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80화 (180/330)

# 180

Restaurant 179. 만두 전문점

“어르신?”

강지한이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박춘식을 불렀다.

그에 박춘식이 미안한 얼굴로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저…… 사장님. 이 노구가 염치없는 부탁 하나 드리려고 찾아왔어요.”

“네, 말씀해 보세요.”

안 그래도 박춘식의 사정이 궁금하던 차였다.

매일같이 와서 만두만 먹고 가는 그가 어떠한 부탁을 하려는 것일까?

강지한은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박춘식이 편안하게 마음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춘식은 한참 동안 뜸을 들이고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그…… 저를 사장님의 제자…… 비슷한 것으로 받아주시면 안 되겠는지요?”

“제, 제자요?”

“실은 제가 소싯적에 만두 장사를 좀 했었더랬죠. 여기 춘천 바닥에서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되어서 쫄딱 말아 먹었어요. 삼 년 동안 끌고 나갔던 만두집이 문을 닫으면서 우리 가족의 행복도 함께 문을 닫아버렸지요.”

박춘식은 자세한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어떻게 된 상황인지 강지한은 짐작할 수 있었다.

필시 만두 가게를 내느라 무리했을 테고 무리한 것과는 정반대로 장사가 되지 않았을 테지. 결국 장사를 접고 난 다음에 남은 것은 3년 동안 어떻게든 기사회생하려다 늘어나 버린 빚뿐이었을 터.

그러한 강지한의 짐작은 딱 들어맞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빚이란 한 가정의 행복까지 깨뜨리는 법이다.

빚을 갚기 위해 누릴 거 못 누리고 구두쇠처럼 아끼며 살아야 하니, 아내와 자식들에게도 의도치 않게 인색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박춘식이 구두쇠가 된 것도 다 그 빚 때문이었다.

하지만 식당을 하며 얻게 된 빚이 그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다.

식당이 망하고 나서 그의 아내는 불치병 판정을 받았다.

그로 인해 들게 된 병원비 역시 전부 빚이었고, 그때부터 박춘식의 생활이 본격적으로 어려워졌다.

결국 그의 아내는 하늘나라로 떠났고, 당시 사춘기였던 네 살 터울의 두 딸은 엄마의 죽음을 아빠의 탓으로 돌렸다.

3년 동안 되지도 않는 만두 가게를 끌고 나가느라 엄마가 고생한 탓에 병을 얻은 게 아니냐는 것이다.

딸들의 원망에 박춘식은 어떠한 변명도 할 수 없었다.

본인 역시 그리 생각하고 있었기에.

딸들은 박춘식이 대체 왜 그렇게 만두 장사에 사력을 다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때려치우면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다.

그것을 박춘식 역시 두고두고 후회했다.

결국 자신이 가정의 행복을 짓밟은 것이니.

하지만 박춘식에게는 만두 장사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딸내미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홀로 남아 빚도 거의 다 갚아나간 지금, 그의 가슴속에 줄곧 품고 있던 소망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 강지한의 만두가 심지에 불을 지폈다.

박춘식은 강지한에게 만두를 배우고 싶었다.

“나는 만두 장사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내가 만든 만두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게 내 평생의 소원이에요. 그러니 저를 제자로 받아들여줄 수 없을까요?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박춘식이 강지한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르신, 이러지 마세요.”

강지한이 그런 박춘식을 말렸다.

자신보다 연배도 훨씬 많은 어른이 고개를 숙이는 것은 부담스럽고 불편하며 죄송했다.

“그러니까…… 저한테서 만두를 배우고 싶다는 거죠?”

“그래요.”

“한데 왜 그렇게까지 절실하신 건지 여쭤 봐도 될까요?”

“제가 배우고자 사정하는 입장인데 무언들 대답 못해드리겠어요. 저는 사장님께 만두를 배워서 다시 한 번 만두 장사를 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만두…… 장사를요?”

“사람들에게 맛있는 만두를 팔 수 있는 만두 가게를 여는 것이 내 평생의 소원입니다. 나한테 이제 남은 건 그 소원 하나밖에 없어요.”

박춘식이 그렇게까지 나오니 대체 무슨 사정이 있는 건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르신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재미없고 지루한 얘기일겁니다. 길기도 길 테고. 그래도 괜찮겠어요?”

“그럼 일단 들어가서 얘기 나누시죠.”

강지한은 닫았던 식당 문을 다시 열었다.

* * *

“……그것이 이 노구가 살아온 인생이랍니다.”

박춘식은 자신의 삶을 강지한에게 털어놓았다.

강지한은 그가 얼마나 불행하고 힘겨운 인생을 살아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본인 또한 평탄함과는 거리가 먼 역경을 겪어왔기에.

그런데, 왜 하고 많은 음식들 중 굳이 만두를 만들어 팔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박춘식이 의도적으로 말을 꺼내지 않는 것 같았다.

누구에게나 말 못할 사정은 있다.

강지한은 더 묻지 않기로 했다.

“어르신. 제자로 들어오고 싶다는 것은 제 밑에서 일을 하고 싶으신 거죠?”

“그렇지요.”

“제 식당에서 직원으로 일을 하며 배워도 괜찮다는 거고요?”

“아무렴요.”

박춘식이 지한 식당의 직원으로 일하기를 희망했다.

정보의 눈을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었다.

강지한이 박춘식의 상태창을 띄웠다.

<박춘식의 능력치>

직급: 지한 식당 근무 희망자

등급: B-

능력: 요리 LV 6, 서빙 LV 3, 청소 LV 7, 회계 LV 10(MAX), 설거지 LV 7, 화술 LV 4

정직도: 100/100

신뢰도: ???/100

종합 평가: 요리에 나름 재능이 있다. 잠재력도 상당한 수준. 그러나 재능을 제대로 펼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자라나 그 외의 다른 부분들이 더 발달했다. 사무직에서 일하며 잠재력이 제일 낮았던 회계 능력만 최고치를 찍었다. 제법 맛있는 만두를 만들었음에도 이런저런 상황이 따라주지 않아 빚만 지고 말았다. 이후로는 더더욱 요리를 멀리했고 재능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했다. 자신의 업으로 생긴 빚을 가족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 무조건 정직하게 일해 나갔다.

‘이런.’

박춘식의 상태창을 보고 나니 탄식부터 나왔다.

요리와 관련해서 박춘식의 등급은 B-.

상당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정직도는 무려 100이다.

재능이 충분했음에도 상황이 따라주지 않아 다른 일을 하게 된 케이스였다.

사실, 박춘식의 시절에는 비슷한 이유로 자신과 맞지도 않는 양복을 걸치고 회사로 출퇴근 하게 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는 개성을 살리는 것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항상 당면의 과제였던 시절이었으니까.

박춘식은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다시금 자신의 길을 걸으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지한은 그를 식당에 들일 생각은 없었다.

그러기엔 박춘식의 건강 상태가 크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아직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지는 않지만 만일을 대비해 챙기고 다녀야 할 만큼 노쇠한 그였다.

젊은 사람들도 힘들어 하는 식당일을 잘해 나갈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생각을 정리한 강지한이 입을 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 식당에서 일하는 건 안 될 것 같아요. 어르신의 체력으로 버틸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아……. 역시 그런가요? 허허.”

박춘식은 못내 아쉬운 얼굴이었지만 거기서 더 조르거나 생떼를 부리지는 않았다.

“지루한 노인네 얘기 들어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박춘식이 더 미련을 갖지 않고 그만 일어나려 했다.

그때, 강지한의 입이 다시 열렸다.

“하지만 만두 장사를 하도록 도와드릴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떠나간 배라고 생각했던 박춘식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그, 그게 정말인가요?”

“네. 한 가지만 여쭤볼게요. 어르신께서는 직접 만두를 빚어 팔고 싶으신 건가요?”

박춘식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물론 그게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저는 제 매장에서 파는 만두를 손님들이 드시고 맛있다는 얘기만 들었으면 해요. 그거면 됩니다.”

“매장은 가지고 계세요?”

“아주 낡은…… 오래된 건물이 하나 있지요. 우리 아버지 때부터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그런 건물입니다.”

“많이 낡았나요?”

“그렇긴 한데 아직 쓸 만합니다. 보수공사도 많이 했고 누수되는 곳도 없어요. 전기 공사도 두 달 전에 다시 해서 안전하지요.”

박춘식은 꼭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매장에서 장사를 하고 싶었다.

강지한이 이를 알아챘다.

“알겠어요. 마침 내일 쉬는 날이니 매장 좀 보러 갈게요.”

“매장을 보러 오신다고요?”

“네. 그래야 거기서 만두 장사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 판단이 가능하니까요.”

“그, 그 말은…….”

“장사가 가능하다고 여겨지면 제가 그곳에 가맹점을 내드릴게요. 한데 상호는 제가 하는 사업들이 전부 그렇듯이 지한 만두라고 해야 할 텐데 괜찮으세요?”

“상호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 건물에서만 팔 수 있으면 상관없지요.”

“어르신 돈 계산은 잘하시죠?”

이미 정보의 창으로 회계 관련 레벨이 가장 높음을 확인하고서 묻는 것이었다.

“그럼요. 내가 경비일 하기 전까지 회사에서 숫자 놀음 했어요.”

“그럼 어르신께서 카운터를 보시면 좋겠네요. 건물도 어차피 어르신 것이니까 월급 받고 일할 주방 사람이랑 홀 직원들만 구하면 되겠는데…… 사람 들이는 일은 만약 장사가 가능하다는 판단이 서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저, 정말이에요?”

“그럼요.”

“어찌 저 같은 사람한테 이토록 큰 친절을 베푸시나요?”

“하하, 아니에요. 저도 지금 장사 머리 굴리는 거예요. 계산기 다 두들겨 보고 말씀 드리는 겁니다. 어르신께서 드셔 보셔서 알겠지만 우리 식당 만두, 보통 만두가 아니잖아요. 그렇잖아도 만두 전문점을 따로 내볼까 싶었던 참이었어요.”

어제, 손님들이 추가하는 만두를 보면서 만두 전문점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던 그였다.

아직 그 시기를 언제로 할지 정하지 않았을 뿐.

그런데 타이밍 좋게도 박춘식이 나타났다.

게다가 그의 사정도 참 딱 했다.

평생 하고 싶은 걸 못한 데다 가지고 있던 재능 역시 꽃 피워 보지 못한 채 가족들을 위해서만 살아온 그였다.

물론 그 원인에는 박춘식의 사업 실패가 있었지만, 그가 망하고 싶어서 망한 게 아니었다.

잘 해보자고 덤벼들었던 것이 그 모양이 되어 평생 자식들의 원망을 들으면서도, 결국 자식들을 위해서만 살았다.

이제는 본인을 위해 살아도 좋지 않겠는가.

‘어차피 하려고 했던 사업이니까.’

강지한은 박춘식이 내민 손을 잡아보기로 했다.

“연락 가능한 번호 하나 주세요. 내일 제가 연락드릴게요.”

“아아, 그러지요. 감사해요, 사장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아직 일이 확정된 것도 아니건만, 자신에게 보여준 강지한의 호의만으로도 감사하다며 고개를 조아리는 박춘식이었다.

* * *

집으로 돌아온 박춘식이 오래된 함을 꺼내 열었다.

그 안에는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정 사진이 모셔져 있었다.

박춘식은 그분들의 사진을 꺼내 놓고 눈물을 훔쳤다.

“어머니, 아버지. 어쩌면 두 분이서 못 이룬 꿈……. 이 못난 아들이 황혼을 맞은 지금에야 대신 이루어 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살아생전 한 번 해보지 못했던 효도라는 게 돌아가시고 나서 이렇게 대못처럼 가슴에 박힐 줄 알았더라면…… 아직 계실 때 잘해드릴 것을.”

박춘식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지금에는 계시지 않으니 효도는 물 건너갔음에, 두 분께서 못 다 이룬 꿈이라도 이뤄드리고 싶은 것이 박춘식의 마음이었다.

그날 밤.

박춘식은 꿈속에서 몇 년 동안 한 번 나타나지 않았던 부모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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