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84화 (184/330)

# 184

Restaurant 183. 반찬 판매

조언의 귀가 가져온 여자 손님의 얘기를 읽는 순간 강지한의 눈이 번쩍 뜨였다.

‘반찬을 팔아?’

강지한이 반찬을 플레이팅하며 가만히 생각해 봤다.

‘그건 괜찮지 않을까?’

지한 식당은 기본적으로 배달과 포장은 불가하다는 방침이다.

배달이나 포장 손님이 많아지면 매장을 찾는 손님들에 대한 서비스가 안 좋아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뜨거울 때 먹어야 하는 밥이나 찌개, 참치달걀말이 같은 경우 식어버리면 제 맛을 느낄 수가 없다.

그래서 한정식 상은 포장이 어려웠다.

하지만 반찬만 따로 포장을 해서 판다면?

지한 식당에서 나오는 반찬은 고사리무침, 잡채, 김치, 무채, 무쌈말이, 시금치무침, 콩나물무침, 버섯가지볶음, 계란말이, 생선 한 토막이다.

이 중에서 열기를 품고 나오는 반찬은 생선 한 토막밖에 없다.

나머지는 열이 빠져나간 상태에서 서빙된다. 계란말이 역시 미리 만들어두고 식은 것을 잘라 내간다.

참치계란말이는 식기 전에 먹어야 그 맛을 온전히 즐길 수 있지만, 일반적인 계란말이는 식으면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또 있었기에 상관이 없었다.

‘그럼 생선 한 토막은 빼고 나머지 찬들로만 묶어서 팔아?’

플레이팅을 신경 쓰지 않고 각각의 반찬들을 풍족하게 채워서 팔면 제법 괜찮을 것 같았다.

반찬이야 영업 시작 전에 미리 만들어 놓는 것이니, 사가겠다는 손님들에게 담아주기만 하면 되는 일.

생선을 빼면 가짓수가 총 아홉 개다.

그것들을 듬뿍 담아서 5천 원 정도에 팔면 상당히 괜찮을 듯했다.

지한 식당에서는 모든 반찬들이 한 번씩만 리필된다.

단가로 인해 그 이상 리필을 해주면 남는 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식당을 찾는 손님들도 충분히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리필을 하고 싶은데 못해서 아쉽다는 이들도 제법 있었다.

‘그럼 반찬 추가 역시 단품 메뉴로 넣어버려야겠다.’

반찬만 따로 담아서 단품으로 내놓고, 포장도 가능하게 하면 매장의 매출을 올리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계산이 섰다.

그때였다.

[가스 배관의 레벨 업이 가능합니다. 가스 배관의 레벨 업 조건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를 해금하기 위해서는 소기의 미션을 완수해야 합니다.]

[해금 미션: 식당의 한 달 매출을 10% 상승시킬 수 있는 방법 찾기-찾아냄.]

[미션 클리어. 가스 배관의 레벨 업 조건이 해금됩니다.]

[가스 배관의 레벨 업 조건: 20,000만족도 포인트.]

‘이거구나!’

설탕이가 조언의 귀를 물어오는 바람에 하루 만에 해금 미션을 클리어할 수 있었다.

강지한은 바로 2만 포인트를 투자해 가스 배관을 레벨 업 시켰다.

[가스 배관을 레벨 업 했습니다.]

[가스 배관의 레벨이 최대치입니다.]

[가스 배관이 강화되어 기능이 향상됩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가스 누출, 가스 폭발 등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좋아.’

식당에서 가스는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자원이다.

하지만 사용하는 사람의 부주의로, 또는 낙후된 가스배관의 가스 누출로 가끔씩 폭발 사고가 일어나고는 한다.

이런 안전사고를 원천봉쇄한 것이니 강지한은 마음이 든든해졌다.

‘또 레벨 업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나?’

강지한이 홀과 주방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살폈다.

그러나 어디에도 파랗게 물든 부분이 없었다.

‘레벨 업이 다 끝났나 보네.’

비로소 강지한의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때였다.

딸랑-

문이 열리며 반가운 사람이 식당으로 들어섰다.

박춘식이었다.

유지호가 그를 매장 안 빈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어서오세요~ 차기 점주님.”

“아직 리모델링도 안 끝났는데 점주는요. 허허.”

의자에 앉은 박춘식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 말이 싫지는 않은 얼굴이었다.

박춘식은 언제나처럼 만두를 주문하고서 강지한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5번 테이블 주문 받아왔어요.”

강지한이 주문서를 받아보고서는 말했다.

“이거, 그냥 한정식 한 상으로 바꿔서 내보내도록 할게요.”

박춘식은 이제 강지한과 사업 파트너로 함께할 사이다.

그런 만큼 이런 서비스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직원들을 누구보다 각별하게 대하는 강지한의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전덕진이 강지한의 마음 씀씀이에 활짝 웃었다.

“그래야 우리 싸장님이지!”

“내가 상 만들어 낼게.”

강지영이 나서서 박춘식의 상을 플레이팅하려 했다. 그에 강지한이 얼른 메뉴를 정해주었다.

“메인은 소불고기로 하고, 찌개는…… 순두부찌개로.”

소불고기와 순두부찌개.

둘 다 치아가 약해도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박춘식의 치아 상태를 걱정한 강지한의 배려였다.

“오케이!”

강지영이 빠르게 반찬을 플레이팅했다.

그 옆에서 강지한이 참치계란말이를 만들어 상에 담았다.

흰 쌀밥과 메인 메뉴, 찌개까지 전부 상에 담겨 오더 테이블에 올리자 설인아가 박춘식에게 서빙을 해주었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그에 한정식 한 상을 본 박춘식이 놀라 손을 내저었다.

“잘못 나왔어요. 저는 만두를 주문했어요.”

“사장님 서비스예요. 맛있게 드세요!”

설인아가 자리를 피하자 박춘식이 감동한 시선으로 음식과 강지한을 번갈아보다가 수저를 들었다.

그리고 음식들을 음미하는데 상에 담긴 것들 하나하나가 전부 놀랄 만큼 맛이 있었다.

박춘식은 태어나서 지금껏 살아온 동안 가장 커다란 맛의 사치를 만끽하게 되었다.

‘부모님이 이 맛을 보셨더라면…….’

이제 다시 못 볼 부모님이건만 맛있는 걸 먹을 때 마다 늘 생각이 나는 그였다.

* * *

브레이크 타임.

여전히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정문을 닫고 창문 하나를 열었더니 쏴아아아- 비 내리는 소리가 제법 운치 있었다.

“이런 날은 전이지.”

오늘 브레이크 타임엔 강지한이 전덕진, 강희주와 함께 전을 부쳐 내놨다.

세 사람이 만든 전은 해물파전, 김치전, 감자전 세 종류였다.

전의 반죽은 모두 강지한이 해놓은 터라 농도와 재료들의 배합이 기가 막혔다. 아울러 반죽에 물 대신 비법 육수를 넣었다. 때문에 굽기만 잘 구우면 전부 레벨5 이상의 수준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나이가 마흔 중반인 두 아주머니의 전 부치는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순식간에 완성된 전들이 상 위로 서빙되었다.

한참 전부터 전 굽는 고소한 기름 냄새에 군침을 줄줄 흘리던 직원들은 강지한이 자리에 앉자마자 젓가락들 들었다.

전이 직원들의 자비 없는 젓가락질에 죽죽 찢겼다.

그런데 전과 함께 나온 간장이 일반 간장이 아니었다.

색이 엄청 묽고 양이 많았다.

전을 찍어 먹는 게 아니라 담가 먹어야 할 정도로.

“사장님, 이 간장은 뭐예요?”

알바 한 명이 의아해서 물었다.

“전 찍어먹는 간장이지. 일식 튀김 찍어 먹는 간장 알지?”

“쯔유요?”

“응. 그거 비슷하게 만들어 본거야. 전 찢어서 그 간장에 푹 찍어 먹어봐.”

사람들은 강지한의 말대로 전을 찢어 간장에 푹 찍어 먹었다.

“오~ 이거 좋은데요?”

“와, 진짜 색다르다. 엄청 맛있어요, 사장님.”

“호호호~ 나 이런 간장에 전 찍어먹기는 생전 처음이네~ 강 사장! 꿀맛이에요.”

강지한의 특제 간장은 호평을 받았다.

비로소 안심을 한 강지한도 헤물파전 한쪽을 찢어 특제 간장에 깊이 담가서 입에 넣었다.

전의 가장자리 부분이 입안에서 바삭거리며 씹히면서도 안쪽은 쫄깃한 것이 두 가지의 식감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게 기분 좋았다.

고소하고 기름진 전에 잔뜩 묻어 있는 달달한 간장이 입안에서 조화롭게 뒤섞였다.

그로 인해 살짝 심심할 수 있는 전의 맛이 풍부해졌다.

해물파전에 적당히 섞인 오징어 조각과 새우, 바지락살이 씹히며 바다의 풍미를 안겨주는 것도 만족스러웠다.

아울러 특제 간장으로 인해 기존에 맛보았던 해물파전과는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는 것 또한 매력적이었다.

김치전은 특제 간장에 굳이 찍어먹을 필요가 없을 만큼 간간했다.

지한 김치가 워낙 맛있었기 때문에 반죽의 비율만 잘 맞추는 것으로 아주 훌륭한 김치전이 탄생했다.

일반 김치전에 비해 잘게 자른 김치 조각이 더욱 풍부하게 들어 있는 김치전은 청양고추를 섞어 적당한 매콤함이 계속해서 입맛을 당기게 만들었다.

감자전 또한 그 특유의 쫀득하면서도 포슬포슬한 식감이 예술이었다.

세 가지 전 중에서 가장 간이 심심했으나 그게 또 감자전의 매력 아니겠는가.

그냥 먹어도 맛있고 특제 간장을 찍으면 그건 그것대로 달콤한 것이 입에 착착 붙었다.

한창 직원들이 전으로 배를 채웠을 때 즈음 강희주가 넌지시 말을 꺼냈다.

“자기들~ 왜 비올 때 전이 땡기는지 알아? 쏴아아아 하고 비 오는 소리가 꼭 전 부치는 소리랑 비슷해서 그런 거야~ 홍홍.”

“그걸 누가 몰라?”

전덕진이 뻔한 얘기를 한다며 강희주를 나무랐다. 그러고는 감자전을 찢어 먹으며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전에는 뭐니 뭐니 해도 막걸린데.”

전을 크게 찢어 한입 먹고 뽀얀 막걸리 한 사발을 탁 들이켜면 그보다 좋은 조합이 없었다.

하지만 일하는 도중에 술은 절대 금지였다.

게다가 지한 식당에는 술도 없었다.

“저…… 강 사장, 우리 밖에서 막걸리 하나만 사와가지고 딱 한 잔씩만 마시면…….”

“안 되는 거 아시죠?”

“……강 사장님은 다 좋은데 너무 빡빡해.”

뾰로통해진 전덕진을 강지한은 애써 모른 척하며 화제를 전환했다.

“여러분, 제가 앞으로 지한 식당의 반찬을 판매해 볼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갑자기?”

강지영이 전을 먹다 말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말이긴 한데 나름 많이 생각해 본거야. 생선 한 토막 빼고 나머지 아홉 가지 반찬을 두둑이 담아서 5천 원에 단품 메뉴로 넣고 포장 판매까지 하면 어떨까 싶은데.”

강지한의 말에 주방 직원들의 입이 바빠졌다.

그들은 반찬 판매에 대해서 이런저런 토론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강지한의 의견이 제법 괜찮을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오케이. 그럼 수일 내로 반찬도 판매하는 걸로 합시다.”

* * *

저녁 피크 타임이 시작됐다.

이제는 비가 점점 그치고 있었다.

그에 따라 지한 식당의 저녁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손님들의 줄이 생겨났다.

유지호가 식당 문을 열고 줄의 맨 앞에 선 손님을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손님. 일행분은 몇 명…….”

말을 하던 유지호의 입이 손님을 확인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굳었다.

기품 있는 옷을 입은 중년의 여자 손님이 그런 유지호를 보며 빙긋 웃었다.

“유 부매니저, 오래간만이네?”

지한 식당을 찾은 저녁 첫 번째 손님은 다름 아닌 천명옥이었다.

“천…… 사장님.”

“놀랐네. 설마 지한 식당에서 일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직급은? 매니저?”

“네.”

“그렇구나. 지호 씨는 영특한 사람이니까 어딜 가든 잘할 거야. 근데 조금 아쉽네. 나한테 언질이라도 해주지. 이렇게 만나니까 서로 당황스럽잖아.”

유지호는 본래 명옥정에서 일하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만두었었다.

이후 사정이 해결된 뒤 다시 복귀하려 했지만 자신이 설 자리가 없어진 것 같아 지한 식당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경황이 없고 사정이 있어서…….”

“낮에 온종일 비가 내려서 그런지 좀 춥네.”

“아!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유지호가 천명옥을 빈 테이블로 안내했다.

천명옥은 테이블에 앉자마자 지긋한 시선으로 강지한을 바라봤다. 그에 강지한도 그녀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잘 지내셨나요, 강 사장님.”

“오래간만에 뵙겠습니다, 천 대가님.”

“배틀 셰프 잘 봤어요. 많이 늦었지만 우승 축하드려요.”

“천 대가님께서 지역 예선을 통과시켜 주신 덕분이죠.”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하네요. 요즘 지한 식당에 대해서 좋은 얘기가 많이 들려오던데, 매일 바쁘시죠?”

“네. 아무래도 좀…….”

“사실 저 오늘 단순히 음식만 먹으로 온 게 아니에요.”

“그럼 무슨 다른 용무라도 있으신지?”

강지한의 물음에 천명옥의 붉은 입꼬리가 양쪽으로 살짝 올라갔다.

그녀가 기품이 가득 담긴 음성으로 말했다.

“제안을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