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171화 (171/330)

# 171

Restaurant 170. 행복 요리사

다음 날.

강지한은 아침 일찍부터 조정호를 깨워 집을 나섰다.

설탕이는 이향숙에게 맡겨두고 둘은 해장국집을 찾았다.

강지한이 조정호를 데리고 온 곳은 효자동에 있는 사또 해장국이란 식당이었다.

새벽 6시에 오픈해서 오후 3시까지만 장사를 하고 문을 닫는 집이다.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지만, 한 번 왔다가 취향저격 당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단골이 될 정도로 매력 있는 곳.

파는 메뉴는 설렁탕, 해장국, 비빔밥 세 가지가 전부다.

술은 팔지 않는다.

식당의 내부는 옛날 한옥처럼 꾸며놨는데, 벽 곳곳에 붓글씨로 쓴 이런저런 글귀들이 붙어 있는 게 재미있다.

모두에게 소중한 한 끼 식사를 위해 금연을 해 달라.

술은 팔지 않는 곳이니 주문하지 말아 달라.

간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해장을 하라.

포장할 경우 음식의 제 맛이 나지 않으니 절대로 불가하다, 등등.

그야말로 해장과 해독을 위해서 가게 되는 곳이었다.

두 사람은 목조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았다.

“난 해장국 먹을 건데. 정호 씨는 뭐 드실 거예요?”

“저도 해장국 먹겠습니다.”

“사장님! 해장국 둘이요.”

강지한이 주문을 했다.

조정호는 식당 내의 특이한 분위기에 잔뜩 취해 주변을 감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단 반찬들이 세팅됐다.

김치와 깍두기, 새우젓이 기본찬이었다.

강지한은 바로 젓가락을 들어 김치부터 맛봤다.

그 모습을 본 조정호도 얼른 그 행동을 따라했다.

그런데 그건 일반적인 김치가 아니었다.

“어? 이거 볶은 김치네요.”

“맛이 좋죠?”

“음……. 자연발효시킨 김치를 다른 것 안 넣고 살짝 볶은 것 같습니다. 맛있어요.”

“그게 이 집 특징이에요.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잡스러운 맛보단 담백함을 추구하거든요.”

“조미료를 넣지 않으면…… 맛집이라고 소문나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요즘 사람들은 화학조미료 맛에 많이 길들여져 있다.

때문에 화학조미료 특유의 감칠맛이 느껴지지 않으면 맛이 없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호불호가 좀 갈리기도 해요.”

두 사람이 이런저런 대화를 더 나누고 있자니 주문한 해장국이 나왔다.

뚝배기에 담겨 보글보글 끓고 있는 해장국은 맑아서 속 내용물이 훤히 다 보였다.

조정호가 해장국을 휘휘 저었다.

눈에 보이는 건 콩나물과 북어, 뜨거운 열기에 익어가는 계란, 송송 썰어 넣은 파가 전부였다.

그가 국을 떠 후후 불어 맛봤다.

“호록. 음.”

강지한이 예고했던 대로 잡스러운 조미료의 맛이나 인공적인 감칠맛이 전혀 없었다.

맑고 깨끗했다.

육수에서도 고기의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로지 콩나물과 북어로만 우려낸 맑은 국이었다.

깊이 있는 맛이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자극 없는 해장국으로는 그만이었다.

아울러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깨끗, 담백한 맛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을 것 같았다.

조정호는 앞에 있는 새우젓을 조금 넣어 입맛에 맞게 간을 맞췄다.

그러자 전에 없던 감칠맛이 살짝 느껴졌다.

“어때요?”

해장국을 신중하게 맛보는 조정호에게 강지한이 물었다.

“아주 좋습니다. 설렁탕이랑 비빔밥도 궁금합니다.”

“춘천 사람들은 여기 와서 비빔밥을 많이들 먹어요. 아, 정호 씨도 춘천 사람이었죠? 서울에서 사업했다는 얘기를 들어서 그런가……. 서울 출신이라는 생각이 강해서 실례했네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고향도 제가 그렇게 생각을 하고 마음에 품어야 고향입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빨리 춘천을 뜨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습니다. 서울에서 사업을 벌일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거든요.”

“그랬군요.”

“이렇게 괜찮은 집 소개시켜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같이 밥 먹어줘서 제가 감사하죠. 혹시 고부자 순대국집은 알아요?”

“아, 그 매운 순대국으로 유명한 곳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이곳이랑은 정반대되는 맛이죠. 맵고 강렬하고 화끈한.”

고부자 순대국집은 대중적으로 사또 해장국보다 더 유명했으며 추구하는 맛의 방향이 완전히 달랐다.

“다음번에는 거기서 해장해요.”

“좋습니다.”

딸랑-

두 사람이 식사하며 담소를 나눌 때, 문이 열리며 퀭한 얼굴의 여인 세 명이 식당에 들어섰다.

딱 보니 새벽까지 올나잇으로 달린 모양이었다.

“이모~ 여기 해장국 셋이요.”

그녀들도 해장국을 주문했다.

근데 셋 중 검은 장발의 여인이 강지한을 알아봤다.

“어? 강지한이다!”

여인의 말에 친구들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게 누군데?”

“야, 너 몰라? 배틀 셰프 우승자!”

“대박. 방송에서 보던 것보다 더 존잘이야.”

여인들이 우르르 강지한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강지한 씨 맞죠?”

“아……. 네.”

“저 팬이에요. 손 한 번만 잡아봐도 돼요?”

강지한이 당황해서 고개를 끄덕이자 여인이 그의 손을 덥석 잡고는 좋아했다.

“꺄아, 손잡았다.”

그러자 다른 친구들도 앞다투어 강지한과 악수하듯 손을 잡았다.

그중 한 명은 카운터에서 메모지와 볼펜을 가지고와 내밀었다.

“저 혹시 사인도 한 장 해주실 수 있을까요?”

“사인이요?”

“네!”

강지한에게도 사인이 있긴 했다.

나이가 스물아홉이나 되다 보니 이런저런 서류에 사인해야 할 일이 많아져서 만들어 둔 터.

그것을 메모지에 그려주니 여인은 보물이라도 얻은 것 같은 표정이 되어 자리로 돌아갔다.

다른 두 여인도 사인이 탐나는 모양이었지만 더 귀찮게 하는 것이 실례인 것 같아 부탁을 못했다.

“휴우.”

평생 서류 작성이나 계약 목적이 아닌 사인은 이번이 처음인지라 괜히 긴장했던 강지한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사장님, 정말 멋지십니다.”

조정호가 동경 가득한 눈빛을 강지한에게 보냈다.

* * *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난 뒤, 두 사람은 식당으로 출근했다.

그때 강지한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퀘스트를 받았습니다.]

[퀘스트-랜덤 박스를 10개 구매하세요.]

[퀘스트 보상: 타이틀 ‘행복 요리사’]

‘드디어 퀘스트를 받았네.’

퀘스트는 각 스테이지 매장별로 하나씩 주어진다.

이번 지한 식당의 퀘스트는 랜덤 박스를 10개 구매하라는 것.

랜덤 박스는 단골 포인트 상점에서 100단골 포인트로 한 개를 구매할 수 있다.

강지한이 조정호와 주방에 들어서며 레벨 업 현황을 살폈다.

현재까지 모인 단골 포인트는 48이었다.

그것은 지한 분식과 김치전골, 지한 식당에 새로 생긴 단골 총합 수치였다.

강지한이 지한 식당 실내 공간의 해금 미션 진행 상황을 열었다.

[실내 공간의 레벨 업이 가능합니다. 실내 공간의 레벨 업 조건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를 해금하기 위해서는 소기의 미션을 완수해야 합니다.]

[해금 미션: 지한 식당 단골손님 50명 만들기 26/50]

순수하게 지한 식당의 단골 수만 보면 26이었다.

‘해금 미션 클리어하는 데 시간이 제법 걸리네.’

강지한이 해금 미션 창을 닫았다.

일단은 해결 가능한 것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그가 잠들어 있던 주방을 깨우며 누적 만족도 포인트를 확인했다.

‘304,223.’

만족도 포인트는 30만이나 누적되어 있었다.

‘환전하자.’

만족도 포인트는 100포인트 당 1단골 포인트로 환전이 가능했다.

‘10만 만족도 포인트를 1,000단골 포인트를 환전하겠어.’

[만족도 포인트 100,000을 단골 포인트 1,000으로 환전했습니다.]

‘됐다.’

강지한이 단골 상점을 열었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종이접기로 만든 것 같은 상점이 나타났다.

상점의 정문이 활짝 열리더니 그 안에서 메뉴판이 튀어나와 펼쳐졌다.

강지한은 흠칫하며 조정호를 쳐다봤으나,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오픈 준비만 해나갔다.

‘휴.’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씩 깜짝 놀라고 마는 그였다.

강지한은 1,000단골 포인트로 랜덤 박스 10개를 구입했다.

그의 앞에 물음표가 박힌 정육면체의 박스 10개가 주르륵 나타났다.

단골 포인트 상점을 닫고 나니 메시지가 떠올랐다.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타이틀 ‘행복 요리사’가 주어집니다.]

[행복 요리사: 호칭 사용 시, 음식을 먹는 손님들의 감성이 행복으로 물듭니다. 피로, 짜증, 우울, 분노 등의 안 좋은 감정들을 중화시킵니다.]

[타이틀은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장착 가능합니다.]

[타이틀을 행복 요리사를 교환하시겠습니까? 타이틀은 언제든 원할 때 교환 장착이 가능합니다.]

‘응.’

강지한이 타이틀을 행복 요리사로 교환했다.

건강 요리사도 상당히 좋은 타이틀인데, 행복 요리사도 그 못지않을 정도로 괜찮아 보였다.

자신의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기분이 행복해진다는 건 가슴 벅찬 일이다.

물론 강지한의 음식 맛이 워낙 대단해서 이를 먹는 대부분의 손님들은 기분 좋게 돌아간다.

하지만 애초에 기분이 상해서 들어온 손님들의 경우 그게 힘들 때가 많다.

밖에서 싸우다가 들어온 커플은 음식 맛도 모르고 먹다가 대부분 남기고 나가는 경우도 허다했다.

한마디로 건강 요리사가 육신의 건강을 보완해 주는 타이틀이라면 행복 요리사는 정신의 건강을 보완해 주는 타이틀이었다.

강지한이 허공에 나란히 늘어서 있는 랜덤 박스 10개를 전부 열었다.

[랜덤 박스에서 500만족도 포인트를 얻었습니다.]

[랜덤 박스에서 300만족도 포인트를 얻었습니다.]

[랜덤 박스에서 300만족도 포인트를 얻었습니다.]

.

.

.

[랜덤 박스에서 ‘명성 맛 캔디’를 얻었습니다.]

[명성 맛 캔디: 설탕이에게 먹이면 명성이 1 증가합니다.]

‘헐. 9개는 꽝이고 그나마 한 개만 괜찮네.’

9개의 랜덤 박스는 전부 만족도 포인트를 회수하는 식이었다.

마지막 한 개에서만 명성 맛 캔디가 나왔다.

현재 설탕이의 명성은 92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강아지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설탕이가 도그 푸드의 모델이 되면서 명성이 확 뛰어오른 것.

설탕이 퀘스트를 완료하기 위해서는 녀석의 명성이 98에 다다라야 한다.

‘아무래도 그 정도가 되려면 세계적으로 유명해야 하는 것 같단 말이야.’

어찌 되었든 명성 맛 캔디는 나름 괜찮은 수확이었다.

강지한이 은은한 빛을 발하는 명성 맛 캔디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때, 한지민과 강지영이 동시에 식당으로 들어섰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입니다~!”

강지한이 두 사람을 보며 빙긋 웃어주었다.

* * *

바른 먹거리의 서브 작가들은 한정식당의 제보를 받기 위해 열심히 시청자 게시판의 제보글을 뒤적이는 중이었다.

제보글은 전부 익명으로 기재된다.

제목 역시 관리자들에게만 공개되고, 외부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서브 작가들은 서로 구역을 나눠서 글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살핀다.

그러다 괜찮은 제보가 있으면 체크를 하는 식이었다.

서브 작가 조설희는 이른 아침부터 사무실로 출근해 열심히 시청자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던 그녀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no. 219328 춘천에 있는 지한 식당을 신고합니다.

-배틀 셰프 우승자 강지한이 운영하는 미니 한정식당인데요. 여기 조금 이상합니다. 음식이 맛있긴 한데 9천 원에 그렇게 화려한 한 상이 나오는 건 불가능하거든요. 저도 요식업계 근무하는 사람이라 잘 아는데, 뭔가 하자 있는 식재료들을 사용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같은 요식업계를 이끌어가는 사람으로서 손님들에게 바르고 깨끗한 먹거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곳이 계속 장사할 수 없도록 꼭 검증 부탁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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