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
Restaurant 199. 변화의 알
도근한이 지한 식당에서 발군의 기량을 자랑하고 있을 때.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팔야리, 그 안에서도 검단리라 불리는 시골 마을에서는 한창 영화촬영이 진행 중이었다.
바로 설탕이를 주연으로 하는 ‘설탕이 온다’의 촬영 현장이었다.
밤이 내린 시간.
촬영 스텝과 주조연 배우들, 그들의 매니저를 비롯해 40명 가까운 사람들이 시골의 허름한 집에 모여 촬영을 진행 중이었다.
“액션!”
김상수의 신호에 설탕이가 집 안에서 뛰쳐나와 마당을 마구 뛰어 다녔다.
그 뒤를 쫓아 나온 차인우가 설탕이를 잡으려 했다.
“설탕아~ 히히!”
하지만 설탕이는 차인우에게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그림 좋고.’
그런 모습이 모니터에 담겼다.
촬영 감독은 설탕이를 찍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감탄을 했다.
‘아무렇게나 찍어도 뮤직 비디오네.’
설탕이라는 강아지의 피사체가 워낙 훌륭하다 보니 어떻게 찍어도 그림이 됐다.
촬영 감독의 옆에서 모니터를 지켜보는 김상수의 얼굴은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오늘 그는 많으면 세 신 정도 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배우들보다는 설탕이가 NG를 많이 낼 것을 감안해 둔 것.
그런데 벌써 다섯 신째 촬영을 하는 중이었다.
놀랍게도 설탕이는 촬영 도중 단 한 번도 NG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배우들이 자잘한 NG를 내곤 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한두 신 정도 더 찍는 것이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한테 천운이 따랐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완벽한 강아지를 캐스팅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찍는 신은 설탕이가 가족이 된 첫날, 손자와 즐겁게 마당을 뛰노는 이미지 컷이었다.
이대로 10초 정도만 더 찍으면 아주 깔끔하게 촬영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우악!”
설탕이를 신나게 따라다니던 차인우가 발을 헛디뎌 넘어질 판이었다.
달리던 속도도 있어서 제법 크게 다칠 상황.
“어어!”
주변의 어른들은 차마 손을 쓰지 못하고서 ‘어어’ 하는 사이였다.
땅과 부딪히려던 차인우의 앞에 갈색털이 나타났다. 그것은 설탕이의 등이었다.
차인우가 중심을 잃는 걸 보자마자 설탕이가 전력질주해서 달려온 것.
털퍽!
“윽!”
차인우가 그런 설탕이의 몸 위로 엎어졌다.
덕분에 다치진 않았지만 설탕이에게 제법 큰 충격이 전해졌을 터.
하지만 설탕이는 약간의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몸 위로 엎어진 차인우의 뺨을 할짝할짝 핥아주었다.
그 광경에 사람들은 하나같이 경악해서 입을 쩍 벌렸다.
‘사람보다 훨씬 낫다.’
설탕이를 보는 모든 이들이 같은 생각을 했다.
한편 놀란 차인우는 울먹이려다가 설탕이의 부드러운 혓바닥을 느끼고서는 헤헤 웃으며 녀석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김상수는 컷을 외칠 생각도 않고 그 광경을 하염없이 지켜봤다.
그렇게 십수 초가 흐르고 나서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컷! 오케이!”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신이 끝난 것이다.
NG가 났을 수도 있었고, 주연 배우가 크게 다칠 수도 있었던 상황을 설탕이가 모두 케어해 버렸다.
설탕이로 인해 본래 계획했던 장면보다 더욱 멋진 장면이 나오게 됐다.
돌아가던 카메라가 멈추고 난 뒤, 현장에는 묘한 정적이 흘렀다.
그사이로 설탕이의 신음이 낮게 깔렸다.
낑. 끼잉.
“앗! 설탕아, 아파? 다친 거야?”
설탕이의 몸을 누르고 있던 차인우가 깜짝 놀라 일어섰다.
그러자 신음이 바로 멎었다.
차인우가 설탕이의 갈비뼈를 강하게 압박하는 바람에 고통이 일었던 것.
근데도 설탕이는 촬영이 진행 중일 때는 고통을 참고서 오히려 차인우의 얼굴을 핥아줬다.
그러다 김상수가 컷을 외친 후에야 아프다는 것을 표했다.
NG를 내지 않기 위해서 그랬다고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설탕아, 미안해. 괜찮아?”
설탕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차인우와 그런 차인우를 핥아주는 설탕이.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멍하니 바라봤다.
특히 김상수는 커다란 충격에 목석처럼 굳어버렸다.
‘강아지가 NG를 신경 쓴다고?’
이 광경을 직접 본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믿지 못할 일이었다.
‘이거 어쩌면 설탕이한테 돈을 더 줘야 할지도.’
지금 보니 설탕이의 가치는 절대로, 고작 1억 정도가 아니었다.
* * *
10월 24일 수요일.
지한 식당 본점의 휴일이다.
모처럼의 휴일인 만큼 도근한과 조정호 모두 늦잠을 자고 있었다.
한 지붕 아래 지내는 세 사내들 중 일찍 눈을 뜬 것은 강지한뿐이었다.
힘껏 기지개를 켠 강지한은 버릇처럼 설탕이를 불렀다.
“흐아암~ 설탕아.”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도 없었고 좋아서 달려오는 설탕이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맞다. 내일까지 못 온다 그랬지.”
설탕이는 촬영으로 인해 내일이나 되어야 돌아올 터였다.
늘 곁에 있던 녀석이 없으니 요즘 들어 마음이 너무 헛헛한 강지한이었다.
“되게 보고 싶네.”
사람이면 전화통화라도 할 텐데 강아지이다 보니 그럴 수도 없는 것이 더더욱 설탕이를 그립게 만들었다.
그가 기침을 하고서도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지 못하고 설탕이에 대한 그리움에 젖어 있을 때였다.
[변화의 알-부화까지 남은 시간: 0일]
“어?”
변화의 알에 대한 알림 메시지가 나타났다.
동시에 강지한의 앞에 무지개 빛 달걀이 모습을 드러냈다.
[변화의 알이 부화합니다.]
[알의 힘으로 레벨 업 시스템의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변화의 구슬이 작동했을 때와 비슷한 메시지가 보였다.
[변화 시, 일상에서 퀘스트를 더 자주 얻게 됩니다.]
[퀘스트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얻는 경우가 많으며 퀘스트를 수락하거나, 거절하는 건 본인의 의사에 따릅니다.]
[퀘스트를 수락하며 이를 해결할 경우 그에 대한 좋은 보상이 따릅니다. 퀘스트는 언제든 포기할 수 있습니다. 단, 실패하거나 포기할 경우 패널티가 생길 때도 있습니다.]
퀘스트가 자주 발생한다는 것은 강지한에게 결코 나쁜 일이 아니었다.
겪어본 바로 레벨 업 시스템은 해결할 수 있는 난이도의 퀘스트만을 준다.
그게 조금 하드할 경우도 있긴 하나, 강지한에게 엿 먹어보라는 식의 퀘스트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었다.
아울러 퀘스트 클리어에 따른 보상들도 상당히 쏠쏠했다.
그러니 레벨 업 시스템이 살짝 정체되어 있는 현재, 이건 강지한에게 있어 호재나 다름없었다.
[레벨 업 시스템의 퀘스트 구조를 변화 시키는 데 필요한 비용은 30,000만족도 포인트와 100단골 포인트입니다. 지불하시겠습니까?]
강지한이 바로 레벨 업 현황을 열어 살폈다.
현재 누적 포인트는 47,523이 남았고 단골 포인트는 136이었다.
다행히도 필요한 총알은 들어 있었다.
‘지불하겠어.’
강지한이 의지를 발현했다.
[30,000만족도 포인트와 100단골 포인트를 지불했습니다. 레벨 업 시스템의 구조가 변화합니다.]
[완료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일상에서 더 많은 퀘스트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메시지가 사라지고 난 뒤 강지한은 잠시 거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체감으로 느껴지는 변화는 없었다.
꼬르륵.
그저 배가 고팠다.
본능에 따라 그는 부엌으로 향해 냄비밥을 지었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며 밥 짓는 고소한 냄새가 집 안 가득 퍼졌다.
냄비밥에 뜸을 들일 때쯤, 어제 만들어 놓았던 소고기카레를 데웠다.
카레가 충분히 열을 받아 보골거리며 거품을 뱉을 때 밥도 뜸이 다 들었다.
가스레인지 화구 두 개의 불을 전부 껐다.
그리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을 동그란 접시에 얇게 펴서 3분의 2 정도 눌러 담은 뒤, 나머지 공간에 카레를 부었다.
“죽인다.”
녹진한 카레 냄새가 빠르게 퍼져 나가 집 안은 물론이고 마당까지 장악해서 별채로 넘어갔다.
그에 단잠에 빠져 있던 조정호의 눈이 번쩍 뜨였다.
“카레입니까!”
무슨 꿈을 꿨는지 비명처럼 소리치며 그가 몸을 일으켰다.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야 상황을 인지한 조정호가 얼른 화장실로 들어가 세면만 하고 본채 건물로 향했다.
똑똑.
“사장님, 저 들어가겠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더욱 진한 카레향이 조정호의 입맛을 확 돌게 했다.
그가 복도를 지나갈 때, 마침 작은방의 문이 열리며 도근한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조정호가 도근한에게 인사를 건네자, 도근한도 어색하게 마주 인사했다.
“네. 좋은 아침입니다. 근데 카레향이 죽여주네요. 저 이 냄새 맡고 눈떴어요. 하하.”
“저도 그렇습니다.”
두 사람이 짤막한 대화를 나누며 거실에 들어섰을 땐, 이미 작은 상에 카레 세 접시와 알타리김치, 계란국이 놓여 있었다.
강지한이 수저를 세팅하며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들 잘 잤…… 어요?”
그의 음성이 말미에 흐트러졌다.
강지한의 눈이 도근한의 머리 위에 꽂혀 있었다.
거기엔 어제까지만 해도 볼 수 없었던 초록색 느낌표가 두둥실 떠 있었다.
‘저게 뭐지?’
강지한이 의아한 얼굴을 하자 도근한은 상 앞에 앉으며 물었다.
“왜 그렇게 봐? 내 얼굴에 뭐 묻었냐?”
“어? 아니야.”
조정호의 머리 위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도근한의 머리 위에만 초록색 느낌표가 떠 있었다.
“카레 냄새 좋다. 잘 먹을게.”
“매번 감사합니다, 사장님. 잘 먹겠습니다.”
도근한과 조정호가 식사를 했다.
그때였다.
느낌표에 집중하고 있던 강지한의 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도근한의 퀘스트를 확인하시겠습니까?]
‘퀘스트? 아…… 이런 식인 건가? 응.’
강지한이 수락하자 다른 메시지가 올라왔다.
[퀘스트-도근한에게 물을 떠주세요.]
[클리어 보상: 직원 능력치 1레벨 업권 1개.(랜덤)]
[수락하시겠습니까?]
‘직원 능력치 1레벨 업권 한 개?’
강지한의 눈에는 지한 푸드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능력치가 보인다.
그들의 능력은 요리, 청소, 회계, 설거지 등등으로 분할되어 각각 레벨이 책정되어 있다.
그 능력치 중 하나의 레벨을 1올릴 수 있는 아이템을 준다는 얘기 같았다.
‘뒤에 랜덤이라는 건 능력들에 관한 얘기겠지.’
직원의 능력을 레벨 업 할 수 있는 아이템을 주긴 하는데, 그게 어떤 능력에 관한 것인지 정해놓지는 않았다.
퀘스트를 클리어해야 설거지인지, 요리인지 화술인지를 알 수 있을 듯했다.
‘이왕이면 요리가 나와라.’
강지한이 속으로 바라고 있는데 도근한이 말했다.
“눈 뜨자마자 밥부터 욱여넣었더니 목 메이네.”
그가 일어서려 할 때 강지한이 퀘스트를 수락했다.
“앉아있어. 내가 떠다 줄게.”
그러고는 물 두 잔을 떠서 도근한과 조정호에게 건네주었다.
“꿀꺽꿀꺽. 후, 좋다.”
도근한이 물을 넘겨받고 마시자마자 퀘스트 성공 알림이 떴다.
[퀘스트 클리어! 성공 보상이 지급됩니다.]
[직원 요리 능력치 1레벨 업 권을 얻었습니다.]
[얻은 아이템은 레벨 업 현황에 기록됩니다.]
‘오!’
강지한이 바라던 아이템이 나왔다.
그가 레벨 업 현황을 확인했다.
<레벨 업 현황>
[강지한]
얼굴 LV6 만족도+5 (숙련도 38/100)
혀 LV6 미각+5 (숙련도 40/100)
목소리 LV6 (숙련도 35/100)
손 LV6 (숙련도 43/100)
눈 LV5 (M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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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 아이템]
직원 요리 능력 1레벨 업권x1
누적 포인트: 17,523
단골 포인트: 36
‘이런 식으로 표기되는구나. 그럼 이걸 누구한테 주는 게 좋을까?’
강지한이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응?’
도근한의 머리 위에 또다시 초록색 느낌표가 나타났다.
‘또 퀘스트가?’
그가 바로 퀘스트를 확인했다.
[도근한의 요리 능력치를 18까지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