가 나타났다.
‘퀘스트를 쉴 틈이 없네.’
마치 예전에 하던 MMORPG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강지한은 유정호의 퀘스트를 확인했다.
[퀘스트-유정호는 박진희의 부재로 홀 서빙이 원활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점심, 저녁 피크 타임 동안 홀 서빙이 원활히 돌아가도록 해주세요.]
[클리어 보상: 직원 능력치 1레벨 업 권 2개.(랜덤)]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실패시의 패널티는 따로 없는 퀘스트였다.
밑져야 본전이니 강지한은 퀘스트를 수락했다.
물론 아무런 작전도 없이 덤벼든 건 아니었다.
그에겐 방금 퀘스트 클리어 보상으로 얻은 ‘직원 서빙 능력치 1레벨 업권’이 두 장 있었다.
강지한은 그것을 유지호와 설인아에게 한 장씩 사용했다.
[유지호의 서빙 레벨이 11이 되었습니다.]
[설인아의 서빙 레벨이 10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두면 박진희의 공백이 채워지겠지.’
결과는 오늘 장사가 끝나면 알게 될 터였다.
* * *
지한 식당의 저녁 피크 타임.
설인아와 유지호는 서로에게 놀라고 있었다.
‘인아가 저렇게 서빙이 빨랐었나?’
‘지호 오빠는 서빙하는 폼이 어제보다 더 안정적이네. 진짜 빨리 는다.’
그들은 본인이 성장했다는 건 인지 못하고서 상대방에게만 혀를 내둘렀다.
그 성장의 이유가 강지한이 아이템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는 꿈에도 알지 못했다.
* * *
하루의 영업이 끝나고 난 뒤.
[퀘스트 클리어! 성공 보상이 지급됩니다.]
[직원 청소 능력치 1레벨 업권을 얻었습니다.]
[직원 회계 능력치 1레벨 업권을 얻었습니다.]
강지한이 유지호와 설인아에게 서빙 능력치 레벨 업권을 사용한 것이 확실한 효과를 발휘하며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었다.
* * *
10월 28일 일요일.
이제 제법 찬바람이 부는 날씨였다.
설탕이는 오늘도 경기도 남양주시의 검단리에서 촬영에 한창이었다.
그리고 설탕이가 촬영을 하는 장소에는 언제나 이향숙이 함께였다.
그녀는 영화의 크랭크인이 시작되면서부터 설탕이의 매니저를 자청했다.
혹여라도 설탕이가 영화를 촬영하다가 어디 다치지는 않을까, 추워지는 날씨에 떨지는 않을까, 언제나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설탕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설탕이의 식사와 식수, 간식, 옷과 장난감에 전용 방석까지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항상 챙겨 다녔다.
지금도 이향숙은 사람 배우들 사이에서 열연을 펼치는 설탕이에게 조금도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컷! 오케이!”
김상수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이번 신은 NG가 3번 정도 났다.
물론 설탕이는 NG를 내지 않았다.
전부 사람들이 낸 것이다.
설탕이 덕에 촬영 스케줄은 무서운 속도로 앞당겨지고 있었다.
강아지가 연기를 해야 한다는 특성상 70신밖에 안 되는 영화의 촬영 기간을 네 달에서 최장 다섯 달 정도로 잡아놨었는데 이 속도라면 두 달 만에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벌써 3분의 1이나 되는 분량을 촬영했으니 말이다.
“설탕아~ 이리 와!”
컷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이향숙이 설탕이를 불렀다.
설탕이는 바로 이향숙에게 다가와서 그녀가 그릇에 따라준 물을 먹었다.
할짝. 할짝.
“그래그래~ 목말랐지, 우리 설탕이?”
그런 설탕이를 모두가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데, 단 한 명만 조금 아니꼬운 표정이었다.
바로 이 영화의 주연 배우 중 한 명인 ‘이정준’이었다.
올해 스물여덟 살인 그는 열두 살 때 인기 드라마의 아역 배우로 캐스팅되어 데뷔를 했다.
이후 대단한 인기몰이를 하진 못했으나 얼굴만 보면 누구나 알 만한 스타로 성장했다.
지금 여기 모인 배우들 중에서는 그의 인지도가 가장 높았다.
다들 영화나 드라마판에서는 이름이 없는 배우였으니까.
그래서 이정준은 촬영 환경이 자신에게 무척 쾌적할 것이라 생각했다.
본인이 가장 몸값 높은 스타이니만큼 스텝들의 대우가 달라지는 건 당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와본 촬영장의 온도는 그가 생각한 것과 사뭇 달랐다.
모든 분위기와 흐름이 설탕이라는 강아지 한 마리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이 바닥 연기생활 17년차인 그가 혼신의 연기를 펼칠 때는 큰 반응이 없던 사람들이 설탕이의 연기에는 감탄해 마지않았다.
‘뭐가 이러냐.’
이정준은 모든 사람들의 초점이 설탕이에게만 맞추어진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항상 영화나 드라마판에 가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그였다.
연기 경력이 오래되었어도 탑스타라는 명함을 달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탑스타와 그렇지 않은 연기자의 갭은 어마어마했다.
촬영장에서의 대접이 달라졌으니까.
이번에 그가 출연하는 영화 ‘설탕이 온다’는 제작 비용이 적은 소규모 상업영화였다.
배우들 또한 유명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자신이 가장 유명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대접받는 탑스타의 기분을 누리고 싶었다.
그런데 강아지 한 마리로 인해 그런 환상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오늘 준비한 게 있지.’
이정준이 시계를 살폈다.
오후 5시 58분.
‘슬슬 올 때가 됐는데.’
그때였다.
저 멀리서 거대한 차 한 대가 흙먼지를 날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왔네.’
이정준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것은 이정준이 스텝들 몰래 준비한 밥차였다.
영화 촬영을 위해 애쓰는 스텝과 배우, 매니저들 50인분의 양을 준비했다.
“어? 밥차다.”
스텝 중 누군가가 밥차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그렇지. 사람이 저렇게 눈치가 빨라야 어딜 가도 예쁨 받지.’
이정준이 속으로 생각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응? 웬 밥차야?”
이지안 작가의 눈이 동그라졌다.
“조감독, 오늘 우리 밥차 부르기로 했었어?”
김상수 감독이 하동만에게 물었다.
어느새 지척까지 도착해 주차하는 밥차를 보며 하동만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 지금 막내한테 김밥 사오라고 할라 그랬는데요.”
“그럼 저거 뭐야?”
사람들이 밥차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하며 웅성거릴 때였다.
밥차의 옆 뚜껑이 들어 올려지며 배식대가 나타났다.
그리고 배식대 위로 큰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게 보였다.
현수막엔 이정준의 얼굴사진이 박혀 있었고 그 옆으로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배우 이정준이 쏜다! 맛있게 드세요, 여러분!’
그제야 사람들은 밥차의 정체를 알게 됐다.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이정준에게로 향했다.
“뭐야? 이 배우님이 쏜 거였어요?”
김상수의 물음에 이정준이 빙그레 웃었다.
“다들 추워지는데 고생하셔서 속 든든히 채우고 힘내시라는 의미로 불렀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이 배우님 최고예요!”
“잘 먹을게요!”
“정준 씨 멋있다~”
“역시 17년차 배우님은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짝짝짝짝짝!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며 박수를 쳤다.
‘바로 이거지.’
비로소 이정준은 자신이 원하던 분위기를 잡을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던 지라 사람들은 바쁘게 밥차로 몰려들었다.
연기자들이 먼저, 스텝들은 나중이었다.
모든 이들이 배식을 받고서 맛있게 저녁식사를 해나갔다.
당연했다.
밥차 중에서도 맛있기로 소문난 밥차를 불렀고 돈을 좀 들여 메뉴들도 최고급으로 준비했으니.
이정준이 흐뭇하게 그 광경을 지켜봤다.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네.’
아마 오늘 이후 촬영장에서 그의 입지는 전과 달라질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사람들을 관찰하던 이정준의 시야에 이상한 광경이 들어왔다.
‘어?’
몇몇 사람의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다.
밥을 먹지 않는 건 아니었다.
먹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열광적으로 맛있다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있으니까 잘 먹겠다는 정도였다.
이정준이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에 담아보았다.
이지안 작가, 하동만 조감독, 아역배우 차인우, 노년배우 최만후, 강아지조련사 정현수 소장, 설탕이 매니저 이향숙, 그리고 김상수 감독까지.
‘왜들 저래?’
본인이 생각했던 것과는 영 동떨어진 반응이 이정준은 불편했다.
그는 몰랐다.
지금 눈에 담은 7명이 강지한의 음식을 먹어본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가 모르는 사실이 또 하나 있었다.
‘아. 그리고 보니 이번 주에 지한 오빠가 설탕이 이름으로 밥차 쏜다고 그랬는데. 음식은 직접 만들어 오려나?’
이향숙이 식사를 하며 생각했다.
강지한은 이미 밥차를 하루 대여하기로 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