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98화 (198/330)

# 198

Restaurant 197. 춘천의 귀인

박춘식이 문을 걸어 잠그는 걸 지켜보고 있던 강지한이 뒤에서 낯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어?”

강지한이 놀라 몸을 돌렸다.

그의 뒤에 서 있는 사람은 바로 도근한이었다.

“……너 여기 왜 있어?”

환영은 기대도 안 했지만 마치 있으면 안 될 곳에 온 사람 취급을 하니 도근한의 미간이 대번에 구겨졌다.

“서울에서 온 사람한테 그게 할 소리냐?”

“그러니까. 서울에서 장사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오늘 문 닫았다.”

“왜?”

“그냥 쉬고 싶어서.”

“너 그렇게 장사하다가 망한다.”

“네 입에서는 좋은 말이라는 게 나오지를 않는 거냐.”

“상대에 따라 다르지.”

그때 상황을 살피던 서정혜가 다가와 물었다.

“사장님 친구분 되시나요?”

자신보다 연배가 많아 보이는 여인의 물음에 도근한이 얼른 대답했다.

“아, 네. 도근한이라고 합니다.”

“어머나, 그러시군요. 저는 서정혜라고 해요. 여기 강 사장님께 말도 못할 은혜를 받은 덕에 만두 가게에서 일하게 됐어요. 잘 부탁드려요.”

“잘 부탁드립니다.”

“근데 친구분 인물이 훤칠하시네요. 정말 잘생기셨어요.”

“그래요? 지한이랑 저랑 둘 중에 누가 더 잘생겼어요?”

도근한이 은근히 기대하며 물었고, 서정혜는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사장님이요.”

“……그렇군요.”

괜히 물어봤다가 본전도 못 찾은 도근한의 어깨가 축 쳐졌다. 그런 도근한에게 강지한이 조정호와 박춘식도 소개시켜 줬다.

“근데 아까 무슨 촬영하는 것 같던데, 그거 뭐야?”

프로덕션 이리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조금 전 철수해서 서정혜의 집으로 출발해 여기에는 없었다.

서정혜가 집에서 가족과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먼저 가서 세팅을 준비하고 있을 터였다.

“설명하려면 복잡해. 밥 먹었냐?”

“출발하기 전에 시리얼 말아 먹었어.”

“그게 다야?”

“밥 생각이 없다, 요즘.”

말을 하는 도근한의 표정이나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었다.

아무래도 무언가 일이 있는 모양.

이를 눈치챈 강지한이 도근한에게 제안했다.

“술 한잔할래?”

“재워주면 먹고.”

“우리 집에 남는 방 있어.”

“그럼 먹자.”

“뭐 먹을래?”

“집에서 먹자. 안주 내가 해줄게.”

“나쁘지 않지. 근데 갑자기 춘천에는 뭐하러 왔어?”

“모르겠다, 나도.”

말을 하는 도근한의 눈이 많이 지쳐 보였다.

* * *

도근한과 강지한은 장을 봐서 들어왔다.

그러는 사이 집에는 조정호가 먼저 들어와 잠근 대문을 열어놓았다.

조정호는 자신의 차로 박춘식을 모셔다 드리고 이웃사촌 서정혜과 함께 귀가한 것.

도근한이 그런 조정호에게 함께 한잔하실 것이냐 물었다.

눈치가 빠른 조정호는 내일 팔 만두소 작업을 해놓아야 한다며 자리를 빠져주었다.

강지한이 마트에서 사온 술을 냉장고에 넣는 사이 도근한은 이미 요리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봉골레 파스타와 연어 스테이크, 소고기 스테이크를 동시에 만들어 나갔다.

도근한이 요리하는 모습을 강지한은 흥미롭게 지켜봤다.

배틀 셰프를 할 때는 본인의 요리에 집중하기 바빠 다른 사람을 관찰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도근한이 요리하는 걸 제대로 보는 건 동창회 때 이후 처음이었다.

주방 앞에 선 도근한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서로 다른 세 가지의 요리를 한 번에 진행하면서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여유까지 엿보였다.

배틀 셰프에서 시달렸던 것이 그를 훌쩍 성장시킨 것이다.

순식간에 세 접시의 음식이 완성되어 상에 놓였다.

강지한은 술과 술잔, 앞접시, 포크와 나이프를 세팅했다.

“먹어봐.”

도근한이 강지한에게 먼저 시식을 권했다.

그가 만든 요리의 레벨들은 일괄적으로 레벨5였다.

가정집의 약한 화력의 가스레인지로 만든 것 치고 상당한 수준의 실력이었다.

강지한은 봉골레부터 맛봤다.

“음~”

면을 돌돌 말아 입에 넣자마자 조개 육수의 감칠맛과 풍부한 바다향이 확 퍼졌다.

면의 익힘 정도 역시 딱 알맞았다.

조개는 동네 대형 마트에서 산 것이라 신선도가 크게 좋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조개의 비린내를 완벽하게 잡아내고 풍미만을 뽑아냈다.

만족한 강지한이 이번엔 연어 스테이크를 한 점 썰어 먹었다.

겉면이 크리스피하게 구워진 반면 속은 부드럽기 그지없는 연어 스테이크는 입안에 들어가며 바삭한 식감을 안겨주자마자 결대로 부서지며 품고 있던 육즙을 확 뿜어냈다.

연어 스테이크에 곁들인 사프란 크림소스도 기가 막혔다.

소고기 안심 스테이크는 더 말할 것도 없을 만큼 최고였다.

“역시.”

“맛있냐?”

“배틀 셰프 준우승자가 만든 요리인데 맛이 없으면 이상한 거지.”

“그래, 마시자.”

도근한이 두 사람의 잔에 술을 채웠다.

그러고는 건배도 없이 소주를 입에 탁 털어 넣었다.

잔을 앞으로 내밀었던 강지한이 머쓱하게 손을 회수해서 잔을 비웠다.

“크으.”

안주가 너무 맛있어서 그럴까?

오늘따라 유난히 술이 썼다.

“근데 너 만두 가게는 어떻게 알고 찾아왔냐?”

강지한이 궁금해하자 도근한은 빈 잔에 다시 술을 채우며 픽 웃었다.

“빨리도 물어본다. 지영 누나가 말해주더라. 너 오늘 만두집 낸다고.”

“아, 지영 누나랑은 자주 연락하나 봐?”

“너랑 다르게 사람이 편하잖아.”

“칭찬 고맙다. 근데 춘천에는 진짜 왜 온 거야?”

“너 보러왔으니까 같이 술 먹고 있겠지.”

“나를 갑자기 왜? 연락도 없이.”

“그냥 문득 생각이 나더라.”

“얼굴을 보니 고민거리 한가득 짊어지고 온 것 같은데.”

“술이나 먹자.”

* * *

도근한은 그날 과음을 했다.

술에 원수라도 진 사람처럼 쉬지 않고 꿀꺽꿀꺽 넘겨대더니 밤 10시가 되기도 전에 쓰러지고 말았다.

강지한은 그런 그를 작은방으로 옮기고서 손을 탁탁 털었다.

“후우, 짜식이 보기와 달리 제법 무겁네. 근데 무슨 고민이 있는 거야?”

도근한은 끝끝내 속내를 내비치지 않았다.

그러다 이렇게 잠들었으니 깨워서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

강지한이 도근한에게 이불을 덮어주는데 바깥이 시끄러웠다.

왕왕!

“오빠~! 나 들어간다!”

설탕이와 이향숙의 목소리였다.

강지한은 오늘 만두 가게 일을 도와주면서 설탕이를 이향숙에게 맡겨두었었다.

김상수 일행은 지난 일요일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강지한의 집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탕이와 충분히 유대감을 조성했으니 한 주간 촬영 준비를 하고 다음 주부터 바로 촬영에 들어갈 것이라며 작별 인사를 건네고 춘천을 떠나갔다.

설탕이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 강지한의 품에 뛰어들어 안겼다.

“설탕아~ 누나랑 잘 놀았어?”

“뭘 물어. 내가 얼마나 잘 돌봐줬다고.”

“설탕이가 너랑 놀아준 건 아니고?”

“부정하지는 않겠어.”

“하하. 아무튼 고마워. 너도 회사일 신경 쓰느라 바쁠 텐데.”

“우리 직원들 다 설탕이 좋아해. 걱정하지 마. 그럼 나 가볼게. 일 마저 해야 돼.”

“이 시간까지?”

“요새 더 바빠졌거든. 하, 능력이 많으면 여러모로 피곤하다니까.”

“내가 집까지 바라다 줄까?”

“킁킁? 술 냄새 나는데? 운전하겠다고?‘

“아니. 택시로 바라다 주려고.”

“됐어! 차 끌고 왔어요. 안뇽! 설탕아! 날 잊지 마! 또 금방 보러 올게!”

왕!

이향숙은 설탕이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안도한 얼굴로 떠나갔다.

“우리도 가서 자자, 설탕아.”

* * *

새벽녘.

강지한은 무언가가 얼굴을 간질이는 느낌에 눈을 떴다.

“응……?”

그러자 그의 시야에 들어온 건 갈색과 하얀색의 털로 뒤덮인 통통한 설탕이의 꼬리였다.

설탕이가 엉덩이를 강지한의 얼굴 쪽으로 향하게 드러누워서는 꼬리를 계속 흔들고 있던 것.

“설탕아?”

강지한이 이름을 부르자마자 설탕이가 휘릭 뒤돌아섰다.

그런 녀석의 입에는 작은 선물상자가 물려 있었다.

[밤사이 설탕이가 물어오기 스킬로 선물을 물어왔습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읽은 강지한이 선물을 넘겨받으며 설탕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완전 나이스야, 내 새끼.”

헥헥!

좋아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설탕이를 흐뭇하게 바라본 강지한이 상자를 터치했다.

그러자 뚜껑이 열린 상자 안에서 무지개 빛 계란이 튀어나왔다.

[축하합니다. 변화의 알을 얻었습니다. 변화의 알은 주어진 조건을 충족시키면 부화하게 되며, 그 즉시 레벨 업 시스템의 작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변화의 알?’

메시지를 보자마자 변화의 구슬을 습득했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당시 강지한은 레벨 업 시스템이 정말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의문을 품었고 그로 인해 레벨 업 시스템의 의존도가 낮아졌다.

그러자 얻게 된 변화의 구슬로 인해 변화의 장이 열리며 레벨 업 시스템이 한 차례 바뀌었었다.

변화의 알 또한 그것과 비슷한 맥락의 아이템인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시스템에 별다른 의구심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의존도가 하락한 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강지한이 변화의 알을 살폈다.

그러자 알의 위로 설명이 나타났다.

[변화의 알-부화까지 남은 시간: 7일]

‘일주일 뒤에 부화하는 거구나.’

이 알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궁금했다.

* * *

오늘 지한 식당 본점의 첫 번째 손님은 도근한이었다.

전날 과했던 술로 인해 10시쯤에야 눈을 뜬 도근한은 식당으로 오라는 강지한의 메시지를 보고 바로 집을 나섰다.

일찍 식당에 도착해서 잡다한 일들을 조금 거들어주다가 오픈하자마자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는 과음으로 아픈 속을 달래기 위해 제육볶음과 김치찌개를 선택해서 주문했다.

주문이 들어가자 강지한과 주방 식구들은 민첩하게 음식을 준비했다.

지한 식당의 주방에는 빠져나간 조정호와 강지영 대신 새로운 남자 직원 두 명이 더 들어와 있었다.

둘 다 스물 중반의 젊은 나이로 어렸을 적부터 요리에 뜻이 있는 청년들이었다.

그들과 호흡을 맞춰 완성한 첫 번째 상은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도근한의 테이블로 서빙되었다.

도근한은 음식이 나오자마자 메인메뉴인 제육볶음과 김치찌개부터 맛봤다.

둘 다 기가 막힐 정도로 엄청난 맛이었다.

함께 나온 반찬들 또한 먹을수록 나오는 건 감탄뿐이었다.

‘진짜 괴물이네, 이 자식.’

도근한의 상이 금방 텅 비어 버렸다.

맛에 푹 빠져 거의 정신을 놓고 먹어 버린 것.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니 홀은 다른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빨리 자리 비워줘야겠다.’

도근한이 의자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다가가려 했다.

그런데 그의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낯선 아주머니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손재주는 타고났는데, 기계를 만졌어야 제 팔자대로 가는 것을 음식을 만지고 있으니 풀려야 하는 기가 탁 막혀서 제대로 뻗어 나가지를 못하지.”

“……네?”

놀란 도근한이 아주머니를 쳐다봤다.

그러자 아주머니도 고개를 돌려 도근한과 눈을 맞췄다.

그녀는 다름 아닌 요새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춘천의 유명한 점쟁이 하경춘이었다.

“노력하고 성장하는 것의 반도 성과를 보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으니 쯧쯧쯧쯧. 딱하다, 딱해.”

자신의 속내를 완전히 읽는 듯한 하경춘의 말에 도근한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주머니 누구세요?”

“그래도 제 살 길은 제대로 찾아왔네. 귀인을 만나면 막힌 기가 트여 길이 열릴 테니, 그저 말 잘 듣고 하자는 대로 따르면 될 거야.”

그렇게 얘기하는 하경춘의 시선이 주방으로 향했다.

도근한의 시선도 덩달아 움직였다.

그의 눈동자가 머무는 곳엔 강지한이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