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
Restaurant 178. 1억 배우 설탕이
9월 10일 월요일.
주말에는 손님이 평소보다 많이 몰린다.
그런데 바른 먹거리 사태 이후 평일 손님이 많아진 만큼 주말 손님도 더 많아졌다.
웨이팅 시간은 조금 늘어났고 그에 따라 손님들의 여유도도 조금씩 떨어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식당에 들어서서 음식 맛을 보면 떨어졌던 여유도가 금세 차오르곤 했다.
그만큼 지한 식당의 요리는 춘천에서 가히 독보적이었다.
같은 업종에서 대적할 만한 곳이 있다면 천명옥의 명옥정 정도가 유일했다.
아무튼 손님이 많이 몰려들수록 강지한은 지한 식당의 분점을 빨리 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마침 오늘 아침부터 예경천에게 전화가 왔었다.
강지한이 원하던 조건과 딱 맞는 매물이 하나 나왔다고.
강지한은 브레이크 타임을 이용해서 강지영과 매물을 보러 가기로 했다.
“12번 테이블 주문 받았습니다!”
“7번 테이블 세 분 주문 들어왔어요.”
“1번 테이블 주문이요!”
홀 직원들이 받아온 주문들은 무섭게 쌓이고 있었다.
보통의 주방이었다면 이미 과부하가 일어나 딜레이가 걸리는 게 당연한 상황.
하지만 지한 식당의 주방은 달랐다.
강지한을 필두로 강지영이 든든하게 옆을 지켜주었다.
아울러 갈수록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천재 요리사 조정호의 도움 또한 컸다.
그는 자신보다 일찍 일을 시작한 한지민과 동등한 수준까지 실력이 올라갔다.
그의 요리 레벨은 8에서 9로 올라갔고 청소와 설거지 레벨도 각각 4까지 상승했다.
정직도는 81이었다.
신뢰도 역시 3이 더 올라 95가 되었다.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요리에 몰두하고 있음이 보이는 대목이었다.
노력하는 천재만큼 무서운 건 없었다.
물론 한지민 역시 성장이 빠른 타입이기는 했다. 다만 조정호가 워낙 괴물 같은 인간일 뿐.
그녀 또한 처음과는 비교도 안 되는 성장을 한 상황.
주방에서 충분한 존재감을 어필하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
전덕진과 강희주, 두 아주머니도 손이 워낙 빨랐다.
그렇다 보니 손님이 제법 늘어났음에도 회전률이 많이 느려지지는 않았다.
하루하루 늘어가는 손님들 속엔 오늘도 변함없이 박춘식 노인이 끼어 있었다.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홀로 와서 만두 한 판을 주문했다.
처음에는 4,000원에 겨우 네 알만 나온다는 것 때문에 사먹길 망설였었다.
그런데 한 번 맛을 보고 난 이후에는 그 돈이 아깝지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에 두 끼를 전부 만두로 채우고 싶었으나 워낙 아끼고 살았던 그의 삶은 이를 용납 못했다.
“주문하신 만두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어르신.”
설인하가 미소 지으며 서빙을 했다.
이제 박춘식의 얼굴은 식당의 모든 직원들이 전부 알고 있었다.
그는 네 알의 만두를 하나하나 깊이 음미하며 천천히 맛봤다.
식사를 마친 박춘식이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주방 쪽을 바라봤다.
하지만 말을 붙이기엔 너무나 바빠 보였다.
‘다음엔 장사가 끝날 무렵에 찾아와야겠네…….’
박춘식이 카운터로 다가가 만두값을 지불했다.
그때 그의 머리 위 단골지수가 10/10으로 변하더니 빛으로 화해 강지한에게 스며들었다.
동시에 강지한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실내 공간의 레벨 업이 가능합니다. 실내 공간의 레벨 업 조건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를 해금하기 위해서는 소기의 미션을 완수해야 합니다.]
[해금 미션: 지한 식당 단골손님 50명 만들기 50/50]
[미션 클리어. 실내 공간의 레벨 업 조건이 해금됩니다.]
[실내 공간의 레벨 업 조건: 20,000만족도 포인트.]
강지한의 시선이 카운터로 향했다.
그곳엔 막 계산을 마친 박춘식이 서 있었다.
열흘 간 꾸준히 찾아온 박춘식이 마지막 50번째의 단골이 되며 해금 미션이 클리어된 것.
박춘식은 식당을 나서려다가 못내 아쉬운지 다시 주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자신을 보고 있던 강지한과 눈이 마주쳤다.
그에 박춘식이 뭔가를 말하려다 그저 고개만 숙여 보인 뒤 식당을 나섰다.
‘무슨 사연이 있으시려나.’
강지한은 그가 점점 더 궁금해졌다.
‘일단 그건 그거고.’
강지한은 20,000만족도 포인트를 들여 실내 공간을 레벨 업 했다.
[실내 공간을 레벨 업 했습니다.]
[실내 공간의 레벨이 최대치입니다.]
[실내 공간이 강화되어 기능이 향상됩니다.]
[어떠한 외부적, 내부적 요인에도 늘 식사하기 좋은 최적의 온도를 잡아줍니다.]
‘오, 좋다.’
실내 공간을 레벨 업 함으로써 얻게 된 혜택 역시 괜찮았다.
특히 요즘 같은 여름에는 에어컨을 오래 틀어놓으면 너무 추워지고, 그렇다고 꺼버리면 바로 더워진다.
물론 에어컨 바람을 원하는 온도로 흘러나오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쾌적한 온도를 맞추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데 실내 공간을 업그레이드함으로써 어떠한 외부적, 내부적 요인에도 식사하기 좋은 최적의 온도를 잡아준다고 하니 걱정을 덜었다.
에어컨을 약하게 틀어놓으면 그로 인해 온도가 잡혔다고들 생각할 테니.
강지한이 식당 내부 다른 곳을 살폈다.
한데 파란색으로 물든 부분이 없었다.
그에 주방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모든 수도꼭지들이 파랗게 변해 있는 게 보였다.
이어 해금 미션이 나타났다.
[수도의 레벨 업이 가능합니다. 수도의 레벨 업 조건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를 해금하기 위해서는 소기의 미션을 완수해야 합니다.]
[해금 미션: 지한 식당 직원들의 정직도와 신뢰도가 일주일 간 80 이하로 떨어지지 않게 하세요. 한 명이라도 수치가 80 이하로 떨어질 경우, 해금 미션의 남은 기간이 리셋됩니다.]
[해금 미션 완료까지 남은 기간: 7일]
이번 해금 미션은 저번 해금 미션보다는 조금 더 수월해 보였다.
강지한이 식당 직원들의 상태창을 일제히 띄웠다.
홀에서 동분서주하는 직원들과 주방에서 손을 바람처럼 움직이는 직원들의 옆에 상태창이 둥실 떠 있었다.
전부 정직도, 신뢰도가 80 이상이었다.
‘일단은 안정권이네.’
직원들의 정직도와 신뢰도는 결국 오너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번 달에도 보너스 좀 챙겨줘야겠다.’
다행스럽게도 강지한은 직원들에게 더없이 좋은 오너였다.
“사장님~ 만두 주문 들어왔어요.”
“9번 테이블도 만두 한 판 추가요.”
“11번 테이블은 만두 두 판 주문 받아왔습니다.”
직원들이 식사를 하는 손님들에게서 추가로 만두 주문을 받아왔다.
이를 본 강지한이 속으로 생각했다.
‘만두 전문점도 하나 차리면 참 좋겠는데.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다.’
* * *
브레이크 타임.
강지한과 강지영은 예경천과 함께 새로 나온 식당 매물을 보러 갔다.
“와! 딱 내가 원하던 곳이야, 지한아!”
매물을 보자마자 강지영이 확정짓듯 말했다.
지한 식당과 똑같이 50평 매장이었는데, 급매로 나왔다.
“원래는 순댓국 장사하던 곳이었거든. 근데 일주일 전에 자리를 옮겼어요. 장사가 안 된 건 아니고 계약이 끝나서 연장하려는데 주인이 그건 안 되겠고 건물을 인수하라고 했나봐. 급전이 필요했는지 매매를 원했던 거지. 한데 순댓국 하던 사장님이 그럴 건 아니라면서 발을 뺐어. 그 바람에 지금 건물이 붕 떠버렸는데 워낙 목이 좋아서 경쟁자들이 많다고. 근데 내가 강 사장한테 제일 먼저 연락한 거야. 건물 어때? 좋지요?”
매장 건물은 후평동에 있었고, 목이 좋았다.
후평동은 지한 식당이 있는 거두리 바로 옆 동네였다.
거리적으로도 상당히 괜찮았고 홀과 주방도 상태가 멀쩡했다.
“네. 괜찮네요. 그럼 여기로 할까, 누나?”
“여기 3억 6천이라 그랬었지? 너 괜찮아?”
“배틀 셰프 상금도 있고 개인적으로 모은 것도 제법 되니까 감당할 수 있어.”
강지한의 수중에는 현재 5억 가까운 돈이 있었다.
그동안 분식집과 김치쇼핑몰, 김치 전골집, 지한 식당, 그리고 신푸드의 로열티로 받은 돈을 꾸준히 모아온 덕이었다.
“건물주 지금 뵐 수 있을까요?”
강지한의 물음에 예경천이 화통하게 웃었다.
“으하하하하! 역시 강 사장은 시원시원한 게 좋다니까! 바로 만나서 계약서 쓰러 갑시다!”
* * *
늦은 밤, 거두리에 있는 유일한 24시 순댓국집.
강지한은 오래간만에 예소린과 만나 순댓국과 수육에 술 한잔을 나누고 있었다.
주종은 당연히 소주.
강지한은 일반 순댓국, 예소린은 매운 순댓국을 주문했다.
“여기 순댓국은 양도 실하고 맛도 좋아.”
예소린이 순댓국을 극찬했다.
진한 사골의 구수함에 다대기 양념을 풀어 얼큰하게 즐길 수 있는 매운 순댓국은 돼지 살코기와 비계, 내장들이 고루 담겨 있었다.
이곳 순댓국은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가 살짝 올라오는데, 그게 또 매력이었다.
여기에 들깨가루와 파를 듬뿍 넣고 밥을 말아 푹푹 퍼 먹으면 그 맛이 끝내줬다.
“맛도 좋고 재료도 신선해. 양까지 두둑한데 가격이 5천 원밖에 안 하는 게 신기하다니까.”
강지한의 말에 예소린이 풋! 하고 웃었다.
“지금 내가 한 얘기에서 웃음 포인트가 어디야?”
“지한 식당에 오는 손님들도 전부 그런 얘기 할걸?”
“아, 그런가.”
“하여튼 엉뚱하다니까. 그런데 왜 갑자기 순댓국이 땡겼어?”
“오늘 새로 계약한 분점 건물이 원래 순댓국집 했었대.”
“그래서 땡겼구나.”
“응. 그리고 나 자랑할 거 하나 있는데.”
“분점 건물 산 것 말고 또 있어?”
“우리 설탕이. 계약 조건 어마어마하게 좋아졌어.”
“정말? 어떻게?”
“김 감독님이 알아서 조건 높여주시더라고. 1억에 합의 봤어.”
“1억? 대박이다. 설탕이가 진짜 효자네.”
“이제 촬영 들어가면 한동안 설탕이 애견 카페에 없을 텐데 어떡해?”
“그러게. 우리 카페 마스코트인데. 손님들이 엄청 서운해하겠다. 근데 사실 내가 더 서운할 것 같아. 그 예쁜 얼굴을 못 본다니.”
“하하, 조금만 참아봐.”
“근데 설탕이 혼자서 괜찮을까? 촬영장에 지한 씨가 따라가야 하는 거 아니야? 감독님이 촬영 스케줄 압박으로 강행군 시킬 타입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심리적인 안정 같은 걸 취하려면 지한 씨가 필요할 것 같아.”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지. 근데 나는 상황이 안 돼서 향숙이가 매니저 하기로 했어.”
“향숙이가?”
예소린은 이제 이향숙과 언니 동생 하는 사이가 됐다.
말도 편하게 주고받는다.
“응. 아무래도 나랑 소린 씨만큼 설탕이랑 친근한 사람이 향숙이밖에 없으니까.”
“그럼 쇼핑몰 관리는?”
“향숙이 이제 어엿한 CEO잖아. 사무실까지 얻어서 일하는 애야. 밑에 직원 셋이나 있어. 없는 동안 직원들이 애써주기로 했대. 대신 보너스 일괄 지급하는 걸로 퉁 쳤다나 봐.”
“벌써 얘기가 그렇게까지 진행된 거야?”
“설탕이랑 관련된 일이라고 하면 눈 돌아가는 애잖아. 매니저 자리 누구한테도 빼앗기지 않겠다고 방방 뛰었어.”
“하여튼 매력적이야, 향숙이. 축하해, 지한 씨. 분점 자리 구한 것도. 설탕이 계약 좋게 진행된 것도. 건배.”
“고마워.”
짱-
* * *
간만에 강지한은 거하게 취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는 홀로 있던 설탕이가 벌떡 일어나 그를 반겨주었다.
왕왕! 헥헥.
강지한이 달려 나온 설탕이를 품에 안고 털에 얼굴을 비볐다.
“아이구~ 내 새끼. 아빠 보고 싶었어?”
머리가 제법 큰 설탕이는 이제 몇 시간 정도 집에 혼자 있는 건 괜찮았다.
강지한이 없다고 크게 외로움을 타거나 힘들어 하지 않았다.
둘의 교감은 상당히 높았기에, 설탕이는 강지한을 믿었고 그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늘 느꼈다.
때문에 이 정도의 부재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강지한 역시 그런 설탕이의 상태를 알고 있었다.
그가 설탕이를 소파에 눕혀 놓고 배에다 얼굴을 마구 문질렀다.
설탕이는 몸을 비틀고 다리를 바둥거리며 좋아했다.
강지한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설탕이의 젤리 같은 발바닥을 손으로 누르다가 냄새까지 킁킁 맡았다.
강아지의 발바닥에서는 구리구리한데 이상하게 싫지 않은 냄새가 났다.
“설탕아, 네 몸 값이 얼만지 아니? 무려 1억이야, 1억. 세상 어느 강아지가 돌도 지나기 전에 1억까지 몸값이 오르냐?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우리 설탕이밖에 없지! 그치, 아들?”
왕왕! 왕!
설탕이가 격하게 동의한다는 듯 다른 때보다 더욱 맹렬히 짖어댔다.
“흐하하! 그렇지. 우리 설탕이가 짱이지!”
강지한이 설탕이를 품에 안고 소파에 드러누웠다.
“설탕아, 네가 최고야. 내가 설탕이를 많이많이 사랑… 사랑… 한…… 쿠울…….”
그러고는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설탕이가 그런 강지한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소파에서 뛰어내려 거실로 나갔다.
거기엔 강지한이 주유소에서 가끔 받아온 500ml 생수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설탕이가 그중 한 개를 물어 소파 밑에 두었다.
자기 주인이 술을 많이 마시고 오면 자다가도 물을 찾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탕이가 다시 소파 위로 뛰어 올라 강지한의 품을 파고들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잠든 주인의 입술을 살짝 핥더니 이내 하품을 했다.
끄아아아앙~
“크…… 흐흐. 넌 애가 하품 소리가 왜 그러냐아…… 귀여워라…….”
강지한이 잠이 든 와중에도 실소를 흘렸다.
설탕이는 강지한의 뺨을 한 번 더 핥고서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 * *
다음 날.
지한 식당의 하루 일과가 마무리 되고 직원들이 다 퇴근한 시각.
강지한은 홀로 남아 마무리를 짓고 밖으로 나왔다.
그가 해금 미션의 진행도를 살폈다.
[해금 미션 완료까지 남은 기간: 6일]
다행히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겼다.
식당 문을 잠그고 보안 장치를 작동시킨 뒤 뒤돌아선 강지한.
한데 그의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헉.”
깜짝 놀란 강지한이 헛숨을 들이켰다.
불 꺼진 식당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다름 아닌 박춘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