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
Restaurant 189. 큰엄마의 이야기
강지한이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큰엄마 정영자였다.
벌써 전화를 하지 않은 지 7년째였다.
스물세 살이 되던 해, 춘천으로 올라와 독립한 이후 한 번도 연락을 드리지 않았었다.
그 사이 번호가 바뀌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신호음은 울렸다.
순간 강지한은 저도 모르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마음이 너무 급했다.
‘칠 년 만에 전화해서 무슨 말을 해. 궁금한 게 있어서 전화했다고? 너무 뻔뻔하지.’
게다가 지금 시간이 열한 시가 넘어 있었다.
강지한이 기억하기로 큰아빠네 가족은 이 시간쯤이 되면 이미 잠자리에 든 상태였다.
“아이고.”
입에서 절로 앓는 소리가 났다.
강지한은 복잡해진 심경을 안고 소파에 드러누웠다.
이를 본 설탕이가 폴짝 뛰어서 강지한의 배에 올라타 엎드렸다.
그때였다.
우우우우웅-
진동으로 해놓은 강지한의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전화가 온 것.
발신인을 확인해 본 강지한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큰 엄마]
강지한은 전화를 받을까 말까 망설였다.
‘애초에 내가 지른 불인데 피하면 안 되겠지.’
누워 있던 강지한이 몸을 일으켜 설탕이를 무릎에 앉히고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한데 전화기 너머에서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여보세요?”
강지한이 다시 말을 꺼냈다.
그제야 살짝 떨리는 음성이 귀로 전해졌다.
-혹시…… 지한이니?
그 음성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사림의 것이었다. 큰엄마였다.
“아…… 네. 큰엄마. 잘 지내셨어요?”
-나야 뭐…….
통화를 하는 두 사람 다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너무 오래간만인 데다 함께 살던 시절에도 좋은 감정으로 부딪친 적이 거의 없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강지한은 무슨 얘기부터 꺼내야 할지 몰라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다행스럽게도 강지한보다는 연륜이 깊은 큰엄마가 어떻게든 대화를 리드해 나갔다.
-너는 방송 보니까 잘 지내는 것 같더라?
“아, 배틀 셰프 보셨나 보네요.
-그것도 보고. 너 CF 찍은 것도 봤지.
“하하, 민망하네요.”
-지한이 너 춘천으로 올라간 지도 한 칠 년쯤 됐나 보다.
“맞아요.”
-여태 한 번 연락이 없다가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니, 그래?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해요.”
-아니야. 나도 연락 안 했는데, 뭐.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사실 너랑 나 사이에 돈독한 정 같은 게 있기나 했니. 내가 너 엄청 눈칫밥 줬는데.
“…….”
그렇지.
이게 큰엄마였지.
자기감정을 속이지 못하고 언제나 솔직했던 사람.
그래서 강지한이 마뜩찮았던 것 역시 감추지 않았었다.
자신의 집에 그가 얹혀사는 것이 불편하고 부담스럽다는 티를 있는 그대로 드러냈었다.
강지한은 그것이 참 불편했다.
그런데 집을 나와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겉으로 웃고 뒤에서 욕하는 부류보다 차라리 솔직한 큰엄마가 낫겠다는 생각도 종종 들곤 했다.
장영자는 싫은 걸 싫다고 말하고 짜증이 나면 짜증을 내고 화가 나면 쌍욕을 할지언정 가식적이지는 않았었다.
싫은 사람이 있으면 앞에서도 까고 뒤에서도 깠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있으나 없으나 칭찬했다.
강지한은 장영자에게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남편 쪽 핏줄이기는 하지만 머리도 클 만큼 큰 사내가 집 안에 들어와 있으니 영 편치가 않았다.
전 같았으면 샤워를 하고 속옷만 걸치고서 나와도 되었을 텐데, 강지한이 오고 나서는 갈아입을 옷을 들고 들어가야 했다.
식탁에 밥과 국도 하나씩 더 떠서 놓아야 했고, 식비도 입 하나가 늘어난 만큼 더 들어갔다.
게다가 강지한이 좀 많이 먹는가?
앉은 자리에서 기본 3인분은 너끈히 먹어치우는 아이였다.
그리고 빨랫감이 느는 것도 영 짜증났다.
나중에야 강지한이 스스로 눈치를 보며 집안일도 거들고 밥도 많이 안먹었다지만 앞서 쌓인 안 좋은 관계가 좋아지지는 않았다.
아울러 정영자의 불편함은 여전히 남아있었기에 강지한이 좋게 보일수가 없었다.
부모를 잃은 사정은 딱했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행복이 평안이 가장 중요한 법이었다.
강지한은 장영자에게 행복과 평안을 어지러놓은 존재였다.
그래서 항상 눈칫밥을 주고 차갑게 대했었다.
-사실 그때 너 그렇게 대한 거 요즘 들어서 많이 후회는 되더라.
장영자가 그렇게 말하면 그런 것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강지한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어.
“네, 알아요. 이해해요.”
춘천으로 올라올 당시에는 정영자가 이해는 갔으나 야속한 마음은 풀리지를 않았다.
그러나 가지한도 홀로 사회생활을 하며 머리가 크다보니 정영자를 마음으로 이해하게 됐다.
이제 와서 그녀에게 케케묵은 안 좋은 감정은 없었다.
-그래서, 왜 전화했어?
음성으로나마 해후(邂逅)를 한 것이니 그에 대한 첫 매듭을 나름대로 풀었다고 생각한 정영자가 물었다.
“여쭤볼게 있어서 전화 드렸어요.”
-응. 뭔데?
“큰엄마. 혹시 저 어렸을 때 모습 기억하세요?”
-너 어렸을 때? 얼마나 어렸을 때?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다니던 사이의 무렵이요.”
-기억하지.
그 무렵은 큰집과의 교류가 가장 왕성했을 때였다.
정영자는 당시의 강지한이 어떤 아이였는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요? 그럼 혹시… 그때 제가 요리를 좋아했었나요?”
-뭐? 무슨 질문이 그래? 지금 네 과거를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갓난아이일 때면 또 몰라. 그때 기억이 없다고?
“네… 이상하게, 몇 가지 기억들이 완전히 사라져서.”
-너 서울에서 교통사고라도 당했니? 머리라도 다쳤어?
“그런 건 아니고…….”
-그럼 젊은 녀석이 벌써 치매라도 걸린거야? 너도 참… 아, 요리 좋아했었냐고 물었지? 좋아했지. 그것도 엄청.
“제가요?”
-아니 어떻게 지가 뭐 좋아했는지도 몰라? 너 꿈이 요리사였잖아. 그래서 지금 배틀 셰프도 나가고 요식업 사업도 하고 있는 거 아니었어?
“아니요. 그건 어쩌다가… 그렇게 된거예요.”
-그래? 진짜 이상하네. 그럼 머리는 까먹었는데 몸은 네 꿈을 기억했나보다. 근데 어렸을 때 일이 언제부터 기억 안났어?
언제부터 기억이 안났다고 대답하기 어려웠다.
강지한의 머릿속에는 요리와 관련된 기억들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잘 모르겠어요.”
-어쩐지. 그 요리 좋아하던 애가 우리 집에서는 음식도 한 번 안해주고 그래서 은근히 얄미웠는데. 나는 네가 한 번이라도 뭐 좀 만들어 줄줄 알았어. 근데 이건 뭐, 완전히 부엌일은 큰엄마 영역이라는 것처럼 부엌칼 한 번 들지 않아서 좀 꼴 보기 싫었지. 근데 그런 문제가 있는 줄은 몰랐네?
정영자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강지한은 충격을 받았다.
거대한 망치가 계속해서 뒤통수를 때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진짜 요리를 좋아했었다니.’
레벨 업 시스템의 보상 뿐만 아니라 그를 알고 있는 사람까지 어렸을 적 강지한이 요리를 좋아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네가 중학교 입학하고 나서부터는 요리를 좀 등한시 했지 아마?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공부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네 엄마가 은근히 서운해 했었어.
“엄마가요?”
-그래. 동서(同壻)가 바라던 네 모습도 요리사였거든. 공부 같은 건 못해도 상관없으니까 네 꿈만 보고 갔으면 했지. 근데 갑자기 공부를 한다면서 요리를 등져 버리니까 많이 속상해했어.
그 말에 강지한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초기.
강지한은 같은 반 어느 여학생에게 첫분에 반했다.
그 여학생은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여학생과 급을 맞추겠다고 열심히 공부를 했었다.
한데 그 전에 요리사를 꿈으로 가지고 있었다는 건 전혀 몰랐었다.
‘첫 사랑에 빠져 공부를 죽어라 하다가 고백하고 차였었지.’
당시 실연의 아픔에 힘들어하는 강지한을 친구들이 위로해주었고 이후로 그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재미에 빠져 공부를 접었다.
그렇게 친구와 장난치고 놀러 다니던 기억들로만 남은 중학생 시절이 가득 채워졌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입한 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강지한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정영자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네 엄마도 요리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했었지. 네가 네 엄마 피를 고스란히 물려 받은 거야. 인터넷 기사 보니까 너 춘천에서 식당 하고 있다면서?
“네.”
-식당 메뉴들 전부 네 엄마 레시피 그대로 갖다 쓴 거지?
“아니요?”
-아니라고? 너 어렸을 때 엄마 요리하는 거 한 번만 보면 척척 따라하고 그랬었는… 아, 기억이 없다고 했지. 동서 요리 실력 대단했어. 요식업 쪽으로 나갔으면 지금 유명한 스타 셰프들도 다 한 수 접어줘야 했을 걸? 근데 왜 집에서 살림만 했나 몰라.
‘엄마가 그 정도였다고?’
강지한의 기억 속 엄마의 모습은 손맛이 상당한 사람 정도였다.
스스로 생각해보기에 식당을 열었으면 제법 잘됐을 것 같았지만 작금의 날아다니는 셰프들을 잡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판단됐다.
그런데 정영자는 강지한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엄마를 대단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정영자가 엄마를 필요 이상으로 띄어줄 리 없었다.
솔직하고 가감 없는 사람이 정영자다.
그녀는 지금 느낀 그대로를 얘기해주고 있었다.
“엄마가 그렇게 요리를 잘했어요?”
-동서 요리 한 번 맛보면 다들 정신을 못차렸어. 동네 아줌마들부터 친가 쪽 사람들까지 레시피가 어찌 되느냐고 그렇게 물어봤다고. 그런데 동서는 그때마다 그저 미소만 짓고서는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니까. 그거 왜 그랬는지 아니?
“왜 그랬어요?”
-나중에 자기 아들 요리사 되면 재산으로 물려 줄 거라고.
“아…….”
강지한의 기억 속에는 없는 엄마의 배려가 가슴을 쿡쿡 찔렀다.
-그렇게까지 얘기하는데 누가 더 물어볼 수 있겠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았지. 그리고 이건 기억날까 모르겠는데 동서한테 촬영제의 같은 것도 많이 들어왔었어. 잡지사에서 인터뷰도 하러 오고.
“아! 그건 기억 나네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방송 촬영과 잡지 인터뷰 제의를 종종 받았었다.
정영자는 그 이유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그게 다 네 엄마 요리실력이 좋아서 그런 거잖아. 당시에 텔레비전에서 하던 프로그램 중에 ‘맛있는 비법’이라던가 그 비스무리하게 일반 가정주부들의 맛있는 레시피 공개해주는 프로그램들에서 그렇게 촬영요청을 해왔다니까. 잡지사에서 인터뷰하자고 나왔던 것도 그런 맥락이고. 그런데 동서는 일언지하 거절했지.
“맞아요. 엄마는 방송 타는 걸 엄청 싫어했어요.”
-너 참 이상하다? 동서가 방송 거절한 건 기억하면서 방송국에서 뭘 촬영하러 왔는지는 기억을 못해?
“하아, 그러게요. 저도 지금 답답해 죽겠네요.”
-정말 요리에 관한 것만 기억을 못하네. 그거 혹시 그런거 아니니? 트라우마라던가 하는.
“트라우마요?”
-그래. 어렸을 때 요리에 한 번 엄청 데여서 그거랑 관련 된 기억은 전부 잊어버리거나 그랬던 거 아닌가 싶네. 아니면 말고.
“그럴수도 있겠네요.”
-어째 통화하다 보니까 줄곧 네 엄마 자랑만 한 것 같다.
“자세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늦은 시간에 전화 드려서 죄송했어요.”
-됐다. 이렇게라도 통화해서 서로 안부 묻고 했으니까.
“네… 이제 종종 연락 드릴게요.”
-뭐하러 그래. 전화 받을 때 마다 서로 불편할 텐데. 네 소식은 여기저기서 하도 많이 보이니까 괜히 안부 알리려 전화 하지 마. 내가 조금 편해지면 큰아빠랑 말 없이 네 식당 찾아가던가 할게.
“알겠어요, 큰엄마.”
-하아암~ 자다 깼더니 정신이 하나도 없네. 나 잔다. 너도 얼른 자. 그리고 지한아.
“네.”
-……미안했다. 많이.
큰엄마의 사과를 끝으로 통화가 끊어졌다.
그에 강지한의 마음이 따스해졌다.
가식이 없는 정영자인지라 그녀가 미안하다고 하면 정말로 미안한 것이었다.
정영자와의 통화로 인해 한 동안 긴 여운이 강지한을 떠나지 않았다.
뭔지 모르게 적적하면서도 홀가분하고, 한편으로는 애잔한 기분이 강지한을 휘감았다.
그 안에서 강지한은 홀로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내가 요리를 정말 좋아했고, 엄마는 요리를 그렇게까지 잘했었다고?’
강지한의 무릎에 누워있는 설탕이의 눈 속에 심각한 주인의 얼굴이 고스란히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