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77화 (177/330)

# 177

Restaurant 176. 만두 한 알 서비스

9월의 시작은 토요일이었다.

바른 먹거리 방송 이후 지한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 더 늘어났다.

유지호가 식당 문을 오픈하며 바깥 상황을 확인하니 줄이 평소의 두 배는 족히 될 법했다.

“우선 네 팀부터 안으로 모실게요.”

점심 피크 타임이 시작됐다.

차근차근 홀을 채워가는 손님들의 주문을 주방에서 소화하며 강지한이 강지영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누나가 빨리 분점을 내야겠다. 손님들 소화하기가 점점 더 버거워져.”

“그치? 그래서 내가 생각해 봤는데 분점을 가평 말고 춘천에다 내는 게 어떨까?”

“춘천에?”

“응.”

“그럼 나야 관리하기 더 편하지. 육수나 양념장, 재료들 배달해 주는 것도 수월하고. 근데 누나가 괜찮겠어? 매일 40분씩 출퇴근해야 할 텐데.”

“지금 이 단골들 중 못해도 20퍼센트 정도는 분점으로 유입될 텐데 그게 문제겠니. 일단 안정적인 조건에서 시작할 수 있는데 그 정도 수고는 감내해야지.”

생각해 보니 그녀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지한 식당이 아무리 유명해도 춘천 바닥에서 유명한 거지, 아직 전국구는 아니었다.

때문에 가평보다는 득세하고 있는 춘천에서 분점을 여는 것이 더욱 안전하긴 했다.

물론 강지한은 지한 식당이 어디를 가든 잘될 것이라 믿고 있었으나 강지영의 입장에서 생각하자면 무조건 낙관하긴 힘들었다.

“네 생각은 어때?”

“누나만 괜찮으면 난 좋지.”

“오케이. 그럼 분점은 춘천에다 내는 걸로.”

“다음 주 수요일에 나랑 같이 부동산 좀 다니자.”

“벌써?”

강지영은 강지한의 곁에서 세 달 정도 일을 배우고 분점을 맡기로 했었다.

그런데 아직 세 달이 채 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됐지, 뭐. 그리고 미리 건물 알아봐야 리모델링도 하고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 들여놓고, 간판도 달고 그러지. 그것만 해도 보름 이상은 금방 지나갈 거야.”

“아, 그러네. 좋아. 휴일 날 여기 올게.”

분점을 오픈하고 난 이후의 수익 구조는 이미 두 사람 사이에 상의가 끝났다.

분점 오픈을 위한 모든 비용을 강지한이 대는 대신, 강지영은 정해진 월급을 받기로 했다.

그것이 월 350이다.

아울러 분점 순수익의 15퍼센트를 주기로 했다.

강지한은 전부터 누구든 자신의 이름을 건 매장을 맡게 되면 순수익의 15퍼센트를 할당해 주고 있었다.

이미 지한 식당의 수익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 가능한 강지영의 입장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조건이었다.

딸랑-

“다음 손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유지호가 문 밖에서 대기 중이던 손님 한 분을 안으로 들였다.

백발이 성성한 육십 대 후반의 노인이었는데, 시원한 개량한복 차림에 중절모를 쓴 모양새가 정갈했다.

주름 가득한 얼굴엔 얇은 금테 안경을 걸쳤고 한 손엔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하지만 딱히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노인의 이름은 박춘식.

그는 얼마 전 바른 먹거리 프로그램을 보고 지한 식당을 찾았다.

사실 프로그램만 보고서는 그게 춘천의 어디에 있는 식당인지 알 수 없었다.

따로 살고 있는 작은딸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본 뒤에야 그곳이 지한 식당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허허, 번쩍번쩍하네.”

박춘식은 식당 문 앞에 서서 내부를 둘러봤다.

모든 것이 세련되고 깔끔한 데다 고급스런 디자인으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 영 자신과 맞지 않는 곳에 들어선 것 같았다.

그는 단 한 번도 사치를 모르고 살았던 사람이다.

지금 입고 있는 개량 한복이나 지팡이, 쓰고 있는 안경도 대단히 오래된 것들이었다.

“빈자리로 안내해 드릴게요, 어르신.”

입구에 서서 꼼짝 않는 박춘식에게 유지호가 부드럽게 말했다.

“아, 그래요. 갑시다. 어험.”

유지호의 안내로 빈자리에 착석한 박춘식이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유지호는 그런 박춘식에게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어르신, 우리 식당 처음이시죠?”

“네, 첫 걸음 했습니다.”

“그럼 음식을 주문하는 방법부터 설명 드릴게요. 우선은…….”

유지호가 메뉴판을 펼쳤다.

그런데 기본 메뉴의 가격이 무려 9천 원이나 했다.

박춘식이 얼른 유지호의 말을 끊었다.

“저기, 젊은이. 말 끊어서 미안한데 저…… 여기 만두가 그렇게 맛있다고요?”

바른 먹거리에서는 심사위원들이 만두에 대해 극찬하는 장면이 전파를 탔었다.

박춘식은 그걸 기억하고 물었다.

유지호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네. 만두 전문점에서도 쉽게 먹어볼 수 없는 최고의 맛을 자부합니다.”

그것은 빈말이 아니었다.

식당에서 돈을 받고 알바를 하는 입장이라 기계적으로 영혼 없이 내뱉는 게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찬사였다.

세월이 깊이 박힌 노인의 눈에는 그것이 고스란히 보였다.

“그렇군요. 그럼…… 만두만 먹어볼 수는 없을까요?”

“가능합니다. 만두도 단품으로 판매하고 있거든요.”

유지호가 메뉴판의 만두를 가리켰다.

가격이 4천 원.

박춘식에게는 그 정도 선이 딱 적당했다.

중국집에서도 짜장면, 짬뽕 이상의 음식을 주문한 적이 거의 없는 그였으니까.

“한 판을 시키면 만두 네 알이 나옵니다. 이걸로 주문하시겠어요?”

“아이쿠, 네 알에 사천 원이요?”

“네, 가격이 조금 비싼 편이지만 드셔 보시면 분명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으음…….”

박춘식이 고민을 했다.

그 모습을 강지한이 주방에서 지켜보는 중이었다.

박춘식의 머리 위에 뜬 여유도는 조금 전까지 세 칸이었는데, 메뉴판을 보면서 두 칸으로 줄어들었다.

“3번 테이블 주문 받아왔습니다!”

마침 박춘식이 앉아 있던 옆 테이블의 주문을 설인아가 받아왔다.

강지한이 그녀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설인아가 간단하게 설명했다.

“할아버지께서 만두를 드시고 싶으신데 비싸서 망설이시는 모양이에요.”

“그래?”

강지한의 시선이 다시 박춘식에게 향했다가 홀을 슥 둘러봤다.

홀에는 아직 첫손님들만 들어선 상황.

식사를 끝내고 나간 이는 아무도 없었다.

‘흠……. 슬슬 고객 감사 이벤트 같은 것도 한 번 할 참이었는데 이 기회에 질러볼까?’

고민을 끝낸 강지한이 입을 열었다.

“인아야, 이렇게 하자. 내가 전에 말했던 만두 이벤트 있지?”

“네.”

“그거 지금 해.”

그러자 강지한의 의도를 알아챈 설인아가 방긋 웃었다.

“우리 사장님, 진짜 천사. 알았어요.”

설인아가 탕비실로 들어가 A4용지와 매직을 꺼내 뭐라고 슥슥 적었다. 그러고는 그것을 손님들의 시선이 가장 잘 닿는 홀 벽 한 편에 테이프로 붙였다.

손님들이 그게 뭔가 하며 시선을 집중했다.

A4용지에는 ‘오늘 하루 식당을 찾는 모든 손님들께 만두 한 알 서비스!’라고 적혀 있었다.

손님들이 술렁대자 설인아가 큰 소리로 이벤트를 공지했다.

“사장님께서 손님들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오늘 하루, 만두 한 알을 서비스 드린다고 합니다!”

“와아!”

“사장님 멋쟁이!”

설인아의 말에 전 테이블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 바람에 주방에서는 만두 여유분을 더 준비하느라 손이 바빠졌다.

강지영은 은근히 걱정하며 물었다.

“지한아, 근데 갑자기 이렇게 서비스 해버리면 만두 부족해지는 거 아니야?”

“오늘 만두 단품 주문은 없을 거야.”

“왜?”

“보통 한 테이블에 단품으로 한 판 정도씩만 주문하거든. 배가 부르니까 많이는 못 먹겠고 한두 개 정도씩만 더 맛보려고. 그런데 그만한 양이 서비스로 나가니까 단품 주문은 들어오지 않지. 평소보다 조금만 더 만들면 돼. 겁먹지 마.”

강지한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강지영이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너 가만 보면 진짜 똑똑한 것 같아. 매력적인 청년이야.”

말미에 윙크를 찡긋 날리는 강지영이었다.

한편, 박춘식의 테이블에 서 있던 유지호는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 건지 바로 파악했다.

“어르신, 오늘 서비스로 만두 한 알 더 나온대요. 다섯 알이면 양이 적지는 않을 거예요. 만두가 제법 크거든요.”

“아, 그런가요?”

“네. 만두 주문하시겠어요?”

“그러도록 하지요. 고마워요. 사장님께도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박춘식의 얼굴에 그제야 미소가 피어났다.

유지호가 주문서를 주방으로 넘기며 강지한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사장님은 제 멘토십니다.”

“주문이나 잘 받아와, 인마.”

“하하, 네.”

강지한이 슬쩍 박춘식을 쳐다봤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박춘식이 중절모를 벗어 내려놓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강지한도 마주 고개 숙여 인사를 받아주었다.

박춘식의 머리 위에 뜬 여유도가 다시 세 칸으로 차올랐다.

* * *

“하아……. 그것 참.”

박춘식은 홀로 만두를 집어 먹으며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

강지한이 만두 한 알을 서비스로 준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건 춘천에 살면서 단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그런 맛이었다.

박춘식의 앞에 놓인 그릇에는 벌써 만두 네 알이 사라져 있었다.

처음 한 입을 물었을 때, 뇌리를 강타하는 충격적인 맛에 놀랐다. 정신을 차려보니 만두 한 알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에 이후로는 조금씩 그 맛을 음미하며 먹으려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압도적인 맛의 향연에 자기도 모르게 만두를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만두가 이렇게 맛있었나?”

마지막 남은 만두를 박춘식이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쫄깃하고 탄력 있는 얇은 피가 터지며 그 안에 있던 만두소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큼직하게 썬 갖가지 재료들이 품고 있던 즙을 모두 분출하며 혀 위를 노닐었다.

“으음. 맛있다, 맛있어.”

박춘식의 입에서는 계속 맛있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가 남은 만두까지 마저 먹고 나서 크게 한숨을 뱉었다.

“후우우우.”

천장으로 향한 박춘식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이어 그의 얼굴에 무언지 모를 깊은 회한이 드리워졌다.

‘내가 이런 만두를 만들었다면…… 지금보다 조금은 더 행복을 만질 수 있었을 것을.’

박춘식이 저도 모르게 두 딸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들을 낳아준 아빠를 남보다 더 차갑게 대하는 두 딸들은 이제 달에 한 번 전화를 하는 것조차 어려운 사이가 되었다.

이번에 지한 식당을 찾아내기 위해 전화를 한 것도 근 두 달 만이었다.

“흐음……. 잘 먹었습니다.”

강지한에게 들릴 듯 말 듯 인사를 하고 카운터로 향하는 박춘식의 시름이 깊어졌다.

* * *

이후로 박춘식은 매일같이 지한 식당을 찾았다.

벌써 그가 오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넘었다.

강지한은 나흘 전부터 타이틀을 행복 요리사에서 건강 요리사로 교체했다.

꼭 박춘식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손님들의 건강을 챙겨주는 것이 더 효율적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박춘식은 하루하루 전보다 몸에 조금 더 활력이 붙고 있었다.

그것이 아주 미세한 차이여서 본인은 확실히 인지 못하고 있었지만.

오늘도 박춘식은 점심에 식당을 찾아와 똑같이 만두 한 판을 먹고 돌아갔다.

브레이크 타임.

강지한은 식사를 하며 강지영과 분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정말 강지영을 독립시켜야 할 때가 되었다.

지난 수요일에는 함께 예경천을 찾아가 매물을 보고 오기도 했다.

하지만 적당한 자리가 없어서 일주일 뒤에 다시 찾아보기로 하고 돌아왔다.

“매물만 나오면 바로 나갈 준비해, 누나. 계약하자마자 간판이랑 메뉴판 주문하고 내부 공사 들어갈 거야.”

“오케이. 나 준비 완전히 됐어.”

강지영은 플레이팅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을 레벨5 이상의 수준으로 만들 수 있었다.

몇 가지 음식들은 레벨6까지 끌어올렸다.

게다가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는 강지한이 건네준 비법 육수와 특제 양념을 사용해, 레시피를 완벽하게 지켜서 레벨7로 만드는 게 가능했다.

비록 비법 육수와 특제 양념이 없었다면 잘해도 레벨5 수준에서 끝났겠지만, 그 정도도 나름 대단한 것이었다.

“사람들도 미리 구해놔야겠지?”

“응. 내가 알아서 공고 낼게. 사람도 직접 뽑을 테니까 누나는 신경 안 써도 돼.”

강지한에게는 정보의 눈이 있다.

때문에 직원을 뽑으려면 그가 나서는 게 가장 확실했다.

분점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브레이크 타임이 금방 지나갔다.

이제 저녁 장사를 시작할 때였다.

그런데 예소린에게서 전화가 왔다.

강지한이 반가운 마음으로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응, 소린 씨.”

-지한 씨, 이제 저녁 장사 곧 시작하지?

“응. 무슨 일이야?”

-지금 영화감독이라는 분이 찾아오셔서 전화 좀 부탁드린다기에 연락했어.

“영화감독이?”

-응.

예소린의 말을 듣고 눈만 깜빡깜빡하던 강지한이 이상해서 물었다.

“영화감독이 왜 거기 가서 나를 찾아?”

-자기랑 얘기를 하고 싶대.

“혹시 나한테 영화 출연 제의하시려는 거야?”

-아니, 자기를 원하는 게 아니야.

“그럼 무슨…… 설마?”

-응. 설탕이를 출연시켰으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통화해 볼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