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
Restaurant 184. 게스트 제의
“제안이라니요?”
천명옥에게 강지한이 물었다.
식사를 하러 와서는 뜬금없이 제안드릴게 있다고 하니 그게 무언지 궁금했다
“네, 강 사장님을 제가 하는 방송에 게스트로 모시고 싶은데, 시간이 꼭 되셨으면 좋겠네요.”
“방송이라면…… 집밥 천 선생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호호. 그게 가장 유명하긴 하죠. 그래서 다들 제가 그 방송 하나만 하는 줄 알아요.”
천명옥은 춘천에서뿐만 아니라 전국 방송과 요리 전문 채널에서도 활약하는 중이었다.
다만 다른 스타 셰프들에게 밀려 상대적으로 시청률이 아쉬운 프로그램에서만 섭외가 되어 인지도가 낮을 뿐.
아울러 미디어 업체와 일주일에 세 번, 인터넷 방송도 진행하는 중이었다.
오늘 천명옥이 강지한을 게스트로 섭외하려 하는 것도 바로 이 인터넷 방송이었다.
“이리 프로덕션이라는 미디어 업체와 세 달째 진행하고 있는 인터넷 방송이 있어요. 인튜브 라이브로 진행하는 중인데 이제 슬슬 입소문을 타서 생방송 시청자수가 500명을 넘어섰어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겠죠? 배틀 셰프 우승자이신 강 사장님께서 게스트로 출연해 주신다면 새로운 시청자 유입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이렇게 제안을 드리게 됐어요. 받아들여 주실 건가요?”
말미에 천명옥이 부드러운 미소를 베어 물었다.
그녀의 말과 행동에서는 하나같이 기품이 묻어났다.
그로 인해 별것 아닌 질문에도 무게감이 실렸다.
‘인터넷 방송이라.’
강지한은 고민에 빠졌다.
그때 옆에 있던 강지영이 옆구리를 쿡 찌르고서는 귓속말을 건넸다.
“해, 지한아.”
“하라고?”
“이제 곧 지한 식당 분점 오픈이잖아. 인지도 올려놓으면 내 마음이 한결 편할 것 같운뎅.”
갑자기 강지영이 혀 짧은 소리를 내며 아기 고양이 같은 눈망울로 강지한을 바라봤다.
“왜 이러세요, 아줌마.”
강지한이 정색하며 그런 강지영을 물리쳤다.
“아, 아줌마……. 맞는 말이긴 하지만 들을 때마다 충격이 크다.”
비틀거리는 그녀를 무시하고서 강지한이 천명옥에게 물었다.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는 겁니까?”
“일반인을 모셔서 그분이 먹고 싶은 음식을 제가 만들어 드리거나 게스트를 섭외했을 땐, 게스트 분께서 만들어 드리는 쿡(Cook)방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방송에 출연한 손님은 추억 속의 음식, 혹은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었던 음식 같은 것들을 자유롭게 얘기할 거예요. 강 사장님께서는 그 음식들을 만들어 주면 되는 거죠. 어려운가요?”
“그러 건 아니지만…… 녹화 시간이 어떻게 되죠? 아시겠지만 제가 밤 10시 이후에나 시간이 되는지라.”
“추석에 연휴의 시작인 이번 일요일에 녹화를 진행하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다음 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추석 연휴다.
강지한은 직원들에게 휴가를 하루 더 주기 위해서 일요일도 쉬기로 했다.
때문에 딱히 다른 스케줄이 있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친척들과 등지고 산 지 오래되었으니 갈 곳도 없었다.
할 것도 없는데 강지영의 말마따나 지한 식당의 인지도나 올려두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았다.
“시간 괜찮습니다.”
“그럼 다가오는 일요일 저녁 5시에 명옥정에서 다시 뵐 수 있을까요? 인터넷 방송의 게스트로서.”
“그렇게 하죠.”
“아, 페이가 많지는 않을 거예요.”
“네. 괜찮습니다.”
“응해주셔서 감사해요, 강 사장님. 비로소 홀가분한 마음으로 식사를 할 수 있겠어요.”
천명옥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 * *
식사를 끝낸 천명옥은 한동안 말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깨끗이 비운 상에 꽂혀 움직일 줄을 몰랐다.
석상처럼 굳어 있는 그녀에게 직원들은 함부로 다가가지 못했다.
풍겨지는 아우라가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
감히 쉬이 범접할 수 없는 기이한 기운이 느껴졌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천명옥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주방을 향해 말했다.
“맛있게 잘 먹었어요.”
참치달걀말이를 만들고 있던 강지한이 그녀의 인사를 받았다.
“맛있게 드셔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지역 예선전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었는지 궁금하네요.”
“최선을 다했었습니다.”
“최선을 다했는데…… 지역 예선에서 선보인 그 어묵면 떡볶이는 뭐였죠?”
“네?”
“방금 맛본 이 음식들에 비하면 수준 차이가 심한데요.”
“그런가요?”
강지한이 두루뭉술 대답했다.
그에 천명옥이 속으로 생각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실력이 이렇게까지 느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야.’
하지만 상식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천재들.
천명옥의 눈에는 강지한이 그런 천재들과 같은 부류로 비추어졌다.
“잘 먹었어요. 근시일내 연락드리도록 할게요.”
천명옥이 일어나 묵례하고서 홀을 나서려 했다.
그런 천명옥의 뒤를 유지호가 따라붙어 손수 문을 열어주었다.
“지호 씨.”
홀을 나가기 전, 천명옥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네.”
“지호 씨가 식당 보는 눈은 있나 봐요. 고생하세요.”
천명옥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한 뒤 식당을 문턱을 넘었다.
“……들어가세요.”
뒤에서 들려오는 유지호의 음성이 씁쓸했다.
지한 식당을 나온 천명옥의 얼굴엔 미소가 전부 사라져 있었다.
‘재주 좀 부리는 강아지라고 생각했었는데 호랑이였어.’
그녀가 처음 강지한의 음식을 먹어봤던 건, 지한 분식에서였다.
당시 같은 동네에서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던 구자승의 지인, 강석호의 부탁으로 지한 분식의 음식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찾아가 음식을 먹어봤었다.
그때의 감상은 분식집 치고 상당히 맛있다는 정도였다.
두 번째로 강지한의 음식을 맛본 것은 구자승이 조직한 예술가 등산회 모임에서였다.
막내 예술인 하진우가 지한 분식에서 김밥을 포장해 왔었다.
김밥은 도시락 안에 핫팩과 함께 싸여 온기를 잃지 않은 상태였는데 그 맛이 제법이었다.
천명옥이 처음 지한 분식을 찾았을 때보다 더욱 손맛이 좋아졌다고 느꼈었다.
마지막은 배틀 셰프 지역 예선에서 어묵면 떡볶이를 맛본 것이었다.
음식의 창의성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맛 또한 전의 음식들 보다 훨씬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하는 요리사들은 전국을 뒤져보면 얼마든지 찾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까지가 한계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강지한도 딱 그 정도 수준이 아닐까 천명옥은 생각했다.
한데 그는 자신을 가두고 있던 껍질을 깨고 나와 날개를 펼치고 비상했다.
설마 강지한이 배틀 셰프에서 우승까지 하리라고는 예상조차 못한 천명옥이었다.
‘이렇게 빨리 성장하는 인재라면 명옥정의 앞날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어.’
물론 자신이 명옥정을 이끌어가는 동안은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후대에 생길지도 모른다.
천명옥의 아들 백상준은 어머니의 손맛을 이을 후계자로 열심히 수업을 받으며 성장해 나가는 중이었다.
백상준은 태어날 때부터 재능도 있고 노력을 게을리하는 편도 아니었다.
한데 최근, 어울리는 지인들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손맛을 자랑하다 보니 마음이 해이해진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노력하지 않는 자는 결국 뒤처지게 마련.
때문에 천명옥은 강지한이라는 바위를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로 삼기로 했다.
‘바위가 크면 클수록 딛고 올라섰을 때 더욱 많은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을 테지.’
그녀의 얼굴에 지워졌던 미소가 다시 드리워졌다.
* * *
하루 장사를 끝마치고 주방과 홀을 잠재운 강지한이 밖으로 나왔다.
문을 걸어 잠그고 보안 장치까지 작동시킨 뒤 간판불을 잘 껐나 확인하는데.
‘어라?’
간판이 파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걸 확인함과 동시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간판의 레벨 업이 가능합니다. 간판의 레벨 업 조건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를 해금하기 위해서는 소기의 미션을 완수해야 합니다.]
[해금 미션: 지한 식당의 긍정적인 리뷰글 100개 채우기. 78/100]
식당 내부를 전부 레벨 업 했더니 식당 외부에 아직 레벨 업 할 것이 남아 있었다.
그나마 해금 미션이 난이도는 높지 않은 편이었다.
현재 지한 식당의 긍정적인 리뷰글은 인터넷 상에 총합 78개가 올라온 상황.
나머지 22개만 채우면 간판의 해금 미션이 충족된다.
‘아마 개인적인 친분을 도모하는 비공개 카페나 블로그, SNS 등등 모든 인터넷 공간들을 아우르는 수치겠지.’
실제로 오픈되어 있는 지한 식당의 리뷰는 30개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렇다면 100개의 긍정적 리뷰글을 채우는 일이 더 쉬울 터.
‘곧 되겠네.’
강지한은 큰 걱정 없이 차를 몰아 애견 카페로 향했다.
“설탕아~ 아빠가 간다~”
* * *
9월 23일, 일요일.
강지한은 약속 시간에 맞춰 명옥정에 도착했다.
어제 천명옥은 강지한에게 전화를 걸어 본점이 아닌 분점으로 오라 일렀다.
명동에 있는 본점은 너무 바빠서 따로 주방 공간을 활용할 여유가 없었다.
만천리에 있는 분점 역시 사람들로 북적이긴 매한가지지만 본점보다는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촬영을 위해 주방의 한 공간을 이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촬영은 한 시간 내외로 이루어진다.
강지한이 분점 건물 앞에 주차를 했다.
명옥정의 분점은 3층 건물 독채를 전부 사용하고 있었다.
그가 정문으로 다가가자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여직원이 바로 알아보고서 맞이해 주었다.
“강 셰프님, 3층으로 모시겠습니다.”
“아, 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여직원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그를 주방으로 안내한 뒤,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네고 물러갔다.
주방 안으로 들어선 강지한의 시야에 한편에 세팅된 간단한 촬영 장비들이 보였다.
늘 화려한 방송국 장비들이나 CF촬영 장비들을 보다가 인터넷 방송 장비들을 보니 아담하고 소박하게 느껴졌다.
스텝들도 다섯이 전부였다.
주방 안에는 천명옥과 처음 보는 사내가 스타일리시한 개량 한복을 입고 서 있었다.
천명옥이 강지한을 보고서는 눈웃음 지으며 이리오라 손짓했다.
“어서 오세요, 강 사장님. 아니, 강 셰프님.”
강지한이 주방에 서자 스텝들이 앞치마를 가지고 와 착용시켜 주더니 간단한 화장과 함께 머리 스타일도 조금 어루만져 주었다.
그러고 나니 천명옥의 옆에 서 있던 사내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 셰프님. 천 대가님의 아들 백상준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강지한입니다.”
두 사람이 가볍게 악수를 나눴다.
백상준을 처음 본 강지한의 감상은 사람이 참 크다는 것이었다.
그는 키도 컸고, 덩치도 우람했다.
얼굴선도 굵직굵직했으며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쩌렁쩌렁한 것이 울림통도 큰 것 같았다.
“말로만 듣던 배틀 셰프 우승자님을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하하!”
백상준이 시원스럽게 웃었다.
“저야말로 이 바닥에서 벌써부터 명성이 자자한 천 대가님의 아드님을 뵙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아니요, 아니요. 강 셰프님만 하겠습니까?”
백상준은 올해로 스물다섯 살로 강지한보다 네 살 어렸다.
그럼에도 나이가 무색할 만큼 상대방을 위축되게 만드는 아우라가 풍겼다.
그것은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에 근거한 것이었다.
물론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난 태생 역시 무시할 수는 없었다.
백상준과 인사를 나눈 강지한이 천명옥에게 물었다.
“백 셰프님과 함께 진행하시는 방송인 줄은 몰랐네요.”
그러자 천명옥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제 아들도 게스트로 오늘 처음 나온 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