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
Restaurant 171. 국물닭발
그런 날이 있다.
별것도 아닌 일로 짜증이 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가지고도 예민해지는 날.
지금 지한 식당을 찾는 한 남녀가 그랬다.
사귄 지 2년이 넘어 서로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게 없었다.
작은 걸로 티격태격하다가 이제는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오늘 점심은 지한 식당에서 해결하기로 이미 정해놓은 상황.
그래서 지한 식당에 온 것이다.
입구 앞에서까지 투닥거린 그들은 자칫 잘못했다가는 식당에 발도 들이지 않고 헤어질 뻔했다.
그런데 둘 다 식탐이 워낙 강한 타입인지라 꾹 참고 식당에 들어섰다.
“주문하시겠어요?”
유지호의 물음에 남자가 먼저 퉁명스레 대답했다.
“제육에 순두부찌개랑 참치 계란말이요.”
이어 유지호의 시선이 여자에게 향하자 그녀는 방긋 미소 지으며 나긋나긋한 음성으로 말했다.
“음~ 저는 소불고기랑요 청국장. 그리고 참치 계란말이로 부탁드릴게요. 헤헤.”
“네, 주문 받았습니다.”
유지호가 테이블을 떠나자 남자가 바로 여자에게 쏘아붙였다.
“너 진짜 가식 쩐다. 나랑 죽일 듯이 싸우던 애 맞냐?”
“그럼 자기랑 싸웠다고 종업원한테까지 막 해?”
“평소에 나한테 그렇게 좀 해봐. 남한테는 겁나 천사처럼 헤실헤실 웃으면서 나한테는 무뚝뚝하고. 누가 보면 내가 남인 줄 알겠다.”
“속 좁게 그러지 좀 마, 진짜.”
“이게 속 좁은 거야? 야, 내 친구들한테 다 물어봐도 네가 이상하대.”
“아, 됐어. 그만해.”
“뭘 그만해?”
“그만하자고. 음식 먹다 체하겠다고.”
“이 상황에서 넌 아직 나오지도 않은 음식이 중요해?”
“그런 식으로 말할 거면 여기 왜 들어왔어? 나가.”
“어, 그래. 나가자.”
남자가 일어서려고 하다가 움찔하며 멈췄다. 여자는 가만히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넌 안 나가?”
“내가 언제 같이 나가재? 난 먹고 나갈 거야.”
“나도 먹고 나갈 거야.”
남자가 다시 앉았다.
그런 둘을 지켜보는 다른 손님들은 웃음이 나려는 걸 억지로 삼켰다.
커플은 냉전 상태로 오가는 말이 없었다.
그렇게 차가운 시간이 흐르고 설인아가 음식을 내왔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설인아가 물러가고 난 뒤, 남자와 여자는 말없이 수저를 들었다.
사실 밥을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나가지도 못했다.
남자가 국을 떠 맛보았고, 여자는 소불고기를 한 점 집어 먹었다.
순간 둘 다 눈이 동그라졌다.
“맛있네?”
“맛있다.”
남자가 팔을 걷어붙이고 이것저것 반찬들을 집어 먹었다.
여자는 만두를 한입 베어먹었다.
“반찬들이 하나 같이 예술이야. 간이 딱 맞아. 맛도 고급스럽고.”
“만두 먹어봤어? 완전 미쳤어.”
“와, 여기 진짜 잘 왔다.”
“그치? 내가 여기 가자고 그랬잖아.”
여자가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남자가 그 손을 딱! 마주쳤다.
두 사람은 언제 싸웠냐는 듯 화기애애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식사를 이어나갔다.
그 모습을 주방에 있던 강지한이 슬쩍슬쩍 살폈다.
두 사람이 식당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여유도가 두 칸밖에 없었다.
그런데 음식을 먹으면서 여유도가 다시 차오르더니 지금은 다섯 칸 전부 가득 차 있었다.
강지한의 타이틀 행복 요리사의 힘이 발휘된 것.
전 같았다면 그 커플들은 너무 감정이 상해 맛도 느끼지 못하고 나가 버렸을 터였다.
강지한의 시선이 홀을 가득 채우고 있는 손님들의 면면을 쭉 훑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 * *
이봉두가 운영하는 진수성찬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사건은 이틀 전에 벌어졌다.
손님들이 줄어드는 바람에 지금 일하고 있는 직원들 중 몇을 잘라야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세 사람을 내쳤다.
한데 하필이면 남은 직원 중 두 사람이 그들 셋과 필요 이상으로 친한 관계인지라 같이 사표를 던져 버렸다.
해서 홀과 주방에 사람이 한 명씩 부족했다.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해도 피크 타임에는 나름 바빴다.
그런 상황에서 두 사람이 빠져버리면 식당이 제대로 돌아가지를 않는다.
이봉두는 급하게 구직 광고를 냈다.
운 좋게도 홀과 주방에서 일하겠다는 지원자가 빠르게 나타났다.
홀을 원하는 지원자는 많은데 주방 지원자는 한 명밖에 없었다.
스물여덟 살의 여자였는데, 주방 알바 경험이 많아서 충분히 잘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어차피 지금 필요한 건 직원보다는 알바였기에 이봉두는 그녀를 그냥 들이기로 했다.
여인의 이름은 조설희.
검은 뿔테 안경을 쓴 그녀는 오늘부터 진수성찬에서 함께 일하게 됐다.
“설희 씨~ 설거지 밀리지 않게 속도 좀 내봐. 주방 알바 제법 해봤다며. 이래가지고 돈 받겠어?”
점심시간에 몰아치는 설거지를 열심히 해치우는 조설희에게 김미화의 잔소리가 내리꽃혔다.
“죄송해요!”
조설희는 얼른 대답하고 더 빠르게 손을 놀렸다.
그러자 옆으로 다가온 김미화가 설거지된 접시 하나를 들어보더니 버럭 고함쳤다.
“이거 봐! 여기 기름기 안 닦였잖아! 이따위로 할 거야, 정말?”
“다시 할게요!”
조설희가 얼른 접시를 넘겨받았다.
“아휴, 정말. 다른 사람을 구하던가 해야지.”
김미화는 분이 삭지 않는지 이후로도 계속해서 짜증을 내고 툴툴거렸다.
손이 부르터라 설거지를 하는 조설희가 그런 김미화를 슬쩍 쳐다봤다.
그녀는 밖에서 남겨가지고 돌아온 반찬을 새로운 반찬 그릇에 옮겨 담고 있었다.
밥풀이 있나 없나 확인하고 있으면 그 부분만 떼어내서 나머지 부분은 그대로 담았다.
손을 댄 흔적이 없는 것들은 새 그릇에 옮겨 담지도 않고 그대로 내놓았다.
또 남아서 돌아온 밥은 윗부분만 슥슥 긁어서 밥통에 도로 넣었다.
이를 본 조설희가 경악하며 물었다.
“주방장님…… 그거 재사용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뭐? 이거 손님들이 거의 건드리지도 않은 건데 왜? 깨끗하기만 한데.”
“아니 그래도 한 번 나간 음식은 재사용하지 않는 게 맞지 않아요?”
“설희 씨. 집이 잘사나 봐?”
“네?”
“우리 때는 하나같이 어려웠어. 이런 음식 남은 거 함부로 버리면 다 낭비야, 낭비. 어디 땅을 파봐. 쌀 한 톨 나오나. 하여튼 요즘 사람들은 배가 불러가지고서는……. 쯧쯧.”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조설희가 나오려는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뭘 계속 보고 있어? 지금 한가해? 설거지 계속 쌓이는 거 안 보이냐고.”
“죄송합니다.”
조설희는 다시 설거지에 집중했다.
* * *
늦은 밤.
직원들이 다 퇴근한 진수성찬의 홀에는 이봉두와 김미화만 남았다.
“오늘 들어온 아가씨 어때?”
이봉두가 물었다.
“영 별로예요. 빠릿빠릿하지도 못하고. 잔반은 재사용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괜한 참견이나 해쌌고.”
“뭐? ……새로 사람 구해야겠네. 괜한 정의감에 오지랖 부리는 인간들 있으면 골치 아파.”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그때 이봉두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조설희에게서 문자가 온 것.
내용을 확인한 이봉두가 너털웃음을 흘렸다.
“얘 도저히 못해먹겠다고 그만두겠대. 하여튼 요즘 것들은 근성이 없어, 근성이.”
“그래요? 잘됐네. 얼른 새로 하나 더 뽑아요.”
“알았어. 그나저나 바른 먹거리에는 글 올렸지?”
“네. 다른 직원들도 다 올렸대요. 사장님은요?”
“나도 했지. 곧 반응 오겠지?”
“그럴 거예요. 지켜보자고요.”
“빨리 터져라. 빨리.”
이봉두가 주문을 외듯 웅얼댔다.
* * *
집에 돌아온 강지한이 설탕이에게 명성 맛 캔디를 먹였다.
캔디를 날름 받아먹은 설탕이가 그것을 꿀꺽 삼켰다.
[설탕이의 명성이 1 올라갑니다.]
헥헥!
설탕이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강지한을 올려다봤다.
강지한의 곁에 서 있는 조정호의 시선이 그런 설탕이에게 향했다.
설탕이는 어제 그의 손을 핥은 이후 계속해서 접촉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강지한의 뒤만 졸졸 따라 다닐 뿐.
강지한은 거실에 상을 펴고 들고 있던 검은 봉지를 내려놓았다.
조정호는 얼른 봉지를 열어 내용물들을 세팅했다.
상 위에 국물 닭발과 달걀찜, 주먹밥, 과일음료수가 놓여졌다.
오늘 두 사람이 함께 먹을 야식이었다.
술은 간단하게 맥주 한 캔씩만 따기로 했다.
벌써부터 닭발의 매콤한 불내음이 콧속으로 스며들어 군침을 돌게 만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두 사람이 비닐장갑을 끼고 닭발을 하나씩 들었다.
강지한은 발목뼈에 붙은 살을 아래에서 위로 죽 밀어 올렸다.
그러자 쉽게 살이 발라졌다.
그 상태에서 닭발을 입에 넣고 발목을 살짝 돌리니 통뼈가 뜯어졌다.
강지한이 입을 오물거리며 양념이 깊이 배어든 살과 발가락뼈를 발라냈다.
투둑. 툭. 투둑.
그의 입에서 깨끗하게 발라진 뼈들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걸 본 조정호가 혀를 내둘렀다.
‘진짜 잘 바르시네.’
강지한의 입안에서 보들보들한 콜라겐 덩어리들이 춤을 췄다.
그것을 몇 번 살살 씹어 꿀꺽 넘겼다.
짭짤하고 구수한 맛과 함께 매콤함이 혀를 확 감쌀 때, 계란찜을 한 입 먹는다.
“으음.”
연한 푸딩처럼 부들거리는 계란찜을 혀로 지그시 눌러주니 입천장과 부딪혀 파스스 부서졌다.
꿀꺽.
계란찜을 먹은 다음엔 한 입 크기로 뭉쳐놓은 주먹밥을 매콤한 닭발 국물에 푹 찍어서 입에 넣는다.
주먹밥 속에 알알이 스며든 양념이 입안에서 조화롭게 섞이며 큰 만족감을 선사했다.
조금 과한 국물 양념으로 인해 입안이 화끈거리면 이번에는 과일주스 한 모금으로 입을 달랜다.
모든 조합을 맛봤으면 이제 닭발 하나만을 집중 공략하며 맥주를 곁들인다.
“꿀꺽! 꿀꺽 크하. 좋다.”
“저도 좋습니다.”
강지한과 조정호는 만족스럽게 닭발을 흡입했다.
하지만 조정호는 강지한보다 매운 맛이 취약했다.
닭발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 매운 기운이 확 하고 그를 덮쳐 정신이 없었다.
그때,
할짝.
“어?”
설탕이가 또 조정호의 손을 핥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조정호를 가만히 바라봤다.
조정호도 설탕이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공포감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정호가 슬쩍 손을 내밀어 설탕이를 만져보려 하다가 멈칫! 했다.
아직 공포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닌 모양.
한데 그가 용기를 내서 손을 다시 뻗으려 할 때 설탕이가 강지한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
조정호의 마음속에 아쉬움이 일었다.
‘다음번엔 꼭.’
설탕이의 밀당으로 인해 점점 더 공포증을 치료하고 있는 조정호였다.
* * *
8월 22일 수요일.
지한 식당이 쉬는 날이다.
조정호는 오늘 별채를 많이 손보기로 했다.
강지한은 설탕이를 애견 카페에 맡겨두고서 오래간만에 지한 분식을 찾았다.
오전 9시.
문은 열려 있었으나 아직 오픈 준비를 할 때인지라 손님은 없었다.
강지한이 아무 생각 없이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헉!”
주방에서 누군가의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강지한의 눈에 들어온 광경에 그 역시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