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
Restaurant 173. 환장할 맛
바른 먹거리에서는 바르지 못한 식당 신고나, 바른 식당 제보가 들어오면 꼭 잠행단을 보낸다.
그래서 잠행단이 식당의 음식을 맛본 뒤 바르지 못한 식당이라 판단될 경우 알바나 손님의 형태로 위장취재를 보낸다.
바른 식당이라 판단되면 제작진이 정체를 밝히고 직접 인터뷰를 시도한다.
이러한 판단의 기준을 잠행단에게 맡기는 이유는 그들이 상당한 미각을 가진 요리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지한 식당을 찾은 네 명의 잠행단은 남자 둘, 여자 둘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은 테이블에 놓인 상차림을 보며 감탄했다.
“세상에. 정말 9천 원짜리 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네요.”
“그러게요. 플레이팅 솜씨가 어마어마한데요?”
“명색이 배틀 셰프 우승자인데 이 정도는 해야죠.”
“그럼 맛을 볼까요?”
잠행단들이 시식을 시작했다.
그들은 우선 밥부터 한술 떠 맛봤다.
“고슬고슬하게 아주 잘 지은 밥이네요.”
“고슬밥이라는 것이 자칫 물 조절을 잘못하면 알갱이가 필요 이상으로 단단해지거나 찰기가 너무 없어 거부감이 드는 경우가 많은데 아주 적당해요.”
“쌀도 좋은 것을 사용했어요. 씹으면 씹을수록 은은한 단맛과 고소함이 진해지는군요.”
“밥은 전부 합격점을 준 모양인데 반찬은 어떨까요?”
잠행단들은 반찬을 하나하나 신중히 맛보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반찬에 쓰인 재료들을 각 지역 특산물로 공수해 온 것 같네요.”
“그렇네요. 반찬의 가짓수도 많고.”
“그런데 플레이팅을 정성들여 해놓아서 더 대단해 보이는 거지, 사실 9천 원에 이 정도 가짓수로 반찬 내오는 한정식 집들 많거든요.”
“특산물로 공수해 온 재료들도 거래처만 잘 통하면 싸게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이 많죠. 장사가 잘되어서 대량으로 구입하면 더더욱 그렇고요. 장기로 확정 계약을 해버릴 경우 거기서 조금 더 디스카운트되기도 하지요.”
“그리고 보시면, 각각의 찬이 소박하게 담겨 있어요. 대부분 두세 입 거리예요. 게다가 맛의 밸런스가 완벽해서 나온 반찬과 국에 밥 한 공기를 먹으면 딱 좋을 것 같은 느낌이네요.”
“이러면 한 상에 9천 원인 것이 납득이 가지요. 손님들이 플레이팅에 속는 겁니다. 화려한 비주얼은 음식을 어쩐지 고급스러워 보이게 만들거든요. 그 때문에 다른 한정식집에서 충분히 접할 수 있는 반찬의 가짓수임에도 참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반찬 하나하나의 완성된 맛 또한 제대로 된 요리를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더더욱 그리 느껴집니다.”
“셰프님이 아주 머리를 잘 썼어요.”
“하지만 맛이 확실하니 편법으로 느껴지지는 않는군요.”
잠행단들은 쉴 새 없이 대화를 주고받으면서도 수저를 멈추지 않았다.
반찬을 전부 맛본 그들이 이번에는 만두를 한입 베어 먹었다.
그러고는 일제히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 만두는 이런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닌데요.”
“만두 전문점 중에서도 잘한다고 소문난 곳을 가야 겨우 맛볼 수 있는 정도인데…….”
“어쩐지 한돈선 대가의 손맛이 느껴지는 만두군요.”
“아, 그래요. 아띠에서 먹어봤던 만두의 맛이 꼭 이것과 비슷했어요.”
“배틀 셰프를 보면 강지한 씨가 한돈선 대가의 만두를 먹어보고 그 맛을 흉내 낸 것 같더군요.”
“허어. 음식을 먹고 그 레시피를 알아낸다는 것은 보통 경지가 아니라는 말인데.”
만두 맛에 감탄한 잠행단들이 마지막으로 찌개를 맛봤다.
그들은 김치찌개, 된장찌개, 순두부찌개, 비지찌개를 주문했다.
“아, 맛있습니다. 순두부찌개의 정석이라 할 수 있겠어요. 사용한 순두부의 상태도 아주 좋고, 국물이 깊으면서 진해요. 인공조미료의 맛은 느껴지지 않네요.”
“비지찌개도 완벽에 가깝습니다.”
두 잠행단들이 떠들 때 다른 잠행단 두 명은 한동안 충격으로 굳어 있었다.
그들이 시킨 건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순두부찌개와 비지찌개는 레벨6이지만,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는 레벨7이었다.
“맙소사.”
“아니 어떻게…….”
두 사람이 충격에서 겨우 벗어나 다시 국을 음미했다.
한 숟갈, 두 숟갈, 세 숟갈, 네 숟갈.
그들은 말없이 계속해서 국물을 떠먹었다.
다른 이들이 그런 두 사람을 놀라서 지켜봤다.
결국 두 사람의 숟가락은 국물의 반이 사라지고 나서야 멈췄다.
“아니……. 왜 말도 없이 그리 급하게 드셨어요?”
“드셔보시면 압니다.”
그 말에 잠행단 사람들은 서로의 국을 음미했다.
“허허. 이건 참……. 순두부찌개 주문한 게 후회되는 맛이네요. 된장이나 김치를 선택할 것을.”
“저도 비지찌개 말고 김치찌개 시킬 걸 그랬습니다.”
“이거 맛의 차이가 너무 압도적인데 다른 찌개들이 잘 팔릴까요?”
“은근히 김치찌개랑 된장찌개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서 개인 취향에 따라 고루 팔릴 것 같네요.”
모든 음식을 맛 본 잠행단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반찬 한 번에 밥 한 술, 국 한 번에 밥 한 술, 그렇게 먹다가 밥이 반 공기 정도 남았을 때 남은 반찬들을 모두 밥 대접에 넣고 취향대로 고추장이나 된장,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첨가해 슥슥 비볐다.
맛있게 비벼진 비빔밥을 남은 찌개와 함께 먹으니 그 맛이 끝내줬다.
그렇게 어느 정도 먹다가 이번에는 몇 점 안 남은 제육볶음과 소불고기까지 넣고 한 번 더 비볐다.
그러자 비빔밥의 맛이 확 변하며 또 다른 재미를 안겨주었다.
제육볶음의 양념이 스며든 비빔밥은 더 매콤달콤해졌고, 소불고기의 양념이 스며든 비빔밥은 달콤짭잘해졌다.
큼직큼직한 소고기와 돼지고기 건더기도 식감에 재미를 더해주었다.
“어허, 잘 먹었습니다.”
“정말 맛있게 먹었네요.”
“간만에 만족스러운 한 상이었습니다.”
“저도요.”
잠행단들의 얼굴에는 깊은 만족감이 어렸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놓인 상은 모든 그릇이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다들 어떠셨습니까? 개인적으로 저는 인공 조미료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게 좋았고 공수한 재료들의 질이나 신선도도 굉장했어요. 아무리 질 좋은 재료도 관리를 잘 못하면 요리를 하고 난 뒤 신선함이 떨어지게 마련인데, 그렇지가 않았어요.”
“관리를 잘하는 데다 회전률이 빠르니 재료들이 계속 싱싱한 상태로 나갈 수 있는 것이죠.”
“간도 아주 잘 잡았고, 각 요리마다 조리법과 들어가는 양념들을 달리해서 물리지가 않더군요.”
“그리고 이런 한정식당에서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음식들이 전부 싱겁거나 전부 짭짤한 경우지요. 일괄적으로 싱거우면 너무 심심하고, 전부 짭짤하면 혀가 쉬어갈 곳이 없어요. 그런데 그 밸런스를 완벽하게 잡아냈다 이겁니다. 하하.”
“한데 이런 곳을 누가 신고한 것일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상에 내오는 양도 일 인분으로 적당한 데다 맛까지 있으니 거의 남길 음식이 없고, 잔반도 생기지 않을 텐데요.”
잠행단들이 주변의 테이블을 살폈다.
다른 손님들도 대부분 남기는 음식 없이 전부 먹어치우고 있었다.
“아무래도 조금 이상한 냄새가 나지 않나요?”
“음……. 신고글이 한날한시에 올라왔다고는 하더군요. 그 때문에 작가분들도 살짝 의심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쟁업체에서 고의로 신고를 했다?”
“그렇지요.”
잠행단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다가갔다.
밀려들어오는 주문을 바쁘게 처리하고 잠시 소강상태에 있던 강지한이 그들을 바라봤다.
“뭐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신가요?”
강지한의 물음에 잠행단 중 멋진 수트를 걸친 풍채 좋은 중년 신사가 입을 열었다.
“아, 셰프님이시군요. 다름이 아니라 우리도 요식업계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인데 음식을 워낙 맛있게 먹어서 실례가 안 된다면 몇 가지 궁금한 걸 여쭙고자 하는데요. 하하, 괜찮겠습니까?”
“새로운 주문 들어오기 전까지는 답변해 드릴게요.”
강지한의 말속에서 무엇보다 손님을 우선시하는 마음이 엿보였다.
그 대답이 잠행단들은 흡족했다.
“감사합니다. 우선 가장 궁금했던 게 인공 조미료를 안 쓰시는 것 같던데요.”
“네, 저희 집은 천연조미료만 사용합니다.”
“찌개들에 전부 직접 만든 육수를 사용하시지요?”
“맞습니다.”
“한 번 구경을 좀 해도 될까요?”
“잠깐이라면 괜찮습니다.”
강지한의 허락에 잠행단들이 부엌으로 들어가 여기저기를 살폈다.
강지한은 그들에게 스스로 만든 천연조미료를 보여주고 열심히 우린 육수와 특제 양념들까지 공개했다.
그 모든 과정들이 두 잠행단원이 착용한 카메라 안경에 고스란히 담겼다.
잠행단원은 강지한의 허락으로 비법 육수와 양념까지 맛을 보고 크게 감탄했다.
한데 감탄할 일은 또 있었다.
“주방의 위생상태도 아주 좋네요.”
“위생에 대해서는 각별히 생각하고 있어요. 저랑 제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만듭니다.”
지한 식당의 주방은 구석구석이 깔끔하고 깨끗했다.
어느 한 군데 지저분한 꼴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때 새로운 주문이 들어왔고 잠행단 네 사람은 눈치껏 주방에서 나와주었다.
“정말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맛있게 드셔주셔서 감사합니다.”
잠행단과 강지한이 인사를 주고받았다.
* * *
지한 식당에서 조금 떨어진 도로 근처에는 봉고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지한 식당을 나선 잠행단 네 명은 그 봉고차에 올라탔다.
그러자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장한결 피디가 그들에게 물었다.
“어떻던가요?”
잠행단 중 한 사람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허위신고더군요.”
“허위신고요?”
“네. 무엇하나 흠잡을 데가 없이 완벽한 식당이었습니다.”
“맞아요. 맛, 청결, 천연조미료, 손님을 생각하는 마음, 재료 관리, 가격까지.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었죠. 제가 이 프로그램 같이하면서 이렇게 완벽한 식당은 처음 접하는 것 같아요.”
“난 아직도 그 반찬들 하나하나의 맛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거 있죠. 특히 만두는 정말 예술이었어요. 한입 깨물면 안에서 육즙이 쭉 흘러나오면서 확 퍼지는 고소한 풍미가 정말…….”
“김치찌개는 어떻고요. 진하고 깊은 맛에 고기와 묵은 김치의 환상적인 조합이 예술이었죠.”
“된장찌개도 끝내줬어요. 몇 시간을 아주 푹 끓여서 모든 재료의 깊은 맛이 찌개 국물에 가득 담겨 있었어요. 밥 비벼 드실 때 된장찌개랑 같이 안 먹어봤죠? 비빔밥엔 자고로 된장찌개 아닙니까. 그런데 지한 식당의 어마어마한 된장찌개는 비빔밥의 맛을 훨씬 더 살려줬습니다. 하하.”
“총체적으로 평가해 보자면 정말 환장할 맛이었어요. 호호호.”
꿀꺽!
잠행단들의 말을 듣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가는 장한결 피디였다.
‘얼마나 맛있으면 저 깐깐한 양반들이 이렇게 극찬을 해?’
장한결은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지한 식당에 대한 기대감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다녀온 바로 거기는 신고가 아니라 바른 식당으로 제보가 들어가야 맞겠던데.”
“맞아요. 얼마 전에 갔던 그 진수성찬인가 하는 곳은 정말 엉망이었잖아요.”
“거기는 음식 가짓수로 눈만 현혹시키는 곳이었죠. 간은 맞는데 인공조미료만 잔뜩 들어간 맛이었어요.”
“반찬도 듬뿍듬뿍 나오긴 하는데 재사용하는 게 뻔히 보이더라고요. 우리 상에 나왔던 김치 양념 살짝 말라비틀어진 거 기억하시죠? 아휴, 끔찍해.”
잠행단들의 말을 듣고 난 장한결 피디가 조수석에 있던 조설희 작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설희는 알겠다는 제스쳐를 취하고서 봉고차를 떠났다.
* * *
딸랑-
조설희가 줄을 서지 않고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홀 부매니저 설인아가 다가와 그녀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손님. 식당 이용하시려면 대기 줄에 서주세요. 여긴 번호표를 뽑거나 하지 않고 우리 직원들이 직접 나가서 손님 상황 파악하거든요.”
“아, 그게 아니라 저 INTV 방송국에서 나왔는데요. 여기 사장님에게 조금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에 설인아가 강지한을 슬쩍 바라봤다.
강지한은 그런 설인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알겠습니다.”
설인아가 비켜서자 조설희가 주방 앞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저 INTV 바른 먹거리라는 프로그램에서 나온 조설희 작가라고 해요.”
“네,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지한 식당을 이번에 방송될 한정식당 특집편에서 바른 식당 후보로 올리고 싶어서요.”
“우리 식당을요?”
“네. 방금 전 식당에서 식사하고 이것저것 물어보신 손님 네 분 기억나시죠?”
“기억납니다.”
“그분들이 실은 잠행단분들이시거든요.”
“아……. 네.”
“그래서 바른 식당 후보로 올려서 심층 검증을 좀 해보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조설희는 강지한이 무조건 오케이를 할 것이라 생각했다.
바른 먹거리에 바른 식당으로 소개된 식당치고 잘되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
요식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을 터.
한데 강지한의 입에서는 기대와 다른 대답이 튀어나왔다.
“죄송한데, 저는 그 방송에 우리 식당이 나가는 게 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