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75화 (175/330)

# 175

Restaurant 174. 누워서 침 뱉기

생각지도 못했던 강지한의 말에 조설희가 벙쪘다.

“……네? 싫으시다고요?”

“네.”

“어, 어째서 그러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당황한 조설희가 이유를 물어볼 때 유지호가 새로운 주문을 주방으로 넘겼다.

“4번 테이블 네 분 주문 들어왔습니다!”

주문서를 넘겨받은 강지한이 그것을 허공에서 흔들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바빠서요. 대답해 드릴 여유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강지한이 워낙 단호하게 말을 하니 조설희는 더 말을 붙이지 못하고 식당을 나왔다.

하지만 방송국 관계자들은 끈질기기로는 어디에서 지지 않는다.

일단 후퇴했으나 브레이크 타임에 다시 찾아볼 요량으로 봉고차에 올랐다.

조설희는 장한결 피디에서 상황보고를 했다.

“그래. 강경하시네. 브레이크 타임에 다시 들어가 보겠다고?”

“네.”

“나랑 같이 가자.”

“네네, 피디님이 같이 가주시면 일이 한결 쉬울 거예요.”

장한결 피디는 인지도가 제법 높은 사람이다.

때문에 작가 혼자 해결되지 않던 일이 장한결 피디가 동행하면 의외로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잠행단 여러분께서는 이 차 타고 돌아들 가시죠. 우리는 남아서 취재 허락받고 따로 행동하겠습니다.”

“그래요. 곧 다시 봐요, 장 피디.”

“수고해요.”

잠행단원들과 인사를 나눈 장한결이 조설희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 * *

브레이크 타임.

손님들이 모두 빠져나간 뒤 홀 알바가 나와 안내판을 open에서 close로 바꾸는데 장한결과 조설희가 다가왔다.

“실례지만 사장님 좀 뵐 수 있을까요?”

알바는 안으로 들어와 강지한에게 사정을 말했다.

‘이런 사람들은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계속 들러붙겠지.’

강지한은 대답을 기다리는 직원에게 말했다.

“들어오시라고 해.”

직원이 두 사람을 식당 안으로 들였다.

장한결이 강지한을 보자마자 만면 가득 미소 지으며 악수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INTV 바른 먹거리 메인 피디 장한결입니다.”

“강지한이라고 합니다.”

“배틀 셰프 우승자를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하, 실은 제가 긴히 드릴 말씀이…….”

“식사하셨나요?”

강지한이 장한결의 말을 끊었다.

“네? 아니요. 아직…….”

“우선 식사부터 하고 말씀 나누시죠.”

평소의 장한결이었다면 식사를 유연하게 거절하고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대화를 이끌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럴까요?”

봉고차에서 들었던 잠행단 네 사람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던 까닭이다.

얼마나 맛있었으면 그토록 극찬을 했을까?

곁에 있던 조설희 역시 잠행단의 얘기를 들으며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던 터라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실례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빈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주방 사람들은 평소에 준비하던 것에서 2인분을 추가로 만들었다.

강지한의 곁에서 반찬을 플레이팅하던 강지영이 조용히 물었다.

“바른 먹거리면 선정적인 방송 내보내서 멀쩡한 소상인들 다 죽여 버리는 그 프로잖아.”

“맞아요, 언니.”

묻기는 강지한에게 물었는데 대답은 한지민에게서 들려왔다.

“나 그거 처음 몇 편 보고 좀 그래서 안 봤는데. 근데 뭐하러 식사까지 대접을 해줘?”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묻는 강지영이었다.

강지한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우선 뭘 줘야 제가 원하는 것도 얻죠.”

* * *

“이건 정말…….”

“천국에 온 것 같았어요.”

식사를 끝낸 후 장한결과 조설희가 한 말이었다.

그들의 앞에 놓인 상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사실 장한결은 체면을 무시하고서라도 김치찌개 한 그릇만 더 달라 하고 싶었다.

“식사 맛있게 하셨나요?”

그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마친 강지한이 물었다.

“네. 정말 맛있었습니다. 제가 먹어본 한정식 중에서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어요.”

“저도요.”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이제 얘기를 해볼까요. 우리 식당을 바른 식당 후보로 올리고 싶으시다고요?”

“음식을 먹고 나니 더더욱 그런 마음이 커지네요. 후보 검증을 위해 식당 오픈부터 문을 닫을 때까지 매장이 운영되는 모든 과정을 카메라에 세세히 담고 싶은데요. 허락을 해주시겠습니까?”

장한결은 강지한이 수락할 것이라 믿었다.

흘러가는 분위기가 괜찮게 느껴졌기 때문.

하지만 그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아니요. 제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장한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렇게까지 방송을 거부하시는 겁니까?”

“굳이 방송을 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면 답이 될까요?”

“사장님, 강 사장님 같은 분께서 운영하시는 이런 식당들이 방송을 타야 대한민국의 요식업체들이 두루 성장할 수 있는 겁니다.”

그 말에 강지한이 피식 웃었다.

“바른 먹거리 파일이 성장하는 건 아니고요?”

상당히 공격적인 말이었다.

조설희는 당황했지만 노련한 장한결은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강 사장님께서 뭔가를 단단히 오해하고 계신 것 같네요. 세간에 우리 프로그램이 어떤 식으로 평가되고 있는지 잘 압니다. 저도 눈과 귀가 있으니까요.”

바른 식당을 찾아내는 것보다 흠이 있는 식당의 문제점을 공론화시켜 자극적인 내용들로 시청률을 끌어올리려 한다는 것.

그것이 프로그램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평가였다.

그러면서도 바른 먹거리라는 프로의 정당성을 믿는 사람들 역시 수두룩했기에 이 프로그램이 여태 유지될 수 있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내보냅니다. 요식업계의 어두운 부분을 도외시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누군가는 고발하고 짚어내야 썩은 부분을 도려낼 수 있는 법이니까요.”

장한결의 말을 듣고 있던 전덕진이 콧방귀를 뀌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참나. 저 인간 때문에 괜히 덤탱이 써서 나자빠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데.”

바른 먹거리로 인해 괜한 피해를 입은 이들의 고발성 글이 하루에도 몇 개씩 올라오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 프로그램이 종영되지 않고 유지된다는 건 역시 높은 시청률 때문이었다.

강지한은 장한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피디님의 말씀대로 바른 먹거리가 팩트에 입각해서 과장되거나 잘못된 사실 없이 요식업체들의 문제점들을 있는 그대로 내보내고 있다고 하죠. 그래도 싫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방송이 되면 우리 식당은 분명히 더 잘되겠죠. 바른 식당이라는 상장은 프로그램을 우호적으로 보는 시청자들에게 커다란 신뢰를 주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식당들은 전부 죽지 않을까요?”

“그건 우리가 의도하는 것이라기보단…….”

“피디님, 저는 다른 식당들이 죽어나가는 무덤 위에 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지 않습니다.”

“…….”

급기야 장한결의 말문이 막혔다.

그는 가지각색의 사람들을 수없이 많이 상대해 왔다.

그래서 어느 정도 사람 보는 눈이 있었다.

강지한은 절대로 스스로의 신념을 꺾을 타입이 아니었다.

무슨 말을 해도 먹히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서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그에게는 어떻게든 프로그램을 흥행시켜야 한다는 책임이 있었다.

벌써 2주 동안 바른 식당을 찾지 못했다.

시기상으로 이번만큼은 바른 식당을 발견해야 했다.

“그래도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건 우리나라 요식업계를 위한 일입니다. 제가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

장한결이 고개를 숙였다.

자신보다 나이도 훨씬 어린 강지한에게.

그에 강지한 역시 마주 고개를 숙여 보이고 말했다.

“몇 번을 부탁하셔도 제 결정은 변함없을 겁니다.”

결국 장한결은 일단 후퇴하기로 했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그가 몸을 일으켜 카운터로 다가가 지갑을 열었다. 그러자 강지한이 이를 만류했다.

“계산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대접해 드린 겁니다.”

“이렇게 훌륭한 음식을 아무런 대가 없이 먹는 건 저 스스로 용납이 안 됩니다.”

그 말에 강지한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장한결은 자신이 끈적끈적한 거미줄에 걸렸음을 직감했다.

‘아뿔싸.’

강지한은 장한결에게 말했다.

“꼭 보답을 하시겠다면 제 부탁을 들어주세요. 우리 식당, 방송에 내보내지 말아주세요.”

“…….”

“훌륭한 음식을 아무런 대가 없이 먹지 않겠다고 하셨으니 제 부탁, 들어주시리라 믿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강지한이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다.

장한결은 참담한 얼굴로 그런 강지한을 바라보다가 마주 인사를 건네고서 조설희와 홀을 나섰다.

식당을 등지고 걸어가는 장한결의 어깨가 무거웠다.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패배감이었다.

* * *

다음날, 8월 24일 금요일.

지한 식당의 영업이 다 끝날 때 까지 장한결은 찾아오지 않았다.

어제의 일로 완전히 포기를 한 모양이었다.

* * *

한 주가 지났다.

8월 29일 수요일.

강지한은 마지막으로 한림대학교 평생교육관에 들렀다.

푸드스타일리스트 자격증을 수료받는 한편 포트럭 파티(potluck party)를 위해서였다.

포트럭 파티란 주최자가 간단한 메인메뉴를 준비하면 참여하는 사람들이 자신 있는 요리를 가져와 벌이는 파티였다.

물론 포트럭 파티의 주최자는 구자영 교수였다.

회원들이 각자 가져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종강의 아쉬움을 달랬다.

포트럭 파티가 끝나고 나니 벌써 여덟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애견 카페에 맡겨두었던 설탕이를 데리고 집으로 귀가한 강지한은 버릇처럼 텔레비전을 틀었다.

그런데 마침 텔레비전에서 바른 먹거리 본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맞다. 저거 본방이 수요일이었지.”

강지한이 소파에 앉아 바로 채널을 돌렸다.

바른 먹거리는 보고 있자면 속이 터지니 안 보는 게 상책이었다.

* * *

진수성찬의 사장 이봉두는 매장 내의 모든 텔레비전을 INTV 채널에 맞춰두고 볼륨을 높이 키웠다.

지한 식당이 들어서고 난 뒤 전보다 손님이 많이 떨어져 나간 진수성찬이라고는 하나 점심, 저녁 피크 타임엔 여전히 80퍼센트 이상이나 되는 테이블이 들어찼다.

이봉두는 오늘 바른 먹거리에서 지한 식당을 저격해 주기를 바랐다.

신고를 그만큼이나 했으니 필시 한 번은 다녀갔을 것이라 믿었다.

브라운관에서는 스튜디오의 모습이 송출되고 있었다.

오늘의 발제는 ‘대한민국 한정식당, 이대로 괜찮은가?’였다.

데스크 앞에 선 장한결 피디가 무거운 얼굴로 멘트를 뱉는 중이었다.

“……그래서 저희는 전국에 있는 한정식당을 대상으로 바른 식당 찾기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바른 식당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장한결 피디의 말이 끝나자 화면이 바뀌었다.

잠행단이 한식당을 잠입취재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들은 한식당에 들어가 몰래 취재를 하며 맛평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안 좋은 얘기들로만 가득할 뿐, 좋은 말은 나오지 않았다.

잠행단은 음식을 만드는 식당의 맛을 평가하고 주방을 슬쩍 들여다보기도 했다.

텔레비전의 소리가 워낙 컸기 때문일까.

식사를 하는 소님들의 시선이 대부분 브라운관으로 향했다.

이봉두는 빨리 지한 식당의 모습이 나오기를 바라며 입꼬리를 씰룩였다.

바른 먹거리 프로는 잠입취재하는 곳은 상호와 주인장의 얼굴을 모자이크하고 음성도 변조시키지만 단골들은 거기가 어디인지 대번에 알아낸다.

‘왜 이렇게 안 나와? 잠입취재 안 했나?’

이봉두가 애를 태우고 있을 때였다.

화면에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홀이 나왔다.

순간 이봉두의 턱이 빠질 것처럼 쩍 벌어졌다.

거기에 나온 건 이봉두가 운영하는 진수성찬의 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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