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73화 (173/330)

# 173

Restaurant 172. 잠행단

“사, 사장님!”

“…….”

홀에 들어선 강지한을 본 용성우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그의 옆에서는 조금 전까지 몸을 바짝 밀착시키고 있던 이리나가 고개를 푹 숙인 채 한 걸음 떨어져 있었다.

강지한은 한동안 아무 말도 못했다.

조금 전 그가 본 광경이 머릿속에서 잔상처럼 남아 떠나질 않았다.

용성우와 이리나는 분명히 서로 입을 맞대고 있었다.

숨 막히는 침묵이 한동안 이어졌다.

강지한이 정수기로 저벅저벅 걸어가 찬물을 한 잔 쭉 들이켜고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성우야, 리나야.”

“…….”

“…….”

용성우와 이리나는 민망함에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강지한이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큭큭 웃으며 말했다.

“축하해.”

짝짝짝짝!

축하의 말에 이어 박수까지 쳐주는 강지한.

그에 용성우와 이리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 * *

시간이 좀 흘러 모두의 마음이 조금 진정된 상황.

셋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용성우와 이리나는 사귄 지 일주일이 된 상태였다.

한데 그런 사실을 밝힐 기회가 마땅치 않아 지금까지 말 못하고 질질 끌게 됐던 것.

사정을 듣고 난 강지한이 조언했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용기가 사라져. 그냥 성인 남녀가 사귀는 일이야. 별거 아니잖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얘기해. 드러내는 순간 아무것도 아니야.”

“그,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용성우가 얼굴까지 새빨개져서 소리쳤다.

하지만 그런 그를 보는 강지한의 마음은 영 못미더웠다.

이리나 역시 용성우를 불안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의 관계를 밝히지 못하게 된 원인 제공은 용성우가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워낙 순진한데다 부끄러움이 많은 타입이니까.

“정말 할 수 있어?”

“할 수 있습니다!”

목소리는 씩씩한데 시선은 오갈 데 없이 방황하고 있었다.

이대로 두다가는 평생을 가도 둘의 연애 사실을 밝히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 고중만이 출근을 했다.

“여~! 안녕들 하신가! 응? 강 사장이 여긴 어쩐 일이야? 불심 검문 왔어? 리나는 요새 계속 일찍 나오네?”

고중만을 보는 순간 강지한의 입가에 짓궂은 미소가 어렸다.

세상에 그만큼 수다를 좋아하는 사람도 드물다.

단언컨대.

“중만 아저씨. 성우랑 리나랑 연애하는 거 알아요?”

“뭐?! 그게 정말이야? 경사 났네! 경사 났어! 으하하하하!”

고중만은 그 무엇보다 완벽한 확성기다.

* * *

용성우에 대한 이리나의 마음은 계속해서 커져 갔다.

용성우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더더욱 크게 느꼈다.

아울러 자신에게 향해 있는 용성우의 마음 또한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다 일주일 전, 용성우는 이리나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그녀는 받아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시원하게 밝히지 못하는 용성우 때문에 답답했는데, 오늘 강지한이 강수를 두었다.

고중만에게 들어간 두 사람의 연애 소식은 단톡방을 비롯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심지어 식당에 들르는 손님들에게까지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고중만이었다.

그날, 단톡방은 두 사람의 연애를 축하해 주는 메시지로 터질 지경이 되었다.

* * *

오후 4시.

지한 김치 매장은 오늘 들여온 물량을 다 팔아버리고 정리 작업에 들어가는 중이었다.

이미 지한 김치에 대한 소문은 춘천 전 지역에 퍼질 대로 퍼져서 오후 3~4시 경만 되면 하루 팔기 위해 준비한 물량이 동나 버린다.

“고생하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독고 전무님.”

김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독고진과 문정연이 서로 고생을 치하했다.

그러고는 퇴근을 하려는데,

딸랑-

올해 마흔한 살의 점쟁이 하경춘이 헐레벌떡 들어섰다.

“김치 남았어요?”

그녀는 질문을 하면서 매장 내부를 슥 둘러봤다.

그런데 이미 진열대가 텅텅 비어 있었다.

“아이고, 끝나 버렸네.”

하경춘은 지한 김치 단골이다.

그래서 독고진과 문정연도 그녀의 얼굴을 익히 알고 있었다.

“늘 일찍 오시더니 오늘은 왜 이리 늦으셨대요?”

독고진이 물었다.

“아니, 좀 지독한 원귀(?鬼)가 들러붙은 아줌마가 있어 가지고 그거 떼어내 주느라 늦어졌지 뭐야.”

하경춘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데 그때 또다시 문이 열리며 스물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인 김장미가 매장으로 들어왔다.

김장미는 매장을 살피고서는 미간을 팍 찌푸렸다.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한 터라 낡고 초라했다. 적어도 근 몇 년 간 괜찮은 삶을 영위했던 그녀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아니, 무슨 이런 곳에서 파는 김치가 맛이 있다고…….”

대놓고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는 여인에게 독고진이 물었다.

“김치 사러 오셨어요?”

“배추김치 1킬로만 줘봐요.”

“죄송한데 지금 김치가 다 팔려서 재고가 없어요.”

“지금 몇 시나 됐다고 김치가 다 팔려요, 팔리긴?”

그러자 하경춘이 김장미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이 동네 이사 온 지 얼마 안됐나 봐?”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내 눈에는 다 보이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춘천 살면서 이 집 김치 빨리 동난다는 거 모르면 이사 온 거 뻔하지.”

“아니, 그깟 동네 김치 뭐 그리 대단하다고…… 아니, 근데 아줌마. 언제 봤다고 아까부터 반말이에요?”

“그쪽 남편 아토피에 변비 때문에 힘들지?”

“……그, 그걸 어떻게.”

“배트 휘두르면서 주가 쭉쭉 올리던 양반이 갑자기 아토피랑 변비에 시달리니 성적이 잘나올 리가 있나.”

하경춘의 말은 정확했다.

김장미의 남편은 야구 선수였다.

싱글일 땐 한참 잘나가던 사람이 결혼을 하고 나서 얼마 가지 않아 지독한 아토피와 변비에 시달려 성적이 부진해졌고 결국 바닥을 쳤다.

병원을 아무리 다녀도 아토피와 변비는 고질병처럼 낫지를 않았다. 오히려 갈수록 심해졌다.

김장미의 남편은 결국 선수 생활을 은퇴할 각오로 춘천을 찾았다.

그가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도시였고, 은퇴한 친한 선배들이 춘천에 많이 있어 덕을 좀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공기 좋은 곳에서 친환경 식단으로 밥을 먹다 보면 아토피와 변비도 낫지 않을까 싶었다.

“자네 남편 재기시키고 싶으면 이 집에서 김치 딱 세 달만 사먹여 봐. 하루도 빠짐없이. 그럼 깨끗이 나을 테니.”

감장미는 헛소리하지 말라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하경춘이 그녀의 속사정을 다 알아맞췄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내가 큰일이네. 이제 이집 김치 없으면 밥을 못 먹는데. 게다가 지한 김치 섭취 못하는 날은 신력(神力)도 떨어져.”

“이거 죄송해서 어떡하죠?”

독고진이 배시시 웃으며 미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하경춘이 한숨을 푹 쉬었다.

“어쩔 수 없지. 내일 점심은 지한 분식이나 김치전골집에서 해결해야지.”

두 식당 모두 식사를 하면 절로 지한 김치를 섭취할 수가 있었다.

“나 가요.”

“들어가세요.”

“내일은 일찍 오셔요~ 호홍.”

하경춘에게 배웅 인사를 한 독고진과 문정연이 멀뚱히 서 있는 여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김장미가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말을 더듬거렸다.

“내, 내일 다시 올게요. 일찍.”

여인은 후다닥 김치 매장을 나갔다.

* * *

“하아, 부럽다.”

집으로 돌아온 독고진이 단톡방을 보며 중얼거렸다.

단톡방에는 하루 종일 용성우와 이리나의 연애를 축하하는 글들뿐이었다.

“나도 연애하고 싶다.”

독고진의 눈앞에 이향숙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 * *

오늘은 드디어 푸드스타일리스트 자격증을 따기 위한 실기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6월 25일에 첫 수업을 시작해 두 달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 구자영 교수에게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각자 텅 빈 테이블 앞에 섰다.

처음 수업을 받기 시작한 인원은 17명이었으나 수업에 끝까지 참여하며 마지막까지 따라온 이들은 12명이 고작이었다.

강지한 역시 그 12명에 포함되어 있었다.

푸드스타일리스트 자격증 시험관은 구자영 교수가 아니었다.

외부에서 시험관의 자격이 있는 교수 두 분을 모셔왔다.

그들의 감독으로 실기 시험이 시작됐다.

* * *

“정말 경이롭네요.”

“도저히 두 달 배운 분의 감각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예요.”

두 시험관은 강지한의 테이블 앞에 서서 떠날 줄을 몰랐다.

다른 사람들의 테이블은 1분에서 2분 사이로 평가를 끝냈다.

그런데 강지한의 테이블에서는 벌써 10분이 넘도록 머물고 있었다.

“뉴웨이브 스타일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니요.”

“이건 뉴웨이브의 혁신입니다. 이토록 창의적이면서도 뉴웨이브 고유의 분위기를 확실히 잡아낸 작품은 올해 들어 처음 보네요.”

이후로도 시험관의 극찬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를 다른 학생들은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봤고, 강지한은 뿌듯함과 쑥스러움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그리고 구자영 교수는,

‘고작 두 달인데…… 뉴웨이브는 나보다 더 아름답게 꾸미는 것 같아.’

알 수 없는 패배감에 가슴이 욱신거렸다.

* * *

결국 강지한은 합격점을 받았다.

합격 결과는 다음 주에 합격증과 함께 나오겠지만 누구도 그가 탈락할 것이라 생각지 않았다.

강지한의 실력에 홀딱 반한 시험관들은 따로 명함까지 건네주며 이후도로 꾸준히 연락하고 지내자 할 정도였다.

기분 좋게 귀가한 강지한은 별채를 들여다봤다.

조정호는 밤이 늦은 시간까지도 별채를 열심히 가꾸는 중이었다.

그가 걸레로 바닥을 박박 닦고 있었다.

워낙 집중을 해서 강지한이 들어온 줄도 몰랐다.

별채는 이전과는 완전히 딴판으로 바뀌어 있었다.

도배를 새로 하고 장판도 새것으로 깔아 깨끗했고 여기저기 지저분했던 거미줄도 전부 걷어냈다.

을씨년스러웠던 부엌과 화장실, 거실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사람 사는 곳답게 변했다.

“정호 씨, 고생하셨네요.”

“어? 사장님. 오셨습니까.”

“근데 혼자 도배까지 하셨어요?”

“저 도배 잘합니다. 장판도 새로 깔았습니다. 노가다 뛰고 남아 있던 돈 전부 털었습니다.”

수중에 남아 있던 돈은 찜질방에서 지낼 요량으로 아껴뒀었다.

그런데 이제 집이 생겼으니 그 돈이 없어도 살 수 있었다.

그래서 도배와 장판을 싹 해버린 것.

“저녁 안 드셨죠?”

“네.”

강지한이 한 손에 든 봉투를 들어 올렸다.

“치킨이랑 맥주 사왔어요, 제 방으로 가시죠.”

“좋습니다.”

* * *

다음 날.

지한 식당은 여느 때처럼 몰려드는 손님들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딸랑-

“어서 오세요. 빈자리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유지호는 지한 식당을 찾은 네 명의 손님을 4인용 테이블로 안내했다.

손님들이 앉자 주문하는 법을 알려드리고 테이블을 떠났다.

네 명의 손님들 중 두 명은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들은 메뉴판을 보며 신중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서로 전부 다른 메뉴로 시켜보는 게 좋겠죠?”

“그럼요. 각자 다른 걸 시켜서 조금씩 나눠 먹도록 해봐요. 그래야 이 집이 음식을 제대로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근데 확실히 대중적인 맛은 있는 모양입니다. 음식을 드시는 손님들 표정이 좋아요.”

“그것이 화학조미료 맛인지 주인장의 손맛인지는 두고 볼 일이지요.”

“신고가 여덟 건이나 올라왔다잖아요. 방심하면 안 돼요. 혀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자고요.”

네 명의 손님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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