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
Restaurant 169. 바른 먹거리
“들어와요.”
“……실례하겠습니다.”
조정호가 쭈뼛거리며 강지한의 뒤를 따라 그의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200평가량의 넓은 마당엔 정면으로 강지한이 머무는 본채가, 우측으로 작은 별채가 있었다.
좌측에는 창고가 있었고 본채 뒤편으로 밭으로 사용했던 공터가 보였다.
강지한이 별채를 가리키며 말햇다.
“정호 씨는 여기서 지내시면 되는데…… 지금은 너무 정리가 안 돼서 어느 정도 정리될 때까지는 본채에서 같이 지내도록 하죠.”
“아……. 같이요? 알겠습니다.”
조정호는 뭔가 불편한 기색이었다.
강지한의 배려는 정말 고마웠다.
하지만 사람과 함께 지내는 생활을 해본 지가 오래인지라 어색함이 따랐다.
그리고 또 하나.
헥헥헥.
아까부터 맑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설탕이가 부담스러웠다.
조정호는 어렸을 적, 새끼를 낳은 옆집 어미 개 앞에서 깐족거리다가 물린 적이 있었다.
이후로 개를 무서워하게 됐다.
강지한이 설탕이와 함께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걸 본 조정호가 물었다.
“강아지도 집 안에서 함께 지냅니까?”
“네, 강아지 싫어하세요?”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정확히는 무서워하는 것이었다.
“들어오세요.”
“네……. 네.”
* * *
조정호가 강지한의 집으로 들어온 첫날인 만큼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
그의 입주를 축하하며 두 사람은 술을 한 잔 나누기로 했다.
소주는 들어오면서 사왔으니 안주가 필요했다.
강지한이 주방에서 부대찌개를 만들었다.
전골냄비에 통조림햄과 소시지, 베이컨을 잘라 넣고, 베이크드 빈, 넓적당면, 소고기분쇄육, 살라미, 김치, 두부, 애호박, 양송이버섯, 양파, 파, 청양고추, 미나리를 투하한 뒤, 사골육수, 부대찌개 양념장을 만들어 넣었다.
부대찌개 양념장은 고춧가루 한 술, 맛술 두 술, 멸치 액젓 두 술, 다진 마늘 한 술에 후춧가루를 뿌려 섞어주면 완성이다.
거기에 강지한의 식당 찌개에 들어가는 특제 양념도 한 숟가락 더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부대찌개에 들어가는 통조림햄은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유명한 것을 사용하면 별로다.
이런 통조림 햄들은 맛과 향이 너무 깔끔해서 부대찌개 국물에 그 맛이 스며들어도 특유의 풍미를 느끼기 어렵다. 게다가 국에 들어갔을 때 짠기가 쉽게 빠져나가는데 향까지 밍숭맹숭하니 영 심심하다.
해서 특유의 쿱쿱한 풍미가 가득한 수입통조림햄이 가장 잘 어울린다.
1.8㎏ 한 통 들이로 싸게 파는 회사의 것이 있는데, 그 햄을 사서 넣는 것이 가장 좋다.
소시지 역시 돼지고기와 염통을 사용해 만든 고염 소시지를 사용하는 것이 베스트.
강지한은 평소 부대찌개를 좋아해서 가끔 해먹는지라 이 재료들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보글보글.
부대찌개가 끓기 시작하자, 강지한은 수제비 반죽을 만들어 떠 넣었다.
그리고 수제비가 완전히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나를 집어 맛보았다.
“음, 괜찮네.”
잘 익은 수제비에서는 밀가루 풋내가 거의 나지 않았다.
강지한이 완성된 부대찌개를 상으로 내갔다.
조정호는 옆에 앉아서 자신을 관찰하는 설탕이로 인해 잔뜩 경직되어 있었다.
그런데 전골냄비에서 슬슬 올라오는 부대찌개의 진한 향기를 맡자 눈동자가 초롱초롱해졌다.
“사장님, 맛있을 것 같습니다.”
강지한이 조정호의 옆에 앉았다.
그러자 설탕이가 바로 강지한의 무릎 위에 앉았다.
딱 거기까지.
설탕이는 밥상 위의 음식에는 눈독을 들이지 않는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 한잔해 볼까요?”
까득.
강지한 소주 뚜껑을 따서 두 개의 잔을 채웠다.
조정호는 각자의 앞접시에 부대찌개를 덜어냈다.
“잘 부탁드릴게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이 잔을 부딪치고 맑은 소주 한 잔을 입안에 탁 털어 넣었다.
“크으.”
조정호의 입에서 절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도 술을 제법 좋아하는 애주가였다.
하지만 한동안 수중에 돈이 없어서 소주를 마시지 못했다.
찜질방 생활을 할 때는 노가다 뛰고 받은 돈이 있었으나 소주값으로 날릴 수가 없어서 아꼈다.
그렇다 보니 간만에 맛본 소주가 쓰면서도 참 달았다.
아직 소주의 쌉싸래한 기운이 입안에 남아 있을 때, 얼른 부대찌개 한 수저를 떠먹었다.
“후우~ 스읍. 꿀꺽. 캬하.”
햄과 소시지, 살라미의 강렬한 풍미를 간직한 진한 국물이 소주의 쓴맛을 휙 날려주며 식도로 넘어갔다.
조정호가 얼른 한 숟갈을 더 떠 먹었다.
“꿀꺽.”
정말이지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이었다.
자칫 강렬하고 부담스러울 수 있는 국물의 맛을 안에 들어간 베이크드 빈이 부드럽게 잡아주고 있었다.
끝에 살짝 느껴지는 미나리의 독특한 향도 좋았다.
“정말 맛있습니다.”
“끝내주죠?”
“네.”
대답을 하는 조정호의 머릿속으로 부대찌개에 들어간 재료들이 하나하나 그려지고 있었다.
이 정도는 조정호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일어나는 반응이었다.
그의 뛰어난 미각이 알아서 부대찌개 속 재료들을 잡아냈다.
전 같았으면 이 정도에서 그쳤을 조정호가 다른 시도를 해보았다.
각각의 재료가 얼마나 들어갔는지, 레시피는 어찌 되는지를 맞춰보려고 애썼다.
강지한의 밑에서 일하고 난 이후로 그는 전에 해본 적 없는 노력이라는 걸 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그의 모습을 보던 강지한이 정보의 눈을 가동시켰다.
<조정호의 능력치>
직급: 지한 식당 근무 희망자
등급: A-
능력: 요리 LV 8, 서빙 LV 1, 청소 LV 3, 회계 LV 1, 설거지 LV 3, 화술 LV 2
특수능력: 절대미각 LV 4
정직도: 71/100
신뢰도: 92/100
종합 평가: 요리와 미각의 능력은 타고났다. 잠재력도 상당하며 개화되지 않은 능력 또한 존재한다. 전보다 정직한 자세로 요리를 연구해 나가고 있으며 고용주에 대한 신뢰가 두텁다. 좋은 스승을 만나 빠르게 성장 중이다.
그동안 조정호의 능력치에 변화가 생겼다.
요리 레벨은 그대로였으나 청소와 설거지, 화술의 레벨이 올랐다.
특수능력인 절대미각 또한 레벨3에서 레벨4가 되었다.
정직도는 60도 안되었었는데 71로 바뀌었고, 강지한에 대한 신뢰도는 무려 92라는 높은 수치를 보였다.
그런 조정호의 성장이 강지한은 고마웠다.
조정호 역시 강지한에게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감사를 느끼고 있었다.
평소에 말수가 적고 낯을 가리는 그가 강지한 앞에서만큼은 말이 많아지는 것이 그 증거.
오고가는 대화 속에 술도 계속 들어갔다.
한 잔, 두 잔이 한 병, 두 병을 넘어 세 병이 되고, 안주도 반 이상 줄어들어 슬슬 취기가 올라올 무렵,
할짝.
“……!”
설탕이가 바닥을 짚고 있던 조정호의 손을 핥았다.
조정호가 기겁해서 설탕이를 바라봤다.
한데 설탕이는 조정호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다른 곳을 보며 등을 돌려 앉았다.
‘…….’
그러자 조정호의 기억 속에 촉촉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웠던 혀의 감촉만이 남았다.
그건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한데 설탕이가 그를 핥은 뒤 눈이 마주쳤다면 조정호는 혀의 감촉에 집중하지 못했을 것이다.
개에게 물려 생긴 공포증은 개의 눈을 보는 순간 가장 크게 그를 엄습하기 때문.
그런데 설탕이는 한 번 손을 핥고서는 바로 시선을 돌렸다.
덕분에 조정호의 마음속에 있던 공포증이 약간은 사라졌다. 아울러 살랑살랑 움직이는 설탕이의 꼬리가 조금 귀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런 변화가 가능한 것에는 취기의 영향도 있었다.
설탕이는 여태 가만히 있다가 조정호의 취기가 적당히 올랐을 때 손을 핥았다.
뭐를 노리고 그랬는지 우연이었는지는 설탕이만 알 수 있었다.
‘……이제는 핥아도 안 놀랄 것 같은데.’
이후로 조정호는 설탕이가 혹시나 손을 한 번 더 핥아주지는 않을까 싶어 은근히 기대했다.
하지만 설탕이는 더 이상 조정호에게 혀를 내밀지 않았다.
그에 조정호는 이상하가 애가 탔다.
그러면서 계속 설탕이에게 신경 쓰고 녀석을 힐끔거렸다.
사람에게도 당해보지 못했던 밀당을 강아지한테 당하고 있었다.
* * *
강지한이 조정호와 술을 나누고 있는 시각.
진수성찬의 사장 이봉두와 주방장 김미화도 영업이 끝난 식당 홀에서 단 둘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두 사람의 얼굴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오늘 염탐을 간 지한 식당의 음식들을 잡을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아.”
“후우.”
둘은 한숨을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였다.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켜놓은 텔레비전은 혼자 열심히 떠들어 대고 있었다.
“미화 씨, 뭐 방법이 없을까?”
이봉두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사장님이 수가 없는데 난들 뭔 수가 있겠어요?”
“그렇…… 지?”
둘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서로를 더 답답하게 만들 뿐이었다.
이봉두의 피곤한 시선이 텔레비전으로 향했다.
거기에서는 ‘바른 먹거리’라는 시사 프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른 먹거리는 전국의 비양심적인 식당을 고발하는 프로그램으로 그 선정적 내용으로 인해 2년여간 안정적인 시청률을 자랑하고 있었다.
지금 방송되고 있는 내용은 ‘중국집의 위생과 재료의 진실’이라는 주제였다.
바른 먹거리 측은 위장 취재를 하는 만큼 방송에 나가는 중국집의 상호와 관계자들 얼굴을 모자이크하고 위치는 밝히지 않았다. 물론 음성도 전부 변조해서 나온다.
하지만 그 집의 단골손님들은 충분히 알아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해서, 바른 먹거리가 방송된 날 저녁부터 다음 날 오후까지는 그곳에 등장한 식당들로 인터넷이 떠들썩했다.
그리고 타깃이 된 식당들은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기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방송을 보던 이봉두가 중얼거렸다.
“지한 식당이 저런데 나오면 얼마나 좋아?”
“그러게 말예요.”
김미화가 맞장구를 쳤다.
어느덧 프로그램은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었다.
바른 먹거리는 문제의 식당만 고발하는 것이 아니다.
바른 먹거리를 만들어 손님들에게 제공한다고 판단되는 식당에는 바른 식당이라는 명패를 수여하고는 했다.
하지만 그런 식당을 자주 찾기는 힘들었다.
오늘도 바른 식당은 찾지 못한 채 진행자가 클로징 멘트를 했다.
-바른 먹거리는 시청자 여러분이 안심하고 외식할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열심히 뛰고 또 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개 숙여 인사하는 진행자의 밑으로 자막이 나타났다.
‘바른 먹거리에서는 전국 한정식당의 실태조사를 위한 시청자 여러분의 바른 식당 추천을 받고 있습니다. 시청자 게시판에 많은 의견 부탁드립니다.’
“참나. 저게 말이 추천이지, 시청자 게시판에 들어가 보면 추천 글보다 신고 글이 더 많다고.”
이봉두가 씨근거렸다.
“맞아요. 그리고 신고 들어간 곳 중에서 화제성이 큰 곳만 골라가지고 잠입 취재하는 것 같더라니까요.”
별생각 없이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를 쳐다봤다.
“잠깐만…… 이거 어쩌면…….”
이봉두의 입꼬리가 스르륵 말려 올라갔다.