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
Restaurant 180. 소원 만두
9월 12일, 수요일.
강지한은 약속대로 박춘식을 찾아갔다.
두 사람은 바로 박춘식이 소유하고 있는 건물로 향했다.
건물은 서면에 위치해 있었다.
서면은 강지한이 살고 있는 사농동에서 멀지 않았다.
강지한의 저택 근처에 있는 인형극장 사거리에서 신매대교를 건너면 바로 서면이었다.
박춘식의 건물은 서면 안에서도 애니메이션 박물관 건물이 있는 부지에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여기입니다.”
강지한의 차를 타고 자신의 건물 앞에 내린 박춘식이 쑥스러운 듯 말했다.
“50년은 족히 된 건물이지요.”
“그렇군요.”
대로변 공터에 외롭게 서 있는 건물은 어림잡아 20평 정도는 되어 보였다.
건물의 양옆으로 띄엄띄엄 상가 건물이 보였다.
오른쪽으로는 중식집이, 왼쪽으로는 막국수를 파는 집이 있었다.
그런데 중식집을 확인한 강지한이 바로 아는 척을 했다.
“어르신, 저 중국집 제법 장사 잘되는 곳 아니에요?”
중식전문점 다리원.
2년 전, 이리나의 손에 이끌려 저곳에 한 번 가봤던 기억이 있었다.
사람이 많지도 않고 차편도 불편한 촌에 붉은 벽돌로 건물을 지어 2층 중국집이 들어섰는데 의외로 장사가 잘돼서 깜짝 놀란 그였다.
한데 음식을 먹어보니 과연 찾아와서 먹을 법한 맛이라고 인정하게 됐었다.
“저기 장사 잘되지요. 오다가다 보면 식사 때는 늘 만석인 것 같더라고요.”
“그렇군요.”
박춘식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너무 외진 곳이라 과연 장사가 될까 싶었던 강지한의 불안감이 잠식되었다.
‘맛있게만 하면 가능성이 있다.’
우선 시골이긴 하지만 이곳은 춘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애니메이션 박물관과 가깝다.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맛집으로 소문난 중식업체가 있었다.
유동인구가 많이 오가니 충분히 승부를 볼 만했다.
한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유명한 곳은 저 막국수집이지요.”
박춘식이 왼쪽에 있는 막국수집을 가리켰다.
멀리서도 커다랗게 박아놓은 간판 덕에 막국수집의 상호가 보였다.
‘서면 막국수.’
“막국수를 아주 잘하나 봐요.”
춘천에서 제법 오래 살아온 강지한이었지만 저런 막국수집이 있었다는 걸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막국수도 잘하지만 숯불닭갈비가 아주 끝내준다고 하지요. 저는 먹어보지 못해서 잘 모르지만 언젠가 작은 딸내미가 그리 말을 하더군요.”
“막국수집인데 닭갈비도 팔아요?”
“네. 요즘 춘천에 보면 거의 다 철판닭갈비를 팔잖아요. 그런데 그게 원조가 아니에요. 원조는 고추장 양념을 해서 숯불에 구운 것이에요.”
오래전, 춘천에는 돼지가 귀하고 닭이 흔했다.
해서 돼지갈비를 먹고 싶은데 값이 비싸고 구하기가 힘드니 대신 닭을 잡아 고추장 양념을 해서 숯불에 구워 닭갈비를 해먹은 것이다.
그것이 변형된 게 지금의 철판닭갈비였다.
“예전에는 닭갈비도 돼지갈비처럼 뼈대가 있어서 한 대, 두 대 하는 식으로 나왔는데 지금은 그런 집 찾기 힘들어요. 순살만 발라서 양념해 구워 버리니까는 숯불닭갈비가 남아 있다는 것만 해도 고맙지요. 맛은 철판보다 숯불이 훨씬 좋아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 서면 막국수도 꼭 가봐야겠네요. ……말 나온 김에 지금 갈까요, 어르신?”
“지금이요?”
그리 묻는 박춘식의 목울대가 저도 모르게 아래위로 움직였다.
꼴깍!
* * *
타닥타닥.
뜨겁게 타들어가는 숯불, 그 위에 얹혀진 그릴 위에 고추장 양념으로 버무려진 닭갈비와 떡이 익어가고 있었다.
이미 초벌을 한 번 해서 나왔으니 오래 익힐 필요는 없었다.
마주 앉은 강지한과 박춘식의 앞에는 막국수도 한 그릇씩 놓여 있었다.
두 사람은 취향껏 막국수를 제조했다.
강지한은 시원한 동치미 국물 두 국자를 넣고 설탕 두 스푼, 간장과 식초를 몇 방울 떨구어 잘 비볐다.
그리고 투박한 메밀면을 크게 집어 입안 가득 밀어 넣었다.
“후루룩! 후룩!”
메밀면은 냉면보다 질기지 않아 이로 조금만 씹어도 툭툭 끊겼다.
그게 바로 메밀면의 특징이자 매력이었다.
면을 씹던 강지한이 국물도 한 모금 마셨다.
“꿀꺽! 맛있다.”
얼음동치미를 부어 시원한 국물 안에서는 막국수의 심심한 다대기 양념 맛을 베이스로 그 안에 달달함과 새콤함, 짭짤함이 오묘하게 느껴졌다.
마치 간이 조금 강하게 된 평양냉면을 먹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집 막국수 맛있다고 얘기로만 들었었는데 명불허전이네요.”
박춘식이 신이 나서 말했다.
“닭갈비도 드셔보세요. 이제 다 익은 것 같네요.”
“그럴까요?”
두 사람이 사이좋게 닭갈비를 맛봤다.
숯불 향을 가득 입은 닭갈비는 입에 넣자마자 후각적으로 극한의 만족감을 주었다.
세상 모든 고기 중 가장 맛있는 건 단언컨대 숯불에 구운 것이 아니겠는가?
후각을 만족시킨 닭갈비는 매콤달콤한 양념으로 혀를 즐겁게 만들었고, 부드러운 살코기와 쫀득한 껍질은 사치스러운 식감으로 이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게다가 닭고기 안에서 살짝 흘러나오는 기름과 육즙이 진한 양념과 뒤섞이며 맛의 풍미가 배가되어 그야말로 최고의 숯불닭갈비를 만끽할 수 있었다.
“정말 맛있습니다.”
박춘식은 세상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죠, 어르신? 근데 딱 보니까 이건 이렇게 먹어야 할 것 같네요.”
“어떻게요?”
박춘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러자 강지한이 잘 익은 닭갈비 한 점을 집어 막국수면에 싸서 그대로 입에 넣었다.
“후룩! 우물우물. 으음!”
강지한의 얼굴에 만족스런 미소가 어렸다.
이를 본 박춘식도 바로 따라했다.
“쩝쩝. 오오.”
짭짤한 닭갈비의 양념이 심심한 막국수 육수와 뒤섞이며 완벽한 맛의 밸런스를 잡아주었다.
아울러 툭툭 끊기는 면과 부드럽고 쫄깃한 닭고기 살 역시 끝내주는 식감의 하모니를 자랑했다.
“이거 꼭 갈비를 냉면에 싸서 먹는 것 같은 기분이네요. 허허.”
“맞아요. 딱 그거예요.”
강지한이 이번에는 숯불에 양념이 살짝 타버린 떡을 집어 먹었다.
입안에서 쫀득거리며 씹히는 떡의 식감이 기가 막혔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기분이 좋아지는 강지한과 박춘식이었다.
숯불닭갈비와 막국수 덕분에 두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 * *
식사를 마치고 난 다음엔 다시 박춘식의 매장으로 돌아왔다.
박춘식은 식사 값을 내준 강지한에게 몇 번이고 감사하다는 말을 건넸다.
그렇게 먹어봤자 돈이 크게 나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얼마나 아끼고 살았는지 눈에 훤히 보이는 강지한이었다.
박춘식은 잠겨 있는 매장 문을 열고 강지한과 안으로 들어섰다.
매장 내부는 텅 비어 있었고 깔끔했다.
박춘식이 시간 날 때마다 매장에 들러 청소를 했기 때문이다.
매장은 부엌과 홀이 나누어져 있는 형태였다.
“장사를 하던 곳이었나봐요.”
“제가 만두 장사를 했다가 말아 먹었던 곳이 여기에요. 그리고 그보다 오래 전에는… 우리 부모님께서 만두 장사를 했었더랬죠.”
“그러셨어요?”
이건 처음 듣는 얘기였다.
박춘식은 그의 부모님이 만두 장사를 했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았었다.
“여기 이 자리에서 만두 장사를 했었지요. 지금도 이렇게 촌스러운 곳이니 그때는 더더욱 시골이었어요. 그럼에도 사람들이 제법 왔었는데…… 빛도 제대로 보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장사를 접어야 했었죠.”
박춘식의 아버지는 만두 장사를 한 지 1년이 채 못 되어서 지병이 악화되어 돌아가셨다.
당시 맏이였던 박춘식의 나이가 열둘.
남매들은 아래로 다섯이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만두 기술자가 아니었다.
만두를 맛있게 만드는 건 아버지의 손기술이었다.
어머니 혼자서는 아버지의 손맛을 재현할 수 없었기에 만두 장사를 접고 다른 일을 해서 육남매를 키웠다.
그러면서도 입버릇처럼 하셨던 말씀이 있었다.
“너희 아버지 꿈이 내 꿈이었다. 너희 아버지는 가장 맛있는 만두를 만들고 싶어 하셨다. 사람들이 만두를 먹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평생 사는 것이 너희 아버지 소원이었다.”
이제 박춘식이 그 꿈을 대신 이루어 드리려 하고 있었다.
그 숨겨진 이야기를 듣고 난 강지한이 결의를 다졌다.
“어르신. 부모님께서 못 다 이루신 소원, 이뤄드릴 수 있을 겁니다.”
“그, 그럼……!”
“여기에 춘천에서 가장 맛있는 만두 가게를 차리도록 도와드릴게요.”
“아아…….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박춘식이 주름 가득한 손으로 강지한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 * *
김장미는 오늘도 오후 두 시경 지한 김치 매장을 찾았다.
“어서오세요.”
이제는 단골이 된 그녀를 독고진이 반겨주었다.
그녀는 처음 이곳에 왔을 당시 허름한 외관과 매장의 소박한 규모를 보고 코웃음을 쳤었다.
이런 곳에서 파는 김치가 뭐 그리 대단할 것이 있을까 싶었다.
그러다 점쟁이 하경춘에게 크게 한 방 먹었다.
하경춘은 그녀의 남편이 잘나가던 야구선수였으나 결혼 후, 지독한 아토피와 변비에 시달렸다는 걸 맞췄다.
그로 인해 성적이 부진해져서 은퇴를 생각하며 춘천으로 내려왔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이어, 그런 남편의 증상을 고치고 싶으면 지한 김치를 꾸준히 사먹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고작 김치가 무슨 아토피와 변비를 낫게 해줄까 싶었지만 그녀의 상황을 꿰뚫어 보듯 말하니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해서, 이후로 꾸준히 지한 김치를 사먹이곤 했다.
그녀는 꼭 한 번에 하루 이틀 먹을 양만 사갔다.
그렇게 2주 정도가 지났을 때.
비로소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남편의 아토피가 슬슬 가라앉는가 싶더니 도저히 차도가 보이지 않던 변비도 나아지고 있었다.
그러다 지금은 하루에 두 번씩 시원하게 큰 일을 보게 됐다.
아토피 역시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이게 전부 지한 김치 덕분이라고 김장미는 철썩같이 믿었다.
김장미가 배추김치 두 팩과 달랑무 한 팩을 집었다.
“계산해 주세요.”
“네~ 남편분은 좀 어때요?”
독고진이 김치를 봉지에 담으며 물었다.
“이제 거의 다 나았어요.”
김장미가 카드를 건네주며 대답했다.
“그럼 조만간 다시 서울 올라가겠네요?”
“저도 그럴 줄 알았는데…… 올라갈 생각을 안 하네요.”
“왜요?”
“여기 김치 먹어야 한다고요. 김치 덕분에 건강 찾아서 다시 올라갈 줄았더니 김치 때문에 눌러앉게 생겼어요.”
김장미가 툴툴댔다.
독고진은 그런 김장미에게 계산한 카드를 돌려주며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왜 웃어요?”
“아니, 우리 김치는 온라인으로도 구매 가능한데 뭐하러 그럽니까?”
“……네? 온라인 구매가 돼요?”
“네, 인터넷에 지한 김치라고 치면 바로 나와요.”
“어머나, 어머나. 그랬구나! 좋은 정보 고마워요. 많이 파세요~!”
함박웃음을 머금은 김장미가 후다닥 매장을 떠났다.
이를 본 문정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모르겠다니까, 저 아줌마.”
* * *
그날 저녁.
메이저리그 진출 얘기까지 나오던 와중 돌연 춘천으로 내려가 버린 야구 선수 추대진은 저녁 상에서 아내 김장미에게 눈이 번쩍 뜨이는 소식을 들었다.
“이 김치를 온라인에서도 구할 수 있다고?”
추대진이 상 위에 놓인 지한 김치를 젓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렇다니까. 이제 서울로 다시 가자.”
“당연히 그래야지! 가만. 그럼 슬슬 비밀을 밝혀줘야지.”
추대진은 자신의 팀원들이 만든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나 조만간 서울 간다. 정말로 김치가 내 몸을 고쳤다. 너희들 그게 어디 김치냐고 궁금해 했었지? 지한 김치다. 인터넷에 치면 온라인 매장도 있다니까 믿고 먹어봐. 건강을 떠나서도 정말 맛있다.
요즘 그 단톡방은 추대진의 아토피와 변비를 고친 김치가 대체 뭐냐는 이야기로 뜨거웠다.
실제로 김치에는 각종 비타민과 칼슘, 칼륨, 식이섬유, 유산균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그런 김치가 아토피와 변비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는 예전에 나온 바 있었다.
한데 이런 김치의 효능들이 강지한의 건강 요리사 타이틀로 인해 추대진에게 더욱 크게 작용한 것이다.
아무튼 단톡방 사람들은 김치의 정체를 궁금해 했고, 그 비밀이 드디어 풀렸다.
추대진이 보낸 톡 내용을 접한 동료들은 그 사실을 또 다른 지인들에게 퍼 날랐다.
그리고 그 정보는 다시 여러 사람들에게 공유되었다.
추대진으로 인해 지한 김치의 판매고가 또다시 올라가려 하고 있었다.
* * *
9월 20일, 목요일.
지한 식당이 오픈하자마자 네 명의 손님이 안으로 들어섰다.
한데 그들 중 한 사람의 얼굴을 확인한 강지한이 반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