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82화 (182/330)

# 182

Restaurant 181. 지한 식당에 가지마세요

“김 감독님.”

목요일 첫 손님으로 지한 식당을 찾은 이는 김상수 감독이었다.

그는 시나리오 작가와 조감독, 주연을 맡은 신인 아역 배우와 함께 지한 식당을 찾았다.

김상수가 주방 가까운 테이블로 자리를 잡고서 강지한에게 말했다.

“지한 씨, 소개시켜 드릴게요. 이쪽은 시나리오 작가 이지안, 서른 살. 동안에 예쁜 얼굴이 특징이자 특기예요.”

“어머, 감독님.”

이지안이 싫지 않은 듯 웃으며 강지한과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여기는 산적같이 보이지만 누구보다 여린 감성의 소유자 하동만, 서른두 살이시고.”

하동만이 덥수룩한 턱수염을 어루만지며 쑥스럽게 강지한에게 이사를 건넸다.

“마지막으로 우리 차세대 라이징 스타. 십 년 후엔 스크린이랑 브라운관 전부 씹어먹을 아시아의 별이 될 인재. 차인우. 방년 여덟 살.”

“안녕하세요~! 차인우입니다.”

차인우는 그 나이 때 아이치고 대단히 총명해 보였다.

얼굴도 귀염상인 것이 이번 영화의 배역에 딱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나 그때 지한 씨 음식 먹고 충격 제대로 먹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어웨이(Away)였잖아, 홈그라운드에서는 얼마나 날아다닐까 싶어서 왔어요. 우리 스텝들과 주연 배우 소개도 시켜드릴 겸. 괜찮죠?”

김상수의 왼손에는 여전히 피젯스피너가 핑핑 돌아가고 있었다.

“식당 매상 올려주겠다는데 싫다는 사장도 있을까요?”

강지한이 농담으로 그의 말을 받았다.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유지호가 네 사람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처음이시죠? 우리 식당은 주문하는 방법이…….”

* * *

“…….”

“…….”

“…….”

지한 식당의 음식을 맛본 김상수 일행의 반응은 일관됐다.

전부 그 맛에 놀라 말을 잃고 서로의 시선만 교환했다.

딱 한 명, 그 일관된 반응에서 벗어난 사람도 있기는 했다.

“와아! 엄청 맛있어요! 우리 엄마가 해주는 된장찌개보다 더 맛있고, 소불고기도 최고예요!”

여덟 살 차인우였다.

꾸밈없이 순수한 어린아이의 반응에 주변에서 식사를 하던 다른 손님들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인우, 맛있어?”

시나리오 작가 이지안이 차인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네! 엄청 맛있어요. 밖에 나와서 먹어본 음식 중에 제일 맛있어요. 근데 나물은 잘 모르겠어요. 헤헤.”

아직 어린 차인우에게 나물 종류는 피하고 싶은 음식이었다.

그래서 취향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반찬들과 메인 요리, 찌개는 입에 딱 맞았다.

“하……. 타짜네, 타짜.”

상 위에 놓인 반찬과 음식들을 열심히 먹던 김상수가 진심 어린 감탄을 담아 말했다.

“감독님 따라오길 잘했네요.”

조감독 하동만의 말이었다.

그는 어제 밤새 촬영 알바를 뛰다 새벽에나 잠이 들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어디가지 않고 잠이나 푹 잤으면 했다.

그런데 김상수가 어깃장을 놓아 어쩔 수 없이 따라온 것이었다.

김상수는 제법 괜찮은 식당이 춘천에 있으니 밥 먹으러 가자며 그를 끌고 나왔다.

하지만 직접 먹어보니 괜찮은 식당 정도가 아니었다.

“애초에 이렇게 기절할 정도로 맛있다고 언질 줬으면 제가 괜히 안 뻐기고 바로 따라왔죠. 왜 밍숭맹숭하게 괜찮은 맛집이라고 하셔가지고.”

“……아니, 나도 여기 처음 와봤거든.”

“네? 그럼 맛도 모르고 데려오신 거예요?”

“여기 사장님이 식당 말고 다른데서 해줬던 요리를 먹어봤는데, 실력이 상당했거든. 근데 본무대에서 뛰니까 이거 장난 아니다.”

“아……. 그래서 아까 어웨이, 홈그라운드 그 얘기 하셨구나.”

“역시 배틀 셰프 우승하신 분 실력답네요.”

강지한의 실력을 칭찬하는 이지안의 두 뺨엔 홍조까지 살짝 어려 있었다.

너무 맛있는 음식에 저도 모르게 흥분해 버린 것.

물론 흥분하기는 김상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가 너무 얕봤네.’

애견 카페에서도 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는 강지한에게 두 번 놀라고 말았다.

“근데 이렇게 예쁘고 맛있는 음식을 9천 원에 판다고요? 진짜 혜자네요. 사장님, 정말 맛있어요.”

연신 음식에 감탄하던 이지안이 결국 주방에 있던 강지한에게 한마디를 전했다.

그 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맛있었다.

“감사합니다.”

강지한이 대답하며 미소 지었다.

“어머.”

순간 이지안의 가슴이 쿵 하며 내려앉았다.

‘이게 말로만 듣던 심쿵이구나.’

아이돌을 봐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강지한의 미소는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 무언가가 있었다.

게다가 중저음의 편안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까지 귀를 간질였다.

레벨6의 얼굴과 목소리의 효과였다.

그러나 음식을 다시 먹는 순간 강지한에 대한 이성적 호기심은 곧 잊히고 요리의 맛에 푹 빠져들었다.

그만큼 강지한의 음식은 맛이 있었다.

* * *

“오늘 정말 잘 먹었어요, 지한 씨.”

김상수가 싹 비운 밥그릇과 국그릇을 들어 올리고 말했다.

“괜찮았나요?”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맛이 그냥 미쳤던데요, 뭘. 근데 이런 손맛 가진 분이 왜 서울로 진출을 안 해요? 이 메뉴 그대로 가져와서 1인 2만 원씩 받아도 손님들로 넘쳐 날 텐데.”

김상수의 말에 이지안과 하동만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춘천이 좋아서요. 굳이 서울로 나갈 이유도 찾지 못하겠고요.”

“아쉽네. 식당이 서울에만 있어도 내가 매일 같이 찾아갈 텐데.”

김상수가 입맛을 쩝 다셨다.

“동감이에요. 저도 오늘 강 셰프님 음식 먹고 완전히 감동했어요.”

이지안이 두 손을 깍지 끼고서는 초롱초롱한 시선으로 강지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셰, 셰프요?”

“네, 셰프님 맞으시잖아요.”

“하하, 그렇…… 죠?”

강지한이 난생처음 들어보는 셰프라는 호칭에 어색해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강 사장이라고 부른다.

셰프라는 것이 크게 대단한 단어도 아니었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식당의 주방장이다.

그런데도 첫 경험이라는 녀석은 강지한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럼 이만 일어날까?”

김상수가 피젯스피너를 꺼내 돌리며 일행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배가 빵빵하게 부른 상태에서도 아쉬운 얼굴들이었다.

“다음에 따로 한 번 올게요.”

“고생하세요, 사장님. 정말 잘 먹었습니다.”

“아저씨! 안녕! 다음에 봐요!”

김상수 일행이 저마다 인사를 건네고서는 식당을 떠났다.

그러자 강지한의 곁에서 반찬을 플레이팅 하던 강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되겠다, 영화. 주연 맡은 애가 완전 호감형이잖아.”

“응. 잘될 것 같아.”

“근데 촬영은 언제부터야?”

“다음 달에 들어간대.”

이미 시나리오도 나왔고 스텝도 갖춰졌으며 투자자까지 정해진 마당이다.

애초에 모든 준비를 해놓고서 주연을 맡을 강아지만 찾아다니고 있던 김상수였다.

때문에 설탕이를 발견한 상황에서 촬영을 어영부영 미룰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시나리오 속의 계절 배경도 마침 딱 맞아떨어졌다.

한데 두 사람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된 조정호가 저도 모르게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10월이면 슬슬 추워질 땐데…… 설탕이 괜찮으려나.”

그 말을 들은 한지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호 오빠, 강아지 무서워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트라우마 때문에 여전히 무섭지. 근데 설탕이는 괜찮아. 설탕이만 한 크기의 다른 강아지들도 괜찮아. 그 이상은 아직 무서워.”

“대박. 트라우마 이겨내시는 중인가 보다. 그게 보통 힘든 게 아닌데. 어떻게 극복했어요?”

한지민의 질문에 조정호는 설탕이의 깜찍하고 귀여운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자 저도 모르게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응? 오빠 갑자기 왜 얼굴이 붉어져요? 어디 안 좋아요?”

한지민이 조정호의 얼굴을 콕 찔렀다. 그에 화들짝 놀란 조정호가 후다닥 뒤로 물러나더니 괜히 냉장고를 뒤적였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강지한이 속으로 웃었다.

* * *

9월 17일 월요일.

지한 식당의 하루 장사가 끝나고 남은 직원들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강지한은 수도의 해금 미션을 확인했다.

[해금 미션: 지한 식당 직원들의 정직도와 신뢰도가 일주일 간 80 이하로 떨어지지 않게 하세요. 한 명이라도 수치가 80 이하로 떨어질 경우, 해금 미션의 남은 기간이 리셋됩니다.]

[해금 미션 완료까지 남은 기간: 2일]

직원들의 정직도와 신뢰도가 80 이하로 떨어지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이제 이틀만 지나면 해금 미션은 클리어다.

메시지를 닫은 강지한이 설거지 한 식기들의 물기를 닦아내던 강지영에게 물었다.

“누나, 우리 분점에 필요한 거 체크 제대로 했지?”

“한 번만 더 물어보면 백 번이다.”

지한 식당의 분점 자리는 사흘 전부터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다.

동시에 간판도 주문을 했고, 메뉴판과 필요한 식기들과 의자, 테이블도 주문을 마친 상황이었다.

이번 주 중에는 주문한 물건들이 도착하고 공사도 전부 끝날 예정.

해서 지한 식당 분점의 오픈 일을 다음 주 목요일로 정했다.

사실 다음 주 월요일로 오픈을 잡으려 했는데 23일부터 26일까지 추석 연휴 기간이라 그때는 직원들도 쉬어야 하기에 오픈을 미루었다.

강지영과 분점에 관해 몇 마디 대화를 나눈 강지한이 남은 식재료를 정리하던 조정호를 불렀다.

“정호 씨.”

“네, 사장님!”

조정호가 강지한의 곁으로 후다닥 다가왔다.

“이제 만두는 눈 감도고 빚을 줄 알죠?”

“가능합니다.”

조정호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것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정말로 그는 눈 감고도 만두를 빚을 수 있었다.

“반죽도 날씨에 따라 배합 조절해서 잘 숙성시킬 수 있죠?”

“물론입니다.”

“만두소는 자신 있어요?”

“사장님께서 만드는 것과 똑같이 만들 수 있습니다.”

지한 식당에서 만드는 만두소에는 특별한 양념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저 소금 후추가 전부다.

다만, 만두소에 들어가는 수많은 재료들을 어느 정도의 크기로 다져서 넣느냐 하는 것과, 각각의 재료들이 차지하는 소의 비율, 마지막으로 거기에 맞게 간을 귀신같이 잡는 실력이 필요했다.

말로만 들으면 쉬울 것 같지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각각의 재료들은 서로 다른 크기로 다져야 했다. 그래야 한데 뭉쳐 만두 안에 들어갔을 때 강지한이 원하는 최상의 식감을 줄 수 있었다.

아울러 재료들의 비율이 조금만 달라져도 소의 맛이 변해 버린다.

소금과 후추의 양 또한 약간만 틀려도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없다.

이를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은 현재 지한 푸드 전 멤버 중 조정호밖에 없었다.

그래서 강지한은 마음을 정했다.

“정호 씨, 다음 달 초부터 정직원으로 일해 볼 생각 없어요?”

“……네? 벌써 세 달이 됐습니까?”

“아뇨. 그래도 될 것 같아서요. 단, 지한 식당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주방장을 맡아줬으면 줬겠는데.”

“다른 곳…… 아, 만두 전문점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그곳도 이미 공사 진행 중이거든요. 그런데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정호 씨가 원하신다면…….”

“꼭 하고 싶습니다!”

조정호가 저도 모르게 강지한의 말을 끊으며 소리쳤다.

청소를 하던 직원들이 놀라서 그런 조정호를 쳐다봤다.

강지한도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웃었다.

“그럼 정해졌네요. 지한 만두의 주방장은 조정호 씨가 맡는 겁니다.”

쐐기를 박는 강지한의 말에 조정호의 가슴이 두근거리며 뛰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자리했다.

이를 본 다른 사람들이 신기해했다.

지한 식당에서 일을 하며 처음으로 본 조정호의 미소였기에.

* * *

김상수 감독은 동료 감독의 영화 촬영 현장을 찾았다.

그런데 운 좋게도 그날, 주연 배우가 현장에 밥차를 쐈다.

“먹고 합시다!”

감독의 말에 배우와 스텝들은 우르르 밥차로 몰려들었다.

마침 공복이었던 김상수도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어디, 메뉴가…….’

김상수가 밥차의 요리들을 빠르게 훑었다.

흰쌀밥에 배추김치, 간단한 샐러드, 감자탕, 닭볶음탕, 갈비찜, 제육볶음, 간장불고기, 돈까스, 미트볼, 소세지야채볶음, 도토리묵무침, 어묵볶음, 김, 멸치볶음, 콩나물 무침, 감자볶음, 메추리알소고기장조림까지.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그리고 크림파스타랑 토마토파스타까지.’

밥차의 가격은 메뉴의 질과 가짓수, 양에 따라 정해진다.

오늘 온 밥차는 하나같이 맛있고 고급스러운 반찬들에 가짓수가 상당했다.

주연배우가 나름 돈을 들여 가장 비싼 메뉴로 구성을 한 것.

특히 크림파스타랑 토마토파스타의 경우 따로 인분 수에 따라 8천 원씩 추가금을 받는다.

‘화끈해서 좋네.’

공짜밥을 먹게 된 김상수가 희희낙락하며 먹고 싶은 것들을 식판에다 한가득 담았다.

그보다 먼저 셀프 배식을 마친 사람들은 저마다 자리를 잡고 앉아 행복한 얼굴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메뉴 끝내준다.”

“진짜 맛있는데?”

“밥차 아주머니 솜씨가 상당하시네.”

영화 관계자들은 배우, 스텝 할 것 없이 음식이 맛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에 김상수가 설레는 마음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

얼마 못가 그는 수저를 내려놓았다.

김상수와 함께 식사를 하던 배우들이 이를 보고서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중 한 명이 김상수에게 넌지시 물었다.

“입맛이 없으신가 봐요?”

김상수가 피젯스피너를 돌리며 고개를 저었다.

“입맛이 없으면 이렇게 많이 퍼왔겠어요?”

“근데 왜 안 드세요?”

“맛이 없어요.”

“네? 이게 맛이 없다고요? 감독님 배부르셨네.”

“맞아요. 배가 불렀어요. 며칠 전에 끝내주는 음식 먹고 나서부터는 어지간한 음식은 눈에도 안 찹니다. 큰일 났어요. 당신들은 절대로 내가 갔던 식당 가서 음식 먹지 말아요.”

그렇게 얘기하니 더 궁금해지는 배우들이었다.

“그 식당이 어딘데요?”

“춘천에 있는 지한 식당. 거기 사장님이 맘먹고 밥차 몰고 다니면 이 판 다 쓸어 먹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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