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76화 (176/330)

# 176

Restaurant 175. 엎어진 진수성찬

‘뭐, 뭐야? 저게 왜 나와?’

이봉두는 화면에 비추어진 장소가 자신의 식당이라는 걸 대번에 알아챘다.

그래서 얼른 가장 큰 텔레비전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다른 텔레비전의 화면들도 전부 돌리려고 했다.

그런데 손님 한 명이 소리쳤다.

“사장님! 방금 여기 식당 나오는 것 같던데, 맞죠?”

“네? 아닙니다.”

“아닌데 왜 놀라서 채널을 돌려요? 빨리 다시 틀어봐요.”

“에이, 아니라니까요.”

“그럼 그냥 봐도 상관없겠네. 다시 틀어봐요, 좀.”

“그래요. 봅시다.”

“뭐 찔리는 거 있어요?”

손님들이 성화를 부리자 이봉두는 어쩔 수 없이 채널을 돌렸다.

화면엔 어느 식당의 홀에서 식사를 하는 검증단의 모습이 송출됐다.

종업원과 주변 손님들의 얼굴, 메뉴판은 모자이크가 되어 있었지만, 누가 봐도 진수성찬의 홀이었다.

“맞네, 진수성찬.”

“조용!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자.”

꿀꺽!

이봉두가 잔뜩 긴장해서 마른 침을 삼켰다.

잠행단은 앞에 나온 음식을 먹으며 낮게 의견을 교환했다.

-맛은 어때요?

-그럭저럭 무난하네요. 반찬들 가짓수가 상당히 많네요.

-그러게요. 가격 대비 구성이 알찬 것 같습니다.

잠행단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이봉두의 온 신경이 집중됐다.

‘제발 이상한 말만 하지 말아라.’

이동부가 이를 꽉 깨물고서 잔뜩 긴장했다.

잠행단들은 음식을 더 살피며 맛봤다. 그러다 한 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음식 재사용하는 것 같은데요. 보세요. 나물에 수분이 좀 날아가서 윗부분이 푸석푸석하죠?

-김치 양념도 말라 비틀어졌네. 이것도 재사용한 거예요.

그 말에 손님들이 기겁해서 자신들이 먹고 있던 반찬을 살폈다.

식사를 거의 다 한 손님들은 확인할 길이 없었으나, 아직 식사 중인 대부분의 손님들이 나물이며 김치의 상태를 확인했다.

과연 그 말처럼 몇몇 손님들의 상에 올라간 나물이며 김치의 상태가 영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저, 저, 저! 뭘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저런 헛소리를 하는 거야!”

이봉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재사용은 무슨! 우리 식당에서는 그런 거 절대 안 해요! 한 번 손님상에 나갔던 반찬은 그대로 돌아와도 전부 버려요!”

길길이 날뛰는 이봉두를 보며 손님 한 명이 소리를 질렀다.

“아 텔레비전 소리 잘 안 들리니까 조용히 좀 해봐요!”

“…….”

이봉두가 복창이 터지겠다는 얼굴로 어쩔 수 없이 입을 닫았다.

텔레비전에서는 잠행단이 이런저런 의견을 나누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장사는 상당히 잘되는 것 같은데 어째 사용한 재료들 상태가 영 이상하네요.

-사용된 재료들은 대부분 하품(下品) 같아요. 주방장이 손맛은 있나 봅니다. 간을 잘 잡아서 재료들 상태를 감췄네요. 문제는 그 간을 전부 화학조미료로 맞췄다는 것이죠.

-원재료들을 하품을 사용해서 재료 단가를 낮춘 거죠. 이렇게 차려진 게 많아도 이문은 상당히 남을 겁니다.

-그런데도 반찬을 재사용하네요. 욕심이…….

-이런 마인드로 재료들 관리는 제대로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거북해서 더 못 먹겠네요.

-저두요.

-주방 한 번 볼 수 있나 물어보죠.

잠행단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주방 안을 볼 수 있느냐 물으니 사장인 듯 보이는 이의 변조된 음성이 들여왔다.

-주방은 보여드릴 수 없습니다. 죄송해요.

거기까지 본 진수성찬의 손님들이 하나둘 수저를 내려놓았다.

이에 이봉두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여, 여러분! 다 헛소립니다! 어디 증거도 없이 저런 걸 방송에 내보냅니까? 바른 먹거리 프로그램 아시잖아요? 자극적인 내용 마구 넣어서 시청률 올리려고 하는 거! 저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이봉두가 목청이 터져라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손님들의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그때, 브라운관에서 결정타가 터졌다.

조설희가 알바생으로 위장해서 잠입취재한 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

그녀의 안경에 부착된 소형카메라가 촬영한 주방의 영상이 보였다.

이런저런 식재료들이 비위생적으로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었고, 주방 곳곳에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아 찌든 때가 가득했다.

그 경악스러운 광경 위에 장한결 피디의 나레이션이 깔렸다.

-잠행단이 궁금해했던 주방의 상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주기적으로 청소를 하지 않는지 구석구석 찌든 때가 가득합니다. 식재료들은 주방 바닥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습니다. 주방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누구도 위생모를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치가 떨리는 광경입니다.

이봉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가 두 손을 내저으며 사실을 부정했다.

“저거 우리 주방 아닙니다! 다른 식당 주방 찍어서 짜깁기한 거라고요!”

“에이, 아무리 방송이 막나가도 그러겠어요?”

“응? 저기 잔반 남아서 들어오는 거 보니까 이 식당 주방 맞구만!”

손님이 남긴 잔반들이 주방으로 들어오는 장면이 나왔다.

그런데 주방장은 잔반들을 버리지 않고 재사용하고 있었다.

이를 잠입 취재하던 조설희가 주방장, 김미화에게 물었다.

-주방장님…… 그거 재사용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자 음성변조된 김미화의 대답이 돌아왔다.

-뭐? 이거 손님들이 거의 건드리지도 않은 건데 왜? 깨끗하기만 한데.

-아니 그래도 한 번 나간 음식은 재사용하지 않는 게 맞지 않아요?

-XX 씨, 집이 잘사나 봐?

-네?

-우리 때는 하나같이 어려웠어. 이런 음식 남은 거 함부로 버리면 다 낭비야, 낭비. 어디 땅을 파봐. 쌀 한 톨 나오나. 하여튼 요즘 사람들은 배가 불러가지고서는……. 쯧쯧.

이 장면을 보고 있던 손님 한 명이 벌떡 일어나서는 이봉두를 노려보고 카운터로 향했다.

그가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던지듯 내밀고는 일행들과 밖으로 나갔다.

“사장님, 저게 뭐예요? 지금 우리가 뭘 본 건데요?”

“여태 저런 마인드로 장사하고 계셨던 거예요?”

“나 이 집 단골에다가 주변 사람들한테까지 그렇게 추천하고 다녔는데, 이제 그 사람들 얼굴을 어떻게 봐요?”

방송을 보고 흥분한 손님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당황한 이봉두가 이를 어찌 수습해야 할지 몰라 식은땀만 뻘뻘 흘렸다.

“이런 염병할! 카악 퉤!”

흥분한 손님 한 명이 자신이 먹던 밥그릇에다가 침을 탁 뱉고 일어섰다.

“나! 오늘 먹은 거 계산 못 합니다. 고소할 테면 고소해요!”

“내가 이런 썩어빠진 정신으로 장사하는 인간들 음식 먹고 돈을 내왔다니.”

“사장님, 진짜 그따위로 장사 하는 거 아닙니다.”

“이 사장! 나한테도 여태 이런 니미럴 놈의 음식 내줬던 거야? 내가 당신 고소할 줄 알아! 에이, 씨발!”

손님들이 하나둘 퇴장하는 와중에 개인적 친분이 있던 근처 회사 사장 한 명이 욕까지 뱉었다.

그는 당장 이봉두의 얼굴을 한 대 갈길 기세로 다가가서 한참을 노려보다가 식당을 나갔다.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식당 내부는 어느새 텅 비어 버렸다.

“커……. ……허윽!”

이봉두가 뒷목을 잡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혈압이 오르고 다리가 부들거려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홀 직원들은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눈치만 살폈다.

그때, 주방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김미화도 함께였다.

“사장님, 이게 다 뭔일이래요?”

쓰러진 이봉두에게 다가와 묻는 김미화.

그에 이봉두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미화 씨! 대체 주방에서 뭔 개짓거리를 하는 거야!”

“네, 네? 개짓거리라니요?”

“당신이 주방 관리를 개판으로 하는 바람에 이 사달이 터진 거 아니야!”

이봉두의 말에 김미화는 기가 탁 막혔다.

언제는 김미화에게 잘한다며 칭찬만 했던 그였다.

음식을 재사용하는 것도 이봉두는 먼저 지시했었다.

그런데 그 책임을 모두 김미화에게 전가하고 있었다.

김미화가 아랫입술을 꽉 물고 바들바들 떨다가 앞치마를 확 벗어던졌다.

한데 공교롭게도 그 앞치마가 이봉두의 얼굴을 때렸다.

“지금 뭐하는 거야!”

“뭐하는 거긴! 때려치우겠다는 거지! 진수성찬이 지금 여기까지 온 게 누구 손맛 덕인데! 금수만도 못한 인간이 은혜를 원수로 갚아? 어디 나 없이 잘 돌아가나 봅시다!”

“저, 저저, 망할! 거기 안 서!”

“닥쳐, 이 개 같은 인간아!”

김미화는 끝까지 지지 않고 욕을 싸지른 뒤 핸드백을 챙겨 성난 걸음으로 식당을 나섰다.

“아으윽!”

화를 감당하지 못한 이봉두가 다시 뒷목을 잡았다.

다른 직원들은 감히 입도 뻥긋 못하고 숨소리까지 조심해 가며 그를 살폈다.

홀 안에는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장한결 피디의 음성만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잔반을 재사용하고, 위생관리는 엉망에다가 직원에게 인격비하에 가까운 막말까지 서슴지 않는 한식당. 정말 경악스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닥쳐!”

이봉두가 근처에 있던 리모콘을 텔레비전에 냅다 집어 던졌다.

쾅!

리모콘이 액정에 부딪히며 박살났다.

액정은 쩌저적 금이 갔다.

매끄럽던 화면이 이리저리 깨져서 엉망이 됐다.

“이런 씨발……. 바른 먹거리 이 개새끼들. 내가 너희 반드시 콩밥 먹인다.”

바른 먹거리를 믿고 있다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

한순간에 모든 걸 다 잃어버린 이봉두가 눈물까지 흘리며 씩씩댔다.

그런 이봉두의 귀로 장한결의 음성이 계속 흘러들어왔다.

-이런 와중에 우리는 춘천에서 바른 식당 후보에 올릴 만한 곳을 발견했습니다.

* * *

바른 먹거리가 방송된 다음 날.

지한 식당의 이름이 인터넷에 연신 오르내렸다.

덕분에 지한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 평소보다 늘어났다.

강지한은 갑작스런 상황에 어리둥절했다.

“왜 이렇게 손님이 많아졌지?”

주방에서 주문을 해결해 나가며 강지한이 혼잣말을 흘렸다.

그러자 강지영이 답을 던져 주었다.

“바른 먹거리 때문이잖아.”

“바른 먹거리?”

“어제 쉬면서 안 봤어?”

“응. 별로 관심이 없어서.”

“난 봤는데.”

“거기 우리 식당 나왔어? 방송에 내보내지 말라고 했는데?”

강지한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그러자 강지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직접적으로 식당 상호나 위치 같은 게 나온 건 아니야. 잠행단들이 우리 식당 음식 극찬하는 부분이랑 주방 살펴보는 장면이 나왔어. 아! 그리고 피디가 바른 식당 후보로 방송을 하고 싶다고 설득하는 장면이랑, 네가 한사코 거부하는 장면도 나왔다. 물론 모자이크랑 음성 변조 다 해서.”

“……그 정도 나갔으면 우리 식당인 줄 다 알겠네.”

“그럼. 다 알지. 요새 시청자들이 얼마나 똑똑한데. 그 바람에 이 난리가 벌어진 거 아니겠니?”

“진짜 방송국 놈들 사람 말 너무 안 들어.”

“좋게 생각해. 네 덕분에 장한결 피디도 반성 좀 한 것 같더만.”

“그 피디가? 왜?”

“궁금하면 집에 가서 다시 보기 봐봐.”

* * *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강지한이 어제 방송한 바른 먹거리를 다시보기로 시청했다.

바른 먹거리는 전국의 비양심, 비위생적인 한식당을 정신없이 비난하기 바빴다.

그러다 드디어 지한 식당에 관한 장면이 송출됐다.

강지영의 말대로 잠행단과 관련된 부분이 흘러나왔고, 다음으로 장한결과 조설희가 강지한을 설득하는 부분이 나왔다.

-방송이 되면 우리 식당은 분명히 더 잘되겠죠. 바른 식당이라는 상장은 프로그램을 우호적으로 보는 시청자들에게 커다란 신뢰를 주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식당들은 전부 죽지 않을까요?

-그건 우리가 의도하는 것이라기보단…….

-피디님, 저는 다른 식당들이 죽어나가는 무덤 위에 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지 않습니다.

방송을 보던 강지한의 얼굴이 붉어졌다.

“저렇게 낯간지러운 말을 했었어, 내가?”

장면은 전환되어 스튜디오가 나왔다.

장한결은 데스크 앞에 서서 잠시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

-이번 일로 우리 바른 먹거리 제작진들도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껏 대한민국의 모든 식당들이 양심적이고, 위생적인 곳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는 초반 취지와 달리 시청률에 눈이 멀어 자극적인 사실들을 내보내기에 바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내부적으로 많은 회의를 했고, 앞으로는 MSG가 잔뜩 뿌려진 자극적인 내용보다 진정으로 바른 식당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담백한 방송을 이어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한결 피디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것으로 프로그램은 마무리되었다.

방송을 본 강지한이 피식 웃었다.

“참 사람 민망하게 만드는 방송이네. 아 그나저나…… 아까 엄청나게 까이던 한식당…… 진수성찬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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