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92화 (192/330)

# 192

Restaurant 191. 설탕이 온다

정현수가 강아지 조련사의 길로 들어선 지 20년이 넘었다.

그는 여태 이런 강아지를 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많이 쳐줘야 한 살하고 몇 개월 더 된 녀석인데.”

정현수는 자신의 앞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는 설탕이를 이리저리 살폈다.

아직 성견도 되지 않은 녀석이 영특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정현수는 마당에서 설탕이에게 ‘스탠리 코렌의 지능 테스트’를 해보았다.

이것은 총 6단계로 나누어지는데 컵 아래 감춘 음식을 얼마나 빨리 찾는지, 대형 타올을 뒤집어썼을 때 몇 초 내로 탈출하는지, 강아지와 눈이 마주쳤을 때 밝게 웃어줄 시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 작은 수건 안에 음식을 감췄을 때, 그리고 테이블 아래에 음식을 감췄을 때 몇 초 내로 찾아 먹는지,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름을 정확하게 인지하는지가 그것이다.

각각 성과에 따라 1점부터 5점씩 채점이 되고 총합 25점 이상일 경우 천재견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설탕이는 모든 단계에서 만점을 받아 30점을 획득했다.

한데 중요한 건 그 테스트 하나하나를 신기록 수준으로 클리어했다는 것이다.

정현수는 설탕이처럼 빠른 속도로, 그리고 정확하게 테스트를 수행하는 강아지를 여태 본 적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설탕이는 그가 하는 일상적인 말을 대부분 알아듣고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과 함께 산 지 일 년 정도밖에 안 된 녀석이 어떻게 이런 인지능력을 보이며 교감을 나누는 것인지 불가사의할 정도였다.

“네 몸값이 괜히 1억이 아니구나.”

정현수는 설탕이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헥헥헥!

설탕이가 그 손길을 한껏 느끼며 좋아했다.

‘혹시 이러면 어떨까?’

문득 설탕이의 영특함이 어디까지일지 궁금해진 정현수가 일부러 화난 척 연기를 했다.

“설탕이 떽!”

보통의 강아지들은 조금 전까지 잘 놀아주던 사람이 갑자기 화를 내면 전후 상황을 연결하지 못하고 당황해서 거리를 두거나 적대적으로 행동한다.

하지만 설탕이는 전후 상황을 파악하고 사람을 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만약 이 녀석의 인지능력이 그 정도라면 일단은 당황하겠지만 바로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을 시험하는 것이라는 걸 알아챌지도 모르는 일.

‘그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지만.’

그런데 설탕이는 갑작스런 정현수의 태도 변화에 놀라서는 뒤로 물러나 거리를 두었다.

그러고는 시간이 흘러도 좀체 정현수의 곁으로 다가오려 하지를 않았다.

이를 본 정현수가 피식 웃었다.

‘역시 그 정도까지는 아닌 건가? 하긴…… 그게 가능하면 강아지가 아니라 사람이지, 사람.’

정현수가 이내 표정을 풀고 설탕이를 불렀다.

“미안해, 설탕아~ 내가 장난친 거야. 이리 와.”

왕!

그제야 설탕이는 정현수에게 다가와서 꼬리를 흔들었다.

“그래그래. 고생했다.”

만약 설탕이가 조금 전의 테스트를 통과했더라면 이것저것 더 시켜볼 요량이었던 정현수였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만 들어가서 발 씻고 쉬자.”

헥헥헥!

정현수가 현관문을 열자 설탕이가 앞장서서 집 안으로 들어섰다.

한데 정현수를 등진 설탕이는 아주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이 꼭 하마터면 귀찮아질 뻔한 걸 겨우 넘겼다는 것 같았다.

이를 까맣게 모르는 정현수는 설탕이를 인지능력이 상당히 뛰어난 천재견 정도로 판단했다.

그는 설탕이를 반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 * *

올해 고3인 유정미는 대학을 포기했다.

애초에 뜻이 없었다.

그녀는 공부 머리가 별로였고, 그 길이 자신과 맞지도 않았다.

대신 몇 년 전부터 열심히 인터넷 생방송 BJ를 하며 스스로의 입지를 다졌다.

그 결과 지금은 한 번 방송을 켜면 기본 2,000명이 시청을 해주는 나름 인기 BJ가 되어 있었다.

시청자들이 보내주는 후원금도 짭짤해서 매달 최소 200만 원 이상의 수입을 내곤 했다.

그런 유정미는 강지한과 인연이 깊었다.

그가 리어카에서 장사를 할 때부터 유정미는 단골이었다.

지한 분식과 지한 김치 전골을 오픈했을 때는 유정미가 직접 방송을 내보내며 홍보까지 해줬다.

이미 강지한과는 사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 지 오래다.

지금은 지한 식당의 열렬한 단골로서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찾아왔다.

물론 홍보 방송 역시 빼먹지 않았다.

강지한은 그런 유정미가 고마웠다.

수능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생의 교실은 분위기가 살얼음판 같았다.

밝고 쾌활하고 웃기기 좋아하는 유정미에게는 이곳이 지옥이었다.

띠리리리리~

점심 종이 울리자마자 유정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급식실로 향했다.

급식실에 들어오자마자 군침 넘어가는 음식 냄새가 유정미의 기분을 확 들뜨게 만들었다.

요즘 유정미가 유일하게 힐링을 할 수 있는 장소는 바로 급식실이었다.

올해 6월 말 무렵.

그녀가 다니는 인경 고등학교에서 지한 김치를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급식의 인기가 확 치솟았다.

급식 음식 다 똑같다며 이미 낸 돈 아까운 줄 모르고 매점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학생들도 김치맛 때문에 이제는 꼬박꼬박 급식을 챙겨 먹었다.

유정미가 식판을 들고 배식대로 돌진했다.

오늘의 메뉴는 햄야채볶음밥과 어묵국, 튀김 만두, 계절 과일, 배추김치, 닭가슴살 샐러드였다.

“와아! 대박.”

이미 뭐가 나올지 알고 있던 유정미였지만 직접 보니 절로 감탄이 나오는 메뉴들이었다.

“정미, 안녕~”

인경 고등학교의 영양교사 소이현이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유정미도 헤헤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소이현은 유정미를 유독 예뻐했다.

그 누구보다 자신의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김치 많이 주세요~!”

유정미가 말을 하지 않아도 어련히 많이 주려고 했던 소이현이었다.

그녀의 지한 김치 사랑은 익히 알고 있었으니까.

“고생하세요!”

식판을 음식으로 가득 채운 유정미가 인사를 하고서는 멀어져 갔다.

소이현은 급식소 내부를 슥 둘러봤다.

유정미보다 일찍 와서 배식을 받아 식사하는 학생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밝았다.

‘진짜 지한 김치로 바꾼 게 신의 한 수였지.’

소이현은 항상 김치를 남기는 학생들로 인해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강지한을 알게 되고 지한 김치를 들이면서 그런 일이 사라졌다.

강지한과의 인연은 소이현이 잃어버린 강아지 ‘히릿’을 그가 찾아주면서 시작되었다.

‘그러고 보니 요새 통 연락도 못 드렸네. 감사하다고 문자라도 한 통 넣어드려야겠다.’

* * *

유정미는 농구부원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 끼어 앉았다.

워낙 성격이 털털하고 괄괄한 그녀인지라 남학생들과도 허울 없이 어울렸다.

“너희들 이 영상 봤어?”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밥을 먹던 유정미가 갑자기 인튜브에 접속해 어떤 영상 하나를 플레이했다.

“이거 요즘 가장 핫한 영상이거든? 벌써 조회수가 100만이 넘었어.”

“뭔데?”

유정미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 안에서는 얼마 전, 프로덕션 이리에서 촬영한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강지한이 오장호의 가족에게 크림스파게티를 대접하는 그 영상이었다.

“뭐야. 나 이거 봤어.”

“나도.”

“대박이었다. 이거 보다 울었다. 나도 울고, 엄마도 울고, 아빠도 울었다.”

“다들 봤어?”

유정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네 말대로 이렇게 핫한 영상을 못 봤겠냐? 내가 사장님이 요리 잘하는 줄은 알았는데 인성까지 지리는 줄은 몰랐다.”

“와, 사장님 진짜 멋있다. 앞으로 분식집 더 자주 가야지.”

농구부원들은 강지한이 아직 분식집에 있던 시절부터 지금껏 쭉 단골 고객들이었다.

거기서 음식을 먹고 나면 몸이 더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지한 분식에서 몇 달 음식을 먹으며 운동 후 유독 심했던 허리 통증이 싹 나아버린 장학연은 강지한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다 봤구나. 지한 오빠 진짜 멋있는 것 같아. 그치?”

농구부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에도 동영상의 조회수는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다.

* * *

천명옥의 계산이 완전히 어긋났다.

그녀는 아들 백상준에게 강지한을 자극제로 사용하려 했다.

그런데 촬영이 끝난 이후 업로드된 동영상에 달리는 댓글들은 하나같이 강지한을 칭송하고 있었다.

백상준에 대한 얘기는 가뭄에 콩 나듯 했다.

‘무엇이든 만들어 드립니다’를 촬영한 지도 여러 달이 지났다.

그 모든 영상들 중에서 강지한이 나온 편의 조회수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조회수가 늘어갈수록 강지한의 칭찬 또한 늘어만 갔다.

그것을 백상준도 본 모양.

요 며칠 아들의 안색이 영 좋지 못했다.

항상 밝고 자신만만하던 백상준이었는데 지금은 얼굴에 그늘이 가득했고 어깨가 축 쳐져 대단히 위축되어 있었다.

‘상준아, 너 지금 그렇게 가면 안 되는 거야.’

천명옥은 백상준이 강지한과 붙었을 때, 이기지 못할 것이란 걸 예상했다.

다만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빨리 성장해서 이기고 말겠다는 투지를 불태우기를 바랐다.

한데 강지한이 필요 이상으로 영웅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 바람에 백상준은 투지를 일으키긴커녕 기가 팍 죽어 버리고 말았다.

또래 아이들보다 사회에 일찍 뛰어들어서 나이에 비해 이런저런 경험을 많이 했고, 요리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아직 스물다섯 살이었던 것이다.

정서적으로 완벽하게 성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이 등장한 동영상의 반응이 강지한에게만 일방적으로 몰리는 건 참기 힘든 수치였고, 깊은 패배감을 안겨주었다.

‘내가 판단을 잘못한 건가.’

명옥정을 세운 이후 단 한 번도 스스로의 판단이 잘못되었다 생각한 적 없는 천명옥이었다.

그랬던 그녀가 처음으로 본인의 판단을 후회하고 있었다.

* * *

10월 7일 일요일.

횡성의 김치 공장에서 일하는 서정혜는 아침 일찍부터 춘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며칠 전, 공장에서 점심을 먹으며 조미옥이 보여주었던 영상 속에는 그녀가 남편을 견디지 못해 두고 나온 아이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후로 눈을 감을 때나 뜨고 있을 때나 훌쩍 커버린 제 자식들의 모습이 떠나지를 않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공장 일이 쉬는 오늘, 그녀는 아이들을 보기 위해 춘천으로 향했다.

‘장호야, 나라야. 엄마 가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

자식들을 떠올리는 서정혜의 눈가에 촉촉한 눈물이 맺혔다.

* * *

주말인 일요일에도 김상수 일행은 여지없이 강지한이 집에 찾아왔다.

그리고 넓은 상에 둘러앉아 함께 아침을 먹던 와중, 김상수가 한 가지를 제안했다.

“우리 영화 제목이요. 행복이 온다 말고 설탕이 온다로 하면 어떨까?”

그에 시나리오 작가 이지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설탕이 이름 그대로 쓰자구요?”

“응. 며칠 얘랑 지내보니까 내가 머릿속에 그리던 행복이라는 캐릭터를 설탕이가 압도하고 있어. 그래서 그냥 설탕이 캐릭터를 그대로 넣어서 가는 게 더 느낌이 살 것 같아.”

조감독 하동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데요? 설탕이 온다. 설탕이라는 게 또 달달하잖아요. 그러니까 할아버지와 손자의 인생이 설탕이를 만나고서 달달해진다, 즉 행복해진다는 중의적 의미도 되겠고요.”

“그렇지. 강 사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김상수의 물음에 강지한이 입을 열려 할 때였다.

왕왕!

설탕이가 먼저 대답을 가로채듯 짖었다.

기분 좋게 짖은 설탕이의 꼬리가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이를 본 강지한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설탕이가 좋다네요. 그럼 저도 좋아요.”

“오케이. 그럼 설탕이 온다로 갑시다.”

설탕이가 신이 난 듯 거실을 우다다다 뛰어 다녔다.

강아지 조련사 정현수가 그런 설탕이에게 감탄 어린 시선을 던지며 생각했다.

‘영화 제목마저 바꿔 버리는 설탕이 너는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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