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
Restaurant 198. 한 달의 동고동락
주방에서 반찬을 플레이팅하다 무심코 고개를 든 강지한의 눈에 도근한이 들어왔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강지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근한아, 가려고?”
강지한의 물음에 도근한이 놀란 듯 어깨를 움찔 떨었다.
“어? 어. 잘 먹었다. 가볼게.”
그렇게 말하는 도근한은 뭔가에 홀린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가 옆 테이블에서 식사 중인 하경춘을 흘끔 보고서 카운터로 갔다.
그에 후다닥 다가온 설인아가 말했다.
“사장님께서 계산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오픈 준비 도와준 값이래요.”
“아,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도근한은 그렇게 지한 식당을 나섰다.
‘대체 무슨 고민이 있는 거야?’
친구가 나가 버린 현관문을 보며 강지한은 의아해했다.
그런데 브레이크 타임이 되어 스마트폰을 확인했을 때, 도근한에게서 메시지 하나가 와 있었다.
내용은 짧았다.
-조만간 또 올게.
* * *
“나 또 왔다.”
“……장난하냐.”
하루 영업을 마치는 시각.
직원들이 돌아가고 마지막으로 남아서 문단속을 하는 강지한의 앞에 도근한이 나타났다.
“서울 간 거 아니었어?”
“가려다가 이 동네 조용하고 좋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까 해가 지더라. 그래서 하루 더 있다 가려고. 신세 좀 지자.”
“그러든지.”
“근데 아까 점심에 내 옆 테이블에서 식사하던 아주머니 누군지 아냐?”
“응?”
강지한이 낮의 기억을 되짚었다.
“아, 경춘 보살님.”
“보살님?”
“점쟁이셔. 춘천에서 요새 제일 유명해. 점 보러 오는 사람 엉덩이가 방석에 닿기도 전에 모든 걸 꿰뚫어본대. 우리 식당 단골이야.”
“너도 그 사람한테 가서 점 봐봤어?”
“아니. 근데 갑자기 그분 얘기는 왜 물어?”
“아까 밥 먹고 일어서려는데 그분이 그러더라. 내가 손재주는 타고났지만 기계를 만져야 팔자대로 사는데 음식을 만지고 있으니 기가 탁 막혀서 일이 꼬인다고.”
“그래?”
“근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서 계속 찝찝하더라고.”
그제야 강지한은 도근한이 무슨 고민을 안고 온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장사가 잘 안 돼?”
“응.”
“그때 보니까 넓고 깔끔하고 좋던데. 목도 나쁘지 않고. 음식까지 맛있는데 왜?”
“그래서 고민이야. 심지어 배틀 셰프 나가서 준우승 하는 덕에 광고도 많이 됐는데 이상하게 손님이 안 든다. 꽃길만 걷는 너랑은 완전히 딴판이야. 왜 그런 건지 진짜 이유를 모르겠어.”
원래 음식 장사라는 게 그렇다.
기본적으로 요리 실력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식당 목을 볼 줄 아는 눈도 필요하다. 사람을 다룰 줄도 알아야 하며, 식당을 지혜롭게 운영해 나가는 노련함도 필요하다. 손님을 대할 때의 서비스 정신 또한 필수적이다.
그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갖추어져도 모를 이유로 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이 요식업이다.
도근한의 스테이크 하우스는 근 두 달 동안 내리 적자를 봤다.
그것도 심각한 적자였다.
배틀 셰프 결승전이 방송된 7월 중에는 오픈발 받는 식당처럼 장사가 잘됐다.
그런데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기승을 부리는 8월부터 거짓말처럼 손님들이 뚝 끊겼다.
사실 그 전에도 장사가 잘되는 편은 아니었다.
스테이크 하우스가 만족스러운 성적을 낸 것은 배틀 셰프에 출연하는 몇 달 동안이 고작이었다.
도근한은 대체 뭐가 문제인지를 몰라 답답했다.
그러던 와중 강지영과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그녀가 지한 식당 분점을 맡아 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강지한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강지영에게 들었다.
춘천에서 그의 위상부터 시작해서 그가 손을 댄 사업들이 하나같이 얼마나 잘되고 있는지까지.
이번에 분점 또한 반응이 좋은 데다가 만두 가게까지 런칭한다는 얘기에 도근한은 강지한을 만나러 가고자 마음먹은 것이다.
자신과는 달리 손대는 족족 승승장구하는 그의 비결이 무언지 궁금했다.
하지만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아 결국 어젯밤엔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러다 결국 오늘에서야 속내를 털어놓게 되었다.
“흠…… 장사가 안 되는 이유라.”
강지한이 본인의 과거를 떠올렸다.
리어카를 몰며 장사할 당시의 그는 늘 손님 대신 파리만 몰고 다녔다.
기본적으로 떡볶이가 맛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동네 리어카 장사라는 게 유동인구도 한정적인 데다 제대로 된 매장을 갖고 하는 게 아닌지라 벌이가 빤했다.
하지만 도근한에게는 그런 문제가 전혀 없었다.
장고를 하던 강지한이 도근한에게 물었다.
“너 대체 뭐가 문제였던 거냐?”
도근한이 얼빠진 얼굴로 말했다.
“……그거 몰라서 너 보러온 거잖아! 하아, 진짜 그 점쟁이 말대로 가업을 이었어야 했던 건가.”
“가업?”
그러고 보니 강지한은 도근한의 집안이 부유하다는 것만 알지, 부모님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아버지가 전자기기 회사 오너거든. 중소기업인데 청소기랑 세탁기 관련해서는 대기업 못지않은 제품들을 꾸준히 내놓아서 계속 잘되고 있어.”
“전혀 몰랐다.”
“네가 나한테 관심이나 있었냐.”
“너는?”
“난 많았지. 널 볼 때마다 어떻게 괴롭혀 줄까 무지하게 고민했으니까.”
“자랑이다. 나쁜 새끼.”
“미안했지, 많이. 생각해 보면 열등감에서 비롯된 마음이었던 것 같아.”
“네가 나한테 열등감 느낄 게 뭐가 있어서?”
“그 얘기는 다음에 하자. 아무튼 그 점쟁이 아줌마 말이 맞는 게 아닌가 싶다.”
“아, 기계를 만져야 팔자대로 살 수 있다 그랬다는 거?”
“응. 그러면서 뭐라 그러는지 아냐? 네가 내 팔자 바꿔줄 귀인이래.”
“내가? 무슨 수로?”
“모르지. 단골이라며. 아줌마한테 좀 물어봐 주던가.”
“흠…….”
강지한이 또 생각에 빠졌다.
도근한은 그런 강지한을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나뒀다.
한참 말이 없던 강지한이 조심스레 도근한에게 물었다.
“너 식당은 문 안 열어도 돼?”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 달 정도 쉰다고 공지해 놨어. 지금 상태에서는 식당 돌리는 게 더 손해야.”
“그럼 쉬는 동안 우리 집에서 지내보든지.”
“내가 왜?”
“내가 뭘 딱히 알려줄 수 있는 건 없는데 경춘 보살님은 나한테 답이 있다 그러니까. 그것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강지한의 말을 듣고 난 도근한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
“야. 너희 집에서 지내면서 식당 일도 같이하면 안 되냐?”
“내 식당에서 일하겠다고?‘
“네가 일하는 걸 곁에서 지켜보면 뭔가 해답이 나올 것도 같은데. 월급은 안 줘도 돼.”
“우리 집에서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월급 같은 소리 한다.”
“그래도 돼?”
“너 정도 되는 요리사가 알아서 일 도와준다는데 누가 싫다고 하겠어. 그렇게 해. 근데 한 달 일하고 나서 해답 같은 거 못 찾았다고 나 원망하지 마.”
“오케이.”
그렇게 라이벌이자 친구인 두 사람은 뜻밖의 동거를 시작하게 됐다.
* * *
야심한 시각.
천명옥은 변노민 의원과 만나 담화를 나누고 있었다.
춘천의 예술가 출신으로 국회의원 자리까지 꿰찬 변노민.
올해 쉰 둘인 그는 춘천의 문화예술에 관해서는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었다.
춘천문화재단의 이사장이 그와 대학 동창 출신인 데다가 돈독한 사이라 더더욱 힘이 실리기도 했다.
그런 변노민은 평소 식도락을 상당히 즐겼다.
그렇다 보니 절로 춘천 제일가는 한식 대가인 천명옥과 연이 닿았고 친분을 다지게 됐다.
변노민은 구자승과도 같은 대학 선후배 사이였다.
변노민의 두 기수 아래인인 구자승은 청년 시절 그를 친형처럼 잘 따랐다. 그래서 구자승과 친하게 지내는 천명옥은 더더욱 변노민과 긴밀한 사이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천명옥은 알게 됐다.
변노민은 자신과 비슷한 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춘천의 문화예술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말하는 그지만, 실상은 본인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 더욱 혈안이었다.
그 때문에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것들을 걷어내기 위해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천명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춘천 문화재단의 주최로 규모가 큰 요리 대회를 열어 달라는 건가요?”
천명옥의 얘기를 듣고 있던 변노민이 물었다.
“그래요.”
변노민이 씩 웃었다.
“한글날 요리 대회에서 자제분이 실수를 하는 바람에 명옥정의 위신이 많이 떨어졌지요. 그에 대한 설욕을 하시려는 건가요?”
“그럴 리가요. 전 다만 갈수록 식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져 가는 만큼 춘천 또한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지역 식문화의 다양성과 위대함에 대해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싶을 뿐이에요. 언제까지 춘천하면 닭갈비와 막국수만 떠올리게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그렇지요. 춘천엔 그 음식들 말고도 참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는 식당이 많지요.”
“맞아요. 그 많은 식당의 대가님들께서 요리한 음식으로 겨루면 얼마나 광고 효과가 크겠어요. 대회에 나가 높은 순위에 랭크된 분들의 식당은 절로 홍보가 될 테니까요. 아울러 춘천 지역 요식업계 자체에도 활기가 돌겠죠.”
“그리고 그 대회에서 우승을 한 대가님의 식당은 춘천 최고라는 독보적인 입지를 다지게 될 겁니다. 이를테면 명옥정이라던가.”
“호호호. 너무 이른 판단이시네요. 앞일은 어찌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제 혜안으로 보건대 분명히 명옥정이 우승하게 될 겁니다. 안 되면 되게 해야죠.”
심사위원들을 매수하겠다는 얘기였다.
그 뜻을 알아들은 천명옥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역시 변노민 의원은 말이 통하는 상대였다.
한데 이야기가 잘 풀려 나가던 와중 갑자기 그가 앓는 소리를 냈다.
“대회는 이틀 정도로 경합해서 예선, 본선 치르면 될 것 같습니다. 출연자는 주최 측에서 판단해 춘천 시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식당, 서른 곳의 대가들을 초청하기로 하지요. 한데 그런 큰 대회라는 걸 여는 것이 쉽지가 않아요. 관계자들이 제 말을 부드럽게 따라주기만 한다면야 뭔들 못하겠습니까. 그런데 다들 내 맘 같지는 않다는 게 문제지요. 춘천에서 방귀 좀 뀐다는 거물 몇을 구워삶아야 할 텐데, 그러려면 목에 기름칠이라도 해줘야지 않겠습니까.”
돈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천명옥은 이미 거기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식도가 느끼해질 때까지 기름칠해 드리도록 할게요.”
“하하, 알겠습니다. 한데 요리 대회를 연다고 강지한이 선뜻 참가할까요?”
“제가 보기에 그는 학처럼 고고한 사람인지라 굳이 나오려 들지 않을 거예요.”
“그럼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충분히 의미가 있어요.”
천명옥은 강지한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대회를 열어주기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이에 그녀의 의중을 파악하면 변노민이 큰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 그렇군요. 그런 것이군요. 춘천시를 위한 성대한 요리 대회에 강지한이 참가하지 않는다라.”
“그건 참 속상하고 아픈 일이 되겠지요. 전부 춘천 식문화의 발전과 요식업계를 위한 일인데요.”
“그렇지요. 그리고 춘천 시민들은 그를 과하게 좋아하니 대회에 꼭 나오기를 바랄 겁니다.”
그런데 강지한이 나오지 않는다면 춘천 시민들과 요식업계 종사자들이 그를 보는 시선은 전과 많이 달라질 것이 분명했다.
아울러 변노민은 작은 잡음을 큰 소동으로 키워 버리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한데 그가 사람 속은 알 수 없는 법이라 또 모르지요. 그가 참가하겠다고 할지.”
천명옥의 얼굴에 걱정이 일었다.
그에 능숙한 중년 의원은 고개를 저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는 나오지 못할 겁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 미소가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다.
* * *
10월 22일 월요일.
도근한이 지한 식당으로 출근한 지도 나흘째가 되는 날이다.
그는 출근 첫날부터 지한 식당의 메뉴를 그대로 플레이팅하는 데 성공했다.
메뉴의 모양새를 똑같이 재현하는 속도가 강지영보다 빨랐다.
이틀째부터는 강지한과 함께 출근해서 반찬을 준비했는데 다른 지시가 없어도 맛과 간을 비슷하게 잡아냈다.
사흘째는 만두까지 같이 빚었고 오늘은 메인메뉴도 함께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 도근한의 요리 실력에 주방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혀를 내둘렀다.
강지한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눈에는 도근한의 능력치가 보였으니까.
<도근한의 능력치>
직급: 지한 식당 단기 근무자
등급: A+
능력: 요리 LV 16, 서빙 LV 5, 청소 LV 10, 회계 LV 10, 설거지 LV 10, 화술 LV 3
특수 능력: 문일지십(聞一知十)
정직도: 94/100
신뢰도: 91/100
종합 평가: 요리에 관해서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타고난 천재. 특수 능력으로 인해 스스로 노력할 경우 성장 속도와 배움이 빠르다. 잠재력 또한 놀라울 만큼 상당하다. 그러나 성정 자체가 거만하여 오랜 시간 발전이 없다가 강지한을 라이벌로 둠으로써 노력하는 천재형으로 거듭난 케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